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1990년대 준비기간과 경험이 부족한 상태에서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은 중국어 습득과 중국의 제도, 기업문화에 대한 이해가 거의 전무했다. 이 시기 새로운 중국환경에 적응하고 의사소통이 가능토록 도와준 이들이 바로 2중언어 ‘우세’를 가진 조선족이었고, 조선족(직원)의 존재는 초기 한국기업의 성공적인 진출과 정착의 발판이 되었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부터 한국기업에서 사무직·관리직에서 근무하던 조선직의 독점적 지위가 약화되면서 각종 딜레마에 봉착하고 있다. 예컨대 2중언어 ‘우세’ 타파, 승진의 어려움, 문화적 차이와 갈등, 이중정체성 고민, 한중 이중문화 적응의 어려움 등이다.

 김범송 흑룡강신문 논설위원/ 본지 칼럼니스트
1990년대~2000년대 한국기업과 조선족 직원 간에 형성된 ‘상호의존적 공생관계’가 2000년대 후반부터 흔들리고 있다. 2000년대 진입 후 한국기업들은 초기의 정착과정에서 벗어나 중국의 내수시장 개척에 필요한 중국인 전문인력 유치를 강화하고 있다. 또한 한국 주재원들의 중국어 구사능력 제고로 중국인 직원과의 직접적인 교류와 소통이 가능해지면서 조선족 의존도가 낮아졌다. 실제로 한국기업들은 ‘이동성’이 강한 조선족 직원보다 인내심과 적응력이 강한 한족직원을 선호하고 있다.  한편 2000년대 후반 중국에서 야반도주하는 한국기업이 많아지면서 한국기업 이미지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고, 중국의 공무원과 국유기업의 임금은 상승되는 반면 한국기업의 임금은 상대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이 또한 조선족엘리트들이 한국기업을 떠나는 중요한 이유이다. 조선족들은 한중 이중언어 구사능력으로 초기 재중한국기업에 쉽게 취직할 수 있었고, 그들의 ‘언어 우세’는 한국기업의 중국진출과 정착에 크게 기여했다. 2000년대 이후 한중 양국에서 유학한 한중 유학생들의 재중한국기업 취직이 늘어나면서 이들은 조선족 직원의 경쟁상대가 되었다. 한국어가 가능한 중국유학생들의 장점은 조선족 직원보다 중국어를 더욱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고, 한국인의 마인드를 구비한 한국유학생은 한국주재원의 의사를 더욱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 즉 조선족의 어중간한 언어실력은 한국기업의 높은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중언어 ‘우세’의 타파로 조선족 직원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졌고 회사의 ‘중진’에서 더욱 멀어지고 있다. 한국인의 지시를 전달하는 ‘2인자’에서 계륵적 존재로 전락된 조선족 직원의 딜레마가 깊어지는 이유이다. 한국기업에서 근무하는 조선족 직원의 또 다른 딜레마는 승진이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1990년대 한국기업에 취직하여 10~15년의 경력을 쌓은 조선족 엘리트들은 생애를 바쳐 일해 왔지만, 팀장·과장 이상의 진급이 어려운 한계를 발견하면서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게 된다. 실제 한국인의 경영마인드를 인지하고 회사업무에 능숙한 베테랑 조선족 관리자들은 실제적인 권한이 없는 ‘만년과장’으로 전전긍긍하면서 한국 주재원들의 실적 쌓기를 돕는 염가의 인적자산으로 이용되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재중한국기업들은 주재원 중심으로 회사가 운영되며, 조선족 중간관리자와 과장급 중국인 직원들은 의사결정권이 전무한 ‘괴뢰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결국 한국 주재원들의 독선적 행정과 현지화 외면, 기득권 애착과 특권 남용이 조선족 엘리트들이 경력을 중단하고 부득불 회사를 떠나는 주요인이다. 현재 한국인과 조선족동포 간 관계는 밀월기를 지나 권태기에 진입, 서로의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하면서 실망감이 커져 상호불신임 관계로 악화되고 있다. 이러한 ‘견원지간’ 관계는 재중한국기업에 근무하는 조선족 직원과 한국 주재원 사이에도 예외는 아니다. 흔히 한국 주재원들은 오로지 ‘한 핏줄’을 강조하면서 같은 한민족이라는 이유로 중국에서 생장한 조선족의 ‘중국인’ 국민정체성은 아예 무시해버린다. 한편 조선족 직원들은 ‘제2의 이민’을 경험할 정도로 대도시의 새로운 생활환경과 한족문화권에 적응하는 과정을 겪게 된다. 또한 조선족 직원들은 한국 주재원과 중국인 직원들 사이에서 ‘한국인’도 ‘중국인’도 아닌 어중간한 존재로 정체성의 혼란과 곤혹을 경험한다. 이와 같이 조선족의 이중문화 적응과 이중정체성 고민은 한국기업에 근무하는 조선족 직원의 또 다른 딜레마이다.  조선족직원이 재중한국기업에서 겪는 또 다른 심적인 딜레마는 한중기업문화의 차이와 서로의 기대치 차이, 관습·관행과 정체성 인식의 차이에 따른 다양한 갈등에서 기인된다. 대개 한국 주재원들은 언어가 통하고 한민족이라는 이유로 조선족 직원을 한국인 직원과 같이 인식하여 한국회사의 ‘관행’인 연장·휴일근무를 요구하며, 한족 직원들이 싫어하는 술자리나 주말골프 등 사적인 행사에도 일방적인 참가와 동행을 강요한다. 또한 업무와 관련해 문제가 발생하면 무조건 한국어가 통하는 조선족 직원을 책망하고, ‘문제점이 많은’ 중국인 직원에 대한 불평도 조선족 직원에게 늘어놓는다. 이러한 한국 주재원들의 독선과 아집은 조선족 직원들에게 강한 열등감을 심어주며 심적인 딜레마로 작용한다. 역설적으로 조선족 직원에게는 같은 한민족이고 한국어를 아는 것이 오히려 ‘죄’가 된다.  반세기 동안 상이한 체제에서 생활해온 한국인과 조선족동포들은 같은 한민족이지만 서로 다른 신앙과 가치관 및 문화적 특성을 갖고 있다. ‘같은 민족’이라는 이유로 서로 간의 기대치가 높아질수록 그에 따른 실망도 커진다. 한국 주재원들은 모름지기 중국에서 생장한 조선족 특유의 이중정체성을 이해하고 그들의 삶의 가치관을 존중해줘야 한다. 반면 조선족 직원들은 역지사지로 생소한 이국적 환경에서 겪는 한국 주재원들의 애로와 곤란을 이해하고 동조해야 한다. 비록 한국기업과 조선족 간의 ‘상호의존적 공생관계’는 약화되고 있지만, 상호 이해와 신임을 전제로 이뤄진 공존·공생의 협조관계야말로 미상불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윈윈 관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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