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대로 말하기

 1. 평화에 대한 논증 및 그 장벽 뛰여넘기

응당 세상만사는 모두 그 시작과 기원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시작과 기원은 어떤 원인 혹은 필연적인 어떤 결과와 일관되어 있다. 같은 논리로 인간세상의 평화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그 중에는 틀림없이 어떤 하나의 원인과 필연적인 결과가 산생되고 형성되기 때문이다.  그럼 인간세상의 평화가 무엇 때문에 줄곧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고 또 무엇 때문에 사람들은 그 정체에 대한 종적과 결과를 볼 수 없는 것일까? 굳이 무엇 때문에 그런지를 말하자면 원인은 오직 그 중의 두 방면에 있다. 첫째는 평화 방면에 대한 이론이 부족하고 목표와 방향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째는 평화를 실현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실제적인 행동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즉 그것은 한 이론과 실제를 결합시켜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어쩌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 이미 이와 관련된 이론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직 이에 대한 사람들의 실제적인 행동이 부족한 탓으로 시종 그 이상의 더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필자는 사람들에게 평화와 그 장벽을 뛰여 넘는 철학적인 이치를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평화, 본 이슈에 대해 말하면, 이미 사람들이 이 방면에 대한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그 결과는 매번 평화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소망과는 상관없이 단 한 번의 외침소리 정도로 끝나고 말았다. 단순한 호소 정도로는 평화를 이루어 낼 수 없고 기대 이상의 결과를 가져 올수 없다. 그 중요한 원인은 인류가 평화를 실현하는 것은 본래 하나의 혁명이자 싸움이기 때문이다. 또한 혁명 자체는 조직을 가지고 있고 나아갈 목표와 방향은 물론 실제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모든 사물의 과정은 하늘에서 그냥 떨어진 것이 아니라 그에 반한 대가로 하여 얻어진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평화라는 이 이슈를 거론할 때 우리의 어떤 현실을 벗어나 맹목적으로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은 실질적인 의의가 없다. 그 까닭은 흩어진 모래식의 외침소리는 다만 하나의 염원을 표현할 뿐 아무런 힘의 존재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직 혁명을 통해서 만이 천하태평의 이 염원을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  혁명에 대해 언급하면, 사람들은 흔히 “혁명”이라는 두 글귀에 대해 일종의 공포 심리상태를 가지고 있다. 그 원인은 지난날 많은 혁명과 그것을 실천하는 정에서 사람들의 인상과 역사에 남긴 것은 오직 전쟁, 전투, 사살 및 전복이라는 스토리뿐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여기서 알려드리고 싶은 것은 인류 평화라는 위업속의 이 혁명은 본래 총을 들고 싸우고 누구가 누구에게 포를 쏘는 것도 아니고 주먹이나 곤봉으로 죽기내기로 끝을 볼 때까지 살벌한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와 대조되는 온화한 양상이 일어난다.  사람들은 모두 전쟁 형식속의 혁명에 대한 일련의 방법, 조치와 수단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평화속의 혁명에 대해서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것에 대하여 마음이 없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평화의 해결책을 찾는 과정에서 흔히 취하는 행동이란 한번 또 한 번의 반복되는 외침소리, 고함소리와 비난, 심지어 강제에까지 미치지만 아무런 형식상의 변화가 없다.  지난 역사를 돌이켜보면, 인류의 평화 위업에 관한 혁명은 무력으로 쟁취한 것이 아니라 뚜렷한 목표와 방향이 있는 전제하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공동의 투표 형식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여 결과를 얻어낸다. 여기서 인류의 평화 위업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우선 쟁취해야 할 것은 바로 하나의 목표와 나아갈 방향을 제정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한 가지가 있다면 최선을 다해 국민투표 형식으로 본 과제를 전개하고 시작해야 한다. 인류의 평화는 본래 인류의 공통적인 사업이므로 오직 힘을 모아야만 그 역량을 충분히 체현할 수 있고 또 개개인의 목소리와 공동의 소망을 보다 더 구체적으로 체현할 수 있다. 그리하여 인류의 평화 위업을 진행하는 과정에 있어 그 형식과 내용을 막론하고 모든 장애물을 뛰어 넘고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 올수 있다.  2. 미설현상과 본질  조금도 의심할 바 없이 평화를 실현하려면 고된 해결책을 찾는 방법에서 벗어나 우선 하나의 뚜렷한 분투 목표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 있어야 한다. 인류가 평화 위업을 실현하는 먼 노정과 그 과정에서 우리는 우선 무엇이 평화 위업중의 현상과 본질인가 하는 두 가지 문제를 잘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의 목표는 이성적인 방면의 인식과 그 경지에 이르는 높이와 수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류의 평화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과정에서 우리는 이 양자 간의 관계를 잘 이해하고 결부시켜 최후의 결론을 얻어내야 한다.  우선 사람들은 객관적인 사물이 우리에게 반영하는 것은 흔히 두 가지 방면이 있다는 것을 잘 알야야 한다. 즉 그 중 하나는 객관적인 현상이고 또 하나는 객관적인 사물속의 본질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 평화 위업의 먼 노정과 그것을 쟁취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무엇이 평화 위업중의 현상과 본질인가 하는 이 두 가지 문제점을 잘 알아야 한다. 그것은 인류사회 그 자체도 마찬가지로 이런 두 요인의 존재를 가지고 있는 까닭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도리를 잘 알아야 할 필요성과 명석한 사고방식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인류, 우리의 사회는 기나긴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인류사회의 평화를 위해 여러모로 많은 노력을 거듭했다. 더욱이 오늘날 이 사회, 이 시대 사람들의 평화를 갈망하고 추구하는 마음은 더더욱 강렬하다. 그것은 현재, 오늘날의 전쟁이 무서운 극점에 이르렇기 때문에 그 진통과 고함소리가 더 강렬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문제는 이와 같은 강렬한 진통과 고함소리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이 담담하고 오히려 그 기세가 더 심해지는 양상이다. 우리는 그것을 보고도 막을 수 없고, 멈출 수 없으며 우리의 소원과 상관없이 역행을 하다못해 모순의 곬이 더욱 깊어지고 격화된다. 오늘날 세계의 국제형세가 바로 아주 좋은 설명이자 그 증거이다.  그럼 무엇 때문에 그럴까요? 그 답은 두 가지 방면에 있다. 그것은 사람들의 평화를 가늠하는 모든 기준이 자신들의 감촉과 감수에서 나오고 다른 사람의 감촉과 감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계가 평화에 대한 해법을 찾는 진로와 근본은 자신들의 성장과 끊임없는 향상일 뿐 그 주체가 이 사회에서 유래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요인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래서 현재 이 세계의 평화는 아주 첨예한 모순상태에 처해 있다. 그리하여 조그마한 변고가 생겨도 순간에 폭발하고 높이 떠올라 완전히 하나의 모순을 가득 채운 풍선이 되고 만다.  이 모순속의 풍선을 구제할 도리와 해법이 없는 가장 직접적인 요인은 바로 평화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보편적인 인식이 이성적인 인식, 그 경지와 수준에 미치지 못할뿐만 아니라 여전히 감성적인 인식단계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이 세계의 평화는 더욱 복잡하게 변하고 두서가 없으며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그 사태가 더욱 고조되고 굴리는 눈덩이처럼 커져 결과적으로는 미궁과 같은 수렁에 빠지고 피동이 되어 도저히 빠져나갈 방법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인식을 감성적인 인식으로부터 이성적인 인식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겠는가 하는 결론은 오직 사물의 현상과 본질의 관계에서 그 답안을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의 인식과정은 감성적인 인식으로부터 다시 이성적인 인식에 이르고 실질적으로 사물의 현상으로부터 다시 사물이 내재한 본질에 이르기 때문이지 다름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양자를 구분하지 말고 더욱 긴밀히 연계시켜야 한다.  사람들은 객관사물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과정에 항상 그 객관사물 현상의 교란과 장애로 인해 진정으로 객관사물 현상의 속내와 그것이 내재한 본질 부분을 이해 할 방법이 없다. 사실대로 말하면 사람들이 인류 평화에 대한 문제를 인식하고, 이해하고 처리하는 과정에도 마찬가지로 이 현상의 교란과 저애를 받는다. 다시 말하면 세계 평화라는 문제에 있어서 이 현상과 본질 두 방면의 요인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세계의 평화를 모색하는 과정에 평화 사업 중에 나타나는 이 현상의 장애에서 벗어나 사물의 본질을 내재한 방면으로 나아가야 한다.  여기서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부분은 의심할 바 없이 무엇이 평화 위업중의 현상과 본질인가 하는 문제이다. 평화에 대한 문제의 현상으로 말하자면 그 답은 바로 이 세계 평화 영역의 형세 속에서 사람들이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하는 모든 것과 사람들이 관심하는 모든 것이다. 그러나 인류 평화 문제 중의 본질에는 모든 문제가 이와 관련된 깊숙한 곳에 숨어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평화를 추구하는 고달픈 긴 여정에서 역사를 되돌아보고 반성을 해봐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 문제를 둘러싸고 끊임없는 노력을 해왔으나 결국 ‘현상’이라는 이 복잡한 문제에 포위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평화라는 영역의 먼 노정에서 오직 이 착오를 시정해야 만이 우리는 큰 걸음으로 앞을 향해 힘차게 나아갈 수 있다.  물론 여기서 우리가 인정해야 할 것은 고금의 역사와 오늘날의 이 사회를 막론하고 이미 모두 인류사회의 평화를 위해 여러가지의 노력과 기여를 하였다. 동시에 우리가 볼수 있었던것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평화에 대한 노력이 흔히 어느 한 사건, 한 행위 그리고 어떤 잠재적인 위해의식 등등의 방면에 그쳤고 여기에 대한 규범성적인 요구, 규제, 제한외에 호소, 질책과 고함소리가 단지 모종의 경지에 이르렀을 정도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모든 노력이 이 정도였고 또 이 정도뿐이었으며 그 어떠한 획기적인 성질의 변화가 없었다.  물론 우리는 이러한 여러가지 염원과 요구, 규제와 제한을 반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기서 꼭 강조해야 할 점은 이런 차원에서 세워진 조치는 근본적으로 전세계적인 의미의 평화를 이룩할수 없다. 만약 이러한 조치가 얼마간의 작용을 한다하더라도 단지 어떤 정도의 보호와 대항 혹은 상적 할 정도의 상태에 이를뿐이지 결코 진정한 모종 의미의 평화에는 도달할수 없다. 그것이 설사 전쟁을 해소하고 또 대항 정도의 이런 형식은 다만 그에 상응한 국면만 나타날 뿐이다.  물론 사람들이 이런 현상의 미궁에서 벗어나는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현실 사회속의 모든것은 살아 있는 현실로서 이 상태에서 사람들의 사상의식은 그리 쉽게 정정하거나 개변할수 없기 때문이다. 마치 아침의 태양이 동쪽에서 떠올라 서쪽에서 지는것처럼 사람들은 현실속에서 이 현상과 상태를 피하기가 아주 어렵다. 비록 지구와 태양의 관계에 대한 문제는 이미 논증된바 있지만 현실 사회속의 평화는 여전히 사상 인식을 초월하는 큰 변화가 없었다. 그것은 아직 현실 사회속에 사람들에게 참고와 대비가 될만한 다른 전례가 없기 때문이다. 뿐만아니라 객관 사물속의 본질이 항상 객관 사물이 내재한 깊은 곳에 숨어 있어서 우리가 직접 그것을 이해하고 장악 할 방법이 없다. 그러므로 인류의 평화를 모색하는 과정에는 이 문제가 내재한 본질을 신도있게 연구하고 모색하여 그것을 밣혀내야 한다.  총적으로 말할때, 이와 관련된 방면의 이론은 이미 전면적으로 완성되었다. 이쯤해서, 인류사회의 평화를 실현하고 역사의 잘못된 국면을 돌려 세우려면 사람들이 더 공부를 많이 하고 깨달음을 얻어 이 깊은 의식속의 상식을 잘 터득해야 한다. 또한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시비를 분간하고 수중의 민주의 권리를 행사하여 오늘날의 사회를 발전시키야될 뿐만아니라 민주적으로 공동 투표를 실행하여 자신들의 소망을 이루어 내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것은 일단 핵심이 되는 문제만 해결되면 부차적인 문제는 따라서 근절되고 해결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호소하고 싶은 것은 사람들의 모든 행동은 이 기초위에 세워야지 맹목적으로 사력을 다해 싸우는 맹세나 선언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2014년 9월 13일    주 : 중국동포 변광전의 논고를 보고싶거나 출판하고 싶은 분은 본지 편집부(02-836-1789)로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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