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의 풍속
상태바
달빛의 풍속
  • 꽃잎.낙엽 퍼옴
  • 승인 2006.04.04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어령

달빛의 풍속


    달을 사랑하고 노래하는데에만은 남녀의 차별이 없었고 로소의 구별이 없었던것이다. 늙은이들은 로송의 휘굽은 가지에 얽힌 달을 바라다보며 거문고를 뜯었고 술잔을 기울이였다.


—태양과 달
    서양에는 태양을 찬미하는 민요가 많다. 그중에서도 《오쏠레미오》가 전형적인것이 아닌가싶다. 애인이나 생명을 말할 때도 그들은 의례 《나의 태양》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시조나 민요에서 《해》가 나오는 일은 거의 없다. 모두가 달에 대한 노래다.
    활활 타오르는 눈부신 태양보다도 우리는 확실히 은은한 달빛을 좋아하는 민족이였다. 달을 사랑하고 노래하는데에만은 남녀의 차별이 없었고 로소의 구별이 없었던것이다. 늙은이들은 로송의 휘굽은 가지에 얽힌 달을 바라보며 거문고를 뜯었고 술잔을 기울이였다.

    집 方席 내지 마라, 落葉엔들 못 앉으랴
    솔불 혀지 마라 어제 진 달 돋아 온다
    아희야, 薄酒山菜 망정 없다 말고 내어라

    아무리 가난한 살림이라도 달을 쳐다볼 때만은 신선이 된 느낌이였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경이에 찬 눈을 뜨고 둥근달을 바라본다. 계수나무에 토끼며, 은하수를 건너는 쪼각배며, 푸른 달빛속에서 그들은 그렇게 은은한 꿈결에서 노래를 부른다.
    계수나무를 찍어 초가삼간 집을 짓고 량친부모 모셔다가 천년만년 살고지고라는 소박한 소원이다. 동심의 노래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구성진데가 있고 너무도 은둔적인데가 있다.
    그러나 괴로운 현실만 보며 자라나는 아이들이였기에 거친 땅보다는 영원한 그 달이 좋았다. 그것도 기껏해야 고대광실 기와집이 아니라 초가삼간의 초라한 꿈이였던것이다.
    세월도 기울고 차는 달그림자로 헤아렸으며, 명절도 달을 따라 정해졌던것이다. 서구인들이 태양력을 쓰고 또 태양의 변화로 축제일을 삼은것과는 정반대의 현상이다.


—팔월 한가위의 의미
    그러므로 한국의 명절가운데 가장 성대한것도 바로 달 밝은 팔월 한가위다. 《더도 덜도 말고 팔월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처럼 《먹을것》과 《아름답고 환한 달》만 있으면 그것으로 행복했던 민족이다.
    팔월 한가위의 가을달은 옛부터 이 백성이 다시 없는 축제를 마련해주었다. 남자들은 씨름을 하거나 거북놀이를 하며 젊음을 즐겼으며, 1년내내 방안에만 갇혀있던 녀인들도 이날만은 밖에 나와 마음껏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강강수월래가 그것이다. 둥근, 참으로 둥근 그 달빛아래서는 부끄러움도 스스러움도 없었다. 이, 삼십명씩 떼를 지어 손과 손을 잡고 달모양으로 돌며 춤을 춘다.
    그네들은 그때 처음으로 《살아있다》는 즐거움을 느꼈을것이다. 처음으로 젊음을 느끼고 처음으로 사랑을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다. 더구나 그날은 남녀가 한데 어울려 《줄다리기》도 했으니 《달》은 남녀의 교제에 기적같은 례외를 마련해준것이다.
    팔월 한가위만이 아니라 정월 대보름도 마찬가지였다. 답교(踏橋)의 풍습은 추석놀이보다도 한결 젊은이에게는 랑만적인것이였다. 《답교》란 조선조 중종때부터 있었던 풍습으로, 정월 보름달을 보며 자기 나이만큼씩 《다리》를 밟고 다니는것이다. 그렇게 해야 한해의 재난을 피할수 있다는것이였지만, 실은 달놀이에 그 주목적이 있었던것이다. 싸늘한 겨울달빛아래서 남녀가 어울려 다리를 거니는 풍류 섞인 풍속이다.
    얼마나 달을 사랑했기에 삭풍에 떠는 한월(寒月)마저도 그냥 지나치지를 못했던가? 《패관잡기(稗官雜記)》에 씌인 글을 보면 《답교》는 곧 사랑의 다리를 건너는 행사이기도 했다.
    지꿎은 남자녀석은 떼를 지어 녀자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며 희롱하기도 하고 살며시 손목을 잡기도 한 모양이다. 견우직녀는 칠월 칠석에 한번 만난다지만, 이들은 이 답교일이나 되여야 비로소 젊음과 만날수가 있었다. 달이 있고 님이 있고… 더없이 행복한 밤이다. 서구의 카니발과는 운치가 다른것이다.
    이렇게 《달》이 있는 곳에 생활이 있었고 즐거움이 있었고 사랑이 있었다. 그러나 달빛은 그냥 아름답고 즐겁기만한것은 아니였다.


—달빛과 《강강수월래의》의 애수
    《강강수월렁는 리순신장군이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서 지어낸 민속이라고 한다. 그 《달놀이》의 리면에는 얼마나 많은 눈물이 그리고 한숨이 젖어있었던것일가? 《강강수월렁의 가락만 들어봐도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애수가 섞여있다. 더구나 그 가사를 분석해보면 한층 기가 막힌다. 《등잔등잔 옥등잔에 강강수월랩》로 시작하는 그 노래는 한 녀인의 죽음을 애소하는 내용으로 꾸며져있다.
    시집살이를 하던 녀인이 밤새도록 등잔불밑에서 바느질을 한다. 아무도 불 끄고 자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 다만 문풍지바람이 불을 꺼주고 녀인은 지쳐 잠이 들었다는게다. 그때 남편이 찾아오고 시어머니에게 바느질 핑게 삼아 잠만 잔다고 일러바치고, 그리하여 녀인은 은장도에 가슴을 찔러 죽게 된다는 이야기다.
    아름답고 고요한 달빛속에서 어쩌면 그렇게도 살벌하고 피비린내나는 노래를 불렀을가? 이렇게 달은 행복이 아니라 《한(恨)》의 상징이기도 했다. 
    기울고 차는 달은 몇번이나 죽고 탄생한다. 어둠속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그 달빛이야말로 무수한 삶과 죽음의, 그리고 절망과 희망의 그림자였던것이다.
    만월은 초승달의 기약과 그믐달의 쇠망을 동시에 간직하고있다. 어둠도 아니고 광명도 아니다. 《강강수월렁의 가락도 역시 그런 희열과 눈물로 뒤범벅이 된 력설의 노래다.
    슬픔이 많기에 그리고 또 한이 많기에 우리는 어렴풋한 그 달빛을 사랑한 모양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