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나가와네 집 창문에는 아직 불이 켜져있어서 해빛 아래에서 볼 때보다도 따스한 느낌이 들었다. 창문이 열려있는지 스포츠뉴스소리가 새여나온다. 니나가와가 문을 열었다. 셋이 함께 안으로 들어가자 어두운 현관이 미여터질듯했다.
    《맞다, 오늘은 아주머니한테 인사를 드려야지.》
    《귀찮은데 됐어. 복도를 몰래 지나서 그냥 내 방으로 가면 돼.》
    《그러면 안되지.》
    키누요가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텔레비죤소리가 흘러나오는 거실 미닫이문을 열었다. 아주머니와 저 안쪽으로 또 한사람이 보였다. 키누요는 뻐스가 끊겨 집에 못가게 된 사정을 설명했다. 니나가와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키누요가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얼굴에서 웃음을 지우지 않은채 집에 전화를 해두라고만 말했다. 나는 문 한쪽으로 얼굴만 내밀었을뿐 결국 또 제대로 인사를 하지 못했다.
    니나가와는 거실을 들여다보지도 않은채 어두운 현관에서 키누요와 부모님의 이야기가 끝나기를 기다리고있었다. 니나가와네 부모님의 충고에 따라 키누요와 내가 집에 전화를 거는 동안 니나가와는 집안으로 들어가더니 이불을 짊어지고 돌아왔다.
    좁고 긴 복도를 지나 뜰에 있는 문을 열고 돌연 나타난 계단을 올라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이미 이 방에 익숙해져있었지만 키누요는 《비밀의 방 같아!》하며 놀라워한다.
    니나가와가 지고 온 이불을 다다미우에 떨어뜨리듯 내려놓았다.
    《나는 쓰던 이불에서 잘게. 오구라하고 하세가와는 이 이불을 써. 이불은 한채밖에 안줘서 미안하지만 두사람분을 펼 자리가 없어.》
    다다미우에 앉아 한숨을 돌렸다. 라이브하우스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부대껴 땀으로 범벅이 된 우리의 몸은 느글거리는 냄새를 풍기고있다.
    《몸에서 별의별 사람들 냄새가 나! 그렇게 녀자들만 있는 콘서트였는데도. 이 냄새 남자들한테도 안 지겠다. 얼른 목욕하자.》
    《이 사간에 욕실까지 쓴다구? 괜찮을가?》
    《괜찮아, 방금 아주머니랑 말할 때 허락 받았으니까. 그럼 방주인인 니나가와가 먼저 씻어.》
    《난 안할래. 지금 욕조에 들어가면 퍼질러질것 같아.》
    《뭐? 그 땀투성이 몸으로 그냥 이불속에 들어가 뒹굴겠다구?》
    《그럼 난 베란다에서 잘게. 미안. 잘 자.》
    니나가와는 비슬비슬 일어서더니 다다미 한장 크기의 좁은 베란다로 나가 창문을 닫았다.
    《어떡해. 나, 방주인을 내쫓아버렸어.》
    《내버려둬. 맥빠져서 그런걸거야.》
    《그렇겠지. 그런 행동을 했으니 맥이 빠지고도 남겠지.》
    대기실앞에서의 일을 생각하고있는지 키누요가 한숨을 쉬였다.
    결국 키누요가 먼저 욕조에 들어가고 그다음에 내가 샤워기를 빌려 썼다. 애써 몸을 씻었는데 도로 땀에 전 속옷과 티셔츠를 걸칠수빡에 없었지만 기분은 어느 종도 상쾌해졌다. 빌린 목욕타월로 머리를 닦으며 2층 방으로 돌아왔다.
    막 씻고 나와 열기가 가시지 않은 몸으로 키누요와 둘이서 이불을 폈다. 손님용 이불인지 풀을 먹인 사락사락한 시트가 이불사이에 끼여있어 그것도 넓게 폈다. 니나가와도 잘 때는 방으로 돌아오겠지 하고 잠시 망설인 끝에 수납장속에 있던 그의 이불도 꺼내여 깔았다. 그가 발한대로 이 방 크기에는 이불 두장이 한계라 다다미가 이불에 완전히 가려져서 방이 흰색 일색으로 바뀌여버렸다. 청결하고 눈부시게 빛나는 하얀 시트우로 미끄러지듯 들어가 뒹굴었다. 아기의 배내저고리 같은 천으로 된 시트에 얼굴을 파묻자 뭐랄가, 그리운듯한 좋은 기분이 느껴진다. 내 발치에 앉아있는 키누요는 화장을 지워서 중학교때의 작은 눈으로 돌아와있다.
    《배고프다. 그러고보니 우리 저녁도 안먹었어.》
    《정말 랭장고를 열어보자. 뭔가 있을지도 몰라.》
    미니 랭장고의 작은 문을 열자 차와 사이다 페트병, 아직 따지 않은 요구르트팩이 들어있었다. 전번처럼 아래칸엔 식기도 함께 랭장되여있다. 요구르트와 우리접시 두장, 티스푼 구개를 꺼내자 키누요는 바로 접시에 요구르트를 듬뿍 덜어 퍼먹기 시작했다. 난 요구르트는 시여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대신 요구르트팩 뚜껑에 붙어있던 설탕을 우리접시에 솔솔 뿌려 손가락으로 찍어먹었다.
    키누요의 스푼이 접시에 부딪치는 소리만 방안에 울려퍼진다. 오랜만에 둘만 있고보니 무슨 이야기를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니나가와가 창문을 닫어버려서 방이 너무 덥다.》
    키누요가 몸을 일으키더니 리모콘으로 에어컨을 제일 낮은 온도로 설정해 스위치를 켜고 다시 앉았다. 묵은 카츠오부시 같은 냄새를 풍기는 차가운 공기가 이불우로 쏟아져내려온다.
    《뭐야, 저 인형들? 무서워―》
    키누요는 다시 부산하게 일어서서 서랍장우의 목각인형과 유리상자안에 든 일본인형을 부지런히 뒤돌려놓기 시작했다.
    《왜 그러는데?》
    《밤중에 깼을 때 눈이 마주치면 기분 나쁘잖아.》
    《그렇게 돌려놓은 인형들이 돌아볼가봐 더 무섭다.》
    인형들을 전부 돌려놓자 이번에는 학습용 책상으로 다가간다. 책상우에 놓인 아무래도 좋을 문방구들을 하나씩 집어올려 살피기 시작한다. 키누요도 긴장하고있는건지 모른다. 이윽고 내옆에 눕는가싶더니 다시 책상쪽으로 기듯이 다가가고있다.
    《저 상자는 뭐지? 굉장히 큰데?》
    《아, 그건 만지면 안돼.》
    눈깜짝할 사이에 네발로 팬시상자앞까지 기여가 상자를 지키듯 주저앉았다.
    《어? 왜?》
    나도 모르겠다. 단지 이 상자가 웬지 사랑스럽다.
    《왰어, 됐어. 얼른 잠이나 자자.》
    팔을 뻗어 전등스위치를 잡아당겼다. 방이 어두워지고 나는 키누요옆으로 돌아와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암흑속에 에어콘돌아가는 소리만 울려퍼진다.
    《라이벌이 아이돌 스타라―》
    돌연 키누요가 귀가에 놀리듯이 속삭였다.
    《갑자기 또 이상한 소리한다.》 
    《니나가와가 올리짱 있는데로 달려갔을 때 너 굉장히 쓸쓸해보였어.》
    《그런거 없어.》
    《그런거 있어.》
    키누요가 완고하게 말한다. 내 표정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모르는 기분을 내비치고있었던걸가. 그렇다고는 해도 베란다의 니나가와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있을가? 그의 이불은 여전히 텅 비여있어. 키누요와 한이불에 누워있는 나에게는 그 공간이 너무나도 넓게 보였다.
    《니나가와가 도니통 혼난건 안됐지만 이렇게 같이 자면서 얘기도 할수 있고 재미있다 그치? 아―오늘 일, 빨리 애들한테 애기해주고싶어.》
    암흑속에 키누요의 말이 둥실 떠올라 희미하게 빛난다.
    애들한테.
    그렇구나. 지금 이렇게 가까이서 이야기하고있는데도 키누요의 세계는 나나 니나가와가 아니라 그녀의 《그룹 아이들》인것이다. 긴긴 여름방학은 나와 키누요 사이에 더욱더 먼 거리를 만들겠지. 그리고 그 방학끝에 놓인, 오로지 숨막힐뿐인 2학기.
    가장 고통스러운건 수업사이사이의 쉬는 시간. 떠들썩한 교실에서 나는 페의 반 정도밖에 공기를 들이마시지 못한다. 어깨부터 서서히 굳어져가는 압박감. 내 자리에 가만히 앉은채 반아이들이 까불며 떠드는 한족에서 전혀 흥미가 없으면서도 다음 시간의 교과서를 펼쳐보거나 하는, 이 세상에서 가장 긴 10분. 제자리에서 꼼짝도 못한채 무표정한 얼굴로 조금ㅆ기 죽어갈 나 자신이 아주 생생하게 그려진다.
    불길한 상상을 떠쳐내기라도 하듯 나는 반아이들에 관한 얘기를 시작했다. 키누요는 친구가 없어 정보망도 없는 주제에 반아이들의 인간관계를 줄줄 꿰고있는 나를 놀라워했다. 하지만 두사람 모두 졸음이 몰려7와서 이야기가 자꾸 뚝뚝 끊어졌다. 키누요의 목소리가 점점 가늘어지는가싶더니 이윽고 평온하고 깊은 숨소리로 바뀌였다.
    책상우에 놓인 문자판과 바늘에 형광도료가 칠해진 자명종시계 바늘이 세시반을 가리키고있다. 나는 졸리면서도 잠을 못이룬다. 니나가와가 베란다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벌써 잠들어버린걸가? 보러가고싶긴 하지만 혼자 있고싶어서 베란다를 택한 그를 방해하고싶지 않다.
    이불밖으로 드러난 발긑이 시려왔다. 에어콘이 너무 세다. 고른 숨소리를 내는 키누요를 깨우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네발로 기여다니며 에어콘의 리모콘을 더듬어 찾았다. 다다미우를 한참 더듬고있으려니 드디여 요밑에 깔린 리모콘의 딱딱한 감촉이 손끝에 전해졌다. 리모콘을 머리우로 들어올려 삐―하고 오프(Off)스위치를 누르자 랭풍을 내보내던 낮은 기게음이 멈춘다. 방안은 순식간에 정적에 휩싸이고 들려오는건 키누요의 희미한 숨소리뿐.
    잠시 망설인 끝에 몸을 일으켜 카텐안으로 들어가 베란다 창문을 열었다. 순간 뜨거운 공기가 얼굴을 감싸고 벌레들의 가는 울음소리가 멀리서 들려온다. 눈앞에 늘어뜨려져있는 청바지와 타월을 젖히면서 맨발로 베란다에 내려섰다. 베란다는 이미 밤의 암흑에 아닌 어두운 청회색의 새벽빛에 물들어가고있었다.
    니나가와가 없다.
    아니 있다. 베란다구석에서 이쪽은 등친채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듯 몸을 작게 웅크리고 축 늘어져있다.
    《괜찮아?》
    그의 몸을 흔들자 《안자.》라고 하는 낮은 목소리가 되돌아왔다.
    《방에 들어가는게 낫지 않아? 이 베란다 너무 덥다.》
    정말 왜 이렇게 더운거지? 벌써 땀이 배여나기 시작한다. 주위를 둘러보자 곧 원인을 알수 있었다.
    《아, 에어콘!》
    커다란 실외기의 프로펠러가 이미 전원을 끈 상태인데도 여전히 빙글빙글 돌아가고있다. 에어콘을 켠 순간부터 지금까지 이것이 줄곧 니나가와를 향해 강렬한 열풍을 뿜어대고있었을것이다.
    《이제 껐지? 그럼 그냥 아침까지 여기 있을래. 움직이는거 귀찮아.》
    니나가와는 느린 동작으로 베란다구석에서 몸을 일으켜 베란다문턱에 걸터앉았다. 나도 늘어진 빨래들을 될수 있는 한 건조대 한쪽으로 밀어붙이고 그의 옆에 앉아 아무말 없이 밖을 바라보았다.
    어둠이 조금씩 걷히면서 입자가 굵은 풍경이 펼쳐진다. 어두워서 형태밖에 알수 없었던 집의 세부―창문이나 지붕에 달린 안테나의 륜곽 등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있었다.
    파란 기와에 파란 대나무장대.
    파란색이 평소보다 웬지 케케묵어보인다.
    니나가와가 재채기를 했다. 그의 얇은 눈가풀, 얇은 입술.
    눈도 입도 피부를 조금 째서 만들어낸것만 같다. 아무것도 없는 곳을 꼼짝 않고 바라보고있는 고양이와 같은 무표정.
    같은 풍경을 보고있으면서도 분명 나와 그는 전혀 다른것을 생각하고있다. 이토록 아름답게 하늘이 공기가 파랗게 물들어가는 곳에 함께 있으면서도 서로를 전혀 리해하지 못하고있다.
    잠옷 차림의 할아버지가 집 아래쪽 길을 걸어가더니 전보대밑에 쓰레기봉투를 두고 간다. 아침이 시작되고있다. 어중간하게 졸린 상태에서 맞이하는 무기력한 아침. 하늘이 점점 밝아지면서 기온도 서서히 올라가 낮이 되면 얼마나 더워질가 무심코 상상하게 되는 아침이다. 아침해살이 눈부시고 나른하다.
    《콘서트에 함께 가줘서 고마워.》
    《아냐, 달리 할 일도 없었는데 뭐.》
    《나, 과학실에서 <이 모델 만난적 있어>라는 말 너한테서 처음 들었을 때 걸려들었다는 느낌이였어.》
    《걸려들었다니, 뭐에?》
    《뭔가, 커다란것엡거대한 깜짝 프로젝트 같은거.》
    니나가와는 량손으로 커다란 원을 그리며 알수 없는 몸짓을 했다. 때탄 베란다벽과 하얀 하늘을 배경으로 바람에 흩날리는 부스스한 머리카락이 머리끝까지 선명하게 까맣다.
    《감전된거 같았어. 전신의 땀구멍이 다 열리는듯한 느낌. 아아, 대기살앞에서 나, 미친놈처럼 굴어서 욕먹고 그저 한낱 변태 같았겠지.》
    그렇게 혼자말처럼 중얼거리더니 어두운 눈을 하고 살짝 웃는다.
    《올리짱에게 다가갔을 때 나, 그 사람을 이제까지 그 어느 순간보다 가장 멀게 느꼈어. 그녀의 부스러기들을 긁어모아 상자안을 채워넣던 그때보단 훨씬.》
    말이 계속되길 기다렸지만 그는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무릎우로 얼굴을 박았다. 내게 등을 보인채.
    얕은 여울에 무거운 돌을 떨어뜨리면 내물바닥의 모래가 피여올라 물을 흐리듯이, 《예의 그 기분》이 바닥에서부터 일어나 마음을 흐린다.
    고통을 주고싶다.
    발로 차주고싶다.
    사랑스러움이가기보다 뭔가 더욱 강한 느낌.
    발을 살짝 들어올려 발끝으로 그의 등을 지그시 누르자 힘이 들어가면서 엄지발가락의 뼈가 가볍게 《딱》하는 소리를 냈다.
    《아퍼! 뭔가 딱딱한게 등에 닿았어.》
    발가락끝에 닿았던 등이 완만하게 뒤로 젖혀진다.
    《베란다창틀 아냐?》
    니나가와는 몸을 돌려 먼지가 가볍게 쌓인 가늘고 검은 창틀을 이상한듯 손가락으로 매만졌다. 그리고는 창틀아래 놓인 내발을 내려다본다. 엄지발가락부터 새끼발가락까지, 점점 작아지는 발톱들을 바라본다. 난 모르는척 시치미 뗀 얼굴로 딴데를 본다. 숨결이 떨린다.


                                                    (전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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