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률 동북아공동체연구재단 이사장연변/평양과기대 대외부총장

Ⅰ. 김창호 대장과의 만남
  2014년을 마감하기 전에 내가 가장 만나보고 싶었던 인물은 '원코리아 뉴라시아 자전거 원정대'를 이끈 김창호 대장(45세)이었다.

그는 세계 최단기간 히말라야 8,000m급 14좌 무산소 등정에 성공한 산악인으로 유명하지만 이번 자전거 원정을 통하여 우리 국민들뿐 아니라 세계인들에게 한반도 통일의 의지를 일깨우고 공감대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특히 관심이 갔다. 어떤 인물이기에 그런 일에 도전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100일동안의 원정을 통하여 각 지역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반응과 에피소드가 무척 궁금했다.

나는 이 분을 어떻게 만나면 가장 극적인 만남이 될까 고심하다가 동북아공동체연구재단의 송년모임에 초청하여 강연을 듣는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되겠다 싶어서 그리 추진했다.

행사명은 "2014 명사초청 통일간담회 및 송년의 밤"으로 제목을 달았고 1부 순서로 김창호 대장의 초청강연에 이어 평양과기대 최세열 교수가 산학협동 사업화방안에 대해 간단히 브리핑하는 시간을 갖도록 했다.

그런 다음 2부 순서로 음악공연 및 행운권 추첨 등으로 송년행사를 진행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드디어 지난 12월 16일, 2014년을 돌아보며 '통일에 이르는 내적 성찰'을 지향하는 작지만 의미있는 모임을 양재동에 있는 참포도나무병원 9층 루프가든(하늘포도원)에서 실행하게 되었다.

날씨가 올해 들어 가장 추운 영하 10도를 넘는 맹추위에 한파가 몰아치는 그런 악조건이었지만 70여명이 넘는 임회원들이 모여 이 밤을 뜨겁게 달구었다.

김창호 대장은 강연을 시작하면서 먼저 자신이 히말라야 14좌 무산소 등정을 꿈꾸게 된 동기와 시점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런 등정을 통해서 얻게 된 자신의 철학을 잠시 피력했다.

"히말라야 등반은 기록을 앞세우거나 남에게 보여 주려고 하는게 아닙니다. 제가 히말라야를 다니면서 꿈꾸는 무언가는 8,000m급 14좌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궁극적으로 히말라야에 도전하는 사람들과의 우정을 통하여 산행 가운데 만나는 각종 고난을 극복하면서 그들과 함께 왜 산에 오르는지를 깊이 있게 알고 싶었을 따름입니다. 그래서 깨닫게 된 것은, 히말라야의 고지를 체험한 사람들이 이제 마지막으로 가야할 탐험과 등산은 히말라야가 아니라 여전히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는 우리 자신의 내면 속으로 방향을 틀어야 할 때라는 겁니다. 산에서 나는 내 자신의 깊은 곳에 숨겨진 것들을 찾습니다. 진정한 용기는 도전하여 성취한 에베레스트 정상에 있는것이 아니라 내 자신의 나약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도전해 폭풍설 속에서 한걸음 더 나아갈수 있는 용기입니다. 그러니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등정하는 것도 좋지만 자신만의 정상을 찾아가는게 더 의미 있는 일이라 여겨집니다. 궁극적으로 말해 8,000m급 14좌가 내 자신의 정상은 아닌 것입니다. 내가 오르고자 하는 정상을 찾기까지 나는 가장 어렵고 거친길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런 훈련기간 중 파키스탄에서 홀로 1,700여일을 탐사하는 동안 내가 꿈꾸는 정상은 바로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 세계 최단기간 히말라야 8,000m급 14좌 무산소 등정에 성공한 산악인 김창호   이런 용기와 철학을 가진 인물이었기에 그는 히말라야 14좌 등정을 결행했을 뿐 아니라 이제 그보다 더 위대하고 새로운 도전의 길을 떠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원 코리아'의 꿈을 안고 독일 베를린에서 부터 시작하여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질러 한반도에 까지 이르는 96일간의 뉴라시아 자전거 대장정의 길이었다.

히말라야 고지를 등정했던 그 남다른 기개와 실행 능력도 중요했지만 그 마음속에 타오르는 통일에 대한 내면적 열정과 비전이 그를 대장정의 길에 나서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뉴라시아 대장정의 고지를 점령한 승리자로서 우리들 앞에 나타난 것이다.

12월 16일 통일간담회 자리에서 나는 김창호 대장을 두고 올해 내가 만난 사람들 가운데 가장 본받을만한 인물이라고 치켜 세웠다.

'통일'을 외치는 사람들은 많지만 이렇게 헌신적으로 자신의 전부를 걸고 우리들에게 '통일'에 대한 필요성과 기대감을 일깨워준 사람이 더는 없을 것 같아서였다.

여기에 더 하여, 올해 조선일보사가 수행한 사회적 캠페인 가운데 이번 뉴라시아 자전거 원정대 사업이 가장 성공적이었다고 내가 평가를 하자 그는 이렇게 덧붙여 말했다.

"원정을 마친 후 회식 모임에서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께서, 솔직히 말해 이 일이 성공하리라곤 기대하지 않았다고 하시는 얘기를 듣고 저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한걸음 한걸음 끝까지 착실하게 페달을 밟으니 결국은 목적지에 도착하게 되더란 말씀을 드린바가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들도 도중에 절대 포기 하지 마시고 끝까지 페달을 밟으시면 틀림없이 통일의 고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이 말이 매우 평범한 말 같지만 실로 우리들 한국인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충고의 메시지로 마음에 새겨졌다.

그렇다. 이미 한반도 통일의 대장정은 시작되었다. 2014년 년두 기자회견을 통하여 박근혜 대통령께서 '통일은 대박이다'라고 선포하지 않았는가.

거기다가 독일 드레스덴에 까지 가서 온 세계 언론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반도 통일에 대한 기초방안을 외치지 않았는가.

대통령의 이러한 행보를 기준한다면 국가 전략적 차원에서 볼 때 통일 대장정은 이미 시작되었다고 보는 게 옳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길을 끝까지 가야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만일 끝까지 가게 되면 우리는 반드시 꿈꾸는 목표지점에 도달할 수 있다는 국민적 신념을 고취시키는 일이 그 어느 때 보다 필요한 시점이라고 믿어진다.

  Ⅱ. 원코리아 뉴아시아 자전거 평화 대장정
  올해 조선일보사가 <통일이 미래다>라는 제호를 내걸고 연중 기획을 시도한 '원코리아 뉴라시아 자전거 평화 대장정'은 언론이 국가사회에 미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사회적 캠페인이었다고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김창호 대장을 '2014 명사초청 통일간담회'의 특별강사로 초청한 다음 그가 참여했던 대장정의 시말을 연재한 조선일보 특집기사 전부를 간추려 보는 과정에서 다시한번 큰 감명을 받았다.

나도 그 현장에 갈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바람으로 특집기사의 중요 부분을 요약해서 정리해 드림으로써 독자들께 더욱 생생한 당시의 현장 르뽀를 전하고자 한다.
 
▲ 원코리아 뉴라시아 자전거 평화 대장정 경로
  ‘원코리아 뉴라시아 자전거 평화 대장정’을 한마디로 간추리면 7인의 뉴라시아 원정대가 독일 베를린을 출발해 서울까지 총 10개국, 1만5000km의 ’뉴라시아 로드‘를 자전거로 횡단한 96일간의 대장정을 일컬음이다.

지난 8월 13일 독일 통일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문(門)에서 출발하여 폴란드, 발트3국(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러시아, 카자흐스탄, 중국을 거쳐 11월 16일 서울까지 총 10개국을 주파했다. ‘땅으로 이어진 길(陸路)’을 자전거로 횡단하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북한을 통과해 서울로 입성하려 여러 번 시도 했지만 결국 북한 땅은 통과하지 못하고 압록강 넘어 북한 땅이 바라보이는 중국 단동에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돌아서 한국까지 배로 이동했다.

뉴라시아 원정대가 달려온 루트를 통해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유라시아(Eurasia) 대륙’을 살펴보면 세계 육지 면적의 40%를 차지하고 세계 인구의 71%에 달하며, 세계 경제의 신흥 경제 대국, 자원부국들이 몰려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대륙이다.

첫 시작점이었던 독일 베를린 자전거 도로는, 냉전의 유물인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진 자리에 분단의 과거를 평화적으로 극복한 역사를 일깨워 주기 위해 조성된 160km의 순환 길이다. 이 길을 따라 시작된 뉴라시아 원정대의 원정길은 단순한 ‘자전거 레이서’가 아닌 통일에 대한 한국인의 열망을 전하는 ‘메신저’이자 한국인의 진취적인 도전정신과 한국 문화를 알리는 ‘민간 외교 사절단’의 역할을 한 평화, 미래, 통합과 도전의 길이었다.

원정길 가운데 다채로운 경제·의료·문화 행사들도 각 국에서 펼쳐졌다. 러시아 모스크바, 중국 베이징에서 한국무역협회와 공동으로 ‘유라시아경제협력포럼’을 열었고, 독일 베를린에서 아산정책연구원과 함께 ‘한독청년통일마당’을 개최했다. 또한 카자흐스탄 아스타나, 몽골 울란바토르, 중국 훈춘에서는 현지인을 상대로 의료봉사 활동을 펼치고 우리나라의 발달된 선진 의료기술을 전수하는 ‘지식 나눔’행사를 가졌다.

또한 각 지역에서 현지인, 교민, 동포들과 함께 하는 문화 행사도 진행되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를 지나며 통일기원콘서트, 비보이 한류 공연을 열고,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는 고려인과 더불어 국악 공연을 펼쳤으며, 베이징에서는 CJ그룹과 함께 비빔밥 페스티벌을 개최하는 등 한국 문화의 인기를 실감하면서 유라시아 대륙 곳곳에 한류 붐을 새롭게 일으키고 돌아왔다.

또한 원정길 가운데 카자흐스탄, 러시아 극동 지역에 거주하는 고려인들을 만나고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에 거주하는 조선족 동포들을 만나 유라시아에 흩어진 동포들과 함께 소통하는 한민족 통합의 장을 마련하기도 했다.

유라시아 곳곳에서 이런 ‘종합선물세트’같은 멋진 이미지를 선사하고 돌아온 ‘원코리아 뉴라시아 평화 대장정’원정대는 산악인 김창호를 원정대장으로 하여 박영석(의사), 김영미(국내 최연소 7대륙 최고봉 등정 산악인), 황인범(자전거탐험가), 안영민(전 산악자전거 국가대표), 최병화(대학생), 이상구(대학생)까지 7명의 대원이 전(全) 구간에 참여했다. 또한 7인의 원정대원 외에 운전, 취재, 다큐, 촬영, 행정, 의료 등의 지원인력 30여명과 6대의 지원차량이 동행했다.
  ▲ 원코리아 뉴라시아 자전거 평화 원정대원 7명이 중국 백두산의 천지(天地)라고 적힌 표지석 앞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출처: 조선닷컴)
  또한 정치인, 언론인, 기업인, 연예인, 청각장애인, 종교계 인사, 탈북 대학생 등 27명이 3개의 소(小)구간에 참여하여 1주일 안팍의 일정으로 원정대원과 함께 폐달을 밟았으며, 마지막 11월 16일 임진각을 출발해 국회의사당까지 오는 ‘피날레 라이딩’에서는 7명의 원정대원을 따라 1만명의 시민이 동참하기도 했다.

기존의 유라시아 횡단은 자동차나 오토바이를 이용해 지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이번 뉴라시아 원정대는 험난한 사막을 지나고, 더위와 혹한, 모래바람을 견디며 광활한 대륙을 오직 자전거로만 이동한 최초의 도전이자 전무후무한 도전이 되었다.

주지하다시피 지금 한국은 남북 분단으로 인해 광활한 유라시아 대륙과 단절된 ‘고립된 섬’과 같다. 그러나 한반도가 통일되면, 다시말해 하나의 한국(One Korea)으로 되면 한반도와 동북아 지역이 유라시아 대륙과 연결되며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유라시아(New-eurasia)시대를 열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로 통일 한반도와 유라시아 대륙을 잇는 새 길을 ‘뉴라시아 로드(New-eurasia Road)'라 명명하고 대장정의 길을 기획한 이번 행사는 한국인의 기상을 드높인 역사적 사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원코리아 뉴라시아 자전거 평화 대장정'의 기획 의도는 아래 조선일보 사설(2014년 8월 14일자)를 통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 사설 ] 유라시아 1만5000㎞ 자전거 장정(長程), '통일 한국 꿈' 싣고 오라 1)

아시아와 유럽 1만5000㎞를 자전거로 달리며 이 지역 평화와 한반도 통일을 기원하는 조선일보 주최 '원 코리아 뉴라시아 자전거 대장정(大長程)'이 13일 독일 수도 베를린에서 막을 올렸다. 우랄산맥 넘어 고비사막을 가로지르고 시베리아 벌판, 바이칼호수, 몽골고원, 만리장성을 거쳐 서울로 오는 100일간의 도전이다.

그 옛날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실크로드의 이동 수단은 낙타와 말이었다. 지금은 비행기로 열 시간이면 유럽 심장부에 가 닿는다. 이 길을 폭염·눈·비·바람과 싸우며 자전거로 건너는 의미는 각별하다.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이고 한쪽은 철조망에 가로막힌 채 살아온 한국인들에게 대륙은 멀었다. 두 발로 국경을 넘는 것은 한국인의 오랜 꿈이었다. 1300년 전 고구려 후예 고선지(高仙芝) 장군이 중앙아시아를 누볐던 것처럼 원정단은 페달을 밟으며 대륙 구석구석의 숨결을 온몸으로 느낄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의 눈과 귀를 대륙을 향해 활짝 열어젖혀 줄 것이다.

원정단이 첫발을 뗀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은 독일 분단의 상처를 통일로 승화시킨 역사적 현장이다. 종착역인 한반도는 아직도 남북으로 갈리어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다. 원정단의 발길이 멀리 떨어진 두 곳의 역사적 경험을 연결해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을 정착시킬 해법을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원정단이 지나는 길엔 독일-폴란드처럼 한때 전쟁을 했다가 화해한 나라도 있고, 러시아-발트 3국이나 러시아-카자흐스탄처럼 한때 같은 나라였다가 분할돼 공존(共存)하는 나라들도 있다. 이 나라들을 현장에서 보고 겪으며 남북한 화해를 이루고 동북아 지역의 갈등을 치유할 지혜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유라시아 대륙은 세계 인구의 70%를 차지하는 기회의 땅이다. 한국은 바다로 향했던 과거의 경제권 틀에서 벗어나 대륙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할 숙제를 안고 있다. 원정단이 한반도에서 대륙으로 직접 가는 21세기 '캐러밴의 길'을 개척하는 민간 선봉대의 역할을 다하기 바란다. 이를 위해서도 남북을 가로막고 있는 분단의 벽을 빨리 허물어야 한다.

통일로 가는 길엔 수많은 장애물이 있다. 무엇보다 우리는 통일에 대한 무관심과 통일 비용에 대한 과도한 걱정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분단(分斷)으로 인한 손실이 통일에 드는 비용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됐다. 원정단 대원 중에는 교통사고로 다리를 절단했다가 기적적으로 재활에 성공했거나 청각 장애를 겪고 있는 젊은이도 있다. 이들이 난관에 도전하고 극복하는 모습은 희망과 용기의 드라마가 될 것이다. 원정대의 자전거가 숱한 장애물을 뛰어넘어 통일 한국의 꿈을 가득 싣고 오기를 기대한다.
 
조선일보사의 이러한 통일 기획의도는 유라시아 지역의 많은 지도자와 지식인들로부터 뜨거운 공감을 얻어냈다. 세계적인 관심을 이끌만한 의미 있는 프로젝트라고 경의를 표하면서, 한반도 통일시대의 새 역사를 준비하는 한국에 매우 뜻 깊은 행사가 될 것이라는 점에 모두 입을 모아 한마음으로 격려하고 응원했다.

한국 문인으로 세계적인 지명도를 갖고 있는 고은 시인께서 '1만5천킬로의 길에 부친다’라는 제목의 106행에 달하는 격정적 장시를 지어 원정대의 헌시(獻詩)하기도 했는데 그 일부를 소개해보겠다.
 
...중략...

뉴라시아의 나로
유라시아의 너로 내달리는
저 영웅적인 평화의 자전거 바퀴살에
아침햇빛 눈부시어라
저 태곳적 신화 말고
언제 이런 붕정만리의 커다란 꿈이었더냐
아픈 현대사
빼앗기고
갈라진 현대사
그 분단의 불행
분단의 한쪽이 바다를 잃고
분단의 한쪽이 대륙을 잊은
그 피투성이 미움의 밤들을 지나는데
어둠 보내거라
설움 보내거라
이 1만 5천킬로의 기상
얼마만이더냐

오늘도 간다
오늘도 간다

...중략...

유라시아
이 위대한 동과 서의 지평선
이 위대한 세계공간이야말로
그 시련과
그 지혜와 그 삶의 기나긴 서사야말로
우리들의 아리랑이 울려퍼지는
그 내일의 무대인 바
이것을 온몸으로 깨치는 머나먼 길로

오늘도 간다
오늘도 간다
내 온몸의 영광 다하여
바퀴살 굴려 굴려 또 굴려
유라시아의 존엄인 나로 오늘도 간다

- 1만5천킬로의 길에 부친다 中
 
한편, 한국 정부와 대기업들도 총력적으로 지원에 나섰다. 여러 대기업에서 차량과 물품, 식사등을 제공해 주었고, 한국무역협회는 중국과 러시아에서 경제협력포럼을 개최하며 원정대의 의미를 경제적인 측면에서 극대화시키기도 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지원군이자 큰 성과는 국민적 관심과 참여였다. 1만명 시민이 함께 달린 ‘피날레 라이딩’은 우리 국민의 한반도 통일의 염원을 잘 결집시킨 행사라고 생각한다. 김흥광 NK지식인연대 대표,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과 같은 탈북 인사들뿐만 아니라 개성공단에 입주한 기업인들, 그리고 어린 중고등학생들까지함께 동참함으로써 온 국민의 통일염원을 일깨워준 이날 행사는 우리 한국인들로 하여금 멀지않은 장래에 한반도 통일과 한민족 통합의 길, 남북한의 소통과 화합을 이끄는 대동맥으로서의 새 길이 열릴 것이란 확신을 심어준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믿어진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적지 않다. 뉴라시아 원정대의 주최기관이며 96일 간의 대장정을 동행취재했던 조선일보 취재팀은 사설(2014년 11월 17일자)에서 이번 대장정은 ‘통일로 가는 역사의 큰 길을 열었다’고 자평하면서도 끝내 통과하지 못했던 북한 땅에 대한 아쉬움을 이렇게 표현했다.
“원정대가 첫 페달을 밟은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은 독일이 45년 분단을 통일로 승화시킨 역사적 현장이다. 마지막 주행(走行) 구간의 출발점인 판문점 임진각은 70년 가까이 분단국으로 남아 있는 남북한의 긴장을 상징하는 곳이다. 원정대는 평양과 개성을 거쳐 서울로 달려오기를 간절히 바랐으나 이번엔 이루지 못했다. 중국 단둥(丹東)에서 옌볜 투먼(圖們)까지 압록강·두만강 따라 눈앞의 북녘 땅을 바라보기만 하며 자전거를 타야 했다. 북한에 못 들어가는 아픔이 통일의 꿈을 더 간절하게 했다. 유라시아 대륙 9개 나라를 다 갔는데 왜 우리는 같은 핏줄의 땅, 똑같은 산하(山河)에서 자전거 바퀴를 굴리지 못하는가.”
그러나 우리에겐 새로운 미래의 꿈이 있다. 그것은 바로 다음 세대를 이어가는 젊은 청년들의 기개와 꿈이 죽지 않고 살아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는 점이다. 다음과 같은 원정대 동행 취재 기자의 고백이 이를 생생히 증언한다.
이번 원정대에 가장 어린 나이로 참여한 최병화(23) 대원은 “바람에 맞서 까마득한 언덕을 오르며 ‘고난 없는 성취는 없다'는 말을 생각했다”고 했다. 그렇다. 우리가 통일로 가는 길에는 수많은 고난과 장애물이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통일에 대한 무관심부터 버려야 한다. 통일 비용(費用)에 대한 필요 이상의 걱정도 떨쳐야 한다. 분단으로 우리가 잃고 있는 것들이 통일을 위해 치러야 할 대가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 점을 우리 모두가 인식하면서 젊은 청년들이 우리 시대의 역사성에 흔쾌히 동참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어야 할 것이다.”
이처럼 ‘뉴라시아 로드’를 횡단한 원정대의 힘찬 발걸음은 우리 시대의 새로운 이정표-‘통일이 미래다’를 실현하는 세계적인 도전의 첫걸음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즉, 유라시아 대륙에 살고 있는 모든 시민들에게 한반도 분단역사의 고통을 알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국민적 열망과 세계평화협력의 필요성을 전파함으로써 한반도 통일시대를 앞당기는 위대한 도전의 길이 되었다는 점에서 아무리 칭찬해도 지나치지 않을 일이라 평가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우리에게 남겨진 가장 큰 과제는, 상기에서 인용한 이광희 조선일보 편집국 부국장의 말처럼 앞으로 다음 세대에게 통일시대에 대한 꿈과 비전을 열어주는 것이 대한민국 기성세대들과 지도적 위치에 있는 분들이 해야 할 책무라는 점이다. 이를 결코 간과해서는 안된다는게 우리 모두의 신성한 의무로 느껴진다.

  Ⅲ. 통일고지에 이르는 성찰
  김창호 대장은 12월 16일 통일간담회에서 ‘불가능에 대한 도전이야말로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행동이다’라는 그 자신의 철학을 극명하게 밝히면서 강연을 마무리하는 가운데 자신의 심경과 우의를 다음과 같이 이렇게 정리했다.  
▲ 2012년 세계 최초로 네팔 힘중 등정한 김창호 대장 (출처: 한국경제)   "산악인은 고통을 인내하는 예술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 조선일보사에서 '뉴라시아 원정대' 대장을 요청해 왔을 때 많이 두려웠지만 '뉴라시아(New-eurasia)로드'로 명명해서 통일로 가는 우리만의 길을 만드는 일이라면 탐험가의 길과 같다고 생각해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베를린에서 서울까지 이어진 1만 5000Km의 평화 대장정을 마친후 11월 16일 1만여명의 시민들과 함께 임진각부터 국회의사당까지 달리는 피날레 라이딩을 마지막 행사로 가진 그날 저는 이 자리에서 죽어도 좋겠다는 심정이 들었습니다. 그만큼 감격적이었고, 한반도 통일에 대한 우리 한국인의 열망을 전세계에 전하는 통쾌한 거사가 되었다는 자부심으로 온몸이 떨리는 감동을 느꼈습니다."

"어느 구간을 달리던 저희들 원정대가 가졌던 가장 큰 희망은 땅으로 땅으로 이어진 길을 중단없이 끝까지 달려 서울에 입성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진에서 보다싶이 단동의 압록강 철교 앞에서 우리들이 페달밟기를 멈추고 그 희망이 실현되지 못하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좌절감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이었고 지금도 큰 아쉬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중국어로 붉은 동쪽의 땅, 단동(丹東)이 우리에게는 동쪽으로 가는 길이 끊어졌다는 의미의 단동(斷東)으로 느껴졌어요. 결국 신의주를 건너 한반도 땅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저멀리 블라디보스톡을 거쳐 동해안으로 귀국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중국을 달릴 때는 'ONE Korea'를 쓰지 말아 달라는 요청이 있어서 어쩔수 없이 'ONE'에서 'NE'를 지우고 'O Korea' 라는 이름을 달고 달렸습니다. 참으로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전부터 통일이 되면 금강산 ㅡ마식령 ㅡ개마고원을 거쳐서 백두산까지 걸어가고 싶었는데 이번 기회에 압록강을 거슬러 올라가 백두산까지 오르게 되었지만 정작 그 땅을 우리의 땅이라 부를 수 없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까왔으며 또한 고구려의 옛 터전이 엄연히 남아 있는데도 그곳이 현재 중국 땅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억울하게 여겨졌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빨리 강한 나라가 되어야 평화와 통일과 미래의 길이 열린다는 것을 다시한번 깨닫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습니다."

"어떤 산을 오르느냐는 각자 선택해야 하고, 또 산을 오르는 방법도 평평한 길, 기파른 길, 거친 길 등이 있어서 가는 길을 각자가 선택해야 하는데 이승률 이사장님과 동북아공동체연구재단은 동북아 국제협력의 길을 통해 남북한 통일의 길을 찾아가는 우회론적인 접근 방법이지만 이길이 오히려 더 지름길이고 시대를 가파르게 올라가는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100일 동안 유라시아 저 넓은 세상을 열심히 달려온 뉴라시아 원정대의 기운을 몽땅 모아 동북아공동체연구재단이 가는길에 한마음으로 기(氣)를 보태 드리고 싶습니다."  
▲ 2014 명사초청 통일간담회 (2014.12.16 동북아공동체연구재단)   필자는 김창호 대장의 특강이 끝난 다음 통일간담회를 주최한 대표의 입장에서 이렇게 화답했다.

"에베레스트의 정상을 정복하는데는 장비, 세르파 등도 물론 중요하지만 베이스 캠프의 엘리베이션(elevation)을 얼마나 높일수 있느냐가 주요 전략이 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근년에 8848m의 고지를 오르기 위해 베이스캠프를 5400m까지 높일 수 있었기 때문에 그만큼 정상을 정복하는데 수월해 졌다는 경험담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우리 동북아공동체연구재단 뿐만 아니라 통일을 위해 일하는 정부, 기관, 개인 모두 통일을 위한 역량, 즉 베이스캠프의 입지수준(elevation)을 높여서 한만족의 숙원인 남북한 통일고지를 점령하는데 획기적인 여건을 조성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자전거 원정대가 독일에서 한반도까지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 지르며 사즉필생(死則必生) 정신의 모범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우리의 미래 고지를 점령하는 하나의 획기적인 모범사례였다고 믿어집니다. 그리고 또한 교육을 통해 차세대 통일역군을 육성하는 평양과기대도 이러한 관점에서 미래지향적인 통일준비의 실제적인 대안이요 창조적인 출구전략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Ⅳ. 평양과기대의 산학협력과 학사 현황
  당일 행사장에는 평양과기대 교수 요원으로 봉사하다가 겨울방학을 맞이하여 서울에 온 지 며칠 되지 않는 두 분의 손님들, 즉 평양과기대 농대학장 김필주 박사와 평양과기대 부속기관인 R&D센터(녹색지구연구원) 본부장 최세열 교수가 참석하여 최근의 학교 소식을 전해주었다.

김필주 박사의 인사말에 이어 지난 11월 19일 제1회 학부생 졸업식 정경을 동영상으로 시청하는 특별한 순서를 가졌다. 영상 가운데 교수들과 학생들이 석별의 정을 나누는 졸업식 뒷풀이 장면은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크게 감동시켰는데 특히 졸업생들이 모교사랑을 눈물로 고백하는 장면은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스승에 대한 존경심과 큰 울림으로 전해져왔다.

뒤이어 평양과기대 산학협력 사례 발표도 참석자들에게 큰 관심과 공감대를 불러일으켰다. 발표자로 나선 최세열 평양과기대 교수는 실리콘밸리 전자산업체 분야에서 35년간 종사하며 IT업체의 CEO를 지낸 미주동포이다. 4년 전에 남북통일에 대한 꿈을 가지고 평양과기대 교수로 헌신하기 위해 북한으로 들어갔던 인물이다.

최세열 교수는 북한의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야말로 미래지도자로써 조국 통일의 기둥을 세우는 일이며, 미래를 위한 확실한 투자라고 생각한다고 전제하면서, 현재 평양과기대에서 자원봉사하고 있는 한국 출신 동포 교수 30여명과 외국인 교수 40여명 뿐만 아니라 국내외에서 후원하는 모든 분들이 이런 점에서 한결같은 마음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 사업을 하는 것이야말로 통일의 연착륙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실질적이고 체계적인 접근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힘들지만 북한의 심장부인 평양에 들어가서 청년들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자신의 소회를 밝혔다. 특히 최세열 교수는 북한 사회에 필요한 적정기술을 개발해 교육하고자 하는데, 앞으로 어떻게 북한 경제에 새로운 모델로 산학협력을 할 것인가 하는 대안을 고민하고 계시는 분이다.
 
▲ 2014 명사초청 통일간담회 (2014.12.16 동북아공동체연구재단)
  2001년 남한(통일부)과 북한(교육성)이 함께 승인하여 설립한 평양과기대는 2009년 9월 16일 1단계 건물 준공식 및 개교행사를 가진 후 2010년 10월 25일 개학한 이래 3년 반 동안 급속히 악화된 남북관계 속에서도 착실히 교학을 수행하여 지난 2014년 5월 21일 제1기 석사학위 졸업생 43명을 배출했고, 11월 19일에는 제1기 학부생 99명을 졸업시키는 큰 성과를 올렸다.

2014년 5월 현재 평양과기대는 학부생 500명, 대학원생 60명, 총 560명의 재학생이 전자컴퓨터공학부(ECE), 농생명학부(ALS), 국제금융학부(IFM) 3분야의 전공을 배우고 있다. 그동안 김진경 총장께서 대학운영을 총괄하고 있는 가운데 박찬모 명예총장을 위시한 70여명의 외국인 교수가 4년동안 학교 수업을 해오면서 많은 성과를 올리고 있는데, 2014년 132명의 졸업생이 그 첫 열매라고 할 수 있다.

이와함께 평양과기대는 지속 가능한 성장 동력을 창출하고 궁극적으로 통일의 첨병을 양성하는 기관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차원에서 여러 가지 산학협력 사업을 계획하고 있는 가운데 대표적인 사례로 최세열 교수의 <녹색지구연구원> 프로젝트를 들 수 있다.

최세열 교수가 이 사업을 진행하면서 모델로 삼고 있는 것은 스탠포드대의 산학협력시스템이다. 스탠포드대는 4만개 이상의 영리 기업과 3만개 이상의 비영리 기업이 산출된 학교로써 이 두 기업군들의 총 매출액이 3조달러를 창출하고 있다. 이를 모델로 평양과기대에 지식산업복합단지를 마련하는 토대를 구축하고자 1단계 사업을 구상하고 있으며, 이것은 평양과기대를 졸업한 학생들이 독립적인 기업을 만들 수 있도록 돕는 리서치센터를 운영하는 계획이다.

구체적인 사업계획으로 현재 녹색마을운동을 기본으로 하여 신재생에너지, 친환경 솔라에너지 등을 개발하고 있다. 실례로 태양광을 이용해 휴대폰 충전과 야간 점등이 가능한 복합충전기를 생산하고 있으며 북한 내 연탄가스 중독으로 사망자가 빈번하게 발생함에 따라 이를 예방하기 위한 유독가스 감지기를 개발하기도 했다.

또한 북한의 전력 소외지역인 산간 농촌 마을에 태양과 풍력을 이용한 소규모 발전시설을 갖춘 저비용 친환경 농가를 건설하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데, 이것은 지붕위에 태양광 및 풍력발전기를 설치하여 가구의 전등과 TV, 선풍기 정도를 돌릴 수 있는 발전용량을 갖추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 또한 연료 땔감용 벌목으로 훼손이 극심한데 이런 산림 황폐화를 방지하기 위한 난방시스템을 개선하고, 보건위생을 위해 흙벽돌 구조로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개량농가 건설도 아울러 추진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평양과기대 농대학장인 김필주 박사(여, 79세)가 지난 25년 동안 황해북도 6개 협동농장을 대상으로 목화농장마을을 개발해온 성공사례를 연결하여 자립형 시범농장을 개설할 꿈을 부풀리고 있다. 즉, 북한 농민에게 할당된 단위당 생산량 기준치를 상회하는 생산성을 유발하도록 지도하여 그 수확 생산량의 상당부분을 농민 자신이 소유, 소비하도록 지원함으로써 북한 농경사회에 시장경제의 틀이 작동하게 하는 한편, 지역사회 및 개별 농가에서 자립형 자산기반이 구축되도록 하겠다는 생각이다. 이를 위해 우선 3개 마을을 대상으로 시범지구조성계획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러한 녹색마을운동을 기초로 하여 농촌개량사업을 성공적으로 안착시켜 통일 모범부락으로 육성하겠다는 것이 1차적인 목표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평양과기대 부속 녹색지구연구원은 평양과기대 학생들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와의 연계를 통해 북한 주민들에게 새로운 생산 및 소비시스템을 전수하는 녹색산업의 통로이자 실질적인 창업의 보금자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한편, 김필주, 최세열 박사처럼 평양과기대 산학협력 부문을 통해 북한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헌신하는 분도 있지만 김진경 평양과기대 총장을 도와 평양과기대 설립부터 지금까지 교학 부문을 총괄하고 계시는 박찬모 명예총장의 활약 또한 대단하다. 포항공대 총장, 대통령실 과학기술특별보좌관,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하신 박찬모 명예총장은 미국 시민권자로 다년간 평양에 체류하며 80대 노구를 무릅쓰고 현재도 인재양성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다. 필자는 ‘내가 그를 도울 길이 무엇이 있겠는가’생각하다가 최근 겨울방학을 맞아 잠깐 귀국한 박찬모 총장을 매일경제 김세형 주필에게 부탁하여 특별인터뷰를 하도록 조치했다.

매일경제 12월 16일 인터뷰를 통해 박찬모 총장은 평양과기대 학사 현황과 함께 최근의 북한 소식을 소상히 전했는데, 다음은 1면 톱기사로 나온 박찬모 총장의 인터뷰 기사 중 주요 부분을 발췌해 본 것이다. 2)
 
박찬모 총장은 또 평양과기대가 북한 젊은이들과 세계를 이어 주는 학문적 가교 기능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한·미에 비해 유럽 쪽에서 평양과기대 우수 학생들에 대한 유학 문호를 넓히고 있다고 소개했다. 내년에 석사과정 5명, 박사과정 7명이 ‘에라스무스 재단’의 장학금을 받고 영국 독일 프랑스 스위스 등으로 진학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박 총장은 “에볼라 사태 때문에 영국문화원에서 주관하는 국제영어능력시험(IELTS) 응시가 힘들었는데 영국 쪽에서 힘을 써 줘서 평양과기대 학생 16명이 모두 시험에 응시할 수 있었다”며 16명 전원이 시험에 합격했는데, 장학금이 약속된 12명 외에 4명도 어떻게든 장학금을 만들어서 유학을 보낼 것”이라고 의지를 보였다.

북한도 평양과기대가 이룬 성과를 인정해 국가에서만 주관하는 학위 취득 시험을 평양과기대에서 자체적으로 실시할 수 있도록 했다. 북한 당국이 평양과기대에서 북측 총장을 역임한 허광일 박사를 교육위원회 고등교육 담당 부상으로 임명하고 과기대 대외사업부장도 교육위원회로 데려갔다고 박 총장은 전했다. 향후 평양과기대 성공모델이 북한 내 다른 대학에도 전파될 수 있는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는 대목이다.
 
덧붙여 박찬모 총장은 김정은 체제의 북한 모습을 전하고 있는데, 가장 주목할 부분은 김정은 제1비서 집권 3년 동안 체제 안착을 위해 애쓰는 한편 경제회생을 위해 과학기술 발전, 특히 정보통신기술(ICT)분야 기술 개발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글로벌 시장에서 부상하고 있는 ‘페이팔(paypal)' 같은 전자결제 시스템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자체 개발한 태블릿PC인 ’룡흥‘으로 수업하는 소학교, 중학교의 모습도 볼 수 있다고 전했다. 또한 기존에 인터넷을 쓸 수 있었던 평양과기대 외에도 김일성종합대학이나 김책공대에서도 학내 인터넷 환경을 구축하는 작업을 마쳤다는 소식을 김일성대 관계자로부터 전해들은 소식도 함께 전했다.

또한 김정은 체제 이후 가장 달라진 평양 풍경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박 총장은 주저하지 않고 눈에 띄게 부쩍 늘어난 거리의 택시와 여성들 옷차림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북한 내 휴대전화가 300만대 이상 보급되었다고 추정할 정도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으며, 외국인에 대한 인식도 상당히 호의적으로 변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회색빛 미래’로 인지되어 왔던 북한의 젊은이들이 상당 수준 자유로운 태도와 활기를 띄고 있으며 김일성, 김정일 시대에 비교하여 폐쇄적이던 사회가 개방형 사회로 점차 변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Ⅴ. 사랑으로 - ‘하늘포도원’에서의 합창
  뉴라시아 자전거 원정대와 평양과기대 산학협력 사업은 전혀 다른 두 가지의 활동이지만 한반도 통일의 숙제를 푸는 마중물과 같은 역할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크게 닮아있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라 위험하고 힘들지만 그 고통과 리스크를 딛고 한반도의 새로운 미래를 여는 길목에서 몸으로 직접 맞대고 부딪히며 통일의 밑거름을 뿌리고 있는 셈이다.

뉴라시아 원정대가 보여준 것은 ‘인간의 한계상황에 대한 도전이요 그 가능성의 발현’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단순히 폐달을 밟아 미지(未知)의 길을 개척한 것이 아니라 유라시아의 고원에 새 길을 내며 남북한 통일의 씨앗을 뿌린 대장정이었기에 그 의미를 아무리 칭찬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원정길에서 가진 수많은 인터뷰, 세미나와 단합대회가 바로 그 증거가 아닌가?

돌이켜보면, 원정대를 지원하기 위해 동행한 차량에는 한반도를 포함한 세계 평화를 기원하는 글이 세계의 언어로 도배되었고, 원정대를 취재하는 등 방송을 통해 한반도 통일의 의미가 집중 조명받기도 하였으며, 원정길에 펼쳐진 환영과 격려의 행사들 그리고 원정대의 행렬을 따라 함께 달리고 박수갈채를 보내며 반겨준 현지 시민들의 반응은 한반도 통일에 대한 세계인들의 응원 메시지로 들린다. 이것은 마지막 남은 분단의 땅인 한반도의 평화를 세계 시민들에게 상기시키고 국제사회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통일의 외교사절단 역할을 톡톡히 한 결과로 평가할만하다.

그러나 이보다 더, 누구보다도 더 강렬한 통일의 메시지가 전해진 사람들은 원정길에서 만난 교민과 한인 동포들이다. 이번 원정대는 그들에게 ‘한민족 통일의 희망과 평화통일을 향한 마음의 불씨’를 다시 지핀 통일 구국의 전령사였다. 현지에서 만난 동포들과 함께 ‘우리의 소원은 통일’, ‘아리랑’을 부르며 한반도 통일의 염원과 한민족 통합을 일깨운 그 감동적인 장면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무엇보다 1만명의 시민과 어우러져 달린 ‘파이널 라이딩’을 통해 “통일이 달려왔다”고 외치며 우리 국민들이 갖고 있는 두가지 태도, 즉 통일에 대한 무관심과 과도한 걱정을 동시에 극복하고 통일에 대한 새로운 기대와 꿈을 갖게 한 ‘우리 시대의 최고의 희망’을 상징하는 한편의 웅휘한 드라마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통일 한국의 꿈을 싣고 달린 원정대의 발걸음은 우리들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로부터 ‘우정있는 설복’으로 인식되어 21세기 세계평화를 위한 신사고(新思考) 국제협력을 이끌어 갈 프로젝트로 발전할 것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함께하는 정신으로서의 울림’의 공명현상을 이끌어준 원정대에게 무한한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싶다. 또한 그 선봉에 우뚝 서있는 김창호 대장에 대한 존중과 감사의 뜻은 더 이상 말해 무엇하랴.

이러한 존중과 감사의 뜻을 마음에 새기며 우리는 한 마음으로 합창했다.

12월 16일 동북아공동체연구재단이 주최하고 참포도나무병원(이동엽 병원장)이 후원한 '명사초청 통일간담회 및 송년모임’은 장대성 전 강릉영동대 총장 내외의 색스폰 연주에 따라 손에 손을 잡고 큰 원을 그리며, ‘해바라기’가 노래한 ‘사랑으로’를 합창하는 것으로 마지막 순서를 장식했다.
 
▲ 2014 명사초청 통일간담회 (2014.12.16 동북아공동체연구재단)
  23년전 중국 연변조선족사회의 후진 양성을 위해 세웠던 연변과학기술대학(개교 1992.9.16)에서 제2의 교가로 애창했던 노래가 바로 ‘사랑으로’이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할 일이 또 하나 있지
바람부는 벌판에 서 있어도
나는 외롭지 않아
그러나 솔잎하나 떨어지면
눈물따라 흐르고
우리타는 가슴 가슴마다
햇살은 다시 떠오르네
아아 영원히 변치않을
우리들의 사랑으로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 주리라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의 최대 교두보 지역이었던 만주 간도땅 - “선구자의 땅”이라 불러 마땅한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 북산가 언덕(일찌기 조선족 공동묘지 자리였으나 모택동 정권 수립 후 매장제에서 화장제로 바뀐 이후 폐허로 남아있던 땅) 위에 한국 기독인들이 성금을 모아 세운 대학이 연변과학기술대학(YUST)이다. 공동묘지 ‘죽음의 땅’을 꿈과 비전의 산실인 ‘생명의 땅’으로 변화시킨 역사가 바로 연변과기대의 역사라해도 과언이 아닌 이곳, 연길시 북산가 언덕위에서 일본 제국주의와 동서 냉전시대의 피해자로 남아있었던 조선족 청년들을 끌어안고 그들의 가슴 속에 새로운 시대의 희망과 가능성을 일깨워주며 헌신했던 젊은 기독교수들의 삶의 모습이 바로 ‘사랑으로’노래의 의미 그 자체였다.

그런 ‘인도주의적 사랑’의 흐름이 두만강과 압록강을 넘어 평양 땅에 이르러 꽃을 피운 것이 곧 평양과학기술대학(PUST)이다. 중국 공산사회주의 체제에서 성공한 사립형 국제대학인 연변과기대를 모델로 세운 평양과기대야말로 북한 청년들에게 새로운 시대의 소망과 능력을 갖추게 하는 국제화 인재양성의 산실이 될 것이다. 이를 증폭해서 다시한번 말하건데 평양과기대는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길목에서 북한의 경제개선과 국제화에 이바지할 인력을 육성할 뿐만 아니라 북한의 미래상과 사회통념을 변화시키는 창조적인 새 역사의 물꼬를 트는 창구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그 ‘사랑으로’의 헌신과 나눔의 정신이 뉴라시아 자전거 원정대의 기상과 더불어 12월 16일 통일간담회에 참여한 모든 회원들의 마음속에, 함께 잡은 손과 손의 핏줄을 통해 ‘은혜의 강물’처럼 뜨겁게 흘러들었다. 올해 들어 가장 추운 날씨 속에서도 참포도나무병원 루프가든 ‘하늘포도원’에 모인 일단의 꿈꾸는 사람들, 즉 한반도 통일과 동북아공동체의 융복합적인 결합을 지향하는 ‘미래창조지식인’들은 한결같이 우리 시대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일이지만 반드시 이루어 내야 할 역사적 과제를 품에 안고 한 마음으로 뜨겁게 ‘사랑으로’를 합창했다. 통일시대의 길목을 뚫는 참으로 아름답고 진실된 구국의 부르짖음이 그 노래 속에 진홍핏빛처럼 배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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