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상렬, 파리 모대학교 교환교수
[서울=동북아신문]낭만의 파리 좋다. 참 좋지. 그런데 파리는 ‘구리’다. 날아다니니 더 ‘구리’다.

파리는 여름 한 철 내놓고 맑은 하늘보기 힘들다. 하늘은 시어머니 역정에 인상을 잔뜩 쓴 며느리 얼굴 같다고 할까, 항상 찌부둥해있다. 어쩌다 맑은 날씨라야 우리처럼 환상을 자극하는 뭉게뭉게 솜구름이 둥둥 뜨 있는 것이 아니라 간간히 흰 구름이 뿌려진 속에 검푸르기만 하다. 이런 맑은 날씨도 잠간 반짝이고 사라지기 일쑤다. 한마디로 햇빛 한 쪼각 보기 힘들다. 햇빛 한 쪼각이라도 보면 명절기분.

프랑스혁명, 만방에 자랑할만하다. 세계 최초로 전제왕정을 무너뜨리고 부르주아시민들이 일어나 공화정을 이룩한 혁명. 그러나 이 혁명기간에 벌어진 일들은 논리적이라기보다는 감정적이고 시간이 갈수록 그들이 바라던 이상적인 혁명의 모습과는 점점 멀어져만 갔다. 그것은 루이16세 및 그 황후를 비롯한 왕실인원 1100여명을 포함하여 1,6000명 내지 4만명을 별로 합법적인 절차도 없이 단두대에 올려 이슬처럼 하루아침에 사라지게 한 피비린내 나는 혁명이였다. 무자비하고 살벌한 혁명은 혁명의 3거두로 불리운 마라, 단똥, 로버스빌 자신들의 생명조차도 보존할 수 없게 하였다. 이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정의의 명의로 살해되거나 혁명의 명의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게 되었다. 극단적인 혁명은 당시 단두대가 세워졌던 파리 콩코르드광장에 너무 피비린내가 나게 하여 소와 말들이 그쪽으로 지나가려 하지 않았다고 한다. 혁명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발동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그 대가는 처참했다. 그런데 더 아이러니한 것은 이 프랑스혁명의 결과는 나폴레옹의 군사쿠테타로 정리되고 만다. 그리고 가장 아이러니한 것은 왕정을 반대하여 일어난 프랑스시민들이 나폴레옹을 압도적인 투표로 지지하며 ‘황제’로 등극시키고, 그 다음엔 왕정을 복고시킨 사건이 아닐까? 물론 1830년 7월 새로운 혁명이 일어나긴 했지만...

프랑스는 민족자부심이 대단한 만큼 반민족자들에게 엄격하다. 프랑스는 2차대전 당시 나치에 협조한 반민족자들에 대해 전후 깐깐히 청산한다. 정식으로 재판에 회부된 사람만 해도 10만명이 넘고 2000명이 사형선고를 받았으며 700여명이 실형을 살았다. 이는 당시 인구의 5%에 해당하는 것으로 어마어마한 수다. 그리고 그 처벌에 시효를 두지 않고 오늘날에도 계속하고 있다. 이것은 한국이 광복 후 일제에 부역한 그 많은 사람 가운데 40여명만 재판에 회부하고 사실 실형을 계속 산 사람은 하나도 없고 중국이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난 후 ‘앞으로 보기(向前看)’를 강조하며 ‘세 종류 사람(三類人)’어쩌고 저쩌고 하며 어물어물해 넘긴 상황과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프랑스는 과거청산이 그만큼 깨끗한 만큼 과거부채도 그 만큼 적다.

프랑스는 세금을 굉장히 많이 징수한다. 공무원들 아우성이다. 프랑스야 말로 사회주의란다. 사회민주당이 장기간 집권하면서 골고루 잘 사는 사회주의식 정책을 편단다. 프랑스 전력회사 중견 월급의 한 절반쯤이 세금으로 나간단다. 내 월급 2천유로에서 3-4백유러가 세금으로 나간다니 확실히 세금율이 높은 편이다. 그래서 몇 년 전에 한 유명연예인이 세금도피로 러시아로 망명하기도 했단다. 그러나 프랑스의 많은 사람들은 기꺼이 세금을 낸다. 세금을 낸 만큼 혜택이 돌아온다고 믿는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을 돕는다고 자부한다. 프랑스는 세금을 많이 징수하는 만큼 사회복지가 참 잘 되어 있다. 전형적인 복지국가다. 노숙자들뿐만 아니라 외국인들한테도 이런 혜택을 주니 말이다. 유학생들이 세집에 들었을 경우 보조금이 나오는 것은 그 한 보기. 그래서 요새는 국고가 거들나 연금 줄 돈도 없다고 공무원들 사이에 불만소리가 인다고 한다.

프랑스 사람들은 남녀관계에 있어 결혼 전에 괴장히 자유롭다. 서로 눈만 맞으면 키스를 하듯 성관계를 갖듯 동거를 하듯 탓할 바가 아니다. 그런데 일단 결혼을 하면 굉장히 가족주의자가 되기도 한다. 일단 퇴근해서는 곧 바로 집으로 들어가기다. 우리처럼 동료들끼리나 친구들끼리 슬슬 눈을 맞추거나 옆구리를 쳐서 1차, 2차, 3차,,, 하는 법은 없다. 외식을 할 경우 연인이나 부부, 혹은 아이를 곁들인 가족동반을 많이 한다. 손님을 초대하거나 파티를 할 경우 주말에 집에서 많이 한다. 그래서 파리의 많은 가게들이나 식당들은 일찍 문을 내린다. 그래서 파리는 겉모양을 보면 밤생활이 없는듯하다. 우리처럼 삐까삐까 화려하지 않다. 거무틱틱하다. 그런 만큼 부부간 사랑에 절대 충성하기다. 오입이나 외도 같은 것은 절대 금물! 그리고 아이에 대한 의무나 책임도 성실히 이행하기다. 훌륭한 엄마, 아빠가 되는 것이다.

프랑스사람들 돈에 대해 무섭다. 1유로도 안 되는 1센팅, 2센팅부터 1유로, 2유로... 다닥다닥하다. 이런 동전들을 별도의 동전주머니에 정성스레 넣어 다닌다. 여기 사람들은 1유로도 큰 돈으로 보는 것 같다. 길거리의 거지나 공연자들의 돈구럭에 대개 1유로 미만의 센팅을 준다. 10원을 우습게 보는 우리와는 참 다르다. 여기 사람들은 식당에서 일반적으로 더치페이다. 우리가 말하는 AA制말이다. 언젠가 내가 왔다고 내가 소속되어 있는 학과에서 환영만찬을 베풀었다. 기분이 좋아 많이 마시고 많이 먹었다. 그런데 마지막에 결재할 때 되니깐 에누리없이 매인당 얼마씩 풍긴다. 나까지 포함시켜! 사실 이쯤하면 괜찮은 편이다. 한 중국 여자아이가 프랑스 남자친구 집에 들었는데 집세는 면하는 대신 물, 전기 등 사용료는 각기 정확히 나누어 부담이란다. 이것이 바로 프랑스 합리주의.

파리의 바(술집) 혹은 커피집 같은 데는 자리값(Table Charge)이 있다. 이 자리값은 메뉴판이나 그 어디에도 적혀 있지는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스탠드에서 얼마만큼 멀어지는가에 따라 자리값이 매겨진다. 예를 들어 커피 한 잔에 1유로라 할 때 스탠드에 기대서 마시면 1유로, 실내의 테이불에서 마시면 1.30유로, 밖의 테라스에서 마시면 1,50유로하는 식이다.

프랑스요리, 세계에서 알아준다. 전식, 본식, 후식 몇 시간을 요하는 풀코스로 각종 화려한 요리에 포도주를 곁들여 만포식 빵파레! 그런데 사실 프랑스사람 보통 먹는 거 보면 말 그대로 한 끼 에떼우는 경우가 많다. 내가 사는 동네 사람들 보아도 저녁거리로 빵 한 쪼각이나 햄버거 따위를 사가는 것을 심심찮게 보게 된다. 그리고 거리나 지하철에서 열심히 무엇을 먹는 경우를 보게 된다. 여기 사람들은 먹고 싸고 하는 생리적인 면에서 상당히 솔직한 것 같다. 내 눈에 한 끼 떼우는 것이 이렇게 간단할 수가 없다. 사실 파리의 일반 식당을 가봐도 둘이 마주앉아서 겨우 먹을만하게 작은 원탁, 혹은 네모난 상이 많다. 상 자체가 원천적으로 푸짐히 차려놓고 먹을 계제가 못 된다. 그래서 미국사람들이 프랑스에 오면 항상 불만이란다. 항상 배가 고프단다. 프랑스사람 미국사람 웃는다. 미개하게 대식가들이라고. 여기에 한 마디 더-그러니 뚱뚱보가 많지. 프랑스사람들은 무슨 풀코스로 몇 시간을 먹는다 해도 이른바 영양가 차원에서 과학적으로 고루고루 맛보기식으로 조금씩 먹는다. 그래서 그런지 정말 살찐 사람이 그리 없다. 그리고 프랑스사람들은 식사에 낭비라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 나는 점심식사를 학교 주위에 있는 프랑스문화체육부 공무원들의 식당에서 한다. 싸고 종류가 많으니 말이다. 이 식당은 뷔폐 식으로 되어 있다. 자기가 먹고 싶은 음식을 식판에 담아 계산대로 가서 계산하고 먹으면 된다. 그런데 재미나는 것은 계산대에 있는 빵은 무료로 그대로 준다. 참 인심이 좋다고 생각했더니 다른 의미가 아니고 다 먹고 난 후 이 빵으로 접시를 닦아 깔끔하게 먹으라는 것이다. 사실 이렇게 먹는 사람들이 많다. 고양이가 핥아먹은 것보다 더 깨끗하게 닦아먹는다. 잘 산다는 프랑스, 음식낭비가 심한 중국, 이런 생각에 미치자 나한테는 너무 충격적이였다. 파리사람들은 남녀노소 막론하고 담배를 잘 피운다. 우리처럼 식후 담배 사람 죽이는 맛(飯後一只煙赛過活神仙)하는 식이 아니라 거저 푸∽푸∽ 하연 연기를 내뿜는 것이 하나의 낭만적 멋인가봐. 나는 담배를 피우는 내 학생들에게 물어보았다. 백해무익, 담배 왜 피우지? 재미나자나요! 단마디명창! 그럼 그렇다치고. 그런데 나는 프랑스 담배꾼들 중에 엽초 말아 피우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는 퍼그나 흥취를 느꼈다. 비록 담배는 안 피우는 나지만 노스텔지아적인 정서를 자극받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엽초를 말고 피우는 것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런데 너무 초라하고 서글펐다. 옛날 우리의 꽃분이가 해준 낭만적인 칠색무늬 꽃쌈지 같은 것은 볼 수 없고 아무렇게나 꾸겨진 천주머니나 비닐주머니에서 엽초를 꺼내는 품이 벌써 초라하고 서글펐다. 그리고 담배를 마는 폼도 우리처럼 그렇게 익숙하고 매끈하지를 못한 것 같다. 돈이 없어 마지 못해 피우는 엽초니 별 수 없겠지. 우리는 그래도 우정 내지 사랑이 깃든 하나의 낭만으로 승화시켰는데 말이다.

파리는 실로 예술의 도시다. 도처에 예술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평상시에도 그렇커니와 요새 프랑스 최대명절인 크리스마스 및 새해기간에는 거리 곳곳에서 기상천외의 퍼포먼스 및 다양한 예술공연을 한다. 볼거리, 들을거리가 풍성하다. 참 그럴듯하다. 그런데 이들 퍼포먼스나 예술공연을 하는 사람 앞에는 꼭 돈구럭이 있다. 꼼짝 않고 퍼포먼스를 하던 사람도 돈구럭에 돈을 던져줄 때는 프랑스사람 특유의 윙크나 제스처로 고마움을 나타낸다. 유럽에서 가장 유행하는 말 한마디가 그대로 통한다-‘무료 점심은 없다’. 그렇다. 여기서도 예술의 상업화 냄새가 풍긴다. 실은 그들 ‘예술가’들도 먹고 살아야 하니. 또한 예술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돈 몇 잎 기부하는 것도 인지상정.

파리에도 택시가 있다. 그런데 많지 않다. 사람들이 잘 타지 않으니 말이다. 택시값이 비싸단다. 그러니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한다. 우리처럼 쩍 하면 택시타기가 아니다. 그래서 프랑스신사 같은 사람도 멋진 트렁크를 질질 끌며 지하철을 타겠다고 올리 내리며 야단이다. 출퇴근도 자가용보다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승용차를 운전할 경우에도 쌩쌩 달리기가 아니고 느긋하게 달리기다. 자가용은 주말이나 휴가 때 멀리 나갈 때 쓰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가용도 대형차보다는 소형차가 많다. 혼자 모는 운전석만 있거나 앞좌석만 있는 아이들 놀이감 같은 승용차도 있다. 여기 사람들은 우리처럼 차노예(車奴)가 되어 승용차는 꼭이라는 필수품이고 그것의 비교를 통해 누구 잘 나고 못나고를 따지는 그런 생각이 없다. 파리의 승용차 기름값은 미국의 4배나 비싸다고 한다. 정부 차원에서는 기름값도 기름값이거니와 환경오염을 고려하여 기름 자가용을 자제하고 전기 동력차를 선호하도록 유도한다. 전기 동력차는 충전을 쉽게 할 수 있도록 주차하는 길가에 충전기가 비치되어 있다. 파리는 걸어다니는 일반사람들이 교통규칙을 잘 안 지키는 반면에 운전자들은 철저하게 교통규칙을 지킨다. 인행도에 도착했을 때 붉은 불이 들어올 경우 에누리없이 급정거한다. 그리고 푸른 불이 들어와 자기가 인행도를 건너갈 차례인데 사람이 건너고 있을 경우 절대로 운전을 하지 않는다. 사람이 다 건너갈 때까지 차분히 기다린다. 건너가는 사람이 우물쭈물하며 주저하면 어서 빨리 건너라고 손메시지를 보낸다. 철저히 사람중심이다. 그러니 교통사고도 잘 나지 않는다. 나는 이때까지 교통사고 한 건 보지 못했다. 여행사의 경우를 좀 보자. 법적으로 여행운전규칙을 정해놓고 있다. 예컨대 운전수는 하루 12시간을 노동(운전)하되 이 가운데 4시간은 반드시 휴식을 취하도록 되어 있다. 이 4시간 휴식을 또 구체적으로 정해놓고 있다. 첫 출발해서 1시간 지나 15분 휴식하고 그 다음 얼마 가서 30분 휴식하고 또 그 다음 얼마 가서 45분 휴식하고 등등. 그러니 휴게소가 많다. 피로운전을 막기 위해서다. 운전수들은 철저하게 이 규칙을 지킨다. 사실 여행버스에 정착된 칩카드가 이 모든 것을 확인하고 기록한단다. 그리고 수시로 교통국에 가서 검사를 받아야 한단다.

프랑스는 확실히 법치국가다. 굉장히 낭만적이고 대면대면할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모든 것은 철저히 법에 따라 실시한다. 한 중국 유학생이 집에서 5000유로를 가져와서 입금하자고 했단다. 그런데 은행원이 이 돈은 어디서 왔는가, 학생이 어떻게 이렇게 많은 돈이 생길 수 있는가... 너무 꼬치꼬치 캐어물어 신경질이 났단다. 그래, 너네 은행 아니면 다른 은행에 가지, 돈을 주겠다는데 싫어하다니... 그런데 다른 은행도 마찬가지란다. 프랑스은행에서는 금융실명제에 돈세탁방지법 등으로 철저히 입출금내역을 통제한다. 내가 월급통장을 만드는데도 집주인을 불러내어 하나하나 확인한 다음 해준다. 그리고 입출금 내역을 다달이 집으로 우송한다. 물론 다달이 은행사용료를 내야 한다.

프랑스는 뛸 데 없는 선진국이다. 19세기 중반에 벌써 근대화의 과정을 끝냈다. 그들은 이 근대화를 일찍 힘들게 끝내서 그런지 이제는 모든 것이 느긋하기만 하다. 일하는 것이나 일처리가 세월아 네월아, 늦기만 하다. 정평이 나 있다. 한국의 빨리빨리하고는 천양지차다. 파리7대학 옆의 배수관인지 무언지 묻는 공사, 내가 왔을 때 파제껴진 것이 얼마 전에 겨우 마무리를 했다. 적어도 서너달은 걸린 것 같다. 그런데 그들이 끝낸 일솜씨를 보니 하나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다. 이들은 집을 지어도 마찬가지. 얼룽뚱땅 대충하는 것이 아니고 치밀하고 든든하게 한다. 이들의 집짓는 벽두께를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벽두께가 저그만치 50센치미터 내지 1미터정도 된다. 현재 내가 세들어 들고 있는 빌라의 벽두께도 어마어마하다. 여기서 잠간 우리 중국의 경우와 비교해보자. 나는 자연히 우리 중국 사천 성도지역 집들의 벽이 벽돌 한 장 내지 몇 장 두께에 불과하다는 것에 생각이 미친다. 파리의 날씨가 사천 성도지역의 날씨와 비슷하니 말이다. 그들의 집은 지진이 아무리 와도 끄덕없을 것 같다. 프랑스사람들이 집을 치밀하고 든든하게 짓는데는 루브르박물관이나 파리노트르담성당 같은 전통적인 건물양식에서 벌써 틀이 잡혔다. 그들은 집을 군사 요새나 성새처럼 짓는 것이다. 그러니 사실 우리가 아니고 정말 이들이야 말로 백년대계의 집을 짓는다. 그들이 자랑하는 에필철탑을 좀 보자. 이 철탑은 1889년 프랑스대혁명 100주년, 그리고 파리만국박람회를 기념하기 위해서 처음에는 좀 있다가 철거할 가건물로 지었단다. 그런데 모두들 멋지고 좋다고 하니 그대로 두었단다. 그런데 저렇게 완벽하고 튼튼할 수가 있나 말이다. 나의 외국인거류증도 마찬가지. 3달이 지난 아직도 감감무소식. 원래는 3달 이내로 나와야 하는데 말이다. 무슨 조사, 확인, 절차가 그렇게 많고 복잡한지... 여하튼 완벽하게 하는 만큼은 틀림없다.

프랑스의 여자는 강하다. 어느 여사회학자의 말이 재미나다. 프랑스여자는 애교만점이란다. 키스를 해주세요. 외로와요! 여기에 야한 속곳은 기본이란다. 그런데 프랑스여자에게는 분명 다른 모습이 있다. ‘자유의 여신’상을 만든 프랑스가 아니더냐! 프랑스는 ‘자유의 여신’을 숭배한다. 여신이 그들을 승리에로 이끈다. 잔다르크-외적에 맞서 싸운 프랑스의 유명한 민족영웅-성녀. 그리고 들라크루와(Eugene Delacroix)의 낭만주의적 화풍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La Liberte)’(1830년)을 보라. 1830년 7월 혁명은 바로 이 여신의 기치아래 일어났다. 지금도 마찬가지. 두 연인이 걸어가는데 여자가 무거운 짐을 들었단다. 그래서 남자가 들어줄가하면 내 물건 내가 들기다하며 여자가 뻐긴단다. 일찍 모파쌍은 ‘목걸이’에서 일반 여자들에게 있을법한 정상적인 허영조차도 가차없이 꼬집었다. 그래서 여주인공은 10년이나 열심히 일하여 빚을 갚는다. 프랑스여성의 정직성이 돋보인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소설도 안 된 걸 같은 ‘목걸이’가 적어도 프랑스에서는 명작이 된다. 그래 프랑스는 시몬드․보봐르의 “제2성”을 비롯하여 패미니즘-여권주의 진원지의 하나가 아니더냐.

프랑스사람들은 개를 무지 좋아한다. 놀이감 같은 애완개에서부터 사자처럼 덩치 크고 사납게 생긴 개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이다. 그러니 개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한다. 개고기를 먹으면 법적 제재를 받기도 한단다. 한국 ‘88올림픽개최 때 한국의 개고기식용 반대풍파를 일으킨 그 주역들도 바로 이 프랑스사람들이다. 여하튼 프랑스사람들이 개를 자식 맞잡이로 생각하고 너도 나도 끌고 다니는 것은 어쩌면 이해할만 하다. 그들의 오랜 유목문화 전통에서 비롯되었으니깐. 그런데 나는 분명히 보았다. 그들의 개를 끌고 내지는 안고 다니는데 서린 그 외롭고 쓸쓸함, 그리고 개의 충성심에서 느껴보는 그 가련한 사디히즘적인 만족. 프랑스에서는 개를 그리 단속하지 않는다. 그러니 아무대고 오줌을 갈기고 똥을 싼다. 개똥을 밟기도 일수다. 이런 개분비물처리 때문에 당국에서는 골치를 아파한다. 그리고 나는 분명 프랑스사람들이 사람보다 개를 더 좋아하는 것을 보았다. 파리에서는 거지도 개를 열심히 안고 끌고 다닌다. 어떤 때는 한 마리가 아니라 두 마리, 세 마리다. 물론 이런 개들은 대개 못 먹어 비실비실하다. 그래 재미나는 것은 거지와 개가 나란히 앉아 구걸을 한다고 하자. 그러면 거지한테는 동전 하나 주지 않아도 개에게 먹을거리를 사주는 사람들이 나선다. 그리고 사람과 개가 퍼포먼스를 한다. 사람보다 개의 돈구럭에 돈이 더 많이 흘러든다. 사실 재미나기는커녕 비참하다. 사실 거지와 개만의 이야기가 아니고 거지와 성당의 이야기도 마찬가지. 파리는 전통적으로 천주교세상이라 곳곳에 성당이 서 있다. 사람들은 경건한 자세로 세속의 더러운 영혼을 씻으러 성당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바로 이 성당의 입구에는 거지들의 손길이 내밀어 있다. 그런데 그 우상한테는 돈이 바쳐지을지언정 이런 거지들에게는 일전 한 잎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빅토르 위고는 이 인정이 없는 세상을 ‘비참한 세계’라 대성질호했던가.

파리, 아니 프랑스는 이렇게 ‘멋대가리’ 없다. ‘재미’가 없다. 그래도 매력적이란 말인가? 그래도 오겠는가? 오시라!  [끝] 

작가 프로필  1963년 중국 심양 출생한국정신문화연구원 대학원 박사연구생.북한김일성종합대학 조문학부 객좌교수.한국정신문화연구원 고전국어전업 박사한국 배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객원교수사천대학교 박사후 과정연변대학조문학부 교수 및 교연실 주임 역임현재 프랑스 모대학교 교환교수수필가, 평론가. 저서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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