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점순


친구의 초대로 새 아빠트구경을 갔었는데 저녁식사로 아빠트 근처의 호화로운 식당에 안배하는것이였다. 웬지 방금전 아빠트를 구경할 때 친구가 옥색 대리석밥상을 가리키며 《이 밥상은 만원도 넘게 주었어.》라고 자랑에 겨워 말하던 목소리가 귀가에 쟁쟁히 울리였다.


원래 밥상우에는 향긋한 음식을 담은 그릇과 잔, 그리고 숟가락이 놓여져있어야하고 밥상주위에는 가족과 친척 그리고 친구들이 단란히 모여앉아 정답게 식사하며 이야기꽃을 피워야 하는것이 아닌가? 그런데 친구네 대리석밥상우에는 그냥 꽃병 하나만 달랑 외롭게 놓여져있을뿐이였다.


밥상, 얼마나 정다운 이름인가? 어릴적 엄마는 둥근 아침밥상으로 시골의 둥근 아침을 열어갔다. 이른 새벽,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피여오를 때면 엄마는 아침밥상준비에 서두르신다. 이윽고 하얀 쌀밥에 구수한 된장국, 상긋한 산나물무침이 밥상에 오른다. 그때면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삼촌, 고모 그리고 조롱조롱한 우리 형제들까지 《3대》식솔이 밥상에 빙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속에서 맛나는 아침을 먹는다. 엄마는 물에 퍼지운 누룽지며 묵은 밥을 밥상아래에 내려놓고 몰래 한술 뜨다가 어느새 할머니한테 발각되여 서로 그릇 빼앗을래기를 한다. 그래서 밥상은 드린다는 의미일가? 우로 시부모님을 모시며 공경하여온 엄마는 때마다 거르지 않고 정성스레 밥상으로 건강을 받쳐올린다. 그 받침이 밑받침이 되여 우리 집 밥상에는 하냥 가정의 화목과 사랑 그리고 행복이 꽃펴난걸가?


밥상에는 계절도 꽃펴나고있다. 봄날의 파아란 냉이국으로부터 시작하여 하얀 눈이 펑펑 쏟아져내리는 추운 겨울날의 보글보글 끓는 청국장에 이르기까지 엄마는 계절의 기분을 담뿍 담은 제철음식을 만들어 밥상에 계절을 담는다. 그래서 엄마의 손끝아래에 밥상에는 사계절 하냥 봄볕이 비쳐드는걸가?


밥상은 고향의 인정이 피여나는 곳이다. 어느 집에서 결혼잔치거나 회갑잔치가 있을 때면 동네의 크고작은 밥상이 거의 다 모여지는데 겹겹이 쌓아 세워놓은 밥상속에서 우리 아이들은 용케도 밥상주인을 가려낸다. 동네 어느 집에서나 밥 한끼쯤은 다 먹어본적이 있었으니깐. 나팔꽃이 피여있는건 성애네 밥상, 네모난건 목수네 밥상, 빨간색 페인트가 찍혀있는건 우리 집 밥상이다. 언젠가 마을 술주정뱅이 아저씨가 떨궈놓은 담배불자국을 내가 크레용으로 칠해놓았더니 엄마가 다시 빨간색 페인트로 곱게 색칠해놓은것이였다.


동네사람들치고 우리 집 밥상에 마주앉아 밥을 먹지 않은 사람이라곤 거의 없었다. 식전, 간밤에 놓았던 채발의 고기를 거두러 갔다 돌아오던 아저씨가 다래끼를 든채 우리 집에 잠간 들려 마루청에 걸터앉아 담배쉼하다가 《아침 같이 들자》는 우리 집 식구들한테 끌려 밥상에 마주앉는다. 그리고는 엄마가 수북이 담아준 밥사발과 국사발을 앞에 놓고 제집에서처럼 큰 숟가락으로 푹푹 떠 맛나게 잡수신다. 돌아갈 때는 다래끼의 풀떡풀떡 뛰는 물고기를 절반가량 쏟아놓아 우리 집 저녁밥상에는 생선국냄새와 함께 훈훈한 이웃정이 감돈다.
밥상은 기다림이다. 하얀 밥보를 덮어놓은 밥상은 늦게 돌아오는 가족을 기다리는 엄마의 마음이다. 석양이 서쪽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저녁, 밥상우에 된장국 끓여놓고 문가에 서서 손채양하고 식구들이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던 내 고향집 어머님들의 모습이다. 내 집으로 귀히 모시고싶은 어른, 꼭 한번 따스한 밥 한끼 지어 마음으로 대접하고싶었던 분, 주인의 마음 고스란히 담아 손님을 기다리는 밥상이기도 하다. 명절을 앞둔 밥상은 뭔가 잉태하고있는듯 잔뜩 부풀어있다. 밥상우에서  구을리여 고른 콩으로 기른 빼곡히 자란 콩나물, 꽁꽁 예쁘게 빚어 줄을 세워놓은 송편… 누군가를 기다리기라도 하는듯, 뭐라고 속삭이기라도 하는듯 뭔가를 꿈꾸기라도 하는듯하다.


설날아침, 세배군들이 한패한패 욱-욱- 밀려들어올 때마다 《다 한집안 식구인데.》라고 하며 하나, 둘 밥상에 청하는데 어느새 밥상주위에는 동네사람들이 허물없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어느 집 며느리 쌍둥이를 낳은 이야기며 어느 집에서는 벌써 봄농사차비로 거름을 냈다는 이야기로 밥상에서는 이야기꽃이 피여난다. 탁주를 마시여 진작 얼굴이 벌그스레해진 술주정뱅이 아저씨가 저가락으로 밥상에 장단 두드리며 《노들강변》민요가락을 뽑자 흥겨운 춤판도 벌어진다.


아, 그리운 밥상, 밥상은 엄마의 생이였고 고향의 삶이였다. 그래서 엄마는 하루에도 몇번씩이나 맑은 행주로 밥상을 알른알른 깨끗이 닦고 또 닦으셨을가? 그래서 봄이면 한번씩 밥상우에 물감으로 예쁜 그림이랑 새롭게 그려넣으면서 아롱다롱 채색꿈도 그려넣으셨을가?

식구가 늘어나면서 큰 밥상으로 바꾼적도 몇번 있었지만 번마다 예전에 쓰던 밥상이 아까워 그냥 보관해두셨던 엄마였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증조할아버지때부터 쓰시던 손때묻은 자그마한 두리밥상도 보물인양  대대로 전해내려온게 아닐가? 아마 우리 집 식구와 고향사람들의 삶의 이야기가 그득히 소중하게 묻어있는 밥상이라서 엄마가 유난히 아끼셨는지 모른다. 흘러간 옛추억과 그리움이 돋아나는 밥상이여서 그토록 애지중지하셨는지도 모른다.
지금 호화로운 식당의 으리으리한 밥상에 마주앉아 복무원들의 서비스까지 받아가며 고급료리를 집고있지만 왜 내 가슴은 이다지도 허전해나는걸가? 왜 자꾸만 휑뎅그레하게 비여있을 친구네 밥상만 떠오르는걸가? 왜 한낱 장식품이라는 존래로밖에 되지 못하고있는 현대인들의 밥상이 클로즈업되여 떠오르면서 가슴만 아파나는걸가? 고작 마개를 뗀 맥주병과 고기뼈, 그리고 라면그릇이 나뒹굴고있는 밥상, 따뜻한 정이라곤 식어버린지 오랜, 어느때부터인지 밥상의 의미마저 서서히 잃어가고있는 현대인들의 밥상이 아닌가?


밥상은 한집식구의 만남의 장소이다. 밥상에 음식 그득 차려놓고 식구들끼리 동그랗게 모여앉아 천천히 음식 씹으며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그런데 요즘 밥상은 외롭다. 남편이 출국한 여러해사이 우리 집 아침밥상에도 나혼자만 외롭게 마주앉을뿐이다. 내가 거울앞에서 화장할 때라야 딸애가 잠이 덜깬 얼굴로 우유 한컵에 빵 한쪼각으로 대충 에떼우고는 서로가 바쁘다는 핑게로 밥상우에 잔뜩 널어놓은채 총망히 떠나버린다. 음식은 같이 먹어야 맛이 난다며 어릴적 나혼자 밥먹을 때에도 엄마는 늘 밥상에 같이 마주앉아 해살같은 미소 지으시며 내가 맛나게 먹는걸 정겹게 바라보시지 않았던가?


《때시걱을 거르지 말거라.》《밥상에서 정이 감돌아야 하느니라.》라고 부탁하시면서 결혼하여 세간날 때 엄마가 사주시던 꽃밥상을 새 아빠트에 이사오며 버렸다. 그러나 그 버린건 밥상만이 아닌 다른 무엇이 있었다는걸 나는 왜 미처 몰랐을가?


사실 요즘도 밥상의 종류며 모양이며 크기며 가격 같은건 얼마나 신경을 써왔던가? 하지만 단 한번도 밥상에 앉힐 손님을 궁리해본적이라곤 없으니 어쩜 사치와 허영때문이 아니였을가? 어쩌다 손님이 놀러와 밥상에 마주앉을 때에도 그냥 핸드폰을 걸어 식당음식을 주문해오거나 아예 식당으로 초대해버리는것을 더 후한 대접으로 여길뿐 그 옛날 울 엄마가 하시던것처럼 정성이 푹 슴베인 따뜻한 국밥과 반찬을 손수 만들어 밥상우에 올려본적이라곤 없다. 가마목에서 뱅뱅 맴돌며 밥상우의 어느 그릇이 더 비지 않았나 살피며 국자로 뜨거운 국물이랑 더 떠담아주던 주부들의 미소짓던 예쁜 모습 얼마나 정답고 아름다운 풍경이였던가?


딸애한테는 늘 다른 집에 가서 밥을 먹어선 안된다는 교육을 해왔고 우리 집에도 딸애친구들이 놀러와 밥술 든적이라곤 없다. 우리가 아이적처럼 밥상 한가운데에 고추장 하나만 달랑 놓은채 금방 밭에서 뜯어온 오이를 고추장에 뚝뚝 찍어먹으며 《밥상전쟁》을 벌려본 즐거운 추억이 딸애세대들한테는 이젠 아득히 먼 신화와도 같은 이야기일뿐이다.


밥상은 알뜰한 주부들의 사랑의 손길이 제일 많이 닿는 곳이다. 주부들의 따뜻한 정이 제일 많이 감도는 곳이다. 주부들의 사랑과 정성이 활짝 꽃피여나는 곳이다. 하지만 잃어가고있는 주부들의 마음과 함께 밥상문화도 점점 색바래져가고있으며  가족사랑, 이웃사랑도 날로 퇴색하여가고만 있지 않는가?


아, 엄마네 밥상이 그립다. 둥그런 앉은뱅이 밥상에 둥그렇게 모여앉아 둥글게 웃음꽃 피우던 고향집이 그립다.‡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