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최초 유일의 문학관광 문학특구 정남진 장흥군

 
[서울=동북아신문]상생의 문학 낭독콘서트에 빠지다!  

장흥군민회관에서 제1부 행사를 마친 여행자들은 제2부 낭독콘서트 행사를 관람하기 위해서 장흥읍 남동리 60번지에 자리한 장흥 문화예술회관으로 이동했다. 외곽에 있는 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은 많은 좌석과 무대조명 등을 구비해놓았다. 2부에서는 제1장 ‘문학 그 아름다운 화두’라는 주제와 제2장 ‘한승원 시 세상을 열다’ 제3장 문학인 자유 한마당‘등으로 나뉘어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선을 보였다. 

장흥과 서울, 강진, 영암, 대전 등의 참여자들이 상생의 문학이라는 주제로 시낭송과 노래는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였다. 특히 김성 장흥군수의 ‘흔들리며 피는 꽃’이란 시낭송은 풍류기질이 기질이 농후했다. 서두에 소개한 이동규 시인의 ‘정남진 장흥’에서 언급한 것 처럼 ‘시 아닌 것, 시인 아닌 사람이 없는 곳/ 소설 아닌 것, 소설 아닌 사람이 없는 곳/ 누가 여기에서 함부로 시인이라 장흥에서 자랑하랴?’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 대전에서 간 유경용 시인과 김일토 선생이 말을 주고 받는다. 

 “장흥은 저렇게 군수가 시낭송을 잘 하는데 4만여명의 군민은 오죽하겠어요? 대단하네요. 허허허---!”
 “그러게 말이어요. 이래서 장흥이 문향(文鄕)이네요. 하하하---” 

  제2장은 서편제 영화로 유명세를 떨쳤던 오정혜 국악인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지금까지 소설가로만 알려졌던 한승원 작가의 시 세계를 조명하는 ‘우주의 본질적 실체와 신비의 합일’이라는 주제로 중앙대학교 이승하 교수의 설명이 여행자들의 이해를 도와주었다.

▲ 장흥 문화예술회관에서 오정해 국악인이 열창을 하고 있다

제3장에서는 오정해의 국악인의 절창을 시원하게 들었다. 행사 말미에는 대전에서 간 한국해외문화교류회 사무국장 김우영 작가가 들려주는 ‘가을사랑’이라는 키타연주와 노래를 깊어가는 가을밤을 성숙시키고 있었다.  

여행자들은 장흥문화예술회관 행사를 마치고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서양의 철학자 ‘브하그완’의 말에 공감을 하였다. 

“여행은 그대에게 세 가지의 유익함을 가져다 준다. 첫째는 타향에 대한 지식이고, 둘째는 고향에 대한 애착이며, 셋째는 그대 자신에 대한 발견이다.” 

국악인 오정해의 시원한 절창을 들으며 장흥과 보성은 판소리의 본 고장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전남 일대 그 어느 곳도 판소리와 무관하지 않지만 특히 장흥, 보성은 판소리 가운데 서편제 소리의 본향으로 알려져 있다. 보성에서 장흥을 거쳐 강진, 해남, 진도로 이어지는 남해안선과 다도해의 굽이굽이가 빚어낸 서편제이다. 그리고 구례, 곡성, 남원 지방의 직선적이며 남성적인 동편제는 우조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 김우영 작가의 키타연주와 노래 공연
장흥, 보성의 서편제는 여성적이고 흐느적거리는 계면조를 기본으로 삼는다고 한다.  시낭송과 국악과 노래 등으로 장흥 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을 열광시켰던 낭독콘서트는 밤9시 지나면서 아쉬운 막을 내렸다. 여행자들은 저마다 느낀 감흥을 이야기하며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대전애서 간 신수자 이정남 선생이 말한다.  

 “그런데 오늘 김성 장흥군수님 대단하시더라! 그 바쁜 군정에도 불구하고 공연시간이 끝날 때 까지 우리와 같이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감동 받았어요.”

 “맞아요. 그 분이 시인으로 등단한 분이라서 그럴거야? 그리고 시낭송 맛깔스럽게 잘 하시는 것 봐. 아, 멋져요욧……!”

여행자들은 주차장에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 승차하여 부산면 지천리 405번지에 있는 정남진 리조트로 향하였다. 자연이 살아 숨 쉰다는 건강 휴양촌  리조트 도착하여 미리 안배된 방 열쇠를 받아 각자 여장을 풀었다. 

잠시 후 211호실에 모여 장흥에서의 첫날밤 레크레이션을 운영했다. 첫 순서는 기대를 모았던 광주 김정 시인의 ‘부채춤’이 선 보였다. 곱게 입은 한복과 부채를 양손에 들고 가녀리듯 날렵하게 추는 춤사위에 일행은 숨을 죽이며 지켜보았다. 남도 끝자락 장흥 땅에서 심야에 감상하는 부채춤의 참 멋은 각별한 재미를 더하여 주었다. 

방에 빙 둘러 앉아 저마다 노래와 키타연주 장기를 자랑하는 한 밤의 레크레이션은 여헹자들의 마음을 설레이게 했다. 모처럼 이름없는 현장가수로 지목되어 가사를 잘 몰라 중간에 자리에 주저앉는 사람, 못하는 노래이지만 열창으로 방안 분위기를 압도하는 사람 등의 몸짓에 웃는 가운데 정남진 콘도 리조트의 밤은 그렇게 익어만 갔다.
 안양면 정남진 한승원 문학산책길 해변. 건너 아스라이 이청준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 무대였던 소록도 득량만이 보인다.  

▲ 안양면 정남진 한승원 문학산책길 해변. 건너 아스라이 이청준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 무대였던 소록도 득량만이 보인다.
나. 둘째 날(2014.11.16 일)  

 ○ 장흥 안양면 정남진 한승원 작가 문학 산책길

  다음날 이른 아침. 뒷산을 산책하며 맑은 공기와 만났다. 산길을 걸으며 ‘성 아우구스티누’의 어록 한 구절이 생각난다. 

 “세계는 한 권의 책이다. 여행하지 않는 자는 단지 그 책의 한 페이지만을 읽을 뿐이다.”

 여행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리조트 1층에 마련된 식당에서 아침밥을 먹었다. 한식 뷔페식 식당에서 지난밤 과음 속풀이로 북어국이 최고 인기였다. 식당 여주인이 큰 그릇에 국물을 보충하며 말한다.

 “긍께 엊저녁이 약주덜 많이 마셨능게라! 워따메 국물이 요로큼 바닥이 난디여?”

 버스는 오전 9시 리조트를 떠나 한승원 작가의 해반 산책로가 있는 동남쪽 끝자락을 안양면을 향하여 출발했다. 장흥은 군수조차 문단에 등단한 작가라고 할만큼 이청준, 한승원, 송기숙을 비롯한 많은 문인을 배출한 문향이다.  

명장 임권택 감독의 영화 '아제아제바라아제'로 유명한 한승원 작가는 현재 장흥 율산마을에 있는 해산토굴에서 집필 활동하고 있다. '아제아제바라아제'의 대표작 '아버지와 아들' '초의' 등이 있다.

 안앙면 해변에는  현존하는 작가로는 이례적으로 문학관과 더불어 한승원 작가를 기리는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약 600미터의 해변길에 20m 간격으로 30여개의 시비가 세워져있는 이곳은 해송과 종려나무 사이로 보이는 그윽한 바다 풍경 속에 조용히 시 한수를 읊조리며 걸어볼 수 있는 문학관광특구로서의 장흥을 느껴볼 수 있는 명소이다. 

▲ 한국현대시인협회 안양면 한승원 문학 산책길. 손해일 시인과 한국해외문화교류회 이동규 시인
이곳은 남녘의 지중해를 연상하게 하는 수려한 풍광이 일품인 여다지 해변가 ‘한승원 문학산책로’시편들을 감상하며 청정한 자연의 정수를 호흡할 수 있는 매력적인 문학 명소이다.  

해변산책로는 수문 해수욕장 서쪽 수문교에서 사촌마을에 이르는 바닷가 길에 놓여 있다. 해변 중앙에 정남진 종려거리 기념탑이 있고 저 멀리 조개를 캐는 아낙의 모습도 아스라이 보인다. 한승원 작가의 여러 문학비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나 그냥 그렇게 산다'를 소개한다. 

구름이 물었다.
요즘 무얼 하고 사느냐고
내가 말했다
미역냄새 맡으며
모래알하고 마주앉아
짐짓 그의 시간에 대하여 묻고
갈매기하고 물떼새하고 갯방풍하고 갯잔디하고
통보리사초 나문재하고 더불어
짭짤한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하며
거나하게 취한 채
먼 바다에서 객기 부리며 달려오는 파도하고 함께 재주넘고
또 술 한 잔
나 그냥 그렇게 산다.
그 하늘 위 그 하늘 아래에 오직 내가 혼자 서 있을 뿐
내 운명의 버거운 짐 누가 대신 짊어져 주랴하고
노래하며 바닷가 모래밭에 열어놓은 나의
길 따라 비틀거리며 출렁거리며……
           
한승원 작가는 전남 장흥에서 8남매 중 둘째 아들로 출생 어린시절 할아버지에게 ‘명심보감’을 배웠다. 장흥고교에 입학, 당시 문예부장이던 선배 송기숙을 만나 교지 ‘억불’을 창간, 수필을 발표 문학수업에 열중하였다. 이어 서라벌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에 입학 소설계의 거장 김동리 선생에게 소설을 배운다. 그 후 신아일보 신춘문예에 ‘가증스런 바다’ 입선되었고 1968년 대한일보에 ‘목선’이 당선 문단에 등단하였다. 한승원 소설가는 이렇게 말한다. 

 “내 소설의 9할은 고향 바닷가 마을의 이야기이다” 

그의 문학인생은 고향인 남해 바닷가에 뿌리를 두었으며 운명의 올가미에 한이 서린 인간상을 통해 인간의 존재 근원을 이야기한다.

 

○ 강진 김영랑 시인의 생가를 찾아서  

여행자들을 태운 버스는 강진으로 향하였다. 영랑 김윤식 시인을 만나기 위해서이다. 강진군 강진읍 남성리 211-1에 소재한 ‘모란이 피기까지는’라는 시로 유명한 영랑의 생가는 강진군청 근처에 있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디리고 있을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윈 설움에 잠길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하게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가고 말아
삼백 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디다리고 있을테요.
찬 란한 슬픔의 봄을 ……
            - 김영랑 시인의 대표적인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 全文
 
영랑의 대표적인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 1934년 4월 ‘문학(文學)’ 3호에 발표되었고, 이듬해 시문학사(詩文學社)에서 간행된 ‘영랑시집’에 재수록 되었다. 이 작품은 12행시로 4행시를 즐겨 쓰던 저자로서는 새로운 변형이라 할 수 있다. 모란이 피기까지의 ‘기다림’과 모란이 떨어져버린 뒤의 ‘절망감’이라는 이중적 갈등을 반복적으로 다루고 있다. 

영랑은 우리나라의 대표 순수 서정 시인이다. 동행한 장흥의 김석중 소설가의 인사말에 이어 문학관 관장의 설명이 이어진다. 

▲ 영랑 생가에서 김우영 작가
영랑은 1950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모두 87편의 시를 발표하였는데, 그 중 60여 편을 이곳 생가에서 생활하며 창작했다고 한다.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영랑이 이곳에서 작품 활동을 할 당시,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거부하였다는 것이었다. 당시 학교를 다니기 위해서는 창씨개명을 해야 했는데, 영랑은 당신의 자녀들이 창씨개명을 하는 것을 반대했다고 한다.  

해방이 되기까지 절대 일제에 협력하지 않으며 항일정신을 지켜낸 애국지사였다. 영랑의 작품들이 탄생한 장소라고 생각하니 생가의 마루, 우물, 담장의 넝쿨 하나, 대나무로 엮은 대문, 돌멩이 하나까지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영랑 생가는 1986년 2월 17일 전라남도기념물 제89호로 지정되었다. 김영랑의 본명은 윤식(允植)이다. 부유한 지주의 가정에서 자랐고, 1917년 휘문의숙(徽文義塾)에 입학, 3·1운동 때에는 6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이듬해 일본의 아오야마(靑山)학원에 입학하여 중학부와 영문과를 거치는 동안 C.G.로제티, J.키츠 등의 시를 탐독하여 서정의 세계를 넓혔다.

 영랑은 잘 다듬어진 언어로 섬세하고 영롱한 서정을 노래하여 순수 서정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다. 6·25전쟁 때 서울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은신하다가 파편에 맞아 사망했다.

  (다음호에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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