▲ 우상렬, 파리 모대학교 교환교수
[서울=동북아신문]파리는 멋진 타이틀이 많다. 낭만의 도시, 디자인의 도시, 패션의 도시,.. 이 가운데 뭐니 뭐니 해도 예술의 도시가 그래도 가장 점잖고 품위 있어 보인다. 그럼 우리 이제 예술의 도시-파리로 들어가 보자.

파리는 하나의 예술전당으로 볼 수 있다. 전반 파리시가 너무나 예술적으로 구획되었다. 파리는 센느강에 있는 시테섬으로부터 점점 확장되어 이루어졌다고 한다. 여기서 시테라는 말은 바로 영어의 도시라는 city의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19세기 중엽 오스만에 의해 근대도시로 탈바꿈하면서 현재 도시스타일로 변모했다고 한다. 파리중심을 이루는 개선문에 올라가 보라. 개선문을 중심으로 샹젤리제를 비롯한 12개의 대로가 부채살처럼 쫙 뻗어나갔다. 한 눈에 보기에 시원하고 멋지다. 어쩌면 태양이 빛나는 모습을 하고 있다. 파리는 이런 부채살을 끼고 빙빙 돌아가며 한 구역, 한 구역 맞물려 나갔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파리사람들이 좋아하는 달팽이모양으로 되었다고 한다. 그래 올망졸망 달팽이가 신비하지 않은가. 사실 프랑스사람들은 파리만이 아니고 전반 프랑스가 정6각형의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된 천혜의 멋진 나라라고 자부한다.

파리의 건축을 보면 고대 아테네의 대리석 기둥식 건축, 로마의 거뜬 들린 궁륭식 건축으로부터 중세기 고딕식 건축, 문예부흥시기 바로크건축, 그 후 로코코건축, 그리고 오늘날 현대건축, 포스트모던건축에 이르기까지 유럽 다양한 시기의 건축들이 나름대로 자기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건축미의 향연을 펼쳐보이고 있다. 이런 건축들 사이사이에 펼쳐진 수많은 광장이며 공원들은 도시를 한결 여유롭고 조화롭게 한다. 그리고 이런 광장이며 공원에 다양하게 뿜어내는 분수며 많은 멋진 조각들은 도시의 예술적 품위를 기껏 살려준다. 여기서는 스트라빈스키광장에 있는 분수 하나와 반고흐조각 하나만 보자. 스트라빈스키광장에 있는 분수는 일단 모양이 특이하다. 아이들 장난감 같다. 그리고 다른 분수들이 일정하게 규칙적으로 물을 뿜어내는데 반해 이 분수는 기상천외-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아무렇게나 자기 멋대로 뿜어낸다. 이 분수는 러시아 현대 작곡가인 스트라빈스키의 ‘불의 제전’을 분수조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반고흐조각은 아주 작은 공원 안에 있다. 이 공원은 바로 이 반고흐조각 때문에 인기만점. 그래서 아예 반고흐공원이라 한다. 반고흐조각은 1961년 러시아 출신의 프랑스조각가 지드킨이 조각한 동상이다. 나무껍질 같은 모습의 옷을 입고 있는 마르고 초라한 모습의 반고흐동상은 마치 인상파의 그림을 보는 감을 준다. 사람들이 진짜 고흐를 만났다는 기분으로 열심히 기념촬영을 하는 장소로 유명하다.   

바로 이런 예술적 도시에 그래피티(Graffiti)예술이 덤으로 가해진다. 파리사람들은 어쩌면 꼭 마치 아이들 같다. 도시 곳곳에 알락달락 칠갑을 한다. 어두컴컴한 지하철선로의 벽면에까지 칠해진다. 내가 사는 촌구석 같은 동네에도 여기저기 눈에 띈다. 좀 지저분한 감을 준다. 그들은 워낙 낙서하기를 좋아한다. 낙서벽이 있는듯하다. 그런데 단순히 낙서로만 보기에는 좀 석연치 않은 데가 있다. 그것은 분명 예술의 생활화가 아니겠는가. 그렇다. 그래피티아티스트란 말이 사람들 입에서 오르내린다. 이런 예술가들은 기존의 네모난 캔버스를 벗어나 살아있는 세상을 화폭으로 삼았다. 그래 건물들 및 그 주변환경과 어울리는 그래피티가 아름답지 않은가. 그래피티는 상당히 다양하다. 외계인이 쓴듯한 글자나 부호로부터 현대, 포스트모던 스타일의 그림까지. 또 어떤 괴짜들은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치벽한 곳에 그려놓거나 똑같은 그림을 이곳저곳에 남기는 경우도 있다. 여하튼 신비하고 알쑹달쑹한 ‘짓거리’들이다. 그래피티아티스트로서는 그래도 미스틱(Misstic)이 유명하다. 그의 그래피티는 그 유명한 몽마르뜨에도 있고 마레에도 있다. 그는 애인과 헤어진 다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글과 그림으로 많은 인기를 얻었다. 검은 옷에 섹시하면서 인상이 강한 여자를 잘 그린다. 그는 여자로서 이런 그림을 통해 남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한단다. 그래서 여자들이 매우 좋아한단다. 미스틱의 그래피티는 상품의 디자인이 되기도 했다. 어느 한정품으로 나온 가방에 그녀의 그래피티가 새겨져 상당히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미스틱의 홈페이지(www.missticinparis.com)에 가면 그녀가 1985년부터 작업해온 그래피티를 감상할 수 있다.

예술의 생활화를 추구한 그래피티가 좀 대중적인 당대의 것였다면 파리사람들의 본격적이고 전통적인 예술추구를 좀 보자. 여기에는 루이14세가 발명했다는 발레를 비롯한 많은 예술종류가 포함되겠지만 그래도 파리를 대표하는 예술은 미술이다. 프랑스사람들은 천생적으로 미술에의 장인정신이 발달한 것 같다. 반고흐, 고갱, 모네... 기라성 같은 세계적인 미술대가들이 수두룩하다.

프랑스는 일찍 루이14세 때 왕립미술학교가 섰다. 그리고 총칼만 휘둘렀던 같듯 나폴레옹 시대에 파리미술학원을 세웠다. 이것은 세계에서 최초로 미술교육을 진행한 곳이다. 현재 유명한 미술교육기관으로는 파리에서 전망 좋은 곳의 하나인 말라케(Malaquais)강변에 자리잡은 국립 파리미술학교(Ecole Nationale Superieure des Beaux Arts)가 있다. 이래저래 파리는 미술의 성지. 몽마르뜨로 가보자. 몽마르뜨, 평지와 구릉뿐인 파리에서 가장 높은 곳. 파리 최초의 주교인 생 드니(St-Denis)가 순교한 역사적인 장소다. 몽마르뜨란 이름 역시 몽(Mont, 산이라는 뜻), 마르트(Martre, 순교자라는 뜻), 즉 ‘순교자의 산’이라는 뜻이다. 사실 여기는 1890년부터 1920년 사이에 집값 때문에 파리 시내에서 살 수 없었던 많은 예술가들이 집값이 싸서 모여들었던 곳이다. 가난하지만 예술을 천직으로 알고 예술에 ‘순교’하던 예술가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한 끼 먹을거리도 없어 빵부스레기를 주어먹고 신발이 없어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돈이 없어 집세도 못 냈다는 예술가들. 물론 현재는 많이 변해있다. 그러나 아직도 예술적 정취는 물씬 풍긴다.

몽마르뜨의 중심가에 이르면 입구에서부터 초상화를 그리라고 호객하는 화가들이 눈에 띈다. 이런 화가들은 대개 수준미달급의 엉터리들이라고 한다. 중심가를 꿰찔러 테르트르광장(Place du Tertre)에 이르면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들이 그림받침대를 세워놓고 즐비하게 늘어섰다, 테르트르란 말은 ‘언덕의 꼭대기’라는 뜻인데 실제로 이 광장은 몽마르트르의 작은 언덕 꼭대기에 있는 광장이다.

한때 이곳은 처형장소였지만 현재는 화가들의 성당으로 자리 잡았다. 19세기부터 화가들이 이곳에 모이기 시작했고 지금도 이곳은 화가들의 언덕으로 유명하다. 이곳에 모인 화가들은 거의 다 예술협회에 등록되어 있는 수준급을 자랑한다. 몇 분 안 되어 한 장씩 척척 그려낸다. 그림스타일은 고객의 요구에 따라 정교한 사실주의필치, 모던적인 추상화, 만화적인 희극화... 값도 그리 비싼 편은 아니다. 초상화를 그리는 가격은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약 25-30유로 정도이다. 이들 화가들은 파리나 프랑스화가들만이 아닌 것 같다. 유럽 각 지의 화가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우리 동양의 화가들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아마도 이 예술의 성지-몽마르뜨에 와서 좀 굴러봐야 정녕 예술가로 거듭 나는듯한 공감대를 형성하기라도 한듯. 테르트르광장 뒤편으로 연결된 계단을 따라 내려가다가 그 끝에서 오른쪽 길(Rue Gabrielle)로 걸어가면 49번지 피카소가 살던 집이 나온다.

좀 더 걸어가면 에밀구도광장(Place Emile Goudeau)이 나타나는데 이곳에서 세탁선이 보인다. 세탁선은 당시 많은 시인들과 예술가들이 거주하며 교류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피카소, 반고흐, 모딜리아니, 미티스, 기욤 등 유명한 화가들이 여기서 활동했다. 세탁선이란 이름은 막스자코브가 예전에 센느강변에 빨래를 하기 위해 떠다니는 배 모양과 집이 닮았다고 해서 지어준 별명이다. 1970년 세탁선은 화재로 불에 탔지만 곧 복구되었고 박물관으로 개장되었다. 박물관안에 들어가면 작가들의 기거했던 방들과 작업실이 복원되어 있다. 그리고 사진, 작품들과 만날 수 있다. 사실 세탁선은 피카소가 화실을 차리면서 유명해졌다. 피카소는 큐비즘(Cubisme)의 논란을 일으켰고 입체주의의 영감을 불러온 ‘아바뇽의 처녀들(Les Demoiselles d'Avignon)’을 이곳에서 그렸다. 그래서 큐비즘-입체주의 화풍의 탄생지라고도 일컬어진다. 그리고 Vincent길이 끝나는 쯤에 라팽아질(Lapin Agile, 날쌘 토끼라는 뜻)이라는 카바레가 있는데 20세기 초 피카소, 모딜리아니 등이 단골로 드나들던 곳이다. 오늘도 샹송공연을 볼 수 있다.

이외에 1889년에 개장하여 프렌치 캉캉춤으로 유명했던 댄스홀-물랭루즈(Moulin Rouge, 빨간 풍차라는 뜻) 옆으로 난 Lepic길을 따라 올라가면 54번지 건물의 4층 왼쪽의 세 번째 집-반고흐가 테오에게 얹혀살던 집을 만날 수 있다. 고흐는 이곳으로 이사를 온 후 인상파화가들을 만나 흥분하고 교류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고립되었다. 그리고 몽마르트르에는 원래 17세기에 밀을 갈거나 포도의 즙을 짜는데 이용하던 재분용 풍차가 30대 이상이나 설치되어 있었단다.

하지만 근대화의 물결에 따라 1870년부터 풍차가 없어지기 시작했고 현재는 두 개의 풍차만 남아 있다. 블뤼트팡풍차와 라데풍차가 그것이다. 블뤼트팡풍차는 1622년에 세워졌는데, 1870년 마지막 주인이있던 드브레가 춤을 추는 술집을 만들어 1895년에 갈레트풍차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 두 풍차는 당시 몽마르트르에서 활동하던 화가들에게 노스텔지아를 자극했던지 혹은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켰던지 미적 표현의 대상이 되었다. 반고흐, 르느와르, 피카소 등 많은 화가들이 화폭에 담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반고흐의 ‘블뤼트팡풍차’와 르느와르의 ‘갈레트풍차에서의 춤’은 그 보기가 되겠다. 현재 몽마르뜨에는 겔러리도 많고 경제력이 있고 세련된 사람들이 많이 살기도 한다. 초라한 거리의 거지 같은 예술가와는 잘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한국의 인사동쯤으로 생각하면 되겠다.

사실 몽마르뜨만의 얘기가 아니고 파리에는 거리에 다니다보면 그림을 그려주는 예술가들을 심심찮게 만난다. 특히 루브르, 퐁피두, 오르세 등 예술박물관 부근에 많다. 이들의 ‘몰골’을 보면 대개 초라하다. 머리는 삼검불 같고 얼굴에는 땟국이 흐르고 옷은 여러 물감으로 덕지덕지 덧칠되어 있다. 어쩌면 예술가의 진면모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이 즉석에서 그려내는 그림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림 하나밖에 모르는 그 투철한 직업정신, 하나하나 펼쳐지는 예술경지에의 몰입, 신령스러운 손놀림... 그래서 그림이 완성되는 순간 주위의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박수갈채를 보내거나 앞에 놓여있는 돈구럭에 돈을 던져주거나 그 그림을 사기도 한다. 이들 예술가들은 실로 예술에 혼신의 정을 다 쏟는다. 좀 무모할 정도로. 퐁피두센터 옆에 있는 스트라빈스키광장(Place lgor stravinsky)에서 본 광경을 이야기하지.

한 ‘거지’ 같은 화가가 광장바닥에 대형 채색미인도를 그리고 있었다. 그가 한 획을 그을 때마다 미인은 파리 현실의 미인보다 더 생기를 띠며 아름답게 피어난다. 많은 사람들이 빙 둘러서서 구경을 한다. 그래도 별로 돈구럭에 돈을 던져넣지 않는다. 그 미인을 시샘해서인지... 그런데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기 시작하던 빗방울이 삽시에 쏵 내리며 그 미인도를 씻어내 버리고 만다. 공든 탑이 이렇게 하루아침에 무너지는가... 사실 파리의 추절추절 비가 잘 내리는 궂은 겨울 날씨에 이런 미술작품은 물거품이 되기 십상이다. 그런데 파리의 화가들은 이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외국인인 나까지도 아는데 말이다, 사실 그들은 이런 것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비가 오든 말든 그 돈도 안 되는 그림을 계속 그려 나간다. 그림, 그것은 그들의 숙명이니깐! 사실 프랑스사람들은 모든 곳, 모든 것을 예술화한다. 그들은 워낙 예술세포로 가득찬 예술체질들이다. 나는 프랑스남단의 지중해 해변도시 니스에서 희한한 광경을 보았다.

프랑스의 겨울이 그렇듯이 잔뜩 찌푸린 흐린 날씨건만 지중해는 비취색갈처럼 파랬다.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해변가에는 나무작대기며 빈 깡통이며 광천수병이며 쓰레기가 무더기로 쌓여있다. 기분이 잡쳤다. 일말의 아쉬움이 감돈다. 그런데 여기저기 사람들이 쓰레기를 주어 나른다. 청소하는가보다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들은 이 쓰레기로 해변가 모래사장에 예술품을 설치하고 있었다. 바로 현대현실의 쓰레기예술이라는 것이다. 이제 밀물이 닥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겠는데 말이다. 이런 거는 그들하고 관계가 없다. 그들은 아무리 순간적이라도 예술을 추구한다. 그것이 허무하게 무너질지라도! 스러지는 꽃을 보는 아련한 아픔이 가슴에 맺히기도 한다. 바로 이런 기질로부터 프랑스는 19세기 말부터 예술을 위한 예술 같은 순수예술이 꽃펴날 수 있은 줄로 안다. 여하튼 멋지다. 너무 인간적인, 너무 예술적인 그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나도 모르게 ‘nice!, nice!’를 연발했다. 니스의 프랑스어스필링이 워낙 영어의 멋지고 좋다는 ‘nice’와 꼭 같게 생겨 먹었다.

파리에는 미술박물관이 대단히 많다. 세계 3대박물관의 하나로 손꼽히는 루브르박물관을 비롯하여 퐁피두센터, 오르세미술관, 시립미술관 등 대형 전시관이나 박물관으로부터 로댕미술관, 고흐기념관, 피카소미술관 등 전문 전시관이나 박물관에 이르기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렇지만 이들 전시관이나 박물관들은 중복되지 않고 나름대로의 독특한 경지를 펼쳐보이고 있다. 예컨대 루브르는 고대로부터 1848년까지 고전작품을 전시했다면 퐁피두는 근대미술과 동시대미술이라는 지극히 현대적인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그리고 오르세는 인상파걸작들을 전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전시는 종족, 민족이나 이념을 초월해서 훌륭한 예술이라는 하나의 잣대로 세계적 범위의 미술작품을 취급한다.

사진, 사진을 빼놓으면 파리가 서러워하지. 낭만적이고 예술의 도시니깐 찰칵찰칵 사진이 발전할 수밖에! 로베르 두아노의 ‘시청 앞에서의 키스(le Baiser de l'hotel de ville, 1950년) 사진을 기억하고 계시겠지? 파리의 낭만을 전 세계에 확 각인시킨 그 사진 말이요. 이 사진이 얼마나 인기 있었는지 초기 인화본이 2005년 파리 경매에서 155000유로에 팔렸다. 두아노는 프랑스사람들이 워낙 가장 사랑하는 인기 사진작가이다. 그의 사진집은 지금도 여전히 베스트셀러. 파리에서는 매년 ’파리사진박람회(Paris Photo)‘가 열린다. 1997년부터 시작된 세계 최초, 최대 사진박람회로 그 열기가 대단하다. 세계 유명 갤러리와 사진가들의 사진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어서 좋다. 이외에 파리는 매년 유럽작가들의 사진을 주로 전시하는 사진전시회(Maison Europeenne de la photographie de paris)를 주최하기도 한다.

파리는 미술, 사진만이 아니다. 음악도 대단한 줄로 안다. 파리오페라하면 세계가 알아준단다. 파리오페라극장도 하나의 아름다운 경관이 되어 파리시내에 우뚝 서있다. 그래서 파리에 음악유학생들도 많이 몰려든단다. 그런데 사실 나는 이런 귀족적인 클래식보다도 거리바닥의 대중적인 통속음악이 좋더라. 파리지하철, 백여 년의 역사만큼이나 좀 거무틱틱하고 노쇠한 모습 그 자체. 그러나 거기에는 항상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항상 지하철연주가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파리의 지하철연주자는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니다. 반년에 한 번씩 오디션을 거쳐 연주자에 뽑히고, ‘자하철예술가’ 자격증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연주할 장소도 지정받는다. 그곳은 대개 사람들이 많이 나드는 환승통로다. 이런 환승통로에서 만날 수 있는 연주자들은 꽤 수준급이다. 괜찮은 실력을 자랑한다. 그들은 듣는 사람과 소통하며 서로 예술적 감각을 키워나간다. 물론 이런 자격증이 없으면서도 연주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연주뿐만 아니라 다른 공연도 많이 한다. 두서넛이 한 조합으로 하여 연주에 노래하는 경우도 있고 혼자서 포장을 쳐놓고 재치있는 손놀림으로 꼭두각시놀음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전통적인 반주기에 맞추어 손발을 흔들어대는 사람도 있다.

파리의 이런 음악, 예술 공연은 지하철만의 얘기가 아니고 시내 곳곳에 있다. 아무렇게나 막 하는 것이 아니고 마이크에, 갖출 것은 다 갖춰놓고 흠뻑 도취되어 사뭇 신명나고 진지하게 한다. 물론 공짜로 거저하는 것은 아니다. 대개 앞에 돈구럭을 놓거나 아예 악기통을 돈구럭으로 쓰기도 한다. 그리고 자기의 노래나 연주를 CD로 굽어내어 판매하기도 한다. 그들도 살아야 하니 말이다. 이런 공연은 파리, 프랑스사람만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우리 동양사람뿐만 아니라 저 남아메리카의 인디안이나 잉카사람들도 여기에 가세하기도 한다. 파리의 거리공연문화는 국제성을 띠고 있다.

파리의 거리공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퍼포먼스-행위예술. 관광구나 번화한 거리에서 쉽사리 만날 수 있는 것이 이 행위예술. 실로 별라별 행위예술이 다 선보인다. 얼굴에 검댕이 칠을 하고 몸에 착 들어붙는 검은 복장을 입고 두 손에 권총을 쥔 강도모양새를 내는가하면, 두 발에 양걸춤을 출 때 늘어뜨린 목발을 하고 독수리모양의 ‘옷’을 둘쳐입고 날아다니는 독수리모양새를 내기도 하며 납색의 우주복을 입고 하늘을 향해 꼼짝 않고 서 있는 모양이 이 세상사람 같지 않다. 좀 이색적인 것은 우리 중국 티벳 라마스님 스타일의 짙노란가사를 걸친 사람이 달랑 스댄리스를 손으로 잡은 채 허공중에 뜬 모양으로 앉아 동양의 신비를 기껏 발산하고 있는 것이였다. 참, 파리, 아니 프랑스에는 괴짜들이 많다.

그리고 이런 괴짜들을 용납하는 정도가 아니고 좋아하고 응원하는 파리, 프랑스사람들이 더 멋져보인다. 그 누가 길 중간 혹은 온 다리를 차지하고 행위예술을 한답시고 ‘지랄발광’을 해도 파리, 프랑스사람은 그것을 불편해하기는커녕 멋지게 봐주고 감상해준다. 때로는 경찰들이 나서서 장소를 보장해주거나 질서를 유지해준다.

파리는 쇼~쇼~쇼~, 쇼적인 도시! 이벤트를 벌리기 좋아한다. 언제든지 시내에 나가면 볼거리가 있다. 크리스마스시즌이 되면 고조를 이룬다. 그런데 이런 이벤트들이 상업적인 돈 구린내가 나는 것이 아니고 예술적인 향기가 나는 것이 너무 좋다. 파리백화점들을 비롯한 많은 가게들의 밖의 길가는 사람들을 향한 상품진렬창들은 너무 멋지다. 그곳은 상품을 팔아먹기 위해 상품을 선보이거나 소개하는 진렬창이라기보다는 멋지고 아름다운 인간의 미적 제품에 매혹되어 발걸음을 멈추고 감탄을 발하게 하는 곳. 크리스마스시즌에는 이런 진렬창들이 아예 나름대로 독특한 그 어떤 예술공연장이 되어 버리고 만다.

그래서 사람들, 특히 아이들은 좋아라고 진렬창유리창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코를 납작하게 박고 보아주기에 여념이 없다. 파리의 이런 예술적 진렬창들은 이미 독특한 진렬창문화로 자리잡았다, 파리에도 포장마차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런 포장마차도 너무 멋지다. 특히 크리스마스시즌에 집중적으로 나오는 포장마차들이 더 멋지다. 얼마 전의 크리스마스시즌에 나는 저녁에 파리의 최고 번화가인 샹젤리제거리로 나갔다. 길 양켠에 포장마차들이 즐비하게 늘어섰다. 그런데 매 포장마차들이 모두 너무 깜찍했다. 꼭 마치 성탄할아버지가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려고 몰고 온 행운의 밀차들 같았다. 실제로 포장마차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들도 보면 붉은 색깔의 성탄할아버지 고깔모자에 옷을 입기도 했다. 그리고 파는 물건도 보면 나름대로의 지방특산품이나 자기가 수작업으로 만들어낸 독특한 것들이 많았다. 분위기도 좋고 개성적인 예술적 센스도 좋다. 그래 돈을 누가 싫어하랴, 파리-프랑스사람들은 돈을 벌어도 이렇게 예술적으로 번다.

나는 파리시교, 내지는 프랑스 고속도로로 달리며 농촌풍경을 보고 감탄을 감추지 못한 적이 있다. 파리-프랑스의 농촌풍경이야말로 전형적인 진짜 예술적인 전원풍경이거늘! 프랑스는 별로 산이 없이 평지나 구릉이 많아 농사짓기에 적합한 천혜의 입지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프랑스는 유럽에서 최대 농산품생산국이다. 그런데 이들 농촌들을 보면 별장 같은 집도 멋지겠지만 경작지가 더 가관이다. 꼭 마치 푸른 잔디나 주단을 펼쳐 놓은 듯 하나의 아름다운 동산으로 꾸며 놓는다. 어떤 데서는 이런저런 기하도형이나 S라인이나 V형 같은 예술도안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래 별로 먹을 것을 가꾸는 밭이라는 개념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자연히 흘러나오는 것이 저 푸른 초원 위에 구름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함께 한 백년 살고지어... 

파리-프랑스사람들은 예술적인 상상력과 독창성이 뛰어난다. 역시 크리스마스시즌에 저녁에 샹젤리제거리로 나갔을 때다. 이리 기웃, 저리 기웃, 빈둥빈둥 돌아다니다가 사람들이 많이 모인 어느 공연장에 이르렀다. 일단 깜짝 놀랐다. 무대가 허공중에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감탄했다. 공연이 너무 멋져서! 쪼각배 같은 무대가 와이야줄에서 이리저리 오가는데 거기서 성탄차림을 한 배우들이 노래도 하고 기타도 치고 선물도 내려보내며 한바탕 신명나게 놀아난다. 우리 관객들은 밑에 서서 머리를 게사니처럼 위로 빼들고 보며 듣기에 제정신이 아니다. 여기에 박수를 치고 사진을 찍기에 또한 바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머리도 아프지 않고 다리도 아프지 않다. 더욱이 이국땅에서 간만의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기를 볼 수 있어서 나는 더욱 기분이 좋았다. 그날 나의 꿈에도 이 쪽배기가 나타났다. 그래 환상적이고 낭만적이지 않은가! 

지루하쟈? 그럼 우리 같이 손 잡고 센느강의 예술의 다리(Pont des Aarts)를 산책하자. 예술의 다리는 초최 1801부터 1804년에 나폴레옹의 명으로 만들어졌다. 목조로 된 보행자 전용다리. 이 다리 위에서 파리의 예술가들이 전시를 하거나 공연을 하는 등 많은 예술활동을 펼쳐진다. 예술의 다리는 ‘사랑의 다리’ 또는 연인의 다리‘라고 불릴 만큼 낭만적인 다리이기도 하지요. 다리를 건넜으면 센느강변에 펼쳐진 야외조각미술관까지 산책하시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술서점 하나 소개. Taschen, 건축, 사진, 디자인, 패션, 광고, 영화 등 방면의 전문 예술서적을 파는 서점 둘러보자. 저렴한 가격으로 수준 높은 예술서적을 살 수 있어서 좋다. 세계 11곳에 직영점이 있단다.

파리는 예술적인 볼거리, 들을거리, 만질거리가 지천에 널려있다. 미래지향적인 예술의 생활화, 생활의 예술화가 잘 되어 있다. 그러니 돈 있고 권세 있는 사람들만이 더 많은 문화생활과 예술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너도나도 평등하게 양질의 예술을 즐길 수 있다.
오시라, 파리로! 파리도 팔락팔락 예술로 화하는 파리다.
 
[끝]
2014.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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