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세만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원
[서울=동북아신문]인터넷에서 우연히 사진 풍파로 일어난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짠해졌다.

1990년대, 아프리카 수단지역은 내란이 일면서 정치적, 사회적 혼란을 가져왔다. 부족 사이에 약탈, 방화, 살인, 강간이 기승을 부렸다. 수많은 난민이 있어도 월경할 수 없는 처지에 이르렀다.

국제기구 관찰단이 파견되었다. 거기에 기자진도 동행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한 사진작가가 난민캠프 근처에서 귀중한 장면을 렌즈에 담았다. 그 사진작품은 미국의 주요신문 뉴욕타임스에 게재되었고, 이듬해에 퓰리처상까지 받게 되었다. 그런데 이 30대 초반의 사진작가는 1년 후 자살했다. 그의 사진작품 내용은 이러했다.

대 여섯 살로 보이는 여자애가 옹크리고 있다. 뒤에는 독수리 한 마리가 서서히 죽어 가는 어린 아이를 지켜보고 있다. 독수리는 죽은 동물의 사체를 먹는 습성이 있다. 이 어린아이는 목이 마르고, 배고프고, 공포에 떨었을 게다. 이 아이가 다른 아이들처럼 행복한 곳에서 태어났다면 이런 비운이 없었을 수도 있다. 사진작가는 셔터를 데꺽 누르고는 총망하게 독수리를 쫓아버렸다.

이렇게 찍은 사진이 뉴욕타임스에 게재되자, 독자들은 아픔, 연민, 고통, 분노를 금치 못했다.

“이 나라 위정자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이 아이의 그 뒤의 운명은 어찌 되었는가?”

“이 사진작가는 어린애부터 구해야지. 저런 상황에서 사진이나 찍고 있단 말인가?”

“사진작가의 명성이 그렇게도 중요하단 말인가?”

이 사진을 공개한 뉴욕타임스에 질의가 쏟아졌고, 사진작가한테도 비난의 목소리가 빗발쳤다. 한 때 신문사 업무가 마비상태에 이르렀다.

그 후 이 사진작가는 친구들을 만나 울면서 통탄했다고 한다.

“내가 그 아이를 구하지는 못했어도 단 한번이라도 안아줄 걸 그랬다.”

▲ 케빈 카터 ‘독수리와 소녀’ : 1994년 퓰리처상 수상작
그는 너무너무 괴로워했다고 한다. 이것이 인간의 본능적 감성이다. 이처럼 인간사랑은 국경이 따로 없다. 기실 당시 국제구호 기구는 전염병 때문에 난민과의 신체접촉을 금지했다고 한다. 또 이 아이는 기진맥진한 상태라 안고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이 사진작가는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몹시 괴로웠다. 그러면서 속히 이런 상황을 알려 국제기구의 관심을 유발하고, 사진을 통해 세계인의 관심을 촉구하려고 했다. 그런 사정은 그 곳 한 곳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이 인간이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이성(理性)이었다. 하지만 1 년 후, 이 사진작가는 후회, 자책, 안타까움으로 젊은 생을 마친 것이다.

실제로 이 작가는 이성적으로는 잘못이 없었다. 또 감성적으로 항의를 제출하는 사람들에게도 잘못이 없다. 다리 아래 강물에 투신한 사람을 보고 구하지는 않고 거기서 동영상을 찍고 있는 사람에 대해 누구나 질타할 것은 뻔한 일이다.

위의 ‘사진풍파’ 이야기는 나의 연민의 감정과 이성에 대한 잇따른 사색을 불러왔다.

2006년 11월, 북한에서 온 아내의 4촌 조카딸(36세)이 목단강시에 있는 내 집으로 놀러 온 일이 있었다. 조카딸에게는 집에 열 살 전후의 어린 자식이 넷이나 있다. 북한의 현실은 불 보듯이 뻔한 일이다. 먹는 것, 입는 것 할 것 없이 초라하기 그지 없었을 게다. 조카딸이 반달 만에 떠 날 때, 아내와 나는 친척들의 낡은 복장을 열 마대씩이나 모아서 우편으로 단동역까지 보냈다. 당시 경제사정이 넉넉지 않은 상황이라 입었던 옷이라도 보내서 우리의 진심을 전달했다. 이듬 해, 나는 동생의 돈 5천 위안을 빌려서 인편으로 처조카 앞으로 보냈다. 집의 어린 아이들을 배불리 먹이라는 쪽지내용도 함께 끼워 보냈다. 아내가 한국 나온 후로 더욱 북한 조카딸을 생각하고 간헐적으로 돕고 있다. 여하튼 인간이란 이 생물체는 동정, 사랑의 본능(감성)으로 작동되는 것 같다….

머나먼 아프리카 수단에서 부족 간의 충돌로 인해 사람들이 고통 받는 것이 끔찍하다. 우리와 가까운 북한이 가난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는 것이 더욱 가슴을 허빈다. 코앞에서 60여 년을 동족끼리 서로 총부리 겨누고 있으니 한심하고 비극적이면서 부끄럽다.

십여 년 전, 한국의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이 활기찼다. 민간단체들이 북한에 구호물자도 많이 보냈다. 남북평화, 통합을 이루려는 ‘햇볕 정책’의 힘을 보여줬다. 반면에 ‘퍼주기’한다는 비난의 목소리도 높았다.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 그런 비난의 목소리가 일리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나라의 어려운 경제상황에도 불구하고 핵개발에 열을 올리는 북한에 ‘퍼주기’를 하는 것이 괘씸하다는 것이다.

지금 다시 ‘통일대박’ 붐이 일고 남북통일에 대한 국민들의 소망이 일고 있으니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통일을 실현하자면 하나하나 구체적인 행동과 실천이 중요하다. 경제적으로 힘이 센 한국 쪽에서 포용력을 가지고 북한을 껴안아 주아야 한다. 북한주민을 동정하고 인도적 지원을 하는 것이 한 민족이 자랑하는 ‘홍익인간’의 정신이요, ‘사랑’이 아닐 까. 그리고 대부분 북한에 친인척이 있는 우리 중국동포의 역할도 아주 중요하다. 원조를 통하여 우리의 사랑이 북한주민들의 마음속에 닿아야 한다.

분단된 상태로는 우리 한민족 웅비의 비전은 발현되기 쉽지 않다. 남북이 통일을 이루어 국토면적이 늘어나고 인구가 늘어날 때 진정 한반도가 세계의 선진국으로 우뚝 설 수 있다.

우리 한민족 한겨레가 모두 잘 살고 행복할 수 있는 통일의 그날이 곧 오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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