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아리랑의 홍보 포스터.
[서울=동북아신문]<2015 삶이야기 동창생 서울역사문화 도시락투어>의 마지막 코스는 바로 강남 LG아트센터에서 뮤지컬공연 ‘아리랑’ 관람이었다. 그것은 내 인생의 첫 뮤지컬 관람이기도 했다.

천만 독자들에게 열렬한 호응을 받은 작가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이 뮤지컬로 탄생한 것이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제작된 뮤지컬 아리랑은 준비 기간만 3년이 걸렸고 제작비는 50억 원이 투입됐다. 원작소설이 12권에 이르는 장편이고 40년의 역사를 펼친 만큼 극 중 장면 전환만 무려 30회에 이르러 볼거리가 풍성했다.

지난 세월의 역사를 반영하는 아리랑이라서 한지나 먹물 그런 전통적인 느낌의 무대를 예상했지만 생각과는 달리 아리랑은 LED영상으로 채워져 있었다. 가난했던 시절의 아리랑인데 LED가 나오니 무언가 언밸런스한 느낌도 들었다. 처음 뮤지컬을 보는 촌놈이라 벽 한 면을 꽉 채워가는 LED영상에 눈을 빼앗겼다가 다시 무대에 눈길을 되돌리느라 진땀을 뺐다.

‘아리랑’은 일제침략으로부터 1920년대 말까지 일제 강점기에 전라북도 김제 읍 죽산면을 배경으로 7명의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다루었는데 감골 댁의 가족사를 중심으로 파란의 시대를 살아온 민초들의 삶과 사랑, 그리고 투쟁의 역사를 담아냈다. 극 중 등장하는 일본군의 대사는 일본어를 그대로 사용하였지만 자막에서 한글로 번역되어 나왔으며 극중의 민초들은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했지만 알아들을 수 있는 사투리여서 시대적 현실감을 풍부하게 했다.

‘아리랑’의 이야기를 살펴보았다. 김제군 죽산면에 사는 감골댁의 아들 방영근은 빚 20원에 하와이에 역부로 팔려간다. 양반 송수익의 몸종이었던 양치성은 스승인 그에게 언제나 열등감을 느꼈고 그러던 중 자신의 아버지가 의병에 살해되자 친일파가 되어 우체국장 하야가와의 주선으로 일보 첩보원 학교를 졸업하고 돌아온다. 그 사이 송수익은 만주로 가서 독립군을 이끈다.

한편 감골 댁의 딸 수국이와 친구 옥비는 일본 앞잡이들의 괴롭힘에 몸을 버린 뒤, 험난한 인생을 살아간다. 일본의 앞잡이가 된 양치성은 송수익의 행방을 추적하고 감골댁도 그의 농간으로 비참하게 죽는다. 그 과정에서 양치성은 평소 연정을 품고 있던 수국이를 협박해 강제로 동거를 시작한다. 그러던 중 만주에서 일본 토벌대의 조선인 살육이 자행되어 마을전체는 불바다로 변한다.

을사오적들이 나라를 일본에 팔아넘기자 민초들은 의병대를 조직해 저항하면서 수난의 역사 속에서도 아리랑 한 자락에서 위로를 받는다. 어쩔 수 없이 만주벌로 이주해야만 했던 역사, 1909년 한일합방을 막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일본의 이토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 용정의 3.13 반일시위 등 우리 민족의 저항과 투쟁 정신이 담긴 작품이 기쁨과 슬픔을 함께 했던 아리랑의 다양한 변주로 되살아났다.

이처럼 ‘풀’ 같은 민초들의 삶을 담은 작품인 만큼, 앙상블의 힘이 상당했다. 잔혹한 일제강점 하에서도 민족의 혼을 지켜가는 ‘아리랑’ 앙상블들인 서범석 안재욱(송수익 역), 윤공주 임혜영(방수국 역), 김성녀(감골댁 역) 등은 강력한 존재감을 과시하며 반짝반짝 빛을 냈다.

▲ 뮤지컬 아리랑의 한 장면
‘아리랑’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바로 웅장하면서도 서정적인 멜로디에 진도아리랑과 신아리랑(경기아리랑) 등의 전통 민요, 우리의 소리인 창 등이 어우러진 넘버이다. 가사로 쓰인 ‘풀’과 ‘절정’은 ‘아리랑’에서 표현하는 시대의 아픔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민초들의 설움, 그럼에도 꺾일 수 없는 생존력을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라는 시의 구절들은 비장함이 감도는 멜로디

위에서 춤을 추면서 우리들의 가슴 속 깊은 곳을 울렸다.

‘나는 득보 사랑하제 / 나도 수국 사랑하제 / 우리 마음 서로 알제 / 좋은 호시절 오겄제’라고 수국과 득보가 주고받는 사랑이야기를 다루는 넘버, ‘진달래 사랑’으로 시작해 ‘떠난다고 떠나질 땅이여, 잊는다고 잊혀 질 땅이여’라는 가사가 인상적인 넘버, ‘어떻게든’으로 1막의 마지막을 알리면서 더욱 극명한 대립을 알린다.

처음이 아름다웠기에 마지막이 더욱 슬프지만 배우들은 겉으로는 슬픔을 나타내지 않아 관중들의 가슴에 먹먹함을 남겼다. 아리랑은 배우들의 열연과 음악이 잘 어우러진 작품이다. 눈물을 걷잡을 수 없이 흘리다가도 종종 튀어나오는 가벼운 유머에 빠져 웃어야 했고 슬프지만 따뜻한 여운이 오래 남는 그런 공연이었다.

아리랑의 주제는 바로 민초는 꺾이지만 죽지 않는다는 것이며 아리랑의 정서는 바로 끈질기고 계속되는 우리의 삶이다. 아리랑의 힘은 바로 상처 난 마음을 노래로 치유하는 마법이다. 1막에서 영화를 보는 듯 손에 땀을 쥐듯 숨 가쁘게 전개되더니 2막에선 수많은 인물이 빚어내는 감정과 갈등을 거대한 파도처럼 쏟아냈고 피날레에서는 슬픔을 드러내지 않고 꾹꾹 눌러 담는 애이불비의 정서를 극적으로 표현했다.

커튼콜을 위해 무대 위에 오른 뮤지컬 ‘아리랑’의 모든 출연진은 객석을 향해 인사를 마친 후 담담한 목소리로 아리랑을 부른다. 배우들이 부르는 아리랑을 따라 부르던 객석은 훌쩍이는 소리가 섞이기 시작하고 흥겨웠던 커튼콜의 분위기는 차분해지면서 진한 감동의 물결이 파동을 쳤다. 객석에 조명이 켜졌다. 한 줄에 나란히 앉아서 뮤지컬을 보던 북한, 중국, 우즈베키스탄, 일본, 한국 등 조각보회원들은 저마다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뮤지컬을 보는 내내 가슴이 저리고 아팠다. 나라를 잃은 설움과 슬픔, 분노, 울분 등 통한의 감정이 밀치고 올라와 더욱 그랬다. 이미 어찌할 수 없는 과거의 일이건만 여전히 차가운 현실은 가슴을 더욱 미어지게 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아직 한의 정서가 남아있나 보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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