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한조선족의 현실과 전망 (연재2)

 

             예동근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박사과정)           

                                                                     

                             

    한국 상황으로 볼 때, 호주, 프랑스 소요사태가 발생한 후, 대폭적으로 고려인 및 조선족에 대한 노동력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변했으며, 제도적 통제능력도 갈수록 유연하여 지고 강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2005년 7월의 법무부통계를 보면, 전반 불법체류자수가 19만 명인데 이는 전반 외국인체류자의 25%를 차지하고 있다. 불법체류자중 조선족이 7만여명으로 추측하고 있다. 그러나 2006년에 진행되는 제2차 자진출국귀환프로그램에 밀입국 등 기타 수단으로 입국한 불법체류자가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2010년까지의 법무부의 재외동포관련의 출입국 및 체류에 관한 정책을 보면, 조선족 200만명이 모두 포섭할 수 있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또한 한국에서 조선족의 체류신분은  2002년까지 50세이상의 친척방문제한이 불과 2004년 사이에 두 번 변화되어 25세까지 낮추어 졌으며, 2010년에는 조선족이 합법적으로 체류하고 비교적 자유로운 취직이동의 가능성도 높아 질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추세에 맞추어 본다면 조선족은 한국에서 불법에서 합법으로, 피동적 적응으로부터 주동적 적응으로 나갈 수 있는 기회구조가 생길 것이다. 첫째; 한국에 체류하는 하는 조선족의 인구구조의 변화이다. 전에 유학생, 국제결혼과 불법체류자로 3분법 되던 구조는 유학생(현재 석, 박사 학위취득자 3500여명으로 추정), 25세 이상의 친척방문이 허용되어 젊은 세대들이 많이 입국하게 됨에 따라 25-35사이의 연령대가 대폭 증가, 그리고 현재 한국에서 유학생의 취직의 폭이 넓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국제결혼여성 및 장기체류자, 귀환한 동포1세의 증가, 거기에 영주권제도가 실시되면 상당한 조선족이 정착자로 변화 될 것이다. 즉 한국에 체류하는 조선족의  숫자가 증가할 뿐 아니라, 그 계층구조도 다양하게 변화된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를 예상할 때, 조선족이 한국에 흡수 되는 제도적장치가 마련되지 않은 이상, 설사 제도가 마련되고 문화적응까지 상당한 기간 조선족이란 정체성을 기반으로 다중의 정체성이 형성되며 여러 가지로 변화가 올 것이다.


  지역자체의 변화로 볼 때, 한국에서 양극화 해소와 지역격차 해소의 대안으로 가리봉1동을 중심으로 디지틸단지 건설계획이 이미 확정된 상황이다. 그리고 가리봉 전철역이름도 가산디지털단지로 바꾸게 되었다. 그리고 가리봉중심의 구로지역에 조선족이 많이 생활하고 있는 특징을 활용하여 중국물류교류중심으로 건설하려는 구상도 타진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시기에 조선족관련의 단체장이나 협력자들이 어떤 식으로 유도하고,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전략을 구사하는 지에 대한 파악은 한국과 조선족의 공생관계연구에 중요한 의의가 있다.


4)조선족관련 단체들의 단체장 혹은 협력자들에 대한 분석


 이런 거시적 제도적 차원의 변화는 NGO와 정부관계도 대항이 주요한 형식이던 것이 차즘 차츰 협조와 부분적 대항형식으로 바꾸어 질 것이다. 이것은 다른 의미에서 제도적차원에서 위로부터 아래로의 통제와 아래로부터 위로 향하는 저항이 접목하는 시점이라고 볼 수 도 하다. 이런 의미에 조선족이 집거하는 곳의 지역문제가 중요한 이슈로 변화 될 수 있는 것이다.


  필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저항속의 연대”이다.  이것은 NGO들과 같이 위로부터 내려온 국가권력에 저항하였고, 또 이 저항 속에서 한국시민단체와 연대가 생겼다는 것이다. 이것은 지역차원의 공생에 중요한 자원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한국의 민주화가 세계소수자에 준 선물이기도 하다. 조선족단체들은 이런 저항과 연대과정에서 연대, 타협, 자원동원 등 시민운동 경험을 내재화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선족자체가 국내의 네트웍이 거의 그대로 한국에 옮겨오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경기도 모 지역의 직업이 중국 국내 조선족이 집결하는 모 마을의 사람들로 직업이 독점되는 현상도 나타났다. 이것은 조선족이 주체성을 갖고 피동적이 아니라, 주동적으로 공생을 만들어 갈 “우리”속의 타자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필자는 조선족연합회의 유회장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경험의 중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저는 94년도 한국에 시집왔는데(현재 57세), 한국인주민등록증을 가졌는데도 차별을 받았어요. 그 때(2000년초) 파고다공원에서 약장사를 하였어요.…제같이 농촌사람이 뭐 민족에 대해서 알고 있겠습니까? 그냥 약이나 많이 팔고, 어떻게 하면 “보호”라도 받을까 해서 목사님을 접촉하였지요.…이렇게 하다보니까, 조선족역사에 대해서도 알게 되고, 다른 사람들이 농성하는데 같이 참가하고, 조직하게 되었지요.…우리들이 뿌린 <재외동포차별반대>내용이 있는 전단지만 하여도 수백만장이 되지요. 전국각지에 다 다녔어요. 우리 총무님은 몇 년동안 단 돈 90만원밖에 받지 못하였고, 우리들을 위해 수천만의 빚을 지고 있어요.”>>


 유회장은 94년도에 국제 결혼하여 한국국적을 취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족의 불법체류자를 이끌고 같이 농성에 참여하면서 조선족에 대하여 애착을 갖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설사 같은 혈연종족이라고 하여도, 제도적 장벽이 무너져 수용이 된다고 하여도, 유회장 같이 개인적 연령, 생활경험 등이 동화냐 고립이냐에 대해 매우 큰 영향을 주고 있음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배제와 포섭의 메커니즘 속에서 차별화된 사람들의 연대성이 더 강하다는 것을 느꼈다.


<<2006년에 제2차 자진귀국프로그램이 있는데, 중국에 돌아 갈 생각이 없나요?>>묻자, <<XXX연합회>>박을순(가명,67세)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지금은 우리 조직이 재편성되고 있습니다. 현재 제가 없으면, 매우 힘들지요. 저도 몇 번이나 돌아갔다가 오자고 생각했지만, 7,8년 동안 농성하고, 투쟁하면서 세운 단체이지요. 만약 진정으로 자유왕래가 된다면, 저는 죽어도 한이 없어요. 저희들이 한 일이 보람있는 거지요. 그 때 전 다시는 한국에 오지 않아도 좋습니다.…저같이 용모도 없고, 나이도 많고, 지식도 없는 아줌마한테 뭘 믿고 따라 옵니까? 우리가 진심으로 일하기 때문이지요.…2006년의 우리 XXX연합회의 비전은 경제적도약입니다. 우리도 우리 회원들 가운데서 기술 있는 사람, 경영할 줄 아는 사람한테 투자하여 음식점도 경영하고, 다른 것도 하면서 경제적 자립을 해야 합니다. 저는 저 종로가운데 조선족센타를 지워 놓으면, 그 주위가 한국사람 사는 동네보다 더 깨끗하게, 정말 누구나 감탄하게, 우리 조선족이 불쌍한 사람이 아니라, 훌륭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남기고 싶어요. …한국에는 파고다 공원에서 <3.1만세운동>이 있었잖아요? 우리 용정에도 <3.13만세운동>이 있습니다. 우리 회원들 가운데 70이 넘는 분이 있는데, 항일투쟁 가사를 기억하고 있어요. 우리도 합창단이 <3.13기념행사>를 매년마다 합니다. …우리도 컴퓨터를 배우고, 역사기행도 하고 싶어요. 우리도 1학년 학생이 2학년이 되면 기뻐하는 것처럼, 우리들도 똑 같지요. >>


박을순 선생님의 인터뷰에서, 피해의식이 긍정적 힘으로 작용되는 것을 보게 되었으며, 연대의 공동체 속에서 나눔의 기쁨과 배움의 기쁨이 그들의 자신감형성, 주체성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특히 그들은 민족역사를 알게 됨에 따라 3.13만세운동을 의식화됨에 따라 독립군, 항일투사의 긍정적 이미지를 확신함으로, 한국에서 만들어진 조선족이란 마이너스 이미지를 환충시키려고 하는 노력들이 보이고 있다.


<<박대호선생님은 한국에서 제일 깊은 인상을 받은 일이 무엇입니까?>>

<<역사문화체험을 가게 되었는데 경주도 가보았습니다. 그리고 현대자동차공장에 가보았는데 노봇이 자동차문을 맞추는데 참 기가 막힙니다. 정말 대한민국이 대단하다고 생각 들었습니다. 후에 한국동료들한테 얘기 하니, 자신도 가보지 못한 곳이라 하더라고 하대요.>>


 한국동료보다 많이 알고 있고 많이 다녀 보았다는 것은 그들의 열등감을 해소하는 중요한 방법 중 하나임을 시사한다. 지역주민과의 공생에서 그들의 문화지식에 대한 요구만족, 역사, 전통을 통하여 조선족 긍정적 이미지 제고, 그리고 배움 속에서 삶의 질적 향상에 대한 욕구만족은 주체로서 공생모델을 추구하는데 중요한 소프트웨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검증하여 준다.


 <공존과 화합의 거리>선포식에 공존실천 10개 덕목의 초안을 준비한 사람이 바로 김일남 선생이다.


그 10가지 덕목은 아래와 같다.

 

 

필자가왜 첫 번째가 가족을 생각하는 것이냐고 묻자 가족을 위해서 한국에 온 것만큼, 가족을 위해 돈을 벌고, 가족에 미안한 일을 하지 말자는 뜻이라고 얘기하여 주었다. 이것은 가족공동체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사회집단이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여기서 “희망을 품고 열심히 사는 것”은 정신적 욕구에 강한 애착이 갖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김일남선생님은 마지막으로 자신은 조선족이 누구한테 종속되는 것을 제일 싫어한다고 하면서, 올해에 조선족 자신의 힘으로 추석맞이 행사를 하자고 하였으며, 자신이 사비 500만원을 내고, 다른 사람한테 꿔서라도 일을 벌이자는 뜻을 재한조선족유학생네트웍에 전달하였다. 필자도 조선족단체장이나 협력자들이 느끼는 “종속”감 문제를 풀이하기 위해 이주노동자 지원단체에 관한 연구보고서와 논문을 찾아보았다. 그 연구결과에 의하면 한국단체장이 너무나 이끌어가는 지원형식, 이주노동자들을 하나의 대상으로 보지 말고, 이주노동자단체가 스스로 자발적으로 조직되고 하나의 주체로 되는 것으로 도와주는 방향으로 지원 대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이철승, 2004; 윤수종,2005) 그리고 안산 외국인노동자센타의 소장 박천응목사도 이주노동자들을 대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주체로 보는 것이 “국경 없는 마을”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얻은 중요한 경험이라고 하였다. 서울조선족교회의 서경석담임목사도 <서울조선족교회 5년 회고록>에서 “평신도들의 자체로 조직되고, 일어서는 것이 중요하다”. 중국동포타운신문의 김용필국장도 “이젠 유학생들이 참여하여 조선족들의 목소리를 내주어야 한다.”고 하였다. 한국에서 공생을 만들어 가는 “우리”들의 타자와 자아가 모두 조선족자체의 “주체”성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4. 나가며


   지금까지 제한된 지면에서 너무나 많은 얘기를 하여 혼란을 준것에 미안함을 표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뷰한 분들의 자료를 충분히 담지 못하여 미안하기도 하다. 또한 조선족에 대한 이해가 적은 독자들은 더욱이 한국정부의 마이나스면을 많이 얘기하여, 한국에 대한 편견을 생길 책임을 생각나니, 한국에 미안하기도 하다.


  그러나 필자와 같이 제도권에서 포섭되어 국민-국가를 뛰어넘어 사고할 수 있는 환경이 너무나 부재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그만큼 주체적사고도 부재하였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사고의 기회를 너그럽게 받아주었으면 한다. 탈 국가적 사고는 국민-국가에서 완전히 통합되지 않거나, 혹은 자본주의체제에 대안을 찾으려거나, 혹은 종교적 차원에서 고민, 혹은 세계패권을 시도하기 위한 시도와 그와 반대의 측면에서 생긴 대안 공동체에 모색을 고민하는 개인이나 집단에 기회가 많다는 것이다. 늦게 찾아 온 새로운 손님 조선족에도 이런 기회를 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소수자인 재한 조선족으로 볼 때, 실질적 공생의 추구의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이다. 그것은 국가와 민족의 틈에서 이런 사고를 할 공간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간은 별로 길게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불과 몇십년사이에 다시 제도권 혹은 따른 형식으로 국민국가에 끌려들어 갈 것이다. 필자는 이런 가설에서 출발하여 첫 부분에서 국민-국가의 포섭과 배제의 메카니즘을 논하였다. 제도권포섭의 정체성을 가진 국민정체성도 좋고, 혈연종족정체성으로 포섭하는 한국(혹은 조선)도 결국은  국민-국가를 벗어난 또 하나의 보편적가치지향의 정체성이 없다면, 그것은 매우 고달프고, “피해자의식”이 담겨져 있어 공생의 문을 스스로 닫아 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한 조선족에게 역사가  절호의 “공존의 기회”를 주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세계의 수많은 에스닉그룹들과 탈 국가적 정체성 형성의 이론 및 실천들이 많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한국이란 혈연공동체속에 시민단체들과 같이 또 한국이란 국가의 권력의 저항속에서 “공생”의 연대를 얻었다는 것이다.  이런 경험은 “공생”의 중요한 자산이다.


  마지막으로, 재한 조선족의 단체장이나 협력자의 자신들이다. 그것은 중국과 한국이 준 기득권을 벗어나게 하는 중요한 환경이 바로  포섭과 배제의 메카니즘인 선물: 가리봉이란 “빈곤”, “노동자”, “범죄” 등등 “기억장캇들이 재가동하면서 재영토화된 “조선족타운”과  재생산된 “불쌍한 존재”, “가난”, “빈곤”이란 기억의 공간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 공생의 메카니즘을 작동시키게 최적의 공간인 것이다. 우리는 이런 기억의 공간을 떠나는 한, (도피하는 한) 공생의 기회는 살아진다는 것이다. 그것은 “기억의 공간-가리봉”을 영원히 회피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직 정면 대응의 길밖에 남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필자가 발견한 희망이 바로  조선족단체장들의 인터뷰 속에서 나온 것처럼, 남는 것은 바로 “희망, 배움의 기쁨, 나눔의 기쁨”인 것이다.  과연 이것보다 공생을 만들어 더 좋은 귀중한 재산이 어디 있을까?



참고문헌:

권향숙, 2003,「‘조선족’의 이동과 정체화: 한․중․일‘조선족’정체성에 관한 고찰」,『중국조선족인구 및 대책』국제학술회의토론집

강선영, 2005,「한국 신문의 ‘조선족’담론에 관한 연구」,서울대 석사학위논문.

정신철, 2005,「재한 중국인 노동자의 실태와 대응-재한 조선족 중심으로-」,『재외동포재단연구보서』, 재외동포재단.

최우길, 2005,「동아시아 조선족을 생각한다-KCN21 2주년 축사」,『한민족 네트워크의 구성과 민족(조선족)사회발전의 새로운 모색』, 재한조선족유학생네트워크2차워크샵자료집.

예동근․ 오타 타카코,2004,「외국인과 지역주민의 공생관계 연구-일본 오타시․오이즈미마치와  국가리봉동․원곡동 비교분석-」,『호암논집』제12호.

임진철, 2002,「사회주의 시장경제하 중국 소수민족 지역사회의공동체적 -발전전략과 교육에 관한 연구-」, 중국 중앙민족대학교 민족학 박사학위논문.

윤소종, 2005,「우리 시대 소수자운동의 특성과 함의」,『우리 시대의 소수자운동』,이학사.

이철승, 2004,「한국의 외국인이주노동자 정책의 문제점과 개선방안」,경남외국인노동자상담소.

이태정, 2005,「 ‘국경없는 마을’ 공동체와 이주노동자」,『근대안산의 형성과 발전』,한울.

외교부, 2006,「참여정부의 재외동포정책」,외교통상부 사이트.

법무부, 2005, 법무부사이트.

노동부, 2005, 노동부사이트.


부록1 인터뷰-이메일질문지조사자 목록

 

 

 

 

 

 

 

 

 

 

 

 

 

 

 

 

 

 

 

 

 

 

 

 

 

 

 

*부록2 _  당사자들과 합의한 후, 본명과 소속, 그리고 인터뷰자료의 공개를 허락받았다. 그중 가명을 인용한 3명은  본명과 소속에 대하여 밝히지 않는 요구에 응하는 바이다. 끝으로 열심히 인터뷰와 이메일질문지를 응해 준 여러 분들께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를 표시 합니다.


성명: 예동근(芮東根), 국적: 중국, 민족: 조선족


학력:

2004-현재  고려대학교 박사과정수료

2000-2003년 중국 중앙민족대학교 민족이론 법학석사

1995-1999년 중국 연변대학교 중문학과 문학학사


2001-2002년, <전국 민족이론학회-중앙민족대학 학생학회> 회장

2004년 7월-2005년, 7월 한국 민주사회정책연구원 안산지역연구팀 연구원

2003년, 예동근, 최정,『중국 조선족 농촌의 출로는 어디에?』제9회 조선족발전 학술 심포지움과 워크샵

2003, 예동근,「연변조선족자치의 민족관계에 대하여」, 석사학위논문

2004, 예동근․ 오타 타카코,「외국인과 지역주민의 공생관계 연구-일본 오타시․오이즈미마치와  한국가리봉동․원곡동 비교분석-」, 후기전국사회학대회에서 발표. 

2005년 8월-2006년 8월 「일본 오타시오타시․오이즈미마치와 한국가리봉동․원곡동비교연구: -브라질일계인과 조선족을 중심으로-」, 일본 마쯔시다재단조성금연구

 

경력:

1997-1999년 연변대학교 연구생단체 <우리문화학회>에서 활약,<중덕장학회>초대학생회장

2001-2003년 <중국조선족대학생활동연합회> 초대공동회장, 자문위원장 역임.             

2003년-현재, <재한 조선족유학생네트워크> 초대대표 및 자문위원장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