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정순 구로남초등학교 이중언어강사
[서울=동북아신문]나는 며칠 전에 대만작가 랑슈린이 쓴 동화책 ‘의자나무’를 읽었다.

책의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거인 에이트의 꽃밭에는 의자처럼 생긴 이상한 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나무는 제멋대로에다 자기밖에 몰랐다. 언제나 목을 쭉 빼고 있는 걸 좋아해서 목만 길게 늘어난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무는 새들이 떠드는 게 싫어서 새들이 집을 지을 수 없게 가지도 없이 잎사귀 몇 개만 달고 있었다.

나무는 벌이나 나비가 놀러오는 것도 싫어서 꽃에서는 향기도 나지 않았다.

나무 열매는 모두가 잠든 한밤중에 열렸다가 아침이면 모두 떨어져 버렸다.

나무 몸통은 미끌미끌 해서 아이들이 올라와 놀 수 없었다.

가지도 잎도 없는 나무는 그늘도 없어 아무도 쉴 수가 없었다.

자기밖에 모르는 나무를 동물들은 좋아하지 않았다.

나무는 늘 외톨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거인 에이트가 산책을 하다가 의자 모양을 한 이 나무에 걸터앉아 쉬게 된다. 에이트는 “아, 너에게 앉으니 정말 기분이 좋아”라고 말한다.

난생 처음으로 칭찬을 들은 나무는 간지러운 것 같기도 하고 부끄러운 것 같기도 한 뭐라 말할 수 없는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에이트가 무거워 견딜 수 없었지만 꾹 참았다.

그 후 에이트는 자주 찾아와서 상냥하게 말을 걸기도 하고 노래를 불러주기도 하였다.

나무는 햇볕으로부터 에이트를 지켜주려고 조금씩 가지를 키웠고 초록 잎들도 무성해졌다.

봄이 되자 많은 꽃도 피웠다. 새들과 다람쥐들도 놀러왔다. 나무는 새들의 노래를 좋아하게 되었고 동물들을 친절하게 반겨 맞았다.

그러자 꽃밭에 사는 모든 친구들이 나무를 사랑하게 되었다.

딱따구리는 벌레가 파먹지 않는지 자주 살펴보고, 개미와 지렁이는 나무가 더 멀리까지 뿌리를 내릴 수 있게 흙을 부드럽게 해 주었다.

모두에게 행복을 주는 의자나무는 에이트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되었다. 푸른 잎이 무성한 나무아래는 가장 시원한 곳이 되었다.

 
의자나무가 변화한 것은 진심어린 칭찬과 사랑때문이었다.

반전이 있는 재미있는 동화였다. 한 번 읽고 또 한 번 읽었다.

누군가 자기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인정해주고 칭찬해줄 때 나무도 무성하게 자란다. 사람처럼.

내가 가르치는 학생 중에 3학년에 다니는 김준이라는 개구쟁이가 있었다. 학교에 등교할 때면 꼭 장난감을 손에 들고 온다. 수업시간에도 책상 위에 올려놓고 가지고 논다. 넣으라고 하면 또 책상 밑에서 만지작거린다. 율동을 할 때면 이상한 동작을 하거나 여학생들을 괴롭힌다. 그러면 안 된다고 타이르면 소리를 지르고 밖으로 달아난다.

어느 날, 신체 각 부위 명칭을 소개할 때 그림을 그리라고 했더니 아주 잘 그렸다. 그래서 김준의 그림을 가지고 설명했다. 그러자 준이는 그날 수업시간 내내 집중을 잘하였다.

또 어느 날, 내가 좀 아파서 며칠 학교에 출근 못하다가 나갔더니 준이가 조심스레 다가와서 “선생님 이제 다 나았어요? 괜찮아요?” 라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묻는 것이었다. 내가 칠판에 준비물을 힘겹게 붙이는 것을 보고는 자기가 도와주겠다고 하면서 의자위에 올라서서 붙였다. 전체 학생들 앞에서 칭찬했더니 쑥스러워 하면서도 자랑스러워하는 것이었다. 준이는 그 후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도 수업시간만 되면 가방에 집어넣고 열심히 공부하는 모범생이 되었다.

어른도 마찬가지다. 돌이켜 보니 나도 처음엔 못생긴 의자나무였다.

나의 성장에 영향을 준 3명의 거인 에이트가 있었다.

첫 번째 에이트는 아버지였다.

의사인 아버지는 항상 교훈적인 이야기로 배움을 격려해주셨다. 공부하기 싫어할 때면 당나라 유명한 시인 이백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시면서 “쇠로 된 공이도 갈면 바늘이 된다. 꾸준히 노력하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격려해주셨다. 아버지는 텃밭에 다양한 약초를 재배하였다. 낮에는 환자를 진료하고 늦은 밤까지 의학서적을 읽고 연구하시던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아버지가 보물단지라도 있는 것처럼 항상 자물쇠를 잠가놓던 장롱을 열어봤더니 의학서적과 처방전과 청진기와 침구들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의학책 밑에는 동네 사람들 앞에서 자랑하던 내가 초등학교시절에 타온 ‘3호학생(三好學生, 德 知 體가 우수한 학생)’ 상장과 우수학생 성적이 적혀있는 통신부가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그게 뭐 보물인양 그 속에 간직하고 있다니, 아버지의 사랑에 가슴이 뭉클하면서 눈물이 왈칵 솟구쳤다.

지금도 나는 어지간히 어려운 일이 있어도 열심히 하면 못해낼 일이 없다던 아버지의 말씀이 생각나서 여간해서는 힘들다는 말을 입 밖에 내지 않는다.

두 번째 에이트는 초등학교시절에 조선어문을 가르치던 안진영 선생님이시다.

내가 조선어문 교과서에 실린 글을 읽을 때 주인공의 감정을 잘 표현해서 읽었더니 배역의 감정을 잘 살려 읽었다며 이야기대회에 추천하여 동화구연을 하게하고 대상을 주셨다. 작문을 쓰면 글쓰기에 소질이 있다면서 칠판보에 써주시고 학교방송에도 내고 신문, 잡지에도 내주셨다. 이것이 동력이 되어 지금 기자로 작가로 활동하게 된 것 같다.

세 번째 에이트는 한국에서 만난 서울 중앙대학교사범대학부속초등학교(서울중대부초) 이점영 교장선생님이시다.

2004년에 고국인 한국에 대한 호기심을 안고 서울에 왔다. 그 이듬해 이력서를 써들고 무작정 찾아가 면접을 본 학교가 서울중대부초다. 며칠 후에 방과후중국어강사 합격통지가 왔다.

그때 수업하던 교실 담임선생이 바로 이점영 선생님이시다. 수업이 끝나면 개구쟁이 친구들을 꼭 안아주시면서 “착한 홍준이 다음시간부터는 잘 할 거지” 하고 약속을 받곤 하셨다.

나한테는 “선생님은 애들을 사랑하고 수업도 재밌게 하는 유명한 강사이십니다”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연변조선족 특유의 억양과 사투리가 튀어나오는데 그때는 말투도 어색하고 수업 기교도 부족한 나에게 항상 용기를 북돋아 주시고 희망을 주셨다.

기대부응효과라고 나도 더 잘하려고 노력하였다. 나는 매체활용을 잘하려고 짬짬이 시간을 내서 컴퓨터를 배우고 자격증을 땄다. 학생들의 특성에 맞게 중국어를 가르치려고 한국방송대학교 중어중문학과에 입학하여 4년간 공부를 하여 졸업하였다. 또 더 나은 교사의 모습을 꿈꾸면서 작년에는 서울교육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하여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중대부초는 사립학교라 학생과 학부모들의 기대도 컸다. 나는 매 수업마다 수업준비를 철저히 하고 준비물을 챙기고 학생들이 동요를 부르면서 활동 속에서 즐겁게 회화를 익히도록 하였다. 중국어회화수업은 학생과 학부모들이 인정하고 좋아하는 수업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나에게 나를 오늘의 멋진 의자나무로 키워준 에이트가 있는 것처럼 이제 나도 누군가의 에이트가 되어 내가 받은 것을 돌려주고 싶다.

나를 기다리는 의자나무들에게 아낌없는 칭찬과 사랑을 주는 에이트로 거듭나겠다고 다짐하면서 오늘도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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