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송 흑룡강신문 논설위원/ 본지 칼럼니스트
[서울=동북아신문]최근 들어 중국 진출 한국기업의 부도소식은 더 이상 중국에서 뉴스가 못 된다. 그만큼 중국에서 파산되는 한국기업이 많아졌고 ‘일상화’되었다는 뜻이다. 또한 외자기업 파산과 청산제도 규범화를 위해 중국정부가 2008년 출범한 ‘신파산법’으로, 외자기업 파산정리 절차가 훨씬 간소화되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심각한 경영난으로 제조업 위주의 한국 중소기업의 도산 붐이 중국전역에서 일어었고 이러한 기업부도는 현재진행형이다. 중국은 한국기업이 위기를 탈출하는 최적의 ‘피난처’에서 파산의 ‘무덤’으로 변해가고 있다.

2000년대 중국의 대도시와 연해지역에 대거 진출한 한국기업들은 2008년 금융위기 후 가공무역 위주의 수많은 중소기업이 부도나 중국시장에서 퇴출했다. 이러한 도산기업 속출은 진출 초기 세제혜택 등 우대정책의 철폐와 인건비 급상승, 중국 기업환경의 급변 등에 기인한다. 부도를 초래하는 주관적 요인으로는 중국문화의 몰이해와 마케팅 전략의 결여, 주재원 중심의 경영시스템 고수, 정부 부서와의 탄탄한 인맥 부재, 현지화 경영의 실패 등이 지적된다. 그중 중국 현지기업에 ‘낙하산 인사’로 부임된 한국인 법인장의 중국 기업문화에 대한 몰이해는 기업부도를 초래하는 가장 치명적인 요인이다.

대개 중국에 진출한 한국회사는 부도나기 직전, 이런 조짐이 있다. 흔히 부도에 임박한 한국기업은 업무량이 대폭 줄어들면서 ‘수입보다 지출이 많은’ 회사의 열악한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구조조정이란 명목 하에 감원을 강행한다. 또 급여지급 지연이 자주 발생하며 각종 보너스가 취소된다. 회사의 회의주제는 ‘절약’이며 ‘불필요한 지출’을 엄격히 줄이는 것으로 갈수록 줄어드는 영업수익을 대체한다. 또한 정부 부서와 협력업체, 현지 파트너의 관계는 더욱 악화된다. ‘희생양’이 된 파견 주재원의 빈번한 교체와 회사 이직, 베테랑 직원의 직장 무단이탈은 회사가 부도나기 직전의 중요한 징후이다.

대부분의 한국회사는 월요일 아침시간에 1~2시간 동안 회사 과장급 이상의 업무관련 회의를 진행한다. 이 아침회의에서 ‘독재자’로 군림하는 기업의 오너, 법인장은 절대적인 권한과 발언권을 갖고 있다. 회의의 주제는 시종일관 오로지 ‘절약’이란 주제로 일관된다. ‘회사사정’이 어렵기 때문에 회사 관리자부터 ‘절약’에 솔선수범하라는 것이 회의취지이다. 한편 위기를 돌파할 지침이나 대비책은 없다. 회사의 비전은 갈수록 암담해지고 임직원의 동기부여·팀워크도 사라져버리며 회사 전체는 ‘부도의 그늘’에 휩싸인다. 외자기업에서 법인장의 업무능력과 강력한 리더십의 중요성을 체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회사가 부도나기 직전의 가장 중요한 징조는 임금체블이다. 만약 월급지급이 지연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면, 이는 회사의 재정악화를 설명하며 회사가 부도의 직전에 왔다는 것을 알리는 중요한 신호탄이다. 또 임금체불은 회사의 임직원들의 팀워크를 약화시키며 직원들이 회사에 대한 신심을 상실하게 한다. 그리고 대규모 감원의 구조조정으로 이어져 고참·경력사원의 퇴사와 이직 및 생산노동자의 대량실업을 양산한다. 즉 월급을 제때에 지급하지 않는 회사는 더 이상 비전이 없고 곧 부도난다. 이는 정설(定說)이다.

부도가 임박한 회사의 또 다른 조짐으로는 매년 정기적으로 진행되는 운동회와 야유회, 등산 등 사내 활동과 회식 등 단체모임이 급격하게 줄어든다. 대개 한국회사는 동료간의 친목을 다지고 단합을 도모하는 직장회식을 많이 진행한다. 즉 회식을 통해 직원들간의 마음의 거리를 좁히고 공동체 의식과 팀워크를 강화하는 것이 모임취지이다. 만약 화사의 재정악화로 정기적 회식이 자주 취소된다면 이는 회사가 곧 부도날 징조이다. 재정악화와 경영난에 따른 심적 부담감으로 회사 책임자들은 회식에 대한 의욕과 흥취를 상실한다. 직원들 역시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기분이 다운되는’ 회식자리를 회피한다.

협력업체 남품대금 지불이 자주 연기·지체되는 현상은 파산에 임박한 한국회사에게는 일상다반사다. 흔히 부도나기 직전인 한국회사는 ‘받을 돈(외상값)’도 많지만 ‘줄돈(빚)’이 더 많다. 외상값 수금은 모든 재중한국기업에게 존재하는 공통된 난제이다. 만약 ‘낙하산 인사’로 중국에 파견된 기업책임자가 현지 실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실적 쌓기에만 치중하여 거래처에 외상으로 제품을 공급하고 나중에 외상값을 수금하려고 생각한다면, 이는 어불성설로 ‘하늘의 별따기’와 같다. 외상값의 미수금으로 ‘줄돈’을 제때에 지불하지 못하면, 이는 곧 재정위기로 이어지며 회사부도로 직결된다. 이러한 기업리더의 치명적인 실수는 중국의 기업문화에 대한 몰이해와 현지화 경영의 실패 등에 기인한다.

한국회사가 부도직전에 나타나는 또 다른 징조로는 정부관련 부서와의 관계가 급격히 악화된다는 것이다. 중국 진출 한국기업이 경쟁이 치열한 중국시장에서 성공하려면, 정부 부서와의 돈독한 인맥관계 유지는 필수불가결한 전제조건이다. 안전생산과 환경보호 등 정부규제가 갈수록 엄격해지는 등 중국 기업환경이 급변되고 ‘관시(인맥관계)’가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중국의 실정이다. 즉 외자기업의 재정악화는 ‘비용이 지출되는’ 지방정부의 각종 안전생산 기준에 미달하는 결과를 초래해 벌금 등 행정처벌에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 경영이 어려운 한국기업이 단기간에 지방정부로부터 벌금 등 각종 불이익을 당한다면, 이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기업의 파산을 앞당긴다.

실제 2013년 부도나 법정관리에 들어간 STX대련그룹은 당해에 지방정부로부터 수천만 위안의 각종 벌금을 받았다. 결국 이는 기업부도를 초래하는 설상가상의 역할을 했다. 중국속담에 ‘성벽이 무너지면 여럿이 달려들어 함께 떠민다(墙倒众人推)’는 말이 있다. 경영위기에 빠진 한국기업에게 지방정부로부터 벌금 등 각종 행정처벌이 강행되면, 결국 이는 부도에 임박한 한국기업에게는 설상가상의 ‘인위적 악재’로 작용한다. 이러한 악과는 대부분 중국 기업문화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한국기업이 자초한 것이다.

현지 한국기업이 기업리더십의 부재로 장기간 경영난과 적자상태가 유지된다면, 그에 따른 결과는 ‘책무를 다 하지 못한’ 현지주재원의 교체이다. 특히 ‘희생양’이 되어 경질된 법인장 요직에 현지사정에 숙맥인 한국인 CEO가 부임되면 회사의 부도는 시간문제이다. 신임 법인장은 전임이 다년간에 걸쳐 쌓은 성과를 부정하고 새로운 거래처와 인맥관계를 구축한다. 심지어 그동안 추진해온 회사의 ‘위기 돌파’에 관건적 프로젝트가 기업오너의 교체로 인해 성공 직전에 수포로 돌아간다. 또한 현지주재원들 사이에서는 편 가르기 등 자중지란이 발생해 회사의 안정적인 발전에 악영향을 끼친다. 한편 일부 주재원은 본사의 기대를 저버리고 회사를 이직해 현지에서 개인사업을 차린다. 이러한 주재원 교체에 따른 ‘인위적 악재’와 회사 임원(주재원)진의 동상이몽은 회사의 부도를 촉발한다.

그 외에도 한국회사의 부도나기 직전의 조짐은 여러가지로 나타난다. 예컨대 ‘불필요한 지출’을 줄인다는 명목 하에 거래처나 고객접대 등을 엄격히 제한한다. 또 송년회나 직원 결혼식에 회사의 책임자들은 좀처럼 존귀한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 한편 회사CEO의 본사출장이 부쩍 잦아지고 주재원끼리의 ‘비밀회의’가 더욱 많아진다. 이쯤 되면 회사의 직원으로서 선택의 길은 오직 하나뿐이다. 미련없이 회사를 떠나는 것이다.
즉 궁지에 몰린 회사 CEO 가 야반도주, ‘삼십육계 줄행랑’을 놓기 전에 회사직원이 먼저 ‘삼십육계주위상책(三十六計走爲上策)’을 택하는 것이 지혜롭고 명지한 선택이다.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