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 세계한인무역협회 부회장 남용해 인터뷰

[서울=동북아신문]세계한인무역회(World-OKTA) 남용해 前 부회장은 중국 청도 조선족동포사회에서 전기적인 색채가 농후한 인물이다. 그는 청도 조선족동포사회의 구심점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조선족동포들의 위상을 스스로 높였고, 현지 정부는 물론, 월드옥타에서의 조선족동포 기업가들의 위상을 높였기 때문이다. 이에 기자는 5월 초에 남용해 회장을 만나 인터뷰를 가졌다. - 편집자 주

 

약 한 달가량 한국에 머문 것으로 안다. 그동안 영등포구 대림동을 중심으로 동포밀집지역을 돌아본 대체적인 느낌은 어떤가?

 

대단하다. 중국 연변을 온 듯한 느낌이다. 대한민국 중심지 서울에 조선족의 문화생활 방식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듯하다. 70만 중국조선족이 한국에 왔다는 것은 중국조선족 인구의 1/3이 이주했다는 말이다. 대한민국 조선족사회는 이제 무시하지 못할 만큼 커져 있다는 얘기이다.

동포들을 만나서 받은 가장 깊은 인상은?

동포들의 정서가 아주 밝다. 활기차다. 걸음걸이와 얼굴에 자신감이 넘쳐있다. 내가 이 고장의 ‘주인’이라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이역타향에서 눈치 보며 생활하고 있는 것이 아닌, 아주 떳떳한, 자주(自主)적인 모습을 엿볼 수가 있어 너무 좋았다.

솔직히, 우리 조선족동포들의 생활은 20~30년 간 격변기를 겪었다. 연변을 놓고 말할 때 개혁개방전만 해도 농촌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것이 엄청 어려웠었다. 농촌에서 작은 도시들인 용정이나 화룡시내로, 또 그 작은 도시들에서는 연길로 들어온다는 것은 가문의 영광이었고 꿈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재한조선족들 중 많은 사람들이 농촌에서 직접 세계1류 도시인 서울로 진입해서 생활하고 있다. 옛날 같으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한국인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농촌이나 작은 시내에서 서울에 올라와서 아무나 생활할 수가 있는 게 아니다. 이는 우리 조선족동포들이 받은 '특혜'이고, 이런 삶의 터전을 마련해준 고국인 대한민국에 감사해야 할 점이다. 물론, 이는 우리 조선족동포들의 생활력이 정말 강하다는 표징이기도 하다. 따라서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우리 조선족동포들은 충분히 자부심을 갖고 생활해야 한다.

또 하나, 우리 동포들의 생활수준이 많이 향상된 것 같다. 옛날에 빚을 내서 한국에 와서 돈만 벌던 시대가 아니다.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 중국에 아파트도 사놓고, 또 여기에 전셋집에 들어 있거나 아파트, 빌라 등을 사서 생활하고 있거나, 자가용을 굴리고 다니는 이들도 많은 것으로 안다. 심지어 벤츠 같은 외제차도 사서 굴리고 있다. 능력 있는 분들은 식당이나 여행사, 이런저런 가게들을 운영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어 놀라웠다. 빚더미에 눌려 신음하던 80~90년대의 모습과는 판이한 차이다. 주말이면 동포집거지인 대림동 중앙시장부근은 대단하다. 좁은 골목길에 5~6만 명의 동포들이 찾아드는 것으로 알고 있다. 친구를 만나 한잔 하며, 회포나 스트레스를 풀고, 부근 웨딩홀에 결혼이나 생일잔치 등에 참석을 한다. 동포들이 먹고 마시고 부조하고 생활하는 데 쓰는 비용이 현지 주민들보다 더 높다는 말을 들었다. 물론 주거가 좀 힘들지만, 동포들의 생활이 높은 단계에 이른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동포 단체나 언론사들도 많다. 지성인들을 많이 만나보았으리라 생각한다. 청도 조선족동포사회에 비해 다른 점은? 조언할 점은?

재한동포사회가 많이 성장했다고 본다. 많은 단체들과 동포언론사들이 생겨나 동포사회 구심점을 이루고 있다. 작년에 여의도광장에서 2만 여명이 모여 중국동포의 날을 제정하고 민속축제를 한 것만 봐도 동포사회 지성인들의 역할이 얼마나 큰가를 볼 수가 있었다. 단지, 아쉬운 것은 민주사회이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탄탄하게 뭉쳐서 조선족동포의 힘을 보여줌이 미약하지 않나 생각한다.

너무 이해관계에만 집착하면 힘이 모여지지 않는다. 힘을 모으지 않으면 발언권이 없어지고, 동포 스스로의 권리를 찾을 수가 없고, 한국사회의 인정을 받을 수가 없다. 이런 문제들은 동포 스스로 풀어나가야 한다. 위상은 남이 높여주는 게 아니다.

20여 년 전, 내가 청도에 갔을 때 청도 조선족동포사회는 한국 기업인들의 인정을 못 받았고, 현지인과 정부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조선족동포들이 청도에서 튼튼히 뿌리 내리자면 자기 위상을 스스로 높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첫 번째 순서로 조선족의 문화를 알리는 것이 급선무라 판단했다. 그래서 한국의 저명 가수들과 연변의 이름난 가수들을 대거 초청하여 '제1회 한중문화가요제'를 성황리에 맞혔는데, 이는 현시 주민들과 정부, 조선족동포사회 및 한국인들의 큰 호응을 얻게 됐고, 조선족동포사회의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 

2000년 11월에는 갖은 애로를 물리치고 정부의 승인을 받아서 청도 조선족운동대회를 개최함으로써 조선족의 힘을 보여주었고, 또 선후하여 청도조선족축구대회, 연변TV를 통한 음력설맞이 공연 등 규모가 방대한 행사들을 개최하며 조선민족의 문화를 홍보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우리는 또, 청도조선족기업가협회를 만들어 힘 있는 사람들이 사회에 기부하는 튼튼한 구조를 만들었는데, 이 협회는 후에 월드옥타에서도 대단한 인정을 받을 만큼 성장했다.  

그리고 조선족사회 지성인들의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 '조선족과학문화인협회'를 만들어 조선족 자질제고에 힘썼으며 각종 포럼과 워크숍 및 교류모임을 갖고 조선족기업인들의 시야를 넓히고 문화수준을 높여 주는데 일조했다. 2010년에는 서울에서 사상 처음 중한경제포럼을 개최하여 조선족기업인들로 하여금 세계적인 범위 내에서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기업의 성장에 도움을 주었다.

이외 청도에는 현재 향우(鄕友)연합회, 조선족여성협회, 조선족대학생연합회, 조선족골프협회 등 주요단체만 10여개가 된다.

재한동포들도 마찬가지로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힘 있는 사회를 만들자면 이런 단체들의 발족과 발전이 불가결의 요소가 될 것이다. 리더들의 좀 더 큰 포용력과 헌신정신이 필요하다. 재한조선족사회는 충분히 그런 여력이 있다고 본다. 
 
좋은 말씀 정말 감사하다. 지역사회와의 화합 등과, 중국 고향에 대한 처사 방면에서 좀 더 조언을 주신다면?

재한동포사회에 살인, 강도 등 강력범죄를 비롯한 불미스러운 일들이 자주 일어나서 안타깝다. 고국에서 사는 만큼 고국의 법규를 잘 지켜야 한다. 절대 법을 우습게 보지 말아야 한다. 순간의 잘못으로 일생을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과음하지 말고, 교통질서를 모범적으로 준수하는 등 좋은 습관을 양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좋은 습관을 갖고 지역사회와 잘 소통하고 열심히 노력해야만 대한민국 주류 사회에 진입할 수가 있다.
그리고 떠나온 고향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자주 다녀야 한다. 땅이 있으면 땅을 잘 관리하고, 고향집도 수건해야 하며, 고향의 발전과 변화를 터득하고 가능한 고향건설에 헌신해야 하며, 자녀들로 하여금 중국에서 발전할 수 있는 공간이 엄청 크다는 것을 인지시켜야 한다.

한국에 사는 조선족동포 여러분들이 모두 떳떳하고 자주적이며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재한동포사회가 더욱 성숙되고 발전하리라 기대하며, 나의 미약한 힘이나마 보태며 열심히 성원하겠다.

인터뷰 감사하다. 중국과 한국의 조선족사회를 잇는 가교역할도 부탁드린다. 

감사하다.

[남용해 약력]
중국강서대학 신문학부 촬영 전업 졸업. 전, 연변촬영가협회 주석 겸 길림성촬영가협회 부주석 역임. 1989년에 서울에서 남용해사진전 개최. 1993년에는 대한민국 사진작가협회 명예작가. 1998년에는 중국 덕예겸비 우수촬영가. 2000년 북한 평양에서 백두산 사진전 개최. 일찍 헬기를 타고 백두산을 촬영하여 중국과 한국, 북한 등에 남용해란 이름 널리 전파. 청도코리아수정실업유한회사 회장. 전, 청도조선족기업가협회 회장, 월드옥타 부회장(최초 조선족 상임집행위원), 청도시조선족과학문화인협회장 등.

이동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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