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체류자 통보의무 면제지침

▲ 허재원 변호사
[서울=동북아신문]우리나라 출입국 관리법 제84조 제1항에는 소위 통보의무라는 규정이 있는데요. 그 내용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공무원이 그 직무를 수행할 때에 불법체류자와 같이 강제퇴거 대상자를 발견하면 그 사실을 지체 없이 지방출입국·외국인관서의 장에게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미등록 이주민, 소위 불법체류자들은 자신의 신분이 드러나 강제퇴거 당할 것을 우려하여 다른 사람으로부터 범죄 피해를 당하고도 신고조차 하지 못하는 억울한 일이 많았습니다.

이러한 불합리를 해소하고 불법체류자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2013년 3월1일 법무부는 ‘불법체류자 통보의무 면제에 대한 지침’을 정하여, 중요범죄 피해를 입은 불법체류자가 경찰관서에 범죄피해를 신고하더라도 피해자 신상정보를 출입국관리사무소에 통보하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따라서 일단 타인의 범죄로 피해를 입은 불법체류자도 당당히 경찰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입니다.

모든 범죄가 대상은 아님

하지만, 중요한 점은 이 통보의무 면제가 몇 가지 범죄로 한정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즉 형법상으로는 살인죄, 상해·폭행죄, 과실치사상, 유기·학대죄, 체포·감금죄, 협박죄, 약취·유인죄, 강간·추행죄, 권리행사방해죄, 절도죄, 강도죄, 사기죄, 공갈죄 등 13가지, 그리고 특별법상으로는 폭처법,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등 3가지 범죄만이 면제 대상입니다.

따라서 가령 불법체류자가 누군가로부터 사기를 당해 그 피해를 신고하는 경우에는 경찰공무원이 비록 그 신고자가 불법체류자인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출입국사무소에 그 사실을 통보하지 않지만, 횡령이나 손괴(누군가 자신의 물건을 부수는 행위)로 피해를 신고할 경우에는 오히려 신고한 그 피해자를 불법체류자로 출입국사무소에 통보하게 됩니다.

따라서 위 지침을 잘못 이해하여 “이제는 모든 불법체류자도 떳떳이 범죄 피해를 신고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불법체류가 드러나더라도 강제출국 당하지 아니한다”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임금체불도 대상 아님

또한 이 지침의 대상은 위에 언급된 몇몇 형사 범죄에만 해당되는 것인 바, 임금체불 등 민사적인 문제 및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관은 위 통보의무의 면제대상이 아님에 주의하여야 합니다.

실제로 지난해 임금을 받지 못해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낸 불법체류 근로자가 자신이 입은 피해에 대해 근로감독관 앞에서 조사를 받던 도중, 고용주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에 붙잡혀 출입국관리사무소로 넘겨지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하였습니다.

임금체불로 인한 피해는 위 지침의 보호 대상이 아닐 뿐더러 근로감독관 역시 통보의무 면제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임금체불을 호소하러온 위 불법체류자가 오히려 사업주가 신고한 경찰에 의해 강제출국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맹신은 금물

불법체류자라는 사실 때문에 범죄에 희생양으로 방치될 수는 없으며, 이들에게도 떳떳이 경찰에 피해를 호소하고 범인에 대한 처벌을 구할 기회를 주는 것은 바람직한 변화입니다.

하지만 위 지침은 형사범죄 중 일부만을 통보의무 면제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을 뿐 아니라 현재 불법체류자들에게 가장 심각한 피해를 야기하고 있는 임금체불에 대해서는 그 보호대상에서 제외함으로써 사실상 유명무실한 측면도 없지 않습니다.

만에 하나 범죄 피해를 신고하는 과정에서 경찰이 불법체류자임을 이유로 출입국사무소로 넘기려 한다면 위 통보의무 면제 지침을 들어 그 부당함을 항변할 수 있을 것이나, 세부적으로 주의할 점들이 있는 만큼 위 지침만을 맹신하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

문의 : 02-866-6800 법무법인 안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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