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갑의 횡설수설

본문중의 '중국인'은 중국의 주체민족―'한족'을 일컫는다.

 

일전에 어느 한국인에게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중국인 친구들을 자주 도와주곤 하는데 부탁을 받고 도와줄 때는 식사한 적이 별로 없고 그렇지 않은 때는 오히려 실없이 밥을 얻어먹게 되더라는 것이다. 그 중국인 친구의 말대로 표현하면 '沒事吃飯, 有事辦事(용건이 없을 때는 밥을 먹고 용건이 생기면 볼일만 보다)'라는 것이다.


  아주 의미심장한 말이다. '沒事吃飯'은 평범한 말 같지만 그 속에는 중국 전통문화의 저의(底意)가 깔려있다. 이것이 바로 중국인 청탁문화(請託文化)의 축영(縮影: 축소판)이며 한국인들은 그의 정수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살아가는 도정에 꼭 다른 사람에게 무슨 부탁을 하며 신세를 져야 할 일이 자주 생긴다. 이런 일을 어떻게 행해야 하는가? 필자는 이런 문제를 일괄하여 '청탁문화'라고 일컬으며 중한 두 민족의 청탁문화는 구별됨을 지적하고 싶다.


첫째, 한국인은 너무나 즉흥적이다. 최근 몇 년간 청화대학은 해마다 외국류학생에 한해 5월 15일경에 입시시험을 치르고 6월 15일 오후 3시경에 시험 결과를 발표한다. 그날 오후 3시가 조금 지나면 적지 않은 한국인으로부터 '오늘 저녁 식사나 같이 하자'라는 내용의 전화가 필자에게 걸려온다.


식사 때 당연 입시에 미끄러진 자식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한다. 물론 도와줄 방법도 없겠지만 방법이 있어도 도와줄 기분이 나겠는가! 마지못해 도와주었다 하더라도 속은 꺼림칙하다. 


중국인은 신세를 져야 할 사람과 평시에 느긋하게 친분을 지켜나간다. '오늘 저녁 같이 식사나 할까?'라는 초청을 받는다. 식사한 후 '무슨 부탁할 일이 있나?'라고 물으면 대수롭지 않게 '아니, 우리 둘 다 여가가 있기 쉽지 않으니 술 한 잔 마신 거다'라며 갈라진다.


이런 만남이 오래도록 지속되다가 언젠가는 '우리 자식이 명년에 당신 모교의 연구생 시험을 치르게 되는데 좀 도와 줄 수 없나?'라는 부탁을 한다. 그리고는 '오늘 다른 약속이 있어 같이 식사하지 못해 죄송하다'라는 말을 남기고 이내 사라져 버린다.


둘째, 한국인은 노골적인데 반해 중국인은 음페 적이다. 신세질 사람이 마작을 놀자고 하여 놀면 당연 초청을 받은 자가 딴다. 뒤통수를 긁으며 '오늘은 운수가 나빠(手氣不好) 내가 빨렸지만 기회를 달라. 다음은 내가 이길 테다'라고 한다. 그러나 다음번에도 초청을 받은 자가 이기기가 일쑤다.


한국의 상황은 이렇지 않다. 어느 사업가가 골프장 건설권을 땄다고 하자. 그와 절친한 어느 정치인(이를테면 모 국회위원)의 은행 구좌를 들춰보면 비슷한 기간에 거금을 입금한 기록이 나타나기가 일쑤다.


중국인간에도 노골적인 금품 거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비밀이 잘 지켜진다. 금품을 들여가며 부탁하였지만 도움을 받지 못했거나 심지어 도와주겠다던 사람이 법적 제재를 받았어도 웬만하면 그 비밀을 지켜주지 적발하지 않는다.

 

 '적발해 봤댔자 먼저 내 얼굴에 먹칠하고, 또 그 사람이 지금은 자빠졌지만 앞으로 다시 일어설지 누가 알랴'라는 우려 때문이다. 한국 같으면 서로 원수지면 '내 입이 터지면 그 사람 끝장이야'라고 떠벌리는가 하면 양심선언이다 뭐다 하며 이내 공개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사실 중국에서 행해지는 부정부패가 한국보다 훨씬 더 많겠지만 한국은 날마다 이런 일로 떠들썩하고 중국은 조용한 원인이 언론 관계도 있지만 두 민족의 청탁문화의 이런 차이점에도 많다.


세 번째는 한국인은 결과절대주의(結果絶對主義)이지만 중국인은 결과상대주의(結果相對主義)이다.

 

필자의 어린 시절, 부친이 생산대의 회계를 할 때의 일이다(회계는 생산대의 대장 버금가는 권력자). 부친 생산대의 한족 야채재배기술자가 명절이나 부친의 생일, 또는 우리 집에 대사를 치를 일이 생기면 꼭꼭 찾아오곤 하였다.


부엌구석에 꾸러미 하나 쑤셔 넣거나 삿자리 밑에 봉투 하나 밀어 넣고 어머니에게 눈꺼풀을 껌벅거리고 가버린다. 헤쳐 보면 돼지고기 둬 킬로 또는 현금 10원 정도  들어있다. 한 달에 1인당 돼지고기 석 냥(150그람) 배급 주고, 대사 때 2원 정도 들고 가던 그 시절 여간 반가운 일이 아이였다. 


그러기를 3년가량 지속되던 어느 날 중학교를 졸업한 자기 자식을 생산대의 차부로 써 달라는 부탁을 하지 않겠는가! 생산대의 차부는 누구나 하고 싶어 하는 좋은 일감이다. 여타 사원들은 삼복에 둬 달, 동삼에 둬 달 정도, 그리고 비오는 날이면 쉬지만 차부는 1년 내내 일거리가 있으므로 수입이 퍽 높다.


부친은 물론 그의 부탁을 쾌히 들어주었다. "데머사니, 듕국사람들 속이 하여튼 우리보다 깊어. 그래서라머니, 부탁을 들어 줘두 속이 시원하단 말이야"라며 부친은 감탄해 마지않았다. 


사실 청탁을 위한 느긋한 접촉에는 모험이 따르기 마련이다. 상기의 례로, 3년 후 자식에게 의외의 출로가 생길지, 그때에도 필자의 부친이 회계를 할지, 차부가 남아돌아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주지 못할지…미지수가 적지 않다. 이는 어떤 프로젝트에 투자를 할 것인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이가를 가늠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런 모험에서 중국인은 결과상대주의이므로 결과절대주의인 한국인보다 행하는 확률이 퍽 높다.


한국인 같으면 식사 대접도 신세질 날의 사나흘 전, 혹은 하루 전에 하거나 당일에 한다. 식사를 하자고 제의한 후 신세를 질 필요가 없게 사태가 갑자기 변하면 핑계 대고 식사를 그만두는 수도 있다. 심지어 식사 대접을 할 것처럼 하다가 대접하지 않고 먼저 신세를 진 후, '한번 잘 모시겠다'라고 하고는 그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외면하는 자도 있다.


중한 두 민족의 청탁문화의 차이는 결국 속이 깊어 여유적이냐, 속이 얕아 즉흥적이냐의 차이다. 속이 깊고 얕은 것은 당연 문화가 깊고 얕은데서 기인된다. 한국의 문화가 중국보다 얕은 것은 구태여 말할 것도 없고, 같은 한국인도 지역별로 속이 깊고 얕은 차별이 있다. 같은 중국인도 상해인이나 남방인이 북경인이나 북방인 보다 속이 얕다.


중국 조선족의 청탁문화를 보면 한국인 기질과 중국인 기질을 각각 반씩 닮았다. 같은 조선족도 연변의 조선족은 한국인을 닮은 데가 좀 많고, 기타 지역의 조선족은 중국인을 닮은 데가 좀 많다.

 

언젠가 필자는 흑룡강 모 도시 조선족 중학교 교장의 경험담을 들은 적이 있다. '귀교는 어떻게 성, 시 재정의 돈을 잘 낚아다 쓰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그 교장의 답변은 간단했다. 필자의 이해에 따르면 그 교장이 중국인의 청탁문화에 대한 조예가 깊기 때문이었다.



정인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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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8월 중국 遼寧省 撫順市 출생.

中華書局 編審, 辭典部長(1982년 2월~현재)

淸華大學 中文學科 객원 교수(1992년 8월~현재)

zhengrenjia@263.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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