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순희 연변작가협회 수필분과 주임, 중국 연변위성방송 TV방송번역부 주임
[서울=동북아신문]열세살 무렵의 단발머리 소녀가 코스모스 핀 철길 침목을 하나하나 밟으며 앞으로 가고있다. 눈이 모자라게 아득히 뻗어간 긴 평행선을 따라 가고 또 가고있다. 맥이 진하고 해가 지기 시작했지만 철길은 지평선 저끝까지 뻗어있다. 철길의 끝은 어디일가? 철길이 끝나는 곳까지 가보고싶다. 내가 사는 이곳을 떠나 낯설고 물선 어딘가에 가고픈 마음이 철길을 앞질러 간다. 한발한발 내딛는 걸음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내 꿈과 희망은 하늘 높이 치솟는다.

가난하고 배고프던 시절에 제일 기다려지는건 기차였다. 학교에서 기차역까지 걸어서 5분거리, 기차역에서 집까지 또 5분거리다. 기차를 보기 위해 나는 일부러 큰길을 두고 철길로 향했다. 왜 안올가? 안오는건 아니겠지? 하고 마음을 졸일 때쯤이면 기차는 철길을 따라 덜커덩 덜커덩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달려왔고 순식간에 긴 꼬리를 보이며 달려갔다. 기적소리는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고 나는 기차가 다 지나간 다음에야 꿈에서 깨여나군 했다.

내 마음이 행복한 날이면 기차도 가볍게 경쾌하게 달리는것 같고 내 마음이 어수선할 때면 기차도 한숨을 푹푹 쉬며 휘청이며 달리는것 같았다. 나는 그렇게 거의 매일같이 기차를 기다리며 어디론가 가고싶은 욕망을 숨기고 다시 배고픈 일상으로 돌아오군 했다. 

나에게 그런 한시절이 있었다. 남들이 우러러보는 사람이 되여야 한다고, 대단한 사람이 되여서 떳떳하게 다시 돌아와야 한다고 자신을 채찍질하던 때가 있었다.

엄마가 뭔가 억울함을 당하고 혼자서 눈물을 흘릴 때면 작은 주먹을 부르쥐였다.
“엄마, 내 앞으로 대단한 사람이 될게. 그럼 누구도 엄마를 업신여기지 못할거야.” 

아버지때문에 애들에게 놀림을 당하고 또래들과 함께 아버지를 투쟁하는 마당에 있을 때, 머리를 들 수도 숙일 수도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어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기여들어가고싶을 때 나는 내가 무엇이 돼야 아버지도 우리 집 어느 누구도 억울함을 당하지 않을거라고 입술을 깨물었다. 

새 담임선생님이 나를 부반장에서 학습위원으로 돌려놓았을 때 부반장이 된 애의 아버지가 향간부인것이 부러웠다. 내 아버지와 엄마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무렵 나는 기차역이 좋았고 기차가 지나가는것을 보는것이 가장 큰 즐거움중의 하나였다. 

하루에 몇번씩 저 먼곳으로부터 기적소리가 들려오군 했다. 그 기적소리를 듣고있으면 파란 기차가 그립고 기차에 앉아가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나는 몸과 마음 모두를 그 기차에 싣고 떠나는 꿈을 꾸군 했다. 어디로 갈가? 무슨 사람이 될가? 그런 생각을 한시도 멈추지 않았던것 같다. 

아버지는 입양아였는데 친부모가 어떤분인지도 몰랐다. 모든게 힘들게 느껴질 때면 나는 아버지를 낳은 친할아버지, 친할머니가 보고싶었다. 아버지의 친부모들이 아버지를 찾으러 왔으면 하고 은근히 기다렸다.

어린 시절, 기차역은 우리들의 유일한 놀이터였다. 역에서 놀음에 탐했다가도 기적소리가 울리고 기차가 서서히 역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면 나는 모든걸 내치고 마중을 나온 사람들속을 비집고 앞으로 나가군 했다. 

나는 출구를 빠져나오는 사람들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어쩌다 낯모를 로신사가 걸어나오면 아래우로 참빗질을 했다. 어디에 아버지를 닮은 구석이 없나? 나는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래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한번도 보지 못한 친할아버지를 그리워했다. 우린 친할아버지를 어느 한구석이라도 닮은데가 있을가? 있어보이고 점잖아보이는 얼굴이 내 머리속에서 수없이 그려졌다 지워지군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친할아버지가 나타나 내 고단한 생활을 마술처럼 변하게 해줄 것 같은 기대감으로 설레이군 했다. 그러나 친할아버지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고 그분이 나에게 영원히 상상속의 인물로 남을것을 이제는 안다. 

나는 이제 친할아버지가 더는 궁금하지 않고 기다려지지도 않지만 80이 넘은 아버지는 어떨가? 인생의 종착역에 갈 준비를 하는 아버지는 자신의 시작에 대해 알고싶지 않을까?

당시 나의 마음을 가장 짓누른것은 가난이였을것이다. 학기초면 학교에 책값을 가져가야 하는데 엄마는 늘 제때에 주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방학내내 책값때문에 걱정을 해야 했다. 

개학이 다가오는 어느날, 엄마는 우리 형제들을 보고 누가 송화평에 갔다오면 책값을 먼저 주겠다고 했다. 가을에 입쌀을 주겠다고 하고 돈 15원을 꿔오라고 했다. 언니들은 뒤걸음을 쳤다.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을 혼자서 어떻게 가냐고 하면서.

 내가 가겠다고 하자 모두 두눈이 휘둥그래졌다. 그때 내 나이가 열살이였다. 나는 기차를 한번도 타본적이 없었고 송화평이라는 이름도 그날 처음 들었다. 두렵고 불안하긴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나는 기차를 타보고싶었다. 그리고 우리 마을이 아닌 다른 곳도 가보고싶었다. 

엄마는 돌아올 때 차비는 친척집에서 줄거라면서 가는 차비만 주었다. 송화평탄광에 가서 트럭운전수 황씨라고 물어보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그날 밤, 나는 내 인생의 첫려행때문에 흥분해서 온밤 뒤척거리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화룡에서 송화평까지 가는 뻐스가 있는줄도 모르고 점심때 화룡역에서 내려 물어물어 그 친척집에 들어섰을 때는 해가 넘어간 뒤였다. 친척집에서 놀라던 표정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나는 지금도 꿈이면 화룡에서 송화평으로 가는 그 길에 있다. 때로는 큰강이 가로막고있어 건느지 못해 발을 동동 거리기도 하고 그 길에서 강도를 만나 벗어나려고 바둥거리기도 한다.  그날 그 길에서 아마도 많이 불안했을 것이다. 다른 길에 잘못 들어설가봐 지나가는 사람만 보면 송화평으로 가는 길이 맞는가고 물었었다. 

나는 열흘만에 개선장군처럼 돌아왔고 그후 내 앞길이 캄캄할 때마다 그때 내가 그 친척집을 찾지 못하고 차비도 없어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가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긴 했지만 지금보다 더 좋아졌을지도 모른다는 일루의 희망은 버릴수 없었다.

모든 게 답답하고 억울하게만 느껴지던 사춘기시절, 대학으로 가는것만이 나를 구하는 길이라고, 집에 그냥 있다가는 이 시골에서 썩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때문에 나는 결심을 내리고 집을 떠났다. 그렇게 열여섯살나는 해에 떠난 고향이다. 살다보니 뭐가 되겠다던 포부도 사라지고 고향사람들앞에 떳떳하게 나설 필요도 리유도 없어졌다. 

열세살 소녀가 서있던 옛 기차길, 그 기차길에 지금 나는 중년의 여자가 되여 서있다. 그 기차길로는 지금 기차가 통하지 않고 공허로운 철길만 남아 적막하게 뻗어있지만 그때 맡았던 타르 냄새가 고스란히 코끝을 스친다. 레루우에 귀를 대고 어느쯤에서 기차가 오고있나를 가늠하던 또래 친구들도 눈에 선하다. 

 칠칠맞은 기억 밖에 없을줄 알았던 동년이 향기있는 추억으로 묻어나고 늘 무거운 회색빛 하늘로만 생각하고있었던 추억속에 자신도 몰랐던 행복이 숨어있었다. 가난과 아픔에 응어리진 가슴뒤에 꿈을 쫓는 희망이 있었고 답답하고 끝없는 고민뒤에는 분발할 용기가 숨어있었다. 

주린 배를 철렁이며 기다리던 기차는 통하지 않지만 언제나 어디론가 향해 달려가는 기차를 보면서 자란 내 마음은 지금도 그리움과 동경으로 차있다. 지금은 량손에 빨간 기발과 푸른 기발을 들고 서있던 역무원 아저씨도 반표를 끊으려고 키를 살짝 낮추어도 모르는척 눈감아주던 매표원아지미도 없지만 기차역은 나의 그리움과 향수가 살아 숨쉬는 내 마음의 영원한 고향이다.

이제 머지 않아 기차가 다시 통한다고 한다. 화룡을 거쳐 백두산에 가고 도문으로부터 이도백하까지 렬차가 개통하게 되면 내 기억속의 철길과 기차역도 다시 생기를 찾게 될 것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철길은 끝없이 뻗어있다. 끝까지 갔다고 생각하면 다시 또 그만큼 나타나는 철길앞에서 절망하기도 하고 다시 일어나기도 한다. 힘들게 걷고 또 걸어 수많은 역을 지나왔지만 나는 다시 이렇게 내가 떠났던 역으로 되돌아와 잃어버린 시간과 잃어버린 추억을 찾아 헤매지 않는가? 

철길로 쏟아지는 오후의 따사로운 해빛을 즐기며 파란 하늘을 바라본다. 기적소리에 꿈을 실어 어디론가 떠나고싶은 열세살로 돌아갈수 있다면 나는 다시 배고픈 육신과 허전한 령혼을 추스르며 새로운 꿈을 꿀수 있으련만…   

어디선가 기적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어디로, 무엇을 위해 가는가를 반문하는 시간, 우리가 가는 곳이 이 길의 끝일지라도 그 길에서 시작해 다시 돌아오고싶음을.  

길이 끝난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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