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申 吉 雨 (본명 신경철) 문학박사, 수필가, 시인, 국어학자 국제적 종합문학지 계간 〈문학의강〉 발행인 한국영상낭송회 회장
[서울=동북아신문]50여년 전의 사진 한 장이 언론에 떠들썩하다. <시청 앞에서의 키스>(Kiss by the Hotel de Ville)의 원본 사진이 공개된 것이다. 1950년에 프랑스 파리의 시청 앞 거리에서 찍은 것이다. 젊은 남녀 한 쌍이 길을 나란히 가던 자세로 남자가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오른손으로 등뒤로 여성의 오른쪽 어깨죽지를 잡고서 십자로 입술을 포갠 격정적인 키스를 하는 모습이다.

이 사진은 그 해에 <라이프(Life)>지에 실려 대단한 반응을 일으켰고, 포스터와 엽서로 제작되었는데, 공식적으로도 40만장 이상이 팔렸다고 한다. 세계 여러 나라의 기숙사와 학생들 방마다 걸렸다고 하니 그 열풍이 어떠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사진이 왜 이렇게 인기를 얻게 되었을까?

무엇보다도 두 사람의 표정과 자세가 참 매력적이고 인상적이다. 끌어안고 퍼붓는 남자의 모습과 둘러 안은 팔이며, 고개를 뒤로 살짝 젖히고 자연스레 응하고 있는 여성의 옆모습이 참으로 젊고 싱싱하다.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수수한 옷이며, 자연스레 흐트러진 머리 모양도 청춘 남녀답다.

주변 사람들도 분위기를 한층 깊게 한다. 키스를 하고 있는 두 사람의 바로 왼쪽에 겹쳐 찍힌 여인의 시선은 둘에게 두고 있다. 오른쪽에서 반대 방향으로 지나치는 남성의 옆얼굴도 그가 둘을 바라보며 지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앞뒤에서 걷고 있는 두 남자의 모습은 이들을 의식하지 않고 있다. 눈길을 두고 있는 왼쪽 여성에 겹친 또 다른 남성과 두 대의 차의 앞뒤 모습도 있다. 시청 앞이라는 제목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공간과 분위기를 짐작하게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 잠시라도 떨어져 있기가 싫다. 만나서도 서로가 좋은 대로,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고 싶어한다. 누가 보든 말든 손잡고 껴안고 키스하고 싶어지는 게 연인들이다. 그래도 사람들이 많이 쳐다보는 데에서는 그러기가 곤란하다. 그래서 참고 그러지 않을 뿐이다.

그런데 이들은 키스를 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사람과 차들이 많은 시청 앞 거리가 아닌가? 그런 장소에서 이 젊은이들은 횡단보도를 건너가면서 껴안고 키스하고 있는 것이다.

젊은이라면 누구나 한창 사랑에 빠질 나이이고, 그래서 누구나 사진처럼 그러고 싶다. 어찌 부러워하지 않겠는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한 것을 이들을 통하여 대리 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어쩌면 이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사랑은 중요한 삶이다. 그러므로 사랑을 나타내는 것은 몰래 할 일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언제 어디서나, 누가 보거나 말거나 서로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 옳다. 사랑으로 가슴 뛰고 멋진 낭만으로 보인다면.

 그런데, 이 사진이 문제가 있다고 야단이다. 75세인 사진 속의 여주인공 프랑수아즈 보르네 할머니가 프랑스 최고급 경매장이라는 <Artcurial Brest Poulain Le Fur>에 사진작가 로베르 두아노(Doisneau, Robert, 1912~1994)가 서명하여 보내준 원본 사진을 출품하여 약 2억원(15만 5천 유로)이라는 큰돈으로 낙찰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화제 거리가 될 말한 이야기다.

더구나, 이 사진은 연출된 것이라고 말해버렸다. 사진 속 상대방은 당시 자기와 같이 연극을 공부하던 남자친구였고, 사진작가가 자기 학교 근처에서 자신들을 발견하고 포즈를 취해달라고 요청하여 촬영된 것이라고 밝혔다는 것이다.

사진은 진실이어야 한다. 사실대로의 존재와 진실한 삶의 모습을 생동감 있게 그대로 담아내야 한다. 그런데 이 사진은 그렇지가 않다. 연출된 것이다. 순수하지 않은 것이다. 더구나, 인생 최고의 가치인 사랑을 연출하여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연인들도 아니다. 서로 사랑하지도 않는 사이이다. 사진 속의 남자 자크 카르토와의 만남도 오래 가지 않았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런데도 의도적으로 꾸며서 아주 자연스럽고 순수하며 낭만적인 최고의 멋진 사진을 조작해 만든 것이다.

이 사진을 방에 붙여놓았던 그 수많은 젊은이들의 마음은 어쩌란 말인가. 사진을 보면서 그리며 기대하던 그들의 꿈은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사진을 본 많은 사람들의 머리 속에 새겨진 낭만은 또 어떻게 위안할 것인가.

 세상사는 죽을 때까지 밝히지 말아야 할 것이 있고, 죽어서도 말하지 않아야 할 것도 있다. 특히 그것이 꿈과 멋과 낭만을 깨뜨리게 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인간은 꿈과 낭만으로 기대와 의욕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므로, 멋진 키스의 사진이 연출된 것임을 공개하지 말고 마음에 담고 사는 보르네 할머니였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래도, 1993년부터 주인공이 나라며 초상권 침해라고 수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재판정에서 끝까지, “그들은 주인공이 아니다”라고 말하지 않은 사진작가 로베로 두아노는 예술가답다. 비록 연출로 사랑을 찍었지만, 다음 말에서 작품의 힘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환상을 깨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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