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내가 거리에 나서기만 하면 사람들은 자꾸 자꾸 나를 쳐다본다. 그것은 나의 용모가 예쁘거나 옷차림이 눈부셔가 아니라 바로 절뚝거리는 걸음걸이 때문이다. 나를 보는 눈길 속에는 분명 동정과 이해가 다분한데도 나는 어쩐지 그 눈길이 싫었다. 왜냐하면 외모의 드러난 결함으로 해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게 되는데 그 심정이 좋을 리 만무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또 대수롭지 않은 듯 활개 치며 걷는다. 아무튼 절뚝대는 걸음이라도 그 누가 대신 걸을 수 없지 않은가! 그러나 한때 나는 자신의 처지를 두고 몹시도 비감했었다. 길을 걷다가도 그 누가 쳐다보면 곧 그 자리에 굳어져버렸고 어떤 날에는 진종일 두문불출했다. 또 거리에 나서면 남들의 온전한 걸음걸이를 그토록 오래오래 부럽게 바라보기도 했다.  몇 번인지 딱히 기억은 못하나 나도 뾰족구두 신고 꼬리치마 입고 버들가지마냥 한들거리며 걸었다. 하지만 그것이 꿈이었을 때 나의 마음은 한없이 애달팠고 가슴 저린 순간이었다.  나는 울음 섞인 생의 언어로 얼룩진 운명을 탓하였다. 많고 많은 꿈 중에서 하필이면 이 같은 꿈을 꿀 건 뭐냐고 자신을 호되게 책망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꿈이 아니라 현실이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 꿈이 영영 사라졌다. 나는 애써 구중천에 날려 보냈다. 맹목적인 환상추구와 허식은 실제적인 미가 아님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물론 사람다다 미를 추구하기에 그토록 신경을 써가면서 외모를 다듬고 가꾸고 있다. 이것은 인간의 본능이고 욕구이니 탓할 바가 아니다. 나는 비록 외직미를 잃었지만 개의치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잃은 대신 몇 갑절 되는 보귀한 것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보람차고 실제적인 아름다운 삶을 가꾸는 속에서 진정한 미를 창조하기 때문이다.  이 철리를 깨닫는 순간 나는 문뜩 진실한 자신 그리고 날 따라 성숙되면서 넓어지는 자기마당 한복판에 하나의 투명한 신념이 굳어지면서 좁은 가슴을 불태우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윤택스러운 삶을 위해 나는 이 시각도 그 무엇을 쓰고 있다. 단순히 쓰기위해 쓰는 것이 아니고 되는대로 쓰는 것도 아니다. 그 속에는 생에 대한 의욕이 움트고 있으며 추억도 미소도 무성해지면서 종시 늙을 줄 모르는 생의 노래가 엮어지고 있다. 인간의 미는 단지 사뿐대는 걸음걸이와 아름다운 용모에 있는 것이 아니고 사지가 멀쩡한데 있는 것은 더구나 아니다. 외모의 미는 사람들에게 한순간의 현란한 감을 주지만 내적 미는 영원한 것이다.  한낱 연약한 마음의 포로가 되지 말고 그어 떤 역경도 이겨낼 수 있는 강자의 마음으로 보이지 않은 생의 악장에다 심금을 울리는 악보를 써가려는 굳은 신념이 내 마음 창가에 뚜렷이 피어나는 길에 나의 미가 동반된다. 연변 안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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