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로 나아가는 세대교체가 필요합니다

▲ 박동찬/동포문학3호 시부문 대상 수상자, 연세대학교 학생, 동포모니터랑단 단원
[서울=동북아신문]조선족 부모에게서 태어나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조선족 학교를 떠난 적 없었던 저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조선족입니다. 신분을 확인하는 증명들에는 늘 ‘조선족’이라는 석 자가 따라다녔고 삶 자체가 ‘주’가 아닌 ‘객’이 되는 것에 더 익숙했습니다. ‘조선족’은 저를 구속하는 하나의 울타리처럼 느껴졌고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 모르게 밀려오는 소외감도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20년간 저의 삶은 ‘너는 조선족이다’였습니다. 하지만 오늘 저의 이야기는 ‘나는 조선족이다’로부터 시작하고자 합니다.

제가 조선족의 손을 맞잡았던 것은 우리 문학에 남다른 흥미를 느낀 때로부터 시작됩니다. 수업 시간에 문학 작품을 훔쳐보았고 시험지 뒷면에 시를 적었던 고등학교 시절이 눈에 선합니다. 문학 동아리를 시작으로 심양조선족청년문학회를 만들었고 여세를 몰아 장춘조선족청년문학협회, 훈춘조선족청년문학회 결성도 최선을 다해 지원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말이 너무 좋은 나머지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습니다.

저는 문학을 통하여 조선족을 다시 찾았습니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제가 느낀 것은 하나입니다. 조선족이란 막연한 것이 아니라 은연중에 우리와 한 몸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김치 없는 밥상이 허전하고, 우리말이 아닌 대화는 무미건조하다 느껴집니다. 사투리 모음을 읽으면서 박장대소하고, 연변축구의 승승장구에 열광합니다. 고향 소식을 틈틈이 체크하고, 고향 사진 몇 장에 향수에 젖어버리는 우리였다는 것입니다.

우리 조선족에게는 역사에 길이 남을 항일 명장, 중앙정치에 진출한 거목, 명문대에서 교편 잡은 교수, 민족사업을 후원하는 기업가, 문화를 선도하는 예술인들을 비롯한 수많은 걸출한 리더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민족의 훌륭함은 단지 그분들 때문만은 아닙니다. 명문대학교에 입학한 대학생들이 있고, 대도시에 진출한 젊은 화이트칼라들이 있습니다. 유망 직업을 포기하고 조선족 학교에 뛰어든 청년교사들이 있고, 우리 민족 알리기에 힘쓰는 청년기자들이 있습니다. ‘코리안 드림’을 안고 한국에 정착한 청년들이 있고, 나라 사이의 가교가 되어주는 차세대 무역인들이 있으며, 조선족 학교에서 꿈을 다지는 청소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문학도로 살고 있는 저도 있습니다. 바로 이들 모두가 조선족의 미래, 조선족의 가능성입니다.

미래가 찾을 수 있는 조선족 사회를 만듭시다.

지난 시간 동안 조선족은 우리 문화의 불모지에서 우리의 것을 지켜내고 빛을 발하도록 하였습니다. 한국, 대도시 진출을 통하여 물질적 부를 축적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바로 기성세대의 결단과 희생으로 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득권을 두고 서로 다투는 사이에 정작 우리가 세워야 할 청년들은 조선족 사회 밖으로 쫓겨나고 있습니다.

기성세대가 자랑스러운 조선족이라는 큰 기와집을 지었다면 이제는 그 기와지붕 아래 둥지 틀려는 새들을 반겨야 합니다. 청년세대가 발붙이고 정 줄 수 있는 조선족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저는 과감히 조선족의 세대교체를 말하고자 합니다. 세대교체는 조선족 사회의 당면한 요구이자 과제입니다. 조선족 사회를 이끌어 갈 리더들을 의식적으로 만들고, 이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해야 합니다. 줄곧 홀로 달리셨다면 이제는 청년세대와 함께 조선족 사회를 이끄는 쌍두마차로 거듭나자는 것입니다.

새로운 시선으로 현실을 냉정히 진단해야 합니다. 우리 민족의 타고남도 인정해야 하지만 저열한 근성에 대해서는 더는 포장이 아니라 과감히 부정해야 합니다. 절박한 마음이 저의 펜을 움직였습니다. 젊고 선명한 리더십을 가진 것만으로도 우리 사회는 긍정적인 한발을 내딛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로부터 내려놓기가 시작되지 않는다면 다음세대에게는 조선족에 대한 희망, 아니 조선족 사회는 없을 것입니다.

청년 스스로 새로운 대안이 되어야 할 때입니다.

이제는 청년세대가 조선족 사회를 이끌어 가는 전면에 나서야 할 때입니다. 다른 대안을 강구하는 것보다 깨어있는 청년들의 참여 자체가 조선족 사회에 있어서 크나큰 뒷심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청년들이 조선족 사회에 거리를 두고 심지어 등을 돌리는 가슴 아픈 현실입니다. 하지만 외면하면 외면할수록, 부정하면 부정할수록 더 괴로워지는 것은 분명 우리라는 것입니다.

청년세대에게는 미래를 향해 도전하는 열정과 패기, 지혜와 능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시행착오를 범하여도 다시 돌이킬 수 있는 젊음이라는 밑천이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은 조선족 사회 발전에 있어서 소중한 보배와 같습니다. 무엇보다 우리에게는 기성세대로부터 물려받은, 잘 개간된 ‘조선족’이라는 땅 한 뙈기가 있습니다. 이제 그곳에 어떤 씨앗을 뿌려, 무엇을 결실할 것인지는 우리의 몫입니다.

조선족 학교를 거치면서 우리는 인재가 되기에 앞서 민족이 되었습니다. 스승님의 가르침 속에는 장차 조선족 사회를 위하라는 간절한 기대가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이제는 그 기대에 부응할 때입니다. 우리가 물려받는 사회상은 선택할 수 없다지만 앞으로 우리 후대에 물려줄 조선족 사회는 우리에 의해 결정되는 것입니다.

조선족의 이름으로 나아갑시다, 새로워집시다

이제는 조선족 사회의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당장의 현안도 더없이 중요하겠지만 보다 나은 앞으로의 10년, 20년을 우리는 준비해야 합니다. 조선족은 단지 한 세대를 비추고 종적을 감추는 혜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조선족 마을의 해체, 조선족 학교들의 폐교를 두고 수십 년 전의 그런 사회를 그리워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회귀가 아닌 나아가기를 해야 하고 그것은 결국 탈태환골과 같은 조선족의 새로 나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기성세대가 백의종군의 자세로 새롭게 출발한다면 청년세대는 그 진척이 끊이지 않도록 부단히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난날, 저를 포함한 우리에게 ‘조선족’이란 반갑지만은 않은 꼬리표였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하지만 ‘조선족’은 분명 우리가 이제껏 발견하지 못했던 노다지였습니다. ‘조선족’은 우리의 또 다른 자랑스러운 이름, 이제 우리 모두가 조선족이 되어야 할 차례입니다.

밝고 환할 때 우리는 불을 켜지 않습니다. 희망도 환희의 순간보다 절망의 낭떠러지에서 외치는 것입니다. 조선족이 잘되는 것이 곧 우리가 당당해질 수 있는 지름길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나뭇잎이 다 떨어져 낙엽이 되어버린 11월입니다. 하지만 조선족의 희망은 결코 조락하지 않을 것을 저는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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