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섭 칼럼니스트
[서울=동북아신문]누가 꾸몄는지 <여상춘 남비추-女伤春,男悲秋>라는 격언이 글 마당에서 간혹 오르내린다. 나름대로 뜻풀이 해보니 여인네는 봄의 흐름과 젊음의 실추를 더불어 애석해 하고 남정네는 일개년계획이 락공(落空)하여 가는 가을을 미련한다는 뜻이겠다. 그래도 이맘때면 좋아서 입이 귀밑까지 째지는 위인이 다수이고 대운이 텄다고 호들갑을 떨어대는 녀자팀도 푸슬하니 이 설법이 꼭 이렇지는 아니하고 확증성도 부족한 것만은 틀립없다.그런데 어디의 누구는 이때쯤이면 어김없이 비추의 <계절병>에 시달리군 한다.

말머리를 돌려, 상강이 지나고 립동에 들어서니 이 동네 산간의 나무 무리들이 낳아키우던 이파리를 사정없이 낙엽시키며 년차 환절의 자연순환을 연출한다. 년부년(年復年)으로 되풀이되는 우주 조화는 세월을 초동에 밀어붙이는데 어떤 사람이 환절의 언덕에서 처연한 심정이 되어 서산락일을 넋없이 바라보고 있다.본능욕에 좌지우지되어 뭔가 차지하려고 애면글면하다가 기진하고 맥진하여 어깨를 처지운다.농사를 망친 농부가 고생스럽던 한해의 삼시삼농(三時三農)을 돌아보며 락심하는 기분이다.어깨에 걸려있는 훌쭉한 망태도 보기 민망하여 쑥스런 모양을 짓는다.식물계가 한해의 결실을 정리하고 천시운회(天時運回)를 재촉하고 있는데 그는 이지러진 욕망의 환멸과 무능함의 자학으로 꺼지는 탄식을 작년과 똑 같이 반복한다.

그는 남들의 화려한 리력을 부러워한 적이 수도 없이 많다.남보다 뭔가를 더 점유하고 어딘가 더 나으려 아득빠득 애를 얼마나 써왔는지 모른다.허나 달리고 와보면 늘 원점이라 번번이 득소실다(得少失多)의 랑패감에 쌓여 속앓이를 랭가슴 앓듯 해야 한다. 할일과 안 할일에 대한 분별에 명심하고 가당찮은 번뇌는 쓸어내고 뒤틀린 집착을 날려버려야 한다는 도리는 입버릇처럼 되뇌인 그 사람이다.그러나 하고보면 무엇인지 모자라 종당에는 헛물켰다고 투덜거리는 것이 거듭되는 지난해 케이스다.

남다르게 무언가를 쌓으려면 무수한 잔노릇을 출중하게 해야 한다.비범이란 완미한 평범의 집합이다.변증법이란 공구로 그 리치를 분해하면 비범이란 무수한 평범 속에 내재하고 비범한 평범을 끊임없이 창조할 때만이 당신의 소원은 성취되고 절호의  기회는 당신을 용납하고 성공이란 피안은 당신의 상륙을 허락하게 된다.큰일 작은일 모두에 정성을 다하는 품격이야말로 립신양명의 기본 자태인 것이다.허나 이 친구는 일한답시고 늘 징검다리 건너뛰듯 이리저리 오가고 뚱땅대며 만든 것이란 구멍난 항아리고 우쭐대며 하는 짓이란 밑빠진 독에 물붓기다.

인생을 떵떵대며 살자면 더 가지려고 갈퀴질 하는 잔꾀보다 불필요한 무엇을 먼저 버리는 재치를 키워야 하고 문뜩문뜩 앞을 가로막는 위기를 해소하는 림기응변의 기지를 갖춰야 한다.위급하면 꼬리를 잘라버리며 위험에 대처하는 도마뱀의 눈물겨운 생존전략과 촌퇴하고 척진하는 벌레의 기발한 지혜로움은 두고두고 잘 배워야 될 것이다.그리고 후퇴와 전진의 시기를 기묘하게 틀어잡고 진퇴의 종합 기법을 습득해야 한다.그러나 그는 늘 고루하고 편협한 마인드를 고집하는가 하면 콧대와 목대가 벽창호같아 늘 천상천하유아독존의 게지레한 모습이 보이는 양상이다.늘 허심해야고 남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버릇처럼 되뇌이면서도 고쳤나보면 불변의 원모양이다.

인생길을 자기 두 발로 걸어야 할 것은 인간의 피치 못할 숙명이다.그 친구는 이 세상을 제대로 살고 있는지 정확히 판단하고 확실히 자기는 푼수가 모자란다는 명철한 자아인식이 있어야 한다.그래도 오늘 아무리 추하더라도 일신을 끊임없이 담금질하듯 정화한다면 모습이 약간이라도 곱게 달라질 것이다.막연히 뭘 바라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것 하나라도 실천해야 할 것이다.

올농사도 헛농사라며 긴 숨을 내쉬는 그에게는 설익은 꿈의 환영이 상심을 자초한 장본인이리라.이젠 무가내로 인생의 모년을 걸으면서 만각(晩覺)의 아쉬움도 있을 것이지만 전심전력이란 의지를 살리고 무언가 희망을 품고 있어야 한다.

허나 욕심은 잔뜩해 퍼렇게 살았어도 인젠 정수리가 듬성드뭇하고 귀밑머리에 흰눈색이 비끼는데 아랫다리마저 늘크데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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