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 무형의 끈이 우리를 지배해왔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고립상태에서 절망을 느끼게 되는것을 《끈떨어진다》고 하며, 반대로 무엇에 의지하여 살아갈 길이 생기게 되는것을 《끈붙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영어의 《끈》이란 말의 의미
    서구의 사회를 《버튼(단추)》의 사회라고 한다면, 한국(동양)의 그것은 《끈》의 사회라고 할수 있다.
    그들은 도처에서 《버튼》을 누른다. 그리하여 엘리베이터가, 랭장고가, 세탁기가 그리고 모든 벨과 모든 기계들이 움직이고있다. 그러나 어느날 《버튼》으로 이룩된 그 사회와 문명은 역시 그 《버튼》에 의해서 멸망하게 될것이다.  다만 단추 하나를 누르는것으로 세계는 끝난다. 모든것이 재로 변하고만다. 유도탄의 《스위치버튼》말이다.
    그러고 보면 그들이 《단순한 방법으로 일련의 사건을 일으킨다》거나 혹은 《협정같은것을 최종적으로 하는것》을 《버튼》이라는 말과 관련지어 부르게 된것도 일리 있는 표현이다.
    서양사람들이 《버튼》에 의해서 사회를 움직여온것처럼 한국인들은 《끈》에 의해서 세상을 살아왔다. 《끈》은 한국을 상징한다. 옷고름부터 시작해서 갓끈에 이르기까지 모든 련결이 《끈》으로 맺어져있다.
    길게 땋아 늘인 머리카락과 댕기가 그렇다. 주머니의 끈이 그렇고 대님이 그렇고 모든 장식물이 그렇다. 이 끈이야말로 운명을 잇고 력사를 잇고 《너》와 《나》의 인연을 맺는 생명의 끈인것이다.
    유형 무형의 끈이 우리를 지배해왔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고립상태에서 절망을 느끼게 되는것을 《끈떨어진다》고 하며 반대로 무엇에 의지하여 살아갈 길이 생기게 되는것을 《끈붙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속담에 《끈떨어진 망석중이》란것이 바로 그 경우다. 또한 끈덕지고 질긴것을 일러 《끈질기다》라고도 한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끈(string,cord)이란 말이 별로 좋은 뜻으로 사용되지 않는다.
    《스트링(끈)》이라고 하면 귀찮게 따라 붙는 《부대조건》을 의미하기도 하고 또 《코드》라고 하면 《속박》이나 《교수형》을 가리키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더구나 《끈》이란 말이 남과의 련결을 상징하는 경우란 그리 흔치 않다.
    우리는 무엇과 관계할 때 맺는다고 한다. 《우정》을 맺고 《계약》을 맺고 《사랑》을 맺는다. 그러나 그들은 도리여 《타이(맺는다)》라고 하면 남의 행동을 방해하고 구속하는것을 뜻한다.
    결혼과 의리를 말할 때 간혹 《타이》란 말을 쓰지만 대체로 그 뉘앙스는 숙명적인 속박에 가까운 련결성이다. 좋은 뜻으로 관계를 맺은것은 《타이》가 아니라 《폼(form)》인것이다.
    이러한 비교에서도 우리는 서구의 사회와 한국(동양)사회가 지닌 숙명적인 차이를 느끼게 된다.
    《버튼》은 독립적이며 립체적인것이지만 끈은 어디까지나 의존적이며 평면적인, 아니 일종의 《선(線)》인것이다. 인간과 인간이 서로 관계하는것은 그들은 하나의 형성(폼)으로 보았지만, 우리는 끈과 끈이 서로 매여져 하나가 되는 선으로 보았다.
    대체 맨다는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나를 상대방에게 그냥 내맡기고 《너》와 《나》를 합일화시키는것이다. 얽매어진 두개의 끈은 각각 그 독립성을 상실한다. 《나》도 《너》도 아닌 한 《끈》이 되여버린다. 그러나 형성(폼)은 벽돌을 쌓는것처럼 A와 B가 합쳐서 C라는 또 다른 형체를 이루는것이다. 그것들은 하나하나가 독립성을 지닌채 전체의 모습을 나타낸다.
    끈처럼 얽혀서 하나의 실꾸레미를 이루어놓은것이 한국의 사회라 한다면 하나하나의 《버튼》이 접촉되여 공장처럼 움직이는것이 서구의 사회라고 볼수 있을것이다. 끈은 덩굴처럼 무엇엔가 의지해야 한다. 스스로 자기 몸을 타인에게 속박(맺음)시켜야 한다. 끈은 끊어질 때 멸망하는것이다. 이것이 선이 갖는 비극성이다.
    그러나 립체적인 서구의 사회에서는 개개의 인격이 자유로운 독립성을 가지고 서로 접촉한다. 즉 그것은 《결합된 사회》며 한국은 《얽힌 사회》다.



―칡덩굴처럼 얽힌 사회구조
    우리의 력사와 사회는 모두가 《끈》에 의해서 련결되고 지속되여왔다. 
    아버지와 아들, 남편과 안해, 임금과 신하 등등의 끈과 끈이 얽혀서 하나의 선을 이룬 사회다. 할아버지와 손자의 관계처럼 그렇게 이어져내려오는 사회다. 혈연의 끈이며 지연(地?)의 끈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서로 충돌해서 깨여지는 일이 없다. 얽히고 설키고 혹은 끊어지는 한은 있어도 부서지는 사회, 깨여지는 력사는 아니였다.
    끈이 맺어진다는것은 1대 1이였을 경우가 가장 리상적이다. 세 개만 모여도 벌써 엉킨다. 그러나 《버튼》은 많이 모일수록 견고하고 그 힘이 커지는 법이다.
    한국인은 모일수록 약하다고 한다. 단결심이 없다고 한다. 그 리유는 바로 끈과 같은 관계에 의해서 서로 련결되였기때문에 모일수록 복잡하게 얽히게 되는 탓인지 모른다.
    칡덩굴처럼 서로 얽히다보면 소위 그 《갈등》이란것이 생기기 마련이다. 어느것이 《나》이고 어느것이 《너》인지 분간할수 없게 된다. 그런 상태에서 관계가 끊어지게 되면 한층 더 얽혀보리고만다.
    이 땅의 인간관계나 정치적풍토를 생각하면 끈처럼 얽힌 사회구조가 어떠한것인지 짐작할수 있을것이다. 사회를 개조하기도 힘이 든다. 서로 얽혀있기에 한곳이 잘려도 사회 전체가 허물어지고마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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