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춘식 수필가
[서울=동북아신문]중국 모성의 규률검사위원회서기는 간부들에게 여섯 개 <천만(千万)>을 권고하였다. 즉 ”술친구를 천만 마음대로 사귀지 말라, 사귀면 곧 ‘납치’ 된다. 어떤 도모가 있는 밥은 천만 먹지 말라, 먹으면 곧 ‘벙어리’가 된다. 특수배경이나 고급간부 및 그 친속과 인맥이 있다고 자칭하는 말을 믿지 말라. 믿으면 곧 속히운다. 고급 오락 소비 장소 같은 데를 천만 들어가지 말라. 들어가면 곧 ‘검은 굴’에 갇히운다. 불의의 재물을 천만 받지 말라, 손을 내밀면 꼭 붙들린다. 요행심리를 천만 가지지 말라. 한 번 발을 헛디디면 평생의 한이 된다.”는 것이다. 

누군가 벼슬자리는 모험성이 가장 강한 직업이라 했는데 벼슬을 하면 권력이 있게 되고 권력이 있게 되면 그 주위를 싸고도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중 적지 않은 사람은 바로 그와의 인맥을 통해 자기의 이익을 도모하려 하며 그 인맥 줄을 끈끈이 하기 위해서는 돈과 재물을 바치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이때 만약 벼슬하는 자가 자신을 단속하지 못하고 허욕을 부린다면 곧 명예를 더럽히고 금전의 노예로 전락된다. 하기에 관원에게 있어서 허욕은 첫째로 가는 금물이요, 항상 명기할 것이 바로 허욕을 부리지 않는 것이다. 하기에 좌구명은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이 보배이다”라고 하였다. 

전국시기 송나라에 자한이라고 하는 관리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을 보배로 여겼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아름다운 옥을 가져왔는데 자한은 거절했다. 그 사람이 이 옥은 세상에서 보기 드문 보배라고 하자 자한은 “그러기에 받지 않는거요. 당신은 옥을 보배로 보지만 나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을 보배로 여기오. 내가 당신의 옥을 받으면 당신과 나는 모두 보배를 잃게 되오. 내가 받지 않으면 우리가 다 보배를 얻게 되지 않소?”라고 말했다. 소식은 “내 것이 아니면 티끌이라도 함부로 가지지 말라.”고 하였다 속담에 “남이 주는 것을 다 받아먹으면 벙어리가 된다.”,”죄스러운 돈은 목에 건 올가미다."고 하였다. 그들이 나에게 재물을 가져오는 것은 바로 나에게 권력이 있기 때문이다. 사심의 불씨는 제때에 꺼버려야 한다. 사심이 한 푼만큼 작아지면 용기가 한 푼만큼 커지는 법이다. 생활가운데서 많은 세절들이 사람의 사심을 고험하고 있다. 예하면 관원의 탐욕과 염결 지간의 선택에서도 그렇다. "양진의 이야기”가 바로 옛사람이 말하는 “홀로 있을 때의 신중”이다. 즉 홀로 있을 때도 의연히 가장 정직하고 순결한 태도를 보전하면서 돈과 재물을 신중하게 대하며 지어는 암실에서도 천지귀신을 대하듯 자신의 사심잡념에 경솔히 방종해서는 안 된다.  동한 말년에 이름난 관리 한사람이 있었는데 이름은 양진이라 하였다. 그는 형주에서 벼슬살이를 할 때 왕밀이라는 사람의 재간이 뛰어남을 발견하고 그를 창읍현 현령으로 조정에 추천 하였다. 몇해 후에 양진은 임직지를 옮기면서 창읍을 지나게 되었다. 왕밀은 친히 교외까지 나가 은사를 맞아들이고 진수성찬으로 정성껏 대접하였다. 저녁에 양진이 들어있는 여관으로 찾아간 왕밀은 집안에 외인이 없는 것을 보고 재빨리 품속에서 황금 열근을 꺼내서 양진의 사무상위에 조심스레 놓으면서 “은사께서 모처럼 왕림하셨사와 약소한 예물이나마 특별히 마련하여 키운 은헤에 보답하려 하나이다!”하고 말하였다. 이에 양진은 연신 손을 내저으며 “안 되오,이전에 내가 바로 그대의 재간과 학문을 어여삐 여겨 그대를 추천하여 이런 중임을 맡게 하였으나 그대가 이렇게 하니 나의 사람 됨됨이를 너무도 모르는 것 같구만,”하고 말하였다. 왕밀은 스스로 멋쩍어 났지만 “좌우간 밤중이고 게다가 외인도 모르는바가 아닙니까?”하면서 기어이 받으라고 하였다. 이에 양진은 성을 내면서”그대가 나에게 금을 보내온 것을 어찌하여 외인이 모른다고 하오? 설사 아는 사람이 없다손 쳐도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내가 알고 당신이 아는 것이요! 아는 사람이 없다고 여기면서 자기를 용서하려 든다면 절대 안 되는거요.”라고 정색하여 말하였다. 양진의 책망을 들은 왕밀은 부끄럽고 할 말이 궁하여 어쩔 바를 모르다가 사죄한 다음 금을 거두어가지고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아인슈타인은 “시대의 조류와 사회기풍이 어떠하든가에 사람은 언제나 자기의 고귀한 품성에 의해 시대와 사회를 벗어나 자기의 올바른 길을 걸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자치통감>>의 기재에 따르면 수문제 시기에 량비라는 사람이 서녕주의 자사(주의 장관)로 임명되어 갔는데 당지의 일부 부자상인들이 그에게 잘 보이고 가깝게 지내기 위해 분분히 대량의 돈과 재물을 가져다 바쳤다. 이에 량비가 거듭 엄한 말로 뇌물을 거절했으나 부상들은 의연히 뇌물을 가져왔다. 어느 날 그는 집에서 연회를 차리고 뇌물을 보내온 부자상인들을 모두 청해왔다. 량비는 집사람들더러 부자상인들이 보내온 뇌물들을 몽땅 내와서 커다란 탁상위에 벌려놓게 한 후 그것들을 쳐다 보다기 갑자기 큰소리로 울기 시작하였다. 량자사의 이 뜻밖의 거동에 부자상인들은 다들 오리무중에 빠져 어쩔 바를 몰라했다. 이윽고 량비는 울며 말했다. "그대들은 고의적으로 내가 ‘살지게'하는데 그래 나를 해칠 작정을 하는 게 아니요? 그대들은 이런 돈과 재물로 나를 회뢰하는데 비록 지금은 나에게 청탁할 일이 없겠지만 앞으로는 필시 이러저러한 일로 나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겠으니 이는 나를 망치는 게 아니고 뭐요. 그러니 내 어찌 마음이 아프지 않겠소?” 량비는 울음을 그치고 상우에 놓인 금은보화들을 일일이 상인들 앞에 가져다 놓으며 말했다. "술상을 파한 후 각자는 자기가 가겨온 물건을 다 되가져가시오” 부자상인들은 그제야 량자사가 재물을 보고 우는 이유를 알고 부끄러워 고개들을 숙였다. 량비는 뢰물을 보고 웃은 것이 아니라 울었은즉 그는 뇌물을 보내온 사람의 진실한 의도를 알았는데 그것인즉 후에 자기네들을 위애 이익을 도모해 달라는 것이다. 여기서 그의 맑은 정신을 보아낼 수 있는데 벼슬하는 자로서 반드시 세속에 물들지 않고 자신의 순결을 지켜야 하며 각종 유혹을 자각적으로 물리치고 법에 위반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당전의 현실생활에서 일부 영도간부들은 일정한 권력만 쥐면 백성들을 위해 일하고 인민의 이익을 중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부나비가 불속에 뛰여들 듯 돈속에 뛰어 든다. 그들은 금전과 미색을 보배로 여기고 권력과 돈 교역에 빠져 공개적으로 탐오와 회뢰를 하면서 자기의 사욕을 채우는데 결국은 패가망신하는 끝장을 본다. 지나친 금전욕과 권세욕은 자신을 금전과 권리라는 뛰쳐나올 수 없는 조롱에 가둬놓게 될 것이다. 쉽게 말한다면 금전과 권세에 너무 허욕을 부린다면 그 결과는 기필코 만인의 손가락질을 받게 될 것이다. 청렴한 중요한 인격수양이고 청렴은 미덕의 표식이다. 청렴은 신임을 낳고 결백은 위신을 낳는다. 어겸은 "청렴하게 하늘로 가면 백성들의 뒷소리를 듣지 않는다.”라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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