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영춘/칼럼니스트
[서울=동북아신문] “후노우!”

등소평이 생전에 북경시정부의 그릇된 처사에 내린 추상같은 호령이다. ‘후노우’, 사전의 해석에 따르면 ‘분별없다’, ‘엉터리없다’, ‘터무니없다’, ‘어처구니없다’, ‘제멋대로이다’ 등의 의미를 내포한다. 한마디로 ‘허튼짓거리’로 뜻을 모을 수 있다.

일전에 ‘역사 전환시기의 등소평’을 다룬 드라마를 보면서 필자는 북경시정부의 처사를 두고 한 등소의 위의 짧디 짧은 한마디 호령이 그이의 결연한 정치적 의지와 패기를 가장 적중하게 드러낸 언어표현이라는 생각을 금할 수 없었다.

중국 개혁개방의 여명이 밝아 올 무렵, 홍콩의 유명한 선박제조왕 포조룡, 포옥강 부자는 관광호텔을 짓는데 써달라며 북경시정부에 1천만 달러란 거액의 자금을 무상기증한다. 한가지 부탁이라면 호텔이름을 ‘조룡(兆龙)’으로 해달라는 것이었는데……. 북경시정부는 “자본가의 이름으로 호텔을 짓는 것은 자본가를 위해 수비입전(树碑立传)하는 정치행위”라고 단호히 못 을 박으며 1천만 달러 수표를 되돌려준다. 굴러온 호박을 보기 좋게 차버린 것이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등소평은 북경시정부의 어리석은 처사에 “후노우!”라는 강경한 어구를 써가며 호되게 대성질호함과 동시에 몸소 포씨 부자를 다시 불러 면전에서 사과하고 그들의 애국심을 정중하게 받아드린다. 따라서 포씨 부자의 간절한 소원대로 일필휘지로 ‘조룡반점’이라는 네 글자를 써준다.

북경시정부의 ‘후노우’로 날아갈 뻔했던 ‘조룡반점’은 등소평에 의해 살아나 5성급호텔로 오늘까지 장장 30여년 세월을 주름잡으며 대외개방 견증물로 북경시 조양구 번화가에 우뚝 솟아 있다.

북경시정부는 무상헌금자가 자본가란 이유로 “자본가를 위해 비석을 세워주고 공적을 기릴 수 없다”면서 1천만 달러를 거절하는 ‘후노우’를 저지르고, 등소평은 “우리동포가 사회주의 관광사업에 헌금하겠다는데 왜 싫어하겠느냐”하면서 애국동포에게 두둑한 배려와 혜택을 베풀면서 북경시의 ‘후노우’를 뒤집는다.

“후노우!” 등소평의 이 호령이 어찌 북경시정부에만 해당된다고 할 수 있으랴?

필자가 재직에 있던 몇 년 전, 한국의 지성인 한 분을 만난 적이 있다. 연변 어느 유명한 항일투쟁전적지의 황폐하고 초라한 현장을 둘러보고난 그 지성인은 국내외관광객들이 식사하고 휴식할 수 있는 식당과 숙박장, 슈퍼 그리고 주차장 같은 편리시설건설에 헌금할 의향을 내비쳤다. 그 어떤 조건부도 없는 그 지성인의 호의에 감사하면서 전적지 소속시 행정에 그분의 뜻을 전했는데 결국 흐지부지하다가 무산되고 말았다. 이유는 한마디로 헌금 기증인이 자본주의나라 유명인물이라는 ‘민감한 정치사항’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홍콩의 포씨 부자나 한국의 지성인은 모두 그 어떤 적대적이거나 음흉한 정치목적을 깔지 않은 우호적인 감정에서 중국 관광 기초시설 건설에 도움을 주려는 ‘자본주의 세계’의 지성인들이다.

‘홍콩 포씨 부자의 사연’은 지금으로부터 37년 전, 중국 개혁개방이 눈을 뜨려 할 때 생긴 것이니 북경시정부가 ‘자본가의 돈’으로 호텔을 짓는 엄두를 내기 힘든 시점이었음은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하지만 ‘한국지성인의 사연’은 지금으로부터 불과 몇 년 전, 중국 개혁개방이 30여년, 한중수교가 근 20년을 주름잡으며 중국인의 사상관념이 ‘사회주의냐 자본주의냐(姓社姓资)’와 같은 무의미한 논쟁에서 탈피한 시점에서 발생한 일이라고 볼 때 우리 고장은 자체의 지정학적 민감성 때문인지는 몰라도 여전히 40여 년 전 냉전구도에서의 정치풍토에 답보하고 있다는 유감을 털어버릴 수 없다.

북경시정부가 포씨 부자의 애국심을 폄하하며 ‘후노우’를 저지르는 일이 생긴 30여년 후에 벌어진 항일전적지 관광시설을 위한 한국지성인의 무상헌금 호의를 차버린 연변판 ‘후노우’를 등소평이 알았다면 어떻게 호령했을까?

올해는 중국항일전쟁승리 70돌, 세계반파쇼전쟁 승리 70돌이 되는 해이다. 연변은 중국의 혁명근거지로서 세계가 주목하는 지역이다. 아시아지역 반일, 항일투쟁의 성격 및 세계반파쇼투쟁과의 연계성에서 볼 때 연변지역에 산재해있는 수많은 반일, 항일유적지들은 한반도와 중국은 물론 세계적 범위의 반파쇼평화애호 인민의 공동의 유산이라 할 수 있다. 지난시기 반파쇼전쟁터가 어느 한 나라, 한 지역에만 국한되지 않았던 특징을 감안할 때 해당 나라, 단체, 우호인사들의 적극적인 동참으로 망각되고 외면당하고 냉대 받던 세계사적 의의를 띤 반일, 항일유적지를 잘 건설하여 우리 후대들에게 대물림하는 것이야말로 싫어해야 할 이유가 없는 칭송받아야 할 일이 아닐까?

냉전구도의 후유증에서 보면 홍콩 포씨 부자나 한국지성인이 중국 국토의 관광시설에 대해 관심 가지는 자체를 ‘침투’로 비하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이같은 냉전후유증을 치료하지 못 한다면 우리는 그냥 남이 가지지 못한 문화관광 자원의 우세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어떤 눈치보기로 전전하면서 우리에게 굴러 들어오는 호박을 계속 차 던지느라 땀을 흘리는 어리석음에서 해방되지 못할 것이다.

‘후노우’는 경직된 사상, 폐쇄된 관념의 병적 산물이다. 그 근본적인 치유처방전은 등소평의 ‘사상해방’, ‘실사구시’라는 빛나는 이론에서 찾아야 한다.

등소평의 ‘후노우!’ 불호령의 아픈 채찍으로 우리의 자세를 점검하고 우리의 처사를 반성하는 그 같은 관행이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해란강닷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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