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연희 수필가.  재한동포문인협회 사무국장
[서울=동북아신문]남자보다 여자가 꽃을 더 좋아한다. 여자가 꽃무늬가 있는 옷을 더 많이 입거나 머리에 꽃을 꽂고 다니는 경우가 남자보다 더 많다. 그렇다면 여자가 남자에 비해 꽃을 더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적응 가설에 따르면 여자는 남자에 비해 꽃을 더 좋아하도록 자연 선택에 의해 설계되었다. 과거에 여자는 주로 식물을 채집했고 남자는 주로 사냥을 했다. 따라서 여자는 상대적으로 식물에 더 끌리도록 설계되었고 남자는 상대적으로 동물에 더 끌리도록 설계되었다고 기대할 수 있다.  

학습 가설에 따르면 “꽃은 여자에게 어울린다”고 명시적으로 또는 암묵적으로 가르치기 때문에 여자가 꽃을 더 좋아하게 된 것이다. 그럼 어떤 가설이 옳은 것일까? 원래 여자가 꽃을 더 좋아하도록 설계되었다면 꽃무늬 옷을 입는 남자가 놀림 받는 것은 원인이라기보다는 결과다. 

우선 여자가 남자에 비해 꽃을 더 좋아하는 현상이 인류 보편적인지 조사해 보아야 할 것이다. 만약 인류 보편적이라면 적응가설에 좀 더 무게가 실릴 것이다. 적어도 학습가설 옹호론자에게는 왜 모든 문화권에서 “꽃은 여자에게 어울린다”고 가르치는지 그 이유를 해명해야 할 부담이 생긴다. 

적응가설이이나 학습가설을 떠나서 젊을 때와는 달리 나이 들면서 내가 갑자기 꽃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젊은 시절에는 바쁜 직장일과 빠듯한 살림에 쪼들려 꽃을 감상할 여유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40대부터인가 꽃을 보면 걸음을 멈추고 한참 지켜보게 됐다. 옷도 그냥 민민한 옷보다는 화사한 색깔이나 꽃무늬가 있어야 성에 찼다. 이것은 어쩌면 나이 들어가는 내 초라한 모습에 대한 보안이 아니었나 싶다.  

내가 찍은 사진들을 보면 젊은 시절의 사진들은 꽃이라는 배경이 없어도 사람 자체로도 멋있었는데 나이 들어서 찍은 사진들은 거개가 꽃을 배경으로 했고 그것도 모자라서 목에 두른 스카프마저도 꽃으로 도배된 것이었다. 그래야 잡티 많은 내 얼굴을 아니, 나이 들어가는 내 모습을 커버할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꽃을 좋아하는 것은 어쩌면 꽃보다 예뻤던 젊은 시절에 대한 아련한 미련 때문일 수도 있고 어쩌면 꽃의 아름다움에 밀려나는 내 자신에 대한 연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추억이나 연민을 떠나서 나는 꽃을 보면서 위안을 받기도 한다.  

어느 휴무 날 고속터미널 지하상가에 쇼핑을 갔다가 즐비하게 늘어선 꽃상가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여러 가지 화사한 꽃들이 만개하여 눈을 즐겁게 하고 은은한 향을 내보내면서 사람들의 발목을 사로잡고 있었다. 나는 옷을 사려던 돈보다 더 많은 액수로 화사한 꽃 한 묶음을 사들고 집으로 행했다. 생화라 일주일을 넘기지 못하고 꽃들이 시들어 죽어버렸지만 그 꽃을 보는 매일 매일은 마냥 행복했었던 기억이 난다.

 컨플릭트키친(분쟁지역의 음식)프로젝트 때문에 동사자들과 함께 안양예술공원에 갔다가 왕벚꽃나무에 피어있는 벚꽃을 보는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벚꽃은 봄을 가장 아름답게 장식하는 꽃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여느 벚꽃보다 더 크고 더 화사한 왕 벚꽃을 보자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동과 함께 눈물이 핑 돌았다.

하루 일을 끝내고 퇴근할 때면 길가에 피어있는 꽃들을 바라보면서 한참 묵언한다. 하루의 스트레스를 받아주는 건 역시 꽃이었다. 묵묵히 그리고 아무 보상을 바라지 않고 자기를 아낌없이 내어주면서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나를 반겨주는 꽃들이 있어 살맛나는 세상인가 본다. 만약 꽃이 아니었으면 내 인생은 너무도 삭막했을 것이다.  

이 순간 내가 꽃을 가까이에서 마음대로 바라볼 수 있고 꽃과 진심으로 교류할 수 있고 내 인생의 외로움을 꽃으로 달랠 수 있음에 너무도 감사한 마음이다. 언젠가 또는 누군가에게 화사하고 향기로운 한 송의 꽃으로 피어나는 것이 중년에 들어서는 나의 유일한 소망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시 한수로 이 글을 마무리 한다.  

꽃이 나를 바라봅니다.

나도 꽃을 바라봅니다.  

꽃이 나를 보고 웃음을 띄웁니다.

나도 꽃을 보고 웃음을 띄웁니다. 

아침부터 햇살이 눈부십니다.

 

꽃은 아마

내가 꽃인 줄 아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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