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 올해는 반파시스전쟁 70돌이 되는 해이다. 중국 조선족들이 항전에 앞장서며 반파시스전쟁에서 이룬 공헌은 누구도 말살 할 수 없다. 이에 본지는 연변 용정시에서 발생한 3.13반일 투쟁 96돌에 즈음하여 '용정 3.13기념사업연구회' 최근갑 회장(90세)을 조명하기로 한다. 이 기사는 2009년 흑룡강신문에 실렸던 인물탐방인데, 윤운걸 흑룡강신문 길림성특파원이 조금 수정을 해서 다시 보내주었다. 편집자 주  
▲ 2008년 용정3.13반일운동 89주년 기념추모제에서 추모연설하는 최근갑 회장(사진 이광평)
올해는 중국 용정에서 벌어졌던 3.13반일투쟁 96돌이 되는 해이다. 어찌보면  90여년 전에 중국땅에서 벌어졌던 이 사건이 어느 누군가에 발굴정리되지 않았더라면 영원히 역사속에 묻혀진 채 방치되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을 불문하고 역사문제는 아주 민감한 문제이다. 그러나 중국조선족으로 놓고 볼 때 조선족의 역사발자취 발굴 더욱이는 중국 땅에서의 반일운동 발자취를 발굴 정리하는 것은 후세들에게 조상들의 위대한 업적을 남겨놓고 길이길이 빛나게 하는 면에서 굉장히 의미가 있다.

이전에 두만강과 압록강을 건너 중국 땅에 건너온 조선인들이  일본침략자들과 혈전을 벌였고 또 이들은 중국에서 이중 사명 즉 조선반도 독립과 중국의 반일투쟁 및 중국의 해방을 위해 피흘려 싸웠다는 것을 절대 잊을 수 없고 또 잊어서는 안 된다. 

이렇게 중국조선족은 이 땅에서 수많은 피를 흘리면서 또 중화인민공화국 창건에서 앞장섰기 때문에 해방 후에 중국국적을 당당하게 취득하게 되었고 나아가서는 조선족이라는 중국의 한 개 소수민족의 호칭으로 오늘까지 떳떳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중 용정에서 벌어졌던 3.13반일투쟁은 중국 200만 동포들에게 또 주류민족에게도 훌륭한 본보기를 보여준 아주 자랑스러운 역사의 한 페이지를 그어 놓은 대사변이고 또 중국의 반제반봉건 5.4운동보다 앞서 있었던 역사적인 대사변이라는데 그 의미가 굉장히 깊다.

3.13반일투쟁 90돌을 맞이하면서 구중천에 있는 영령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그 어떤 압력과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20여년이나 노심초사하면서 그들의 묘소를 재정비함과 아울러 성역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후세에 남긴 한 조선족 노인이 있는데 그가 바로 용정3.13기념사업연구회 최근갑(90세)이다.

3.13역사발굴정리사업을 하게 된 계기

"우리민족의 반일역사뿌리를 찾아 후세에 길이길이 전해주는 것이야말로 양심있고 정의를 지키는 사람이다"라고 최근갑 회장은 말하면서 "이 땅에서 우리민족은 얼마나 많은 피를 흘리고 또 이 땅을 개척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가? 이는 우리민족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고 했다.

최근갑 회장이 용정에서의 반일역사유적지를 발굴하게 된 것은 그의 고난사와 직결된다.

1926년 12월 24일 독립운동가 최청남의 아들로 태어난 최근갑 씨는 일찍 아버지와 헤어지고 어머니를 잃고 1941년부터 용정 은진중학교를 고학했다. 어린 시절부터 가정의 영향과 반일교육의 세례를 받아왔고 망국노의 설움을 목격한 그는 학창시절부터 국가의 독립과 민족해방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해방 후 그는 사업에 충직한 한 보통국민으로서 열심히 일해 수차례 길림성정부와 연변조선족자치주정부의 표창을 받기도 했다.

1986년 12월에 최근갑 씨는 용정시 건설국 국장에서 정년 이직한 뒤 제2의 인생 즉 우리 민족의 역사발자취를 찾고 그것을 발굴, 복원해 후세에 남김과 아울러 역사관광전적지를 건설해 용정시 경제발전 진흥에 기여하리라 맘먹었던 것이다.

뜻있는 사람이면 한곳에 모이는 법이다. 1989년 9월 한국 인하대학 윤병석 교수 일행이 용정에 와서 당시 용정시 대외경제문화교류협회 회장인 최근갑 씨를 찾게 되었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당시 3.13반일투쟁에서 수난당한 반일의사들의 유해가 어디에 묻혀있는가를 고증하는 것이 역사에 책임지는 일이라는데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이 땅에서 반일투쟁을 위해 피흘린 영령들 얼마나 거룩하고 위대한가, 오늘까지도 이름 모를 황야에 묻혀있다니, 참으로 우리가 부끄럽다"고 최근갑 회장은 이 사업을 전개하게 될 당시의 심정을 토로했다.

최근갑 씨는 3.13반일의사들의 묘소발굴사업에 나섰다. 때는 1989년 겨울, 칼바람이 쌩쌩 불어치는 한 겨울이었다. 동료인 김규철, 박죽송 등 용정시 대외경제문화교류협회 임원들과 함께 당년의 유지인사 32명을 방문하고 5차에 거쳐 현지답사를 한 뒤 드디어 영령들이 묻혀있는 지점을 확인했다. 조사에 따르면 당년에 묘소를 "만세묘지"라고 불렀단다.

"70여성상을 비바람 속에서 씻기고 마소들에게 짓밟혀 볼품없이 된 묘소룰 찾아냈을 때 머리가 스스로 숙여지면서 아픔을 금할 수 없었다"고 최근갑 회장은 당시의 정경을 회고했다.

최근갑 회장을 비롯한 일행은 이렇게 묘지를 찾아낸 뒤에 1990년 5월 18일 3.13반일의사릉수선위원회를 내오고 용정 제5중학생들을 동원해 묘소를  가토성분하고 나무비석을 세운 뒤 이튿날 5월19일 각계유지인사 60여명을 초청해 추모식을 가졌다.

용정시는 중국조선족의 교육, 문화의 발상지일 뿐만 아니라 반일투쟁의 전초지역이기도 했다.그러므로 용정에는 수많은 반일투쟁 유적들이 남아 있는데 이를테면 '15만 탈취사건', '봉오동전투', '윤동주 생가', '서전서숙' 등은 모두 조선민족이 이 땅에 남겨진 역사 전적지들이다. 그래서 최근갑 회장은 또 지속적으로 이러한 전적지에 기념비를 세우는 작업을 추진하거나 동참에 나섰던 것이다.

하여 적지않은 유적지들이 정부차원으로부터 문물 보호대상으로 지정되었는데 이한 성과는 최근갑 회장의 끈질긴 노력과도 밀접히 관계된다. 그래서 최근갑 회장에게는 '비석 아바이'라는 별호까지 붙여졌다.

오해와 불신 위협 속에서도 드팀없이 성역사업을 추진

성역사업은 필경 역사와 직결되기에 이러저러한 오해와 불신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관계부문은 이 문제에 아주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고 최근갑 회장은 말했다. 그럴 때마다 최근갑 회장은 연변대학, 연변사회과학원, 정부 기관 등을 지속적으로 찾아다니면서 기념사업의 당위성을 설명했고 심지어는 정치상의 '좌경노선'의 위해성과 민족 문제상에서의 존재되는 문제들을 제기하는 한편 민족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은 애국주의와 혁명전통교양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또한 조선족의 민족관, 조국관 문제를 정확히 수립시키자면 우선 민족의 역사관을 똑똑히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조선족역사의 정당성을 설득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갔다.

최근갑 회장의 이같은 불사조 정신과 실천은 응당 감사패나 공훈장을 받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사회에서 일부 인간들은 제2차 문화대혁명이 오면 최근갑이 '남조선특무', '민족주의자' 고깔모자를 쓸 것이라며 위협하기도 했고 또 '계급투쟁'에 이골이 난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문제를 걸기도 하고 또 경제문제를 따지면서 '떡 주무르는 사람이 떡고물쯤이야 맛보았을 것'이라는 풍문도 서슴치 않고 살포했다.

최근갑 회장은 3.13영령들을 위시해 수많은 반일의사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내기 위해 해외인사들에게서 자금 후원을 받았다. 한마디로 '떡'을 주물렀다. 그러나 최근갑 회장은 이런 횡설수설에 대해 그저 쓴웃음을 지으면서 "돈벌이를 하자면 장사를 하지 하필 무덤을 가지고 춤추겠는가, 그 후원금이 어떤 후원금이고 그 후원금이 일전한푼 보수없이 생명까지 바친 반일독립운동가를 위한 돈인데 내 어찌 양심을 저버리고 그런 일을 하겠는가"라고 했다.

이전에 용정은 이렇듯 유구한 역사를 가진 지역인만큼 후세는 물론 중국내 나아가서는 전 세계에 널리 알려야 할 유적지들이 엄청나게 많기에 관광산업발전에도 아주 훌륭한 지역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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