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승지 중국 연변과학기술대 교수, 정치학박사
[서울=동북아신문]중국 동북지역은 우리 민족에게 특별한 곳이다. 애써 고중세의 역사를 들먹이지 않아도 이곳엔 근현대 한민족 슬픈 역사의 흔적이 켜켜이 쌓여 있다. 일제강점기 선열들은 나라를 찾기 위해 이곳에서 목숨을 걸고 항거했으며 광복 후 한반도로 돌아가지 않고 정주한 사람들은 역내(域內) 질서의 재편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다. 지금은 그 후손인 조선족 동포들이 이 지역 곳곳에 터 잡고 중국 공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중국 동북지역이 우리 민족에게 주는 의미는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이 지역의 지정학적·지경제적·지문화적 가치를 고려하면 중국 동북지역은 향후 한반도 혹은 한민족의 미래에 더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한반도와 맞닿아 있는 이 지역은 냉전과 탈냉전이 공존하고 있는 한반도 주변 정세의 이중구조 해체를 견인할 심장지역(heartland)이며 한반도와 대륙을 잇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 동북지역에 대한 한국 사회의 관심은 내용과 범위 모두 제한적이다. 이 지역과의 적극적인 관계 맺기도 탈냉전시대가 도래하고 한-중 수교가 이루어진 뒤에야 시작됐다. 관계 맺기의 시간적 지체로 인한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관심의 내용은 과거 이 지역과의 인연을 되새기거나 이곳에 사는 조선족 동포들에 대한 연민과 관련된 것이 주를 이룬다. 관심의 범위 역시 과거 지향적이거나 감상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광복 70주년에 즈음해 우리는 과거의 인연이나 조선족 동포와의 연관성 속에서 중국 동북지역을 바라보던 한계를 넘어 이곳이 한반도의 정세 변화는 물론 동북아시아의 미래를 견인할 더 의미있는 곳이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이 지역의 지리적 가치를 좀더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특히 조선족 동포들의 가능한 역할에 주목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머지않은 미래에 도래할 한반도 통일과 동북아시아 공동체의 비전을 구현하기 위해 지금 중국 동북지역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냉전체제가 해체된 뒤 세계는 이전과 확연히 다르게 전개되고 있다. 세계화, 인터넷 세상, 다문화 등의 말에서 그 다름을 실감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세계를 해석하는 틀’로서 지리학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미국의 지리학자 하름 데 블레이는 지리학이 현시점은 물론 미래까지도 바라보게 한다며 지리학적 통찰이 오늘날의 복잡다단한 세계를 이해하는 키워드임을 강조한다. 중국 동북지역의 지리적 특성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시아의 미래가 눈에 들어오는 듯하다. 

이제는 고인이 된 조선족 작가 유연산은 중국 동북지역에 흩어져 살아가는 조선족 동포들의 이주 역사와 삶을 조명하기 위해 두만강 1천리, 압록강 2천리, 송화강 5천리, 흑룡강 7천리를 답사했다. <만주 아리랑>과 <혈연의 강들>이 그 결과물이다. 1994년부터 4년여 기간 동안 온갖 어려움 속에서 이루어진 답사를 통해 작가가 보여주고자 한 것은 조선족의 역사와 그들의 생활상이 다가 아닐 것이다. 유연산은 중국 동북지역 곳곳에 터 잡고 살아가는 조선족의 역사를 통해 이들의 질긴 생명력, 이 지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깊은 인연, 그리고 한민족으로서의 확고한 정체성을 보여주고자 했음이 틀림없다.

광복 70주년이 주는 역사의 무게가 특별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난 70년을 돌아보며 지나간 일들을 성찰하는 것 못지않게 앞으로 도래할 70년을 준비하는 것이다. 지난 역사에 대한 말은 넘치지만 미래에 대한 고민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지금은 한반도 통일을 이루고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공동 번영을 달성하기 위해 중국 동북지역의 가치를 평가하고 조선족 동포들의 역할을 제고하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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