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1992년 한중수교는 40년 동안 교류가 단절되었던 중국 조선족과 한국인의 ‘만남의 장’을 열었고 한국기업이 중국 대도시와 동부연안지역에 진출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한편 한국기업의 중국 대거 진출은 동북지역 조선족동포들의 대규모 이주를 유발했고, 수도권과 동부연안지역에 코리아타운과 한민족 경제권의 형성을 촉진했다. 또한 오늘날 대도시와 연해지역에 진출한 조선족들이 창업·자수성가를 통한 경제적 안정을 얻고, 하청업체에서 ‘대등한 파트너’로 부상하게 된 것은 한국기업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국과 지리적으로 인접한 청도지역에는 1천여 개의 조선족기업과 4천여 개의 한국기업이 밀집해 있다. 또한 중국에서 가장 큰 한민족 경제권(30여 만)을 형성하고 있다. 진출 초기 청도지역 조선족기업인 50%가 한국기업에서 전문기술과 경영노하우를 전수받았고 종자돈을 마련해 창업을 하였다. 즉 재중한국기업이 조선족기업의 ‘산실’·‘산모’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초창기 주로 한국 대기업에 부품을 조달하는 하청업체이었던 조선족기업들은 현재 상당한 재력과 경영리더십, 탄탄한 인맥을 갖춘 기업체로 거듭나고 있다. 최근 인건비의 상승과 규제 강화로 부도위기에 처한 한국 중소기업을 그동안 실력을 키운 조선족기업들이 인수하고 있다. 이는 조선족기업의 급성장과 실력 향상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청도지역에 진출한 조선족은 20만 명을 상회한다. 그들은 이미 경제적인 안정을 찾았고 대다수의 조선족기업은 세대교체를 통해 독자적인 기업체로 성장하였다. 2011년 기준으로 매출이 1억달러를 초과한 기업이 1개, 천만달러를 초과한 기업이 20여 개이다. 이는 청도지역 조선족기업들이 초창기 임가공과 납품 등 협력업체 수준에서 벗어나 이미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 한국기업의 파트너 자격을 갖췄다는 증거이다. 그동안 한국기업의 ‘계몽’과 기술전수를 받아 창업에 성공한 조선족기업들이 금융위기 후 기업의 경영환경이 크게 변한 중국에서 어려움을 겪는 한국기업에 따뜻한 지원의 손길을 내밀 때가 지금이다. 즉 중국의 내수시장 진출경험과 인적 네트워크를 갖춘 조선족기업과 기술 우위가 있는 한국기업이 상호 존재를 인정하면서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상생의 길을 함께 가야 한다.

2012년 기준, 수도권지역에는 1만여 개 한국기업이 진출했다. 또 북경지역에는 한국인과 조선족이 각각 10만 명이 거주, 1천여 개의 조선족기업이 있다. 북경지역의 조선족기업 성장패턴은 당초부터 한국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청도지역과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 1980년대 북경에 진출한 동북3성의 조선족들이 음식점 운영 등을 통해 일정한 자금을 축적했고 한중수교 후에는 여행업과 숙박, 음식업 경영으로 자립의 기반을 닦았다. 그후 제조업과 무역, 서비스업 위주로 경영패턴이 바뀌면서 중국 내수시장을 개척해 자수성가한 조선족기업들이 더욱 많아졌다. 물론 한국기업에서 경영노하우를 체득하여 창업에 성공한 사례도 수두룩하며 한국기업에 직간접적으로 의지하는 조선족기업들도 상당수 있다. 현재 베이징현대자동차에 부품을 납품하는 하청업체 중 조선족기업이 적지 않다.

현재 수도권지역에는 한국 중소기업의 실력을 넘어선 조선족기업들이 상당수 있다. 그중 여성패션 상장회사인 낭시그룹의 ‘몸값’은 100억위안 이상이다. 2014년에 낭시는 한국의 ‘국내 1호’ 유아복 전문업체 아가방을 인수했다. 약탕기 제조판매 회사인 동화원의료기계는 중국 내 시장점유율이 70%에 달한다. 중국 내 분점 150여개, 종업원이 8천명인 요식업체 한라산은 연간 매출이 최저 10억위안에 이른다. 상기 두 회사도 현재 상장을 준비 중이다. 최근 수도권지역의 조선족기업들은 막강한 자금력을 자랑하고 있다. 북경조선족기업가협회 주도로 수도권지역의 조선족기업인 30명이 공동으로 3억달러를 한국에 투자, 제주도에 25만제곱미터의 토지를 매입해 별장·호텔·리조트 조성을 위주로 부동산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바야흐로 조선족기업의 한국 진출시대가 왔다는 데 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수도권지역 조선족기업들의 공통된 특징과 성공패턴은 다음의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기업자체의 브랜드를 개발해 자생력을 키웠고 중국의 내수시장 판로개척에 성공했다. 둘째,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기업의 경영방침으로 삼아 현지사회와 고객들의 인정을 받았고 단기간에 높은 인지도를 이끌어냈다. 셋째, 우수한 품질과 독특한 디자인, 저렴한 가격으로 중국소비자들의 환영을 받았고 이는 대량생산·판매로 이어졌다. 넷째, 한국기업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낮고 ‘한 우물을 파는’ 강인한 의지로 자수성가했다. 다섯째, 조선족기업인 대다수가 30~40대로, 고학력의 엘리트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조선족기업은 초창기 요식업·관광업·서비스업 위주에서 최근에는 IT·부동산·하이테크 제조업과 금융 등 모든 영역에 진출하여 괄목상대할 만큼 성장했다. 그러나 중국기업처럼 ‘세계 500강’에 진입한 기업이 아직까지 없다. 그동안 조선족기업은 개혁개방과 한중수교에 힘입어 상당한 자본을 축적했지만 크게 성장하지 못한 것은 강한 소비성과 ‘쉽게 만족하는’ 민족기질에 기인한다. 또 전문인력과 첨단기술의 결여, 위기대처 능력이 약한 것도 자타가 공인하는 조선족기업의 단점이다. ‘조선족은 동업도, 싸움도 잘 한다’는 일설은 법의식의 결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현재 조선족기업은 중국시장 진출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 노하우를 쌓았지만 독자적인 핵심기술 개발능력이 부족하다. 이 또한 중국 내수시장 진출과 판로개척이 절박한 한국기업과 ‘상생의 길’을 함께 가야 하는 중요한 이유이다. 

그동안 수많은 조선족젊은이들이 재중한국기업에서 경영노하우를 쌓고 전문기술을 습득해 창업에 성공했다. 또한 많은 조선족기업이 한국기업의 하청업체로서 동반자적 협력관계를 이어오면서 탄탄한 실력을 키웠다. 조선족기업의 장점은 중국시장의 실정을 잘 파악하고 있고 현지화 경영전략 노하우와 인적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 반면 선진적인 경영관리와 전문기술 결여, 핵심기술 개발능력이 뒤처지는 단점이 있다. 최근 중국의 기업환경 변화와 한중FTA가 타결되면서 한국기업의 중국 내수시장 진출이 불가피해졌다. 즉 조선족기업과 한국기업은 향후 중국의 내수시장 판로개척과 기술개발 및 혁신에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상부상조·공생공영의 전략적 파트너 관계를 구축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지난 20여 년 동안 조선족기업과 한국기업은 한민족의 혈연관계를 공통분모로 ‘끈질긴 인연’을 이어왔다. 따라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협력과 갈등, 경쟁으로 점철된 파트너십을 형성하였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은 모든 한민족에게 영원히 적용된다. 지금이야말로 소모적 경쟁과 갈등에서 벗어나 서로에게 득이 되는 상생의 길을 손잡고 함께 가야 할 때다. ‘있을 때 잘해’란 노래가사는 우리가 쉽게 잊어서는 안 되는 인생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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