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담’이라는 착한 농부가 있었다. 그는‘난 디에프’라는 아름다운 여인과 결혼을 했다. 그들은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난 디에프’가 죽었다. ‘곡담’은 어쩔 줄을 몰랐다. 그는 한 참을 울다가 ‘난 디에프’의 시체를 끌어안고 강가로 갔다. 배를 띄우고 죽을 때까지 아내의 시체와 함께 정처 없이 떠내려가려는 것이었다.
배는 강을 따라 흐르다가 어느 계곡으로 들어갔다. 배는 어느 기슭에 와 닿았고, 거기에는 머리카락이 하얗게 센 노인 한 사람이 서 있었다. ‘곡담’은 그 사람이 산신령으로 생각이 되었다. 그래서, 그 노인에게 아내를 살려 달라고 애원하였다. 남편인 ‘곡담’의 피를 죽은 아내에게 세 방울을 먹이라고 일러 주었다.
그렇게 하자, 죽었던 ‘난 디에프’는 정말 꿈같이 다시 살아났다. 그는 기뻐서 아내와 함께 배를 타고 집으로 향해 노를 저었다.
오는 도중에 그들은 큰 배를 하나 만났다. 그런데, 그 배의 주인은 ‘난 디에프’를 보자 그만 그 아름다운 모습에 홀딱 반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그는 ‘난 디에프’를 자기 배에 싣고서 도망쳐 버렸다.
‘곡담’은 몇 일이 걸려서 아내가 있는 곳을 찾아냈다. 그리고는 어서 도망치자고 말했다.
그러나, ‘난 디에프’는 옛날의 아내가 아니었다. 지금이 훨씬 더 행복하다며 가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곡담’은 달래도 보고 화도 내며 설득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는 울화를 참지 못하여, 그가 아내를 살리기 위하여 흘렸던 세 방울의 피를 돌려 달라고 하였다. ‘난 디에프’는 그러마고 자기 손가락을 가시로 찔러 피 세 방울을 흘렸다. 그러자. 그 여자는 다시 죽어지고 말았다.
죽은 ‘난 디에프’는 모기가 되었다.
그때서야 그 여자는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다. 그래서, 사람들의 귓전을 따라다니면서 자기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앵앵 울며 다니게 되었다고 한다.물론, 이것은 하나의 전설일 뿐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흥미 이상의 어떤 의미를 느끼게 한다. 자기를 위해서 피까지 흘린 사람을 조금 잘 되었다고 모른 척하고 차 버리는 세태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진실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대우받지 못하는 풍정을 꼬집고 있는 것이다.
아마 ‘난 디에프’는 아내였던 자기에게 “그까짓 피 세 방울”을 치사하게 돌려 달란다고 욕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피 세 방울”을 손가락에서 짜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피 세 방울”은 결코 “세 방울의 피”가 아니었다. 그것은 진실로 아내를 사랑하며, 죽은 아내를 살리려고 온갖 심혈을 다 기울였던 ‘곡담’의 삶의 전부였다. 그러기에, 한 사람이 살 수도, 죽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이 세상에서, ‘곡담’처럼 살아가는 사람이 ‘난 디에프’ 같은 사람들에게서 배반을 당하는 것은 정말 가슴 아픈 일이다. 힘이 세다고 ‘난 디에프’를 빼앗아 가는 “큰 배의 주인” 같은 사람도 있어서는 안 된다.
남의 정성을 깊이 이해해 주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칭찬하고 격려해 주는 세상이어야 할 것이다. 그런 사회가 될 때, 인간은 누구나 자기의 삶을 진실하게 살고, 자기 능력껏 최선을 다해서 엮고자 할 것이다.
그래도, ‘난 디에프’는 늦게나마 모기가 된 뒤에 잘못을 깨닫고 울면서 용서를 빌고 다니니 좀 낫다고나 할까? 세상에는 잘못을 저지르고서도 그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 들거나, 그것을 합리화하려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더구나, 자기가 저지른 잘못을 반성하기는커녕 부끄러워하지도 않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