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시대는 홍보시대다. 홍보를 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존재(나라든 기업이든 개개인이든 막론하고)를 세상에, 남에게 알릴 수 없는 시대다. 모든 업체에 걸려있는 간판은 바로 그 업체의 얼굴이나 다름없다. 그런 간판들이 모이면 도시의 얼굴이 된다.

 

30년 전 연변의 거리를 처음 와 보는 한국 손님들이“우리나라(한국) 70년대 초반의 모습을 다시 보는 느낌이다"라고 하던 말이 생각난다. 시장경제가 갓 도입될 무렵 길가의 낮고 꾀죄죄한 점포들 이마에 초라한 간판들이 무질서하게 달려서 호객하던 때를 련상하면 참말 격세지감이 드는 오늘이다.

 

간판문화가 무질서에서 유질서로 급격히 전환하는 요즘인지라 물론 꼬집을 점이 수두룩하지만 모든 일에 과정이 있게 마련인데 어찌 단술에 배부르기를 바라겠는가? 금년 초인가 연길공원 입구쪽에서 큰길 건너 20층도 더 돼보이는 건물의 앞면에 다닥다닥 (그러나 질서있게) 붙어있는 간판들을 한참씩이나 바라보면서 퍽이나 감개무량해 했던 일이 있었다.

 

그런데 얼마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그것은 나에게 있어서 몹시 뜻밖의 일이였던 까닭에 그 일로부터 받은 충격이 꽤나 컸던것 같다. 그날 나는 인터넷사이트를 유람하던중 吉林边务督办公署에 대한 글제목을 발견하고 바로 그 내용물을 읽고있었는데 무심중 잘못 번역이 된 간판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었다. 그 吉林边务督办公署를 소개한 글에는 이렇게 씌여있었다.





 

“연길시 하남가두 광화로 서광골목 7-17번지. 고층건물속에 포위되여있는 자그마하고 낡은 2층건물, 이 건물이 바로 연길에서 지금까지 보존되여있는 청조시기의 유일한 건축물이며 길림성중점보호문화재인 길림변무독판공서—일명 수변루(吉林边务督办公署楼--戍边楼, 도윤루라고도 한다)이다...그런데 지금은 현판 사진에 보듯이 (‘吉林边务督办公署’가) ‘길림변무독사무서’라고 되여있다. ”

 

사진을 보니 현판이 두개가 가지런히 걸렸는데 왼쪽은 한어원문이고 오른쪽은 조선어 번역문이였다. 원문은“吉林省重点文物保护单位 吉林边务督办公署 吉林省人民 政府 1999年 2月 26日 公布”인데 번역문에는 “吉林边务督办公署”가 “길림변 무독사무서” 로 되여있고 락관의 “公布”는 “공보”로 되여있었다.

 

“길림변무독사무서”라, 그러니 督办公署의 督이 앞의 边务에 붙어 边务督이 되고 나머지 办公署가“사무서”로 번역된 결과 督办과 公署가 아주 엉뚱한 언어로 바뀌고만것이다. 그리고 “公布 (공포)”도 의미가 완전히 다른 언어인 “공보(公报)”로 탈바꿈해 결국 성인민정부의 엄숙한 의도가 번역문에서는 완전히 왜곡돼 전달된것이였다.

 

필자는1999년도에 걸린 이 현판이 자그만치 15년이나 흘러가는 사이 혹시 시정이 됐을수도 있지 않을가 하는 기대감에 바로 그 이튿날 수변루를 직방 찾아갔었다. 섭섭하게도 실망이였다. 15년전에 걸린 현판은 추호의 동요도 없이 본 자리에 견결히 붙어있었다. 참 불가사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간판문제에 대한 나의 관심을 야기했던가보다. 나에게는 진짜 필요이상인 스마트폰까지 하나 사가지고 기회만 생기면 간판찍어모으기를 했으니말이다. 한데 그러다보니 간판모양뿐 아니라 간판의 내용에 대해서까지 관찰하게 되였는데 와중에 일련의 문제를 두루 발견하면서 그것이 이 칼럼을 쓰는데 동기부여가 됐던 것이다.

 

 

2

 

연변의 간판문화의 력사는 기실 아주 짧다. 외계문화의 강력한 영향을 받으면서 우리의 언어도 엄청난 변화를 겪고있으며 그런 변화는 여전히 진행중이다. 현재 우리의 간판문화는 기실 외적이미지의 정돈미화에 꾸준히 성과를 올리는 한편 내용물의 혼돈상황개선에 박차를 가하는 시초단계라고 봐도 무방할것이다.

 

이런 형편에서도 우리 연변조선족자치주의 간판어는 다양하기로 정평이 나있다. 그것도 그럴것이 조,한 두가지 문자는 법적으로 병용하도록 돼있는것인데 그중 조선어는 또 실질상 대한민국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어, 중국조선어가 혼용중인 상태이며 동시에 한국으로부터 외래어도 대거 수입되고있다. 그 외 영어, 일어, 로씨야어, 회족어 지어 윁남어까지도  적게많게 간판언어들의 향연에 끼여들고있는 상황이다.



 



그러니 연변의 간판은 아직 “전국시대”에 처해있다고 볼 수 있다. 아래의 례들이 그것을 말해준다.

 

우리의 간판에는 “소고기국”이 있는가 하면 “수육국밥”,“우육탕”,“소탕”이 있으며 “전골”,“신선로”가 있는가 하면“샤브샤브”가 있으며“천층떡(千层酥餠)”이 있는가 하면“바삭떡(酥餠)”이 있으며“뀀점”,“뀀성”, “뀀왕”,“대뀀”,“대뀀왕”이 있는가 하면“미친꼬치(味亲串)집”이 있으며 “담배술전매점”이 있느냐 하면“담배술점”,“담배술행”,“연주행(烟酒行)”이 있으며“구두전문”,“신발나라”가 있는가 하면“신성(鞋城)”,“신점(鞋店)”도 있으며 “머리방”,“머리마당”,“미발”,“발예(发艺)”가 있는가 하면 “헤어클럽”,“헤어컨디션”,“헤어스타일”,“헤어시티”,“헤어뷰티샵”도 있다.

 

이뿐이 아니다.“麻辣香锅”하나가 “매운요리”,“매운료리”,“마라료리”,“마라볶음”으로, 지어“마라향솥”으로 둔갑하기도 하며 같은 “疯狂烤翅”도 점포나름대로 “뢰지핫닭날개”혹은 “미더닭날개”가 되기도 한다. “疯狂”이 “狂疯”으로 바뀌는 경우도 있다. “狂疯鸡”가 그것이다. 여기에 붙은 조선어간판어는 “매드후라이치킨”이다.

 

등록상표가“瘦猴”인 瘦猴麻辣烫은 연길시민 류청송씨가 지난세기 90년대에 창출한 브랜드인데 아주 잘 나가는 모양, 전국 각지에 체인점도 두고있다. 그런데 그 간판이 이상하다.“瘦猴"가“원숭이",“여윈원숭이”로 된 것이 있느냐 하면 “말라꽹이”로 된것도 있다.

 

이런 례는 얼마든지 들수 있다. 만일 우리의 간판어에 오류가 많거나 또는 그 언어가 어느 것이 옳은지 가려내기 힘들거나 사람을 많이 웃길 정도로 추락되어있다면 그것은 심히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이런 언어들을 모종 규칙에 맞게 규제한다는게 쉬울리 만무하며 하루한시의 해결은 더욱 불가능하다. 하지만 단지 일부에 존재하는 혼란상일지라도 너무 오래 방치해두는건 바람직하지 않다. 일파만파로 번지는 그 영향을 과소평가할수는 없으니까.

 

어쨌거나 문제의 시정을 위해서는 간판문화현황을 잘 파악하는것이 우선일것이다. 이른바의 현황이라야 한어로 작성된 간판어를 조선어로 번역(汉译朝)해서 병기한 것, 조선어로 작성이 된것을 한어로 번역(朝译汉)해서 병기한 것, 병용한 조, 한 두가지 언어가 직접 대응되지는 않지만 서로 보완하면서 동일한 홍보목표를 노린것, 세가지 혹은 그이상의 언어(이미지언어 망라)를 “짬뽕”시켜 하나의 홍보목표를 노린것 등등 뭐 이런 것들에 다름아닐 것이다.

 

이제 상기 몇가지 현상의 범위내에서 일부 두드러진 문제와 그 해결책에 대해 자유롭게 의논해보고자 한다.

 

(다음 호에 이음)

《문화시대》2014년 제4기/조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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