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한다. 20년, 30년 지났으면 뭐가 어떻게 더 변했을까? 인생이 송두리째 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게다. 1984년 사춘기에 중학교를 졸업한 서란시조선족제1중학교 84기 동창들이 지난 9월 7일부터 9일까지 중국 청도시 청량에서 모임을 가졌었다.  

최고급 호텔에서 진행된 동창모임에서 더러는 서로가 서로를 몰라보는 이들도 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제 마끔 고향을 떠나 타향에서 삶의 터전을 구축하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애를 낳아 키우고, 더러는 애들을 대학을 보냈었고, 이제는 범 무서운 것 모른다는 사십대의 중반을 넘어선 아줌마와 아저씨로 변했으니 세월이 무심타는 말이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청도에서 꽤 잘 나가는 석재무역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제자 조현찬 사장의 초청으로 나는 몸이 좀 불편했지만, 청도 행을 결심했다. 스무 여섯 살 총각 나이에 서란시조선족제1중학교에 와서 처음 교단에 나서 맡은 학생들이다 보니 그리움과 궁금증이 너무 많았던 까닭이다. 김경렬 선생도 마침 동행을 했었다. 상해에서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30년 만에 처음 보는 얼굴이 대부분이다. 내가 정말 온 심혈을 기울려 과분하게 가르쳤던 학생들, 그래서 일부 여학생들은 ‘오해’도 좀 있었다고 한다. 얼굴을 보니 알 수 있는 이도 있고 기인가 미인가 하는 이도 있다. 그래도 믿음은, 우리가 한 곳에서 왔고, 2년간 사제 간으로 함께 보냈다는 것, 그 시절의 추억을 만나러 왔다는 사실만은 변함이 없었다.

 조현찬 사장이 부탁하여 바로 전날에 작사 작곡했다는, 학창시절에 조선어문 글짓기에 재간을 보였던 손호택이 작사를 하고 음악에 남다른 재간을 보였던 황장윤이 작곡을 한 노래 “동창”을 모두가 함께 불렀다.

 

태양이 눈부신 여름에 우리 처음 만났죠 

 그때부터 우리 인연은 시작이 된 거죠  

 

 시계바늘 돌고돌아 우리 나이 반백인데

 인생의 반을 보내고 우리 또다시 만나네

   

보기만 해도 심장이 뛰던 첫사랑도 있고요  

같이 뒹굴며 장난하던 친구도 있지요  

우리 이름은 동창 영원한 친구 

동창들이여 우리 우정 영원하리라  

 

 

노래가 끝나자 모두 함께 박수를 쳤고, 눈시울을 붉히는 이들도 있었다.  

두 번째 순서는 출석 명단을 부르는 수순이었다. 교단도 아니고, 31년 만에 호텔 강단 앞에서 전에는 나의 학생이었지만, 현재는 사회친구나 다를 바 없는 이들의 명단을 부르자고 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한명, 또 한명…여러 사연들로 2/3가 빠진 서물일곱 명의 명단을 부르고 보니 목에 멨다.  

나와 김경렬 선생은 제자들이 전해주는 감사패를 받았다. 고운 마음이 그대로 담겨진 감사패이다.

청도의 최고급 술과 요리와, 그리고 서로가 “위하여”, “건배”를 외치는 목소리들에는 들떤 기분이 고무풍선처럼 한껏 부풀려 있었다. 그동안 지나온 일들을 얘기하며 그리웠던 정을 나누며, 그 시절의 추억을 되살리는 멋이 바로 이런 만남이리라.  

이런 만남을 위해 청도에 살고 있는 조직자들인 조현찬, 장순녀, 권명선 등이 너무 고생 많았었고, 조력해준 박문삼, 림화, 류미화 등도 수고 많았었다.  

이튿날 일행은 청도 바닷가 제일 풍경들을 구경하고 로산지역 해수욕장으로 갔다. 한국인과 한국 기업이 제일 선호했던 청도는 끝임 없는 진화를 거쳐 이제는 거리가 깨끗하고 건물들이 밝고 청명한 도시 - 관광명물로 되었었다.  

해수욕장의 해수는 별로 깨끗하지 못했으나, 기세 사나운 바다의 파도는 예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힘과 장관으로 우리의 몸을 덮쳤었다. 배구치기, 뽈 차기, 다리 묶고 뛰기…그리고 바닷가의 특산으로 마무리했던 저녁, 송이 장사를 하는 이인재 씨가 송이를 가져와서 먹었던 기억도 감미롭다.

 이들 가운데는 정부 공무원직에 있는 이들도 있는가 하면, 이런저런 개인 사업을 하는 이들도 많았다. 돈을 왕창 벌었고, 기반을 튼튼히 닦은 기업형 사장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 모임은 누가 얼마만큼 잘 살고 잘못 사느냐 비기러 온 것이 아니라, 원초로 돌아가서, 정마 모질게 부데 껴 온 세상을 다 잊고, 가장 천진하고 꿈만 같았던, 정말 맑은 시냇물같이 깨끗했던, 그 시절의 서로를 만나러 왔던 것이다. 어쩌면 잊어버렸던 그 시절의 자기를 찾으러 왔는지 모른다. 친구들의 모습에서 자기를 찾고 친구들의 말과 추억을 통해 자기를 만나러 온 것이다. 또 그런 소중한 것을 위해 네트워크를 구축하러 온 것이다.

 그래서 인생은 추억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어느 날, 자기를 돌아볼 때 정말 생각할 만한 추억이 없는 인생은 불쌍한 것이다.

 이튿날 일행은 중국 동북 각 지역과 상해, 심천, 그리고 한국으로 떠났다. 헤어진 것이다. 이제 몇 년 후에 어떤 모습으로 다시 만날지 아무도 모른다. 서로가 안녕을 부탁했다.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다시 만날 것을 부탁했다. 그리고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이제 이들 인생은 조금 다르게 흘러갈지 모른다. 그러기를 바랄 뿐이다.

아침 일찍 비행장을 향하다보니 작별인사를 미처 하지 못한 제자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가득해났었다. 이해를 바라는 마음이다.   

 

 

 

 

 

 

 

 

 

 

 

 

 

 

 

 

 

 

 

 

 

 

 

태양이 눈부신 여름에 우리 처음 만났죠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