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언제이던가 잘 아는 선배 시인이 말했다. 

"시인은 거듭 허물을 벗으며 태어나야 발전을 한다. 까아만 어둠 속에서 별빛이 더욱 빛나듯……"  문단에서 풍류를 한다는 사람치고 술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터이지만 나도 유독히 유년 시절부터 '술'을 탐닉(사랑)했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요놈만 들면 세상이 보인다!" 작취미성인 상태에서 보는 세상만사와 우주만물은 왜 이리도 황홀경이요, 무아지경이란 말인가! 이 속에 세상의 이치와 진리가 보석처럼 빛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방랑시인 김삿갓은 한 잔 술에 삼천리 방방곡곡 주유천하를 하였고, 스스로 주선이요, 시선이라 지칭하며 무릉도원 촌장의 경지에 올랐던 중국의 이태백 시인 등이 이토록 주님(酒任)을 사랑하면서도 시성(詩聖)이 되었단 말인가! 술을 잘 하거나 즐기는 것이 결코 자랑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어찌어찌하여 정(情)과 한(恨)으로 이 광할한 세상을 살아가자니 술을 대하게 되었다. 하여튼 이렇게 줄기차게 30여년을 술에 익어 살아온 것이 나의 주력(酒歷)이다. 돌이켜보면 나의 주도입문(酒道入門)의 첫 발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7살 때였다. 어머님의 말씀을 빌려 기억을 더듬으면 이렇다.  농사일 할 때 쉴 참에 일꾼들에게 주기 위해서 어머님은 술을 담아 광에 자주 두었다. 어머님이 들에 간 사이 빠끔히 열린 광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광 안에는 잘 익은 감 냄새 같은 동동주 냄새로 진동을 하였다. 문득 먹고 싶은 생각에 마당 돌담 밑으로 세워둔 보리짚대를 하나 뽑아다가 동동주가 담긴 술동이에 대고 빨아먹기 시작하였다. 좀 쉰 듯 하면서도 달콤한 동동주는 7세 소년을 술동이로 부터 쉽게 떨치지를 못하였다. 그렇게 얼마를 빨아먹었을까, 코를 실룩거리며 뒤로 물러나 앉았다. 그리고는 비틀비틀 거리다가 그냥 옆으로 쓰러져 잤다. 얼마를 잤을까 눈을 떠보니 안방이었다.  들에 갔다오던 어머님이 술동이 옆에서 술에 취해 자는 7세 주동(酒童)이 한심스러웠던지 번쩍 안아 안방에 뉘였던 것이다. 저녁때 논에서 집으로 들어오신 아버님이 이 모습을 보고 버럭 화를 내셨다.  "야 이놈아, 어린 놈이 웬 술을 그렇게 빨아먹고 광에서 코 골고 떨어져 자느냐? 참 내 별꼴이다……"  그 후로도 한 번 맛들인 동동주가 광에서 종종 주종을 불렀다. 그러자 어머님의 한탄이 흘러나왔다.  "야, 너는 느이, 아버지 닮아서 컷 술꾼이 되려구 그러냐?"  
 
 8살이 되어서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학교에서 파하고 오면 어머님은 쉴 참 일청에 내어갈 술 심부름을 종종 시키셨다. 그러면 필자는 두 되 가량 들어가는 술 주전자를 달랑달랑 들고서 뒷산을 넘어 방죽 들길을 지나 까치다리 주막집에 갔다. 주막집 아주머니는 술 심부름을 왔냐며 눈깔사탕 하나를 주고 주전자에 술을 가득 담아 준다. 그 길로 곧장 집으로 가야 쉴 참 일청에 내어갈 술이 차질을 빚질 않건만 그러지를 못했다.  어떤 날은 집으로 오다가 방죽가 수문(水門)대 위에 앉아 방죽 물위로 한가로이 노니는 물오리 떼를 보며 술 주전자 주둥이에 입을 대고 술을 마시곤 했다. 그렇게 반 주전자 가량의 주량을 마셨다. 와야 될 시간에 술이 안오자 어머님이 허겁지겁 마중을 왔다. 그러다 방죽 수문대 위에 철없이 앉아 술을 빨고 있는 술꾼 소년을 보고 어머님은 소스라쳐 놀랐다.  "얘, 얘 좀 봐! 너 지금 뭐하니? 얘 좀 봐. 술 다 마셨네!"  어떤 날은 술 주전자를 들고 집 뒷산 길을 오르다 재 너머 개구쟁이 친구를 만났다. 그러자 둘이는 산길 가운데서 서서 누가 오랫동안 술 주전자에 입을 대고 많이 마시느냐 시합을 했다. 그렇게 다 마신 술에 취한 둘이는 그냥 옆 풀섶에 넘어져 잠을 잤다.  아마 초등학교 4~5학년 때로 기억된다. 봄 소풍을 학교 뒷산인 남산(南山)으로 갔다. 점심시간이 되자 선생님 몇 분이 모여 앉아 식사 중에 반주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이를 보고 울컥 술 생각이 간절했다. 이제나 저제나 선생님들이 잠시 자리를 뜰 때를 기다렸다.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먹다 남은 술병을 쏜살 같이 훔쳐서 한쪽 소나무 아래에 앉아서 홀짝홀짝 다 마셔버렸다. 그대로 누워 하늘을 보니 노랗고, 소나무 저편으로는 따스한 봄날 아지랑이가 꿈처럼 가물거렸다. 이러한 천성적인 애주(愛酒)는 아마도 선천성인 것 같다. 왜냐하면 가까운 선대 조상님들이 하나같이 애주를 하셨다 한다. 할아버님도, 아버님도 인근에서 뒤지지 않는 주당이셨다 한다.  과연 위대하거나 자랑스럽지 못한 주당승계를 나의 대에서 끝낼 것인지 아니면, 후대에까지 승계가 될 것인지 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한 잔의 술을 느긋하게 마시면서 말이다. (似遊華胥國, 疑反混元代)그러다 취해 쓰러져 잤다. 하루의 소풍 일정이 끝나고 학년 별로 인원점검을 했다.  그런데 내가 빠진 학년만이 한 명의 사고가 생긴 것이다. 깜짝 놀란 교장선생님을 비롯하여 담임선생님과 많은 학생들이 행방불명된 나를 찾기 위해서 흩어졌다. 마치 무슨 보물찾기라도 하듯 인근의 산 속을 다 뒤졌다. 그렇게 한참을 찾던 선생님 한 분이 소나무 아래서 코 골고 자고 있던 나를 발견하고는 일동을 향해 소리를 친다. "야, 여기 술꾼이 퍼져서 자고 있네!" "와- 와-" "뭐, 뭐야!"  한참을 찾던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기가 막히는지 자고 있는 나를 보고 몰려와 저마다 한 마디씩 한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읍내에 있는 중학교에 들어갔다. 용케도 학생간부로 뽑혔다. 본디 으시대기 좋아하고 놀러다니기 좋아했던 나에게는 더 없는 구실거리로 횡재였다. 1주일이 멀다하고 읍내의 여학교 학생 간부들과 주말에 인근 산으로 놀러 다녔다. 그 당시 나를 따를 술꾼 학생이 없었으므로 산이나 강으로 야외놀이를 갈 때는 꼭 내가 술 짐을 맡았다. 가령 막걸리 한 말을 어깨에 맨다든가, 소주 수십 병을 배낭에 담아 맨다든가 하는 것은 나의 몫이었다. 다른 친구들이 매지 않는다면 우선 내가 술을 못 마시면 답답하기에 늘 자청했다. 오죽해야 녀석들은 야외놀이를 갈 때마다 술 짐을 맨 나를 보고 <술통>이라고 부르며 낄낄대었다.  또 인근의 학교 앞 빵집으로 가서 만두를 시켜놓고 보리차 잔에다 물 대신에 소주를 한 컵씩 마시고 다녔다.  이러기를 상급학교에 진학해서도 마찬가지였고, 서울에서 생활 할 때도 이러한 일은 그치지를 아니하고 이어졌다. 이렇게 지금 현재까지 주력(酒歷)30여 년을 줄기차게 이어져 왔으니 주당이고 주걸(週傑)임은 분명하다. (술에 취해있을 때의 그 기분이란 황제가 낮잠의 꿈 속에서 놀았다는 화서국에 있는 것 같고, 이 천지가 처음으로 열려 혼돈했던 찬연한 원시 시대로 되돌아가는 기분 같다)  
 
  술酒 -김우영 자작시 사랑하는 그대와 마시는 술은 합환주 合歡酒요. 떠나가면 이별주 離別酒라! 혼자 마시는 술은 고독한 술오랜 친구와 마시는 술은 해 가는 줄 몰라 신나는 술오다 가다 만나 마시는 술은 뜨내기 술작부와 시시덕대며 마시는 술은 궁뎅이 술속상해 마시는 술은 푸자 술기분 좋아 마시는 술은 미끈덩 술어린 소녀와 마시는 술은 영계 술할머니와 마시는 술은 한물간 술이런저런 사람들과 마시는 술은 객담 술.  
 
작․가․소․개김우영 (金禹榮) ․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 ․ 장편소설집「월드컵」단편소설집「라이따이한」외 저서 총29권 출간 ․ 한국문예대상, 서울특별시 시민대상, 독서문화공로 문화관광부 장관상, 한글유공 대전광역시장상, 한국농촌문학상 대상 농림부장관상, 대한민국 디지털문학 소설부분 대상, 2011년 문학작품대상, 한국문인협회, 한국소설가협회, 국제펜클럽한국본부, 한국문학비평가협회, 계간 문예마을 회원 ․ 대전중구문학회․한국해외문화교류회 사무국장.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 전국 지역예술가 40인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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