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題 한심한 세상’

▲ 중국동포 소설가 김노
 [서울=동북아신문]“가만 있어봐, 아직 안됐어”

 남편이 다소 미안한 말투로 그녀에게 나직이 말한다. 그녀는 마냥 누워 있기가 불편해 남편을 밀치며 윗몸을 일으킨다. 차갑다고 말하려다가 그녀는 그만 둔다. 골판지로 깐 시멘트 바닥은 냉기로 싸늘하다. 벗은 엉덩이가 점점 시려온다. 한낮은 여름처럼 더웠는데 밤공기가 제법 차다. 백로가 지났으니까 계절로는 가을이다. 어둠속에서 그들 부부는 잠시 가만히 있다. 이윽고 그녀는 남편이 손잡아 이끄는 대로 배꼽 밑의 ‘그곳’에 손을 가져다댄다. 어쩐 일로 일을 치룰 ‘도구’가 아직도 말랑하다. 그녀는 남편의 ‘그것’을 달래듯이 살살 어루만진다. 이렇게까지 해서 성교를 해야 하나 싶어 그녀는 갑자기 서글퍼진다. 앞으로는 돈을 쓰더라도 여관 같은 델 가야 하나?... 그녀는 생각한다. 어쨌거나 빚만 다 갚으면 방부터 먼저 얻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월례(月禮) 행사처럼 그녀는 한 달에 한번 꼴로 남편과 만난다. 남편은 다른 일군들과 함께 공사장 함바집에서 지낸다. 철새처럼 여기저기 일자리를 따라 옮기지만 그것조차 지금은 하던 일이 끊긴 상태다. 담당 오야지가 IMF를 핑계 대며 일당을 턱없이 깎더니 그나마 한 달에 보름은 일거리가 없어 멍청히 놀아야한다. 일찍 나온 조선족들은 서울에다 방 얻어놓고 출퇴근하며 맘 편히 지내지만 남편처럼 한국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은 방 얻을 엄두도 못 내고 여럿이 함께 공사장에서 합숙한다. 게다가 일할 때는 식사 제공이 되여 먹는 걱정은 없지만 일이 없을 때는 다들 스스로 삼시세끼에 신경써야하니 귀찮은 나머지 거의 모두가 라면이나 식빵으로 간단히 해결한다. 이처럼 먹는 게 부실하다보니 차라리 일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고 그래서 노는 게 이들에겐 더 고역이다.  이곳은 서울 외곽의 어느 아파트 신축 공사장이다. 남편이 일하는 곳으로 세워놓은 건물마다 겨우 외양만 갖춰져 있을 뿐 완공되기까지는 내년 이맘때가 돼야 한단다. 창문도 없는 어느 후미진 건물 2층에 그들 부부가 남몰래 들어와 있다. 남편이 1층엔 먼지가 많다고 해서 2층으로 올라와 미리 준비해둔 깨끗한 라면 박스와 신문으로 그들만의 사랑공간을 만들었다. 대낮에는 괜찮을지 모르지만 밤이 되니 이곳은 을씨년스럽다 못해 스산하다. 가끔씩 알 수 없는 소리들로 음산한 분위기마저 자아낸다. 오늘따라 모든 소리들에 그녀는 몹시도 예민해진다.  사방 뚫린 공간으로부터 바람들이 수시로 들락거린다. 어쩌다 회오리치듯 세찬 바람이 불어 닥칠 때면 포장된 건축자재들에서 찢긴 비닐들이 마구 나부끼며 아우성을 친다. 그때마다 그녀는 시커먼 물체로 한쪽 벽에 버티고 서 있는 건축자재들 틈에 숨은 귀신이라도 있어 금방이라도 뛰쳐나올 것 같아 온몸이 경직되며 움츠러들었다.  그녀는 뒤늦게 그 소리들의 실체를 알면서도 무서웠다.  “오늘은 점심 먹자마자 시내에 볼 일 보러 간다고 말하고 나와 이곳에서 몰래 볼일 보고... 그리고 같이 시간도 보낼 겸 시내 구경하다가 때맞춰 일하는 집으로 돌아가면 되는데...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오늘따라 썰렁하기도 하고 괜히 좀 무섭기도 하고...” 그녀가 중얼거리듯 나직이 말하자 “새삼스럽게... 뭐가 무서워... 아마 지금쯤 함바 친구들이 재미있게 지켜보고 있을 걸... 추워 못 견디겠으면 당장 내 배위로 올라와! 내가 안아줄게...” 남편이 그녀를 당기면서 능글맞게 웃기까지 한다. 모처럼 남편의 농담에 그녀는 다소 무서움이 가셔지며 마음이 한결 진정되는 듯했다. 그녀는 아내가 있는 함바친구들 모두다 자신처럼 아내들이 만나러 오는 날이면 이런 빈 건물들을 찾아 적당히 부부애를 나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곳으로부터 100m 떨어진 곳에 남편의 숙소가 있다. 모처럼 만난 이들 부부지만 지출이 두려워 즐겁게 시내구경할 엄두도 못 내고 한낮에도 죽 비좁은 숙소에 죽치고 있다가 밤이 어둡기를 기다려 그들은 나왔다.  점심엔 그녀가 사간 만두로 만두 국을 끓여 숙소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즐겁게 먹었다. 그들은 재미로 밤새 마작을 놀았다며 그녀 보는 앞에 내내 졸린 눈으로 이야기를 하며 앉았다가 누웠다가 자유스레 TV를 보다가 저녁을 먹기 바쁘게 하나 둘 쓰러져 잤다.  남편은 아내의 손놀림에 서서히 아랫도리에 힘이 모아지 자 거칠고 찬 손으로 그녀 젖가슴을 마구 애무하기 시작한다.  “아파! 좀 살살 만져, 현관문 손잡이도 아닌데 그렇게 잡아당기면 어떻해!” 그녀는 웃었지만 정작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다. 드디어 남편의 ‘그것’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녀는 손을 빼고 기회를 놓칠세라 얼른 바지를 내려 찬 골판지 바닥에 다시 드러눕는다. 그리고 머리는 쳐들고 양쪽 팔로 바닥을 짚은 채 남편이 들어오기 좋게끔 허벅지도 양쪽으로 조금 벌려준다. 이윽고 남편이 무릎을 꿇어 그녀 하반신에 몸을 바짝 밀착시키더니 바로 찌르듯이 돌진한다...  그러나 시작이 반이라는데 어쩐 일로 남편의 시작은 곧 끝이었다. 전에 없던 일이였다. 사랑의 행위가 뜻밖으로 너무나 빨리 끝나버렸다. 솔직히 괜찮았다. 차가운 냉기 때문인지 그녀는 전과 달리 아랫도리가 자꾸 움츠려들면서 사랑을 빨리 끝냈으면 바랬었다. 이 같은 초조함이 어쩌면 그를 다급하게 만들지 않았나 싶어 오히려 그녀가 살짝 미안한 마음이다.  그녀는 못내 아쉬워하는 남편의 마음을 느끼며 서둘러 바지를 올려 입는다. 그녀는 남편 뒤를 쫒아 건물 속으로부터 재빨리 빠져 나온다. 들어갈 땐 조심조심 들어갔으나 나올 땐 어둠이 눈에 익어서인지 발걸음이 한결 쉽다. 들어갈 때와 달리 장애물들이 쉽게 눈에 띄었다.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온다. 바깥 공기가 웬일인지 산소 같은 느낌이다.  * 그들의 사랑 장소는 늘 건축현장 건물속이였다. 그러나 한번은 그녀가 현재 가정부로 일하는 아파트집 옥상에서 이뤄졌다. 혼자 사는 36살의 주인여자가 늙은 애인과 함께 2박3일 예정으로 어디론가 여행을 떠났을 때였다. 나뭇잎이 무성한 7월의 그날 밤은 지금처럼 춥지 않고 훈훈했다. 어두워질 무렵 그녀는 임무를 부여받은 첩보원처럼 가슴을 두근거리며 아파트 문을 나섰다.  남편과 ‘접선’을 하기 위해 근처 약속장소인 버스정류장에 도착해 그녀는 주위를 살피며 전혀 모르는 사람 대하듯 승객으로 가장해 한쪽에 멀뚱히 서있는 남편에게로 다가가 빠른 속도로 나직이 속삭였다. 20미터 사이를 두고 따라 오되 엘리베이터는 절대 타지 말고 조용히 계단을 걸어서 꼭대기 층까지 올라오라고 했다. 계단 끝까지 올라오면 옥상 문이 나타나는데 문이 열려있어 바로 밀고 들어오면 된다고 했다. 엘리베이터 천장에 감시용 CCTV가 설치돼있어 뜻밖의 사고가 생길 경우 의심의 대상이 될까봐 서였다.  이 같은 신변보안대책은 사전에 철저히 계획 된 것은 아니고 긴장 속에 문득 떠오른 그녀만의 지혜였다.  무엇보다 주인여자한테 남편이 없다고 말한 부담감 때문이다. 남편이 있는 사람은 절대 가정부로 쓰지 않겠다는 주인여자의 말에 어쩔 수 없이 그녀가 거짓말을 하게 된 계기다. 들키면 일이 크게 번질 우려가 있는 만큼 조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옥상 어둠이 짙은 환풍구 뒤쪽에 그녀가 일회용으로 비밀스런 보금자리를 만들어놓았다. 그곳에서 외간 남자와 밀회하듯 그녀는 두근거리며 남편을 맞아들였다. 그날 밤 수만은 별들이 호기심을 가진 듯 깜빡깜빡 대며 그들의 사랑행위를 지켜보았다.  * 그녀가 탄 엘리베이터가 멀미 같은 현기증을 일으키며 붕 뜬다. 그사이 오르고 내리는 사람이 없어서 단숨에 15층 꼭대기에 오른 엘리베이터는 ‘땡’하는 음향을 울리며 흔들리듯 멈추어 섰다.  쇼핑백을 놓칠세라 다시 한 번 움켜쥐며 그녀는 서둘러 벌어진 엘리베이터 문으로부터 빠져나온다. 조금 전 어디선가 웃음소리가 난다싶었는데 올라와보니 바로 주인여자다. 넘어갈 듯 간드러진 그 웃음소리가 현관문밖으로까지 흘러 나왔다. 또 누군가와 쉐리 이야기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전생에 쉐리와 어떤 인연의 관계라도 있는지 주인여자는 쉐리 말만 나오면 저렇게 웃고 난리다.  지갑에서 열쇠를 꺼내는데 어느새 쉐리가 나와 캉캉 짖는다. 인간의4배나 먼 거리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게 개라더니 발걸음소리를 아무리 조용히 해도 쉐리는 귀신같이 알아듣고 쫓아 나왔다.  현관문을 열자 아닌 게 아니라 쉐리가 기다렸다는 듯 엉덩이를 대고 흔든다. ‘호들갑은, 잠깐 슈퍼에 다녀온 걸 가지고’ 그녀는 마음과 달리 정작 입으로는 “그래 반갑다 쉐리야! 그동안 잘 있었어?” 라며 주인여자를 의식해서 반겨 준다.  그녀는 평상시 쉐리가 싫지만 이럴 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덩달아 반가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가끔 안아주고 싶어 손이라도 내밀면 쉐리가 물듯하며 날렵히 몸을 빼 달아난다. 그래놓곤 날 잡아봐라 하는 식으로 멈춰 서서 놀리듯 그녀를 쳐다본다. 주인여자를 닮았는지 개조차도 그녀를 하인 취급하듯 깔보는 것 같다. 고용살이하는 주제에 감히 지체 높은 나를 건드려? 하는 듯 지금도 마찬가지로 언제 너랑 반겼나싶게 세침떼며 안방으로 쪼르르 달려간다. 그래서 그녀가 더 미워하는지도 모른다.  서운한 마음에 괜히 화가 동해 ‘개새끼!’ 그녀는 주인여자 못 듣게 잇새로 나직이 내뱉는다. 당초 멋모르고 주인여자 보는 앞에서 개새끼라 욕했다가 혼이 났었다. “아줌마! 개새끼가 뭐예요? 몰상식하게. 쟤는 개가 아니라 쉐리라구요. 자식 같고 내 식군데... 함부로 대하지 마세요! 쉐리가 얼마나 영리한데, 아이큐가 웬만한 초등학생이상 수준인거 모르죠? 개로 알고 무시했다간 쟤한테 큰 코 다쳐요. 앞으로 조심 하세요!” ‘쳇! 개는 어디까지나 개지. 지 놈이 아무리 영리하고 뭐하대도 사람만 하겠어!’ 무엇보다 불쾌한 것은 아무리 부리는 입장이라도 무시 못 할 나이차가 있는데(7년차) 무슨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어린아이 취급하듯 막 대하는 태도라니, 아닌 말로 개를 개새끼라고 욕 좀 했기로서니 그렇게까지 화를 낼 수 있을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행히 가볍게 욕했으니 망정이지 주인여자 보는 앞에서 때리기라도 했다간 왜 ‘보물’같은 내 새끼를 때렸느냐며 게거품을 물고 달려들 것이 뻔했다. 충분히 그럴 기세였다. 조금만 젊었어도, 아니 허리병만 아니라면, 그녀는 진작에 이집을 떠나갔을 것이다. 그녀의 짐작대로 주인여자는 쉐리 이야기로 한창 전화중이였다. “글쎄 TV속에 전화벨이 울리니까 요것이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금방 아니라는 듯 잠자코 있지 뭐야. 진짜와 가짜를 딱딱 구별한다니까. 신기해 죽겠어... 그럼 귀엽구 말구, 요놈 재롱마저 없다면 삭막해서 이 세상을 어떻게 살어. 참으로 늦둥이 하나 잘 둔거지 뭐... 여하튼 그날 우리 팀 다 모이는 거 알지... 미쉘한테도 안부 전해 주고. 아니 옆에서 기다려? 얼른 바꿔 줘. 오, 미쉘 잘 있쩠어? 오야 오야, 엄마 말 잘 듣고 잘 놀아, 다음에 보자, 안녕, 그래 알았다. 잠깐만, 쉐리야! 어서 와 전화 받어, 미쉘이 널 찾는다. 안부 전해!” 주인여자는 쉐리가 잘 듣게끔 쉐리 귓가에 전화기를 바짝 가져다 대주며 “어서 인사 해, 안녕하시냐고 인사해봐...”  그리고 한손으로 쉐리가 딴전부릴까봐 부드러운 쉐리 목덜미를 연신 쓰다듬어 준다. 곧 이어 뭔가 알아들었다는 듯 쉐리가 캉캉 짖는다. 그녀로서는 개들의 세상을 이해할 순 없지만 저쪽에서 개가 짖으니까 본능적으로 쉐리가 따라서 짖는 것 같은데 주인여자는 쉐리가 미쉘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반갑다는 반응을 한다고 했다. 나름대로 키우면서 파악이 되겠지만 그녀가 보기에는 대부분 황당하고 매사에 자기 멋대로 판단하며 쉐리의 대변인 노릇을 즐겼다.  주인여자는 다시 쉐리 얘기로 약 20분간 더 통화하고 나서야 전화를 끊었다.  이처럼 하루에 개 때문만도 오가는 전화가 그녀가 알기로도 십여 통은 되는 것 같다. 누구네 집개가 아프다거나 또 누구네 집개가 어쨌다든지... 심지어 선거 때 후보들의 정책 방향이나 비전은 고려않고 무려 5마리의 개를 키운다는 모 애견 정치인에게 한 표를 던졌다고 했다.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또한 자랑하기를 근처 ‘멍멍이 슈퍼’ 집에 기르던 개를 잃어버렸을 때도 별반 왕래가 없으면서 단지 슈퍼집의 상호가 마음에 들어 일손이 바쁜 그 집식구들을 대신해 손수 전단지를 만들어 며칠씩을 동네 전신주에다 붙이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 마디로 개 팔자가 상팔자라더니 주인여자야말로 완전 개 팔자였다. 개를 위해서 사는 삶 처럼 주인여자의 일상은 늘 개와 함께다. 다니는 친구들도 전부 개 데린 친구들뿐이다. 조금 전 전화에서 우리 팀 어쩌고저쩌고 한말도 단순한 친목계 모임이 아닌 완전 개모임이다. 개를 미친 듯이 좋아하는 이른바 개 마니아들로 친목 팀이 이루어졌으며 서로를 부를 때도 사람이 아닌 개 이름들로 호칭하였다. 그 이름들도 들어보면 국제결혼을 해서 마치 외국자식이라도 낳은 것처럼 댄디, 샤니, 다니엘, 쥬비, 영국 왕세자비의 이름 다이애나라 부르는 것도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품안에 개를 안고 있거나 캥거루처럼 주머니 속에 담고 다닌다. “아줌마!” 안방에서 주인여자가 부른다. 그녀는 쇼핑한 물건들을 정리하다말고 안방 문지방으로 가 선다. 한낮이 다 됐는데도 주인여자는 아직 잠옷차림이다. 게으름이 뚝뚝 떨어지는 몸짓으로 연신 하품을 해댄다. “점심은 있다 먹을 테니 우선 녹차나 타세요. 이틀 있으면 무슨 날인지 알지요? 할 일들 끝내고 그릇들 좀 챙겨야겠어요. 그날 친목 회원들 말고도 친정식구들도 온댔으니까. 내일은 장봐 음식거리 준비해야 되고... 미리미리 해놔야 그날 덜 바쁠 거 아니에요?” “알았어요.” 그녀는 한숨 쉬듯 대답하고 부엌으로 간다. 가스 불을 당겨 물주전자를 올려놓는다. 주인여자는 녹차가 여러모로 좋다고 방송에서 떠드니까 요즘은 계속 녹차만 마시지만 어느 때는 둥글레차 또는 뽕뿌리차, 산마차, 칡차... 무릇 건강에 좋다는 것은 뭐든 마다않고 유행에 쫓아 마신다. 본인만 마시는 게 아니라 한결같이 그녀에게도 권한다. 물론 오리지널 진한 것은 본인이 마시고, 이른바 재탕한 끝물이 그녀의 몫이다. 늘 버리면 아깝다는 태도여서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주인여자 보는 앞에서 생수 마시듯 마셔버린다.  물이 끓자 그녀는 도자기로 된 주전자에 녹차를 탄다. 녹차가 우러나기를 잠깐 기다려 그녀는 쟁반에 받쳐서 안방으로 가져간다. 쉐리와 공 구르기 놀이를 하다가 멈추고 “우리애기 것두 갖다 주세요. 우유 말고 요구르트로.” 주인여자가 지시하듯 말한다. 그녀는 다시 냉장고로 가서 요구르트 하나를 꺼낸다. 그것을 젖꼭지가 달린 젖병에다 부어 다시 안방의 주인여자한테 건넨다. 촐싹대던 쉐리가 얼씨구나 하고 덥석 주인여자 품에 안긴다. 머리를 쳐들고 젖꼭지를 쪽쪽 빠는 모습은 누가 봐도 애기 같다. 주인여자는 주인답게 가만히 앉아서 그녀의 시중을 받길 좋아한다. 그래서 그녀는 하루 종일 수도 없이 주인이 시키는 대로 집안을 왔다갔다해야한다. 그녀는 서둘러 다용도실로 내려간다. 거기엔 꽃무늬가 화려한 담요가 댓자 다라에 핑크빛을 띠고 담겨 있다. 아침에 쉐리가 오줌을 배설해서 빨랫감으로 내놓은 것인데 담요마저 주인여자는 손세탁 할 것을 원했다.  그러잖아도 세탁기에 넣으면 빨래가 상하고 망가진다고 해서 그녀는 모든 세탁물을 거의 손세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담요만큼은 세탁기에 넣길 바랐지만 순모라 안 된다면서 주인여자는 찬물에 울 샴푸 풀어 살살 씻어야 한다고 주의를 주었다. 그녀는 다라에 두 손을 담그고 담요를 주물럭주물럭 비볐다. 미끈한 게 비눗기가 넉넉하다. 어떻게 씻으면 좋을지 잠시 생각하다가 그녀는 양손으로 담요를 집어 올렸다. 세제 물을 흠뻑 먹은 담요는 전체가 들리지도 않았는데 몹시 처지고 무거웠다. 그대로 내려놓기 바쁘게 철썩 소리를 내며 비누물이 사방으로 튄다. 이처럼 부피가 큰 담요는 세탁기에 넣어서 돌리면 쉬울 텐데... 그녀는 울컥 짜증이 치솟는다.  따지고 보면 항상 개 때문에 바빠지고 집안 또한 분주하다. 쉐리 때문에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허비할 때가 있었다. 그렇지만 당초 쉐리 때문에 안 써도 될 가정부를 쓴다는 데는 그녀로서는 달리 할 말이 없다.  그녀는 갑자기 슬리퍼를 벗고 다라 속에 발을 담근다. 문득 옛날 시골에서 흙 반죽할 때 발로 밟던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이쪽저쪽 돌며 담요를 밟아보니 이런 식으로 씻어도 괜찮을 것 같다. 두 팔로는 도저히 힘이 부치니 말이다. 주인여자가 알면 기겁 질겁할 테지만 그녀는 눈치껏 요량하기로 한다. 사실 찌든 때도 아닌 쉐리의 오줌기만 씻어내면 되는 것이다.  쉐리는 다 큰 아이처럼 꼭 화장실에 가서 대소변을 보지만 뭔가 기분이 뒤틀린다거나 주인여자가 집을 오래 비울 경우, 반항하듯 아무데나 대소변을 내질렀다. 오늘도 침대위에서 주인여자와 까불다가 핸드폰을 바닥에 떨어뜨려 주인여자로부터 조금 꾸지람을 듣자 바로 깔고 있던 담요위에 오줌을 싼 것이다. 고약한 버릇이었다. 짝짝 소리나게 비눗물 속에서 발장난 치듯 담요를 밟던 그녀는 어떤 기척에 재빨리 다라로부터 발을 뺀다. 주인인줄 알았는데 나지막한 쉐리다. 항상 염탐꾼처럼 살피는 듯한 눈초리로 그녀에게 다가온다.  “이놈의 개새끼! 놀랬잖아.” 그녀는 쉐리를 향해 주먹을 흔들며 나직이 속삭인다. 이어 숨죽인 목소리로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인줄 알어? 다 너 때문이야. 왜 쉬했어?” 그녀는 담요를 밟다말고 손에 물을 묻혀 장난치듯 쉐리를 향해 튕긴다. 쉐리는 눈을 깜빡거리면서도 아랑곳 않고 다용도실 바닥으로 막 내려오려고 한다. “저리 가! 또 저지리나 할라고? 심심해도 니랑 안 놀아, 넌 개고 난 사람이야.” 그녀는 조금 전보다 더 많은 물방울을 튕겨댔다. 그러면서 탄식하듯 한마디 덧붙인다. "사람이면 뭐하나, 니놈이 나보다 낫다." 말티즈 종으로 털이 흰색인 쉐리는 잠깐 노려보는 듯 서 있다가, 몸을 후르르 털더니 홱 돌아서서 나간다. “재간 있으면 니 엄마한테 가서 일러라, 일러!” 그녀는 아이처럼 입을 삐죽거리며 쉐리쪽을 보려고 고개를 쭉 뺀다. 그새 안 보인다. 안방으로 사라진 모양이다. 저게 정말로 가서 이를까? 하긴 주인여자 말마따나 쉐리가 개 같지 않을 때도 있다. 어떨 땐 사람처럼 아주 교활하기까지 했다. 쉐리는 주인여자가 없을 때는 그녀의 말을 잘 듣는 척 점잖을 빼다가 주인여자가 나타나기라도 하면 보복하듯 잽싸게 달려들어 짖으며 그녀를 깨물고 할퀴고 하였다. 실제로 그런 날은 거의가 쉐리를 나무란 날이거나 혼내준 날이었다. 자세히 보면 팔목과 다리에 작은 상처자국들이 아직도 희미하게 남아 있다. 언제 한번은 심술부리듯 쉐리가 그녀 방에 들어가 하필이면 이불위에다 똥오줌을 질펀히 싸놓아서, ‘그래 마침 잘됐다. 오늘 너 한번 혼나봐라!’  신문지를 말아 도망치는 쉐리를 끝까지 쫓아가서 엉덩이를 세게 여러 번 후려쳤더니, 당장 아파 죽겠다는 듯 낑낑 대며 궁둥이를 내리고 뒷다리를 질질 끌며 절름거렸다. 당황한 나머지, 이거 진짜 사고를 낸 것이 아닌가? 당장 쫓겨나게 생겼다고 걱정을 태산같이 하고 있는데, 그새 인기척소리가 났던지 감지하고 부리나케 문께로 달려가서 주인여자를 반기는 데는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제 절름거렸나싶게 두 다리가 말짱했던 것이다.  ‘그러면 그렇지 나무작대기도 아닌 종이인데...’ 그녀는 쉐리의 소행에 너무도 어이없어 엉겁결에 주인여자한테 자초지종을 말하니 “거봐요, 내가 뭐랬어요? 쟤가 사람만큼 영리하다고 그랬죠? 동정 받고 싶어서 연극적으로 절뚝거린 거예요. 엄살 부리는 거 몰랐죠?...” 신이 난 듯 주인여자는 반갑다고 들뛰는 쉐리에게 “오, 우리 아기, 너 엄살 부렸쩌? 아니야 아팠쩌? 알았어 알았다구. 이쁜 내 새끼, 엄마 많이 보고 싶었쩌요?~” 연신 쉐리와 뽀뽀하며 자식처럼 껴안고 안방으로 들어가더니 이 사실을 바로 친정언니한테 전화로 알리느라 또 한바탕 난리를 떨은 건 말할 것도 없다. 한낱 개한테는 더없이 자상하고 친절하지만 사람인 그녀한테는 쌀쌀맞고 냉정하였다. 그보다 대우가 개보다 못하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었다. 우선 먹는 것만 봐도 그랬다. 개한테는 비싼 음식들만 사다 대접하고 개다가 치즈니 쇠고기 캔 같은 간식까지 챙겨 먹이면서 그녀한테는 하루 세끼가 아깝다는 듯 점심엔 무조건 라면을 먹게 했다. 그 흔한 계란도 그녀는 눈치스러워서 마음대로 넣어 먹을 수가 없었다. 그녀가 먹는 반찬이란 것도 언제나 주인여자의 입맛에 제외된, 주로 먹다 남은 것들이 전부였다. 맛이 간 음식들을 혼자 처리하듯 꾸역꾸역 삼킬 때면, 그녀는 개도 포시랍게 (호강스레) 사는데 사람이 이 꼴인가 싶어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생각해보면 개보다도 못한 나날이었다. 그녀는 늘 사람도 아닌 개와 비교된 생활을 하다 보니 가끔은 슬퍼지고 꼭 이렇게 살아야만 하나 싶어, 까짓 거 다른 일자리를 찾아 떠나볼까 생각도 해보지만 허리 척추 병 때문에 어쩌지 못하고 지금껏 머물러 있는 중이다. 사실 여러 곳을 전전하며 일을 해보았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서 이 집만큼 쉬운 집도 없는 듯싶었다. 그 대신 월급이 턱없이 적었다. 서울에서 보통 가정부라 하면 식구 수에 따라 월급이 한 달에 80만원에서 120만원 되지만 이 집은 달랑 60만원뿐이다. 당초 그녀가 지나친 돈 욕심에 건축현장에서 일한 것부터가 무리였다. 지난날의 허리 병이 재발한 것이다. 그렇다고 중국에서처럼 맘 편히 치료 받을 수도 없는 상황이어서 그녀는 마냥 참고 견디면서 조심스레 일할 수밖에 없었다. 간간이 허리가 아플 때면 유난히 한쪽 다리까지 아프고 저려서 나중에는 심한 통증 때문에 걷기조차 불편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무심코 본 아픈 다리가 상대적으로 눈에 띄게 가늘어져 있었다. 놀란 나머지 그녀는 그때서야 안 되겠다 싶어 주변에서 알려준 서울의 한 척추전문병원을 찾았다. 담당 의사선생님께서 엑스레이 사진 상으로는 척추 4번과 5번 사이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의심이 되는데 현재로서는 MRI 사진을 더 찍어봐야 정확한 진단이 나온다고 했다. 돈이 문제였다. 자그마치 거금 60만원이 든다고 했다. 그녀는 주저 없이 바로 포기했다. 대신 주위에서 알려준 허리에 좋다는 이런저런 한약들을 많이 사먹었고 물리치료도 꾸준히 받았다. 하지만 일시적일뿐 별 호전이 없었다. 그녀는 더 이상 힘든 일은 불가능했고 몇 개월을 일손을 놓고 놀았다. 그동안 약값도 그렇지만 집세다 뭐다해서 드는 비용이 생각보다 무서운 지출이었다. 화병이 날 지경이었다. 이런 날이 계속되다간 폐인이 되는 것은 물론 거지로 나앉기 십상이었다. 그렇다고 집에 돌아갈 수도 없었다. 남들은 한국 나와 돈 벌어 떼 부자가 돼 금의환향하는데 빈손으로 돌아 갈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무엇보다 남편이 한국 사람으로부터 노무사기를 당하여 중국에서 어마어마한 빛을 진 상태였고 다시 필사적인 노력으로 한국에 나오려 하고 있을 때였다. 운명처럼 따라붙는 가난으로부터 벗어나려면 한 푼이라도 벌어야 마땅했다. 그 무렵 어느 지역 신문 구인광고란에서 지금의 일자리를 찾은 것이다. 그때 구인광고 보는 게 그녀의 유일한 일거리이자 낙이었다. ‘가정부구함. 나이제한 무 중국 조선족 대환영. 강아지를 사랑하는 분이여야 함...’ 그리고 연락처가 적혀있었다.  사실 쉽게 이집에 오게 된 것도 보수가 적다고 선뜻 오겠다는 사람이 그때까지 나타나지 않은 덕이었다. 월급은 적었지만 그녀로서는 놀기보단 백번 나을 것이었다.  그녀는 씻은 담요를 세탁기에 넣어 탈수버턴을 눌렀다. 겨우 담요 하나를 세탁했는데 온 오후를 보낸 것 같은 기분이다. 아까부터 간간이 위가 쓰리는 듯 아파왔다. 타향살이하면서 제때에 식사를 못해서인지 이 같은 아픔을 그녀는 종종 느낀다. 불쾌감이 전신으로 뻗치는 것 같다. 탈수한 담요는 의외로 가벼웠다. 그녀는 베란다로 가 건조대에 담요를 조심스레 펴 널었다. 전화벨소리가 또 울린다. “알았어, 알았어, 받는다니까. 귀여운 새끼 같으니라구.” 주인여자의 웃음소리가 또 한바탕 울린다. 처음엔 자신도 모르게 덩달아 웃었지만 이젠 아무렇지도 않을뿐더러 바로 그러한 웃음소리가 듣기가 싫다. 전화벨이 울리면 쉐리가 잽싸게 전화기로 달려가 앞발 하나를 갖다 대고 끙끙거린다. 어서 받으라는 시늉이다. 동물병원으로부터 온 전화다. 쉐리의 치아 스케링을 받으라는 안내였다. 단골로 다니는 동물병원에서 예방접종이니 구충약이니... 고객관리차원에서 수의사가 그때그때 집으로 전화해 알려준다. 기름기 있는 식품을 주로 먹이다보니 칫솔질을 해주는데도 치석이 빨리 끼는 모양이다. 주인여자는 매일매일 쉐리를 칫솔질해준다. 뿐만 아니라 사흘도리로 목욕시켜주고 일주일에 한번은 꼭 애견미용실에 데려간다. 3만원씩이나 내고 쉐리의 털을 빗질시킨다. 그리고 발톱도 다듬기고 귀청소도 손질 받는다. 주인여자는 매일같이 놀아도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는 사람이다. 늙은 애인이 가져다주는 용돈 외에도 어느 상가 지하건물의 소유자로서 정기적으로 임대료를 받고 있다. 그동안 다니는 주인여자 친구들로부터 조금씩 엿들어 알게 된 것들이다. 60대쯤으로 보이는, 옛날 같으면 할아버지라고 불릴 늙은 애인은 일주일에 한번 꼴로 이 아파트에 들른다. 주말도 아닌 꼭 주중 수요일 오후에 비밀스럽게 와서는 하루만 딱 묵고 간다. 그때만은 안방 문이 꼭 닫혀 있다. 간혹 어디를 어떻게 하는지 주인여자가 숨넘어가는 소리를 지르며 웃고 떠들 때 있다. 간지럼을 당하는 모양 같았다. 밖에 나와서도 때론 그녀의 존재를 무시하듯 부끄럼을 잊은 채 서로 애정표현에 서슴없다. 그때면 쉐리가 질투를 느끼는지 주위에서 빙빙 맴돌며 캉캉 짖고 그러다가 물듯이 달려들기도 한다. 가끔 재미삼아 쉐리를 놀리느라 둘이 안방으로 들어가서 바로 문을 닫고 쉐리를 못 들어오게 하는데 그때마다 쉐리가 끙끙앓는 소리를 내며 안방 문을 대고 긁어대면서 캉캉 짖어댄다. 그 짓이 또 귀엽다며 두 사람이 번갈아가며 안아주고 뽀뽀도 해준다. 그녀는 주인여자의 애인이 대한민국 어디에 사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사람인지 통 모른다. 물을 수도 없다. 하지만 그녀는 애인이 오면 좋다. 올 때마다 볼펜 같은 작은 선물을 받아서뿐만 아니라 주인여자의 태도가 낯설도록 부드러워 그날만은 맘 편히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주인여자는 부엌에 나와서 손수 먹을 음식을 만들기도 하고 이런저런 묻지도 않은 말도 그녀에게 들려준다. 가령 요즘엔 별로 먹은 것도 없는데(실은 주전부리를 엄청 좋아한다) 살이 찌는 것 같아 다이어트를 시작해야겠다는 둥, 단풍놀이를 올해는 설악산 말고 경주로 가봐야겠다는 둥 그러면 그녀는 이때다 싶어 청소도 대충대충 하고 할 일도 적당히 내일로 미뤄둔다. “너 나랑 연애하자는 거니? 그건 안 돼, 난 니 엄마야. 우리 쉐리 요즘 바짝 몸이 달았나봐. 색시생각이 간절한 거 보니까. 그래 엄마가 이번 생일에 참한 니 짝궁 하나 찾아줄게. 알았지? 어서 비켜. 내려가라니까...” 달래는 듯한 주인여자의 음성이 들린다. 그녀는 보지 않아도 쉐리의 짓거리를 안다. 보나마나 지금 한창 쉐리가 주인여자의 다리에 기대듯 짚고 서서 비죽이 나온 벌건 좆으로 대고 몸뚱어리를 흔들고 있을 것이다. 그동안 여러 차례 목격한 바 있다. 당초 담당 수의사가 거세수술을 권장했을 때 주인여자는 싫다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견권유린이 단순이 개를 못 짖게 하는 것만이 아니란다. 인간과 달리 전혀 본인의사를 밝힐 수 없는 상황에서 마취 맞고 거세수술을 당하는 것이니만큼 개 입장에선 본능을 무시한 강제적인 행위로밖에 볼 수 없단다. 그러므로 이 역시 견권유린에 해당이 된다며 친구들과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주인여자는 개를 천대하고 때리면 어느누구든 동물학대죄에 걸려 처벌받아 마땅하고 개고기를 먹는 위인들은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한 혐오스런 야만족에 속하므로 반드시 지구촌 땅덩어리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치를 떨었다. 이처럼 철저히 견권을 내세우고 주장하는 사람이 정작 인권엔 무심하였다. 주인여자는 그녀를 한 달에 하루만 쉬게 했다. 게다가 월급은 남보다 적게 주면서 알뜰히도 부려먹었다. 친정식구들의 세탁물도 종종 가져와서 그녀에게 씻게 한다. 애인이 있는 시간을 빼면 노는 꼴을 통 못 본다. 가만 있질 않고 내내 서서 움직이는데도 주인여자는 외출할 땐 꼭 숙제 내주듯 이것저것 일거리를 장만해서 더하도록 시킨다. 일을 빨리 하는 것도 질색이었다. 천천히 하되 꼼꼼히 해야 했다. 결벽증 또한 남달라서 날마다 구석구석 청소를 해야 한다. 특히 외출이 없 는 날이면 진공청소기마저 시끄럽다고 사용 못하게 했다. 걸레로 일일이 먼지를 닦아내야 한다. 날마다 닦아내도 먼지는 날마다 생겼다. 주인여자가 쉐리를 운동시킨답시고 운동장같이 넓은 마루에서 방방 뛰며 달리기도 하고 쉐리와 술래잡기 놀이도 벌인다. 먼지만 일으키는 게 아니라 아랫집에서 시끄럽다고 몇 번 현관문을 두들기며 항의까지 해 왔다. 늦은 점심을 먹은 주인여자는 한바탕 외출준비를 하더니 뒤늦게 쉐리를 데리고 동물병원으로 떠났다. 안방과 화장실이 늘 그랬던 것처럼 그녀가 들어가 보니 엉망이다. 벗어놓은 속옷들이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던져져 있고, 젖은 타월, 머리띠, 드라이기, 쉐리의 장난감, 용품 따위들로 잔뜩 어질러져 있다.  매번의 외출은 주인여자로서는 큰 행차다. 준비하는 데만 보통 두 시간쯤 소요 되는 것 같다.  머리를 감는다. 드라이기로 머리모양을 낸다. 공을 들여 얼굴화장을 한다. 특히 화장술이 뛰어났다. 거의 변장 수준이다. 이것저것 뭔가를 2중3중으로 덧발라 바탕을 깔아주고, 그 위에 미술가처럼 눈썹을 세밀히 그린다음 아이라인을 그리고, 눈 주위를 터치하듯 아이섀도를 세세히 바르고, 그다음 입모양에도 라인을 그린다음 립스틱을 문지르듯 바른다. 그때부터 밋밋하던 얼굴이 되살아나면서 나중에 볼 터치며 마무리를 하고 나면 그녀가 아는 주인여자의 얼굴이 아니다. 외출복도 가는 장소와 분위기에 따라 색상을 골라 맞춰 입느라 패션쇼 하듯 전신거울 앞에 서서 얼굴표정과 함께 앞뒤 돌아가며 비춰본다. 마지막으로 어른 개새끼 할 것 없이 각자 알맞은 향수도 칙칙 뿌린다. 그녀가 보기엔 아주 비경제적인 삶이였다. ‘팬티쯤은 본인이 씻을 수도 있을 텐데?’ 그녀는 주섬주섬 치우면서, ‘나 같으면 창피해서 팬티쯤은 남한테 안보이겠다.’ 라며 한심해한다. 그나저나 이틀 있으면 시끌벅적 개판이 되겠구나. 그녀는 걱정스럽다. 평소 친구 한 둘만 와도 그 개들까지 딸려 와서 서로 짖고 뛰며 난리법석인데, 게다가 그런 날이면 어른들의 잔심부름이 좀 많은가 말이다. 점심 차려라, 커피 끓여라, 과일 깎아라... 거기다 찔끔찔끔 내지른 개들의 대소변도 그녀가 별도로 치워야할 몫이다. 그녀는 생각만 해도 머리가 복잡하다. 그날 친목 팀이 빠지지 않고 다 온다면 ,일곱 사람에 일곱 마리 개, 그러니까 숫자로는 열넷이 된다. 일주일 전쯤 됐나? 주인여자가 쉐리 생일 어쩌고저쩌고 말할 때 그녀는 설마 개 생일까지 다 지낼까? 싶어 가볍게 흘려들었다. 워낙 주인여자가 쉐리를 친자식같이 예뻐하니까 농담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말투가 점점 그게 아니었다. 달력에 동그라미를 그려 표시해 놓을 만큼 정말로 쉐리 생일날에 손님들을 초대해서 생일파티를 벌인다는 것이었다. 세상 살다 참 별꼴을 다 보겠다고 기막혀 있는 그녀에게 그럼 이참에 한번 까무러쳐 보라는 듯 주인여자가 쉐리 사진 앨범이라며 꺼내들고 와서 하나하나 자랑스레 구경시키는 것이었다. 개 팔자가 어떤지 확실하게 보여주듯, 이건 쉐리의 백일사진, 이건 지난여름 피서 갔을 때... 이건... 국어대사전만큼 두꺼운 사진첩에는 주인여자 말대로 거의 개 사진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중 주인 여자가 행복한 듯 쉐리를 애기마냥 안고 찍은 활짝 웃는 모습도 있고, 쉐리 혼자 혀를 반쯤 내밀고 찍은 익살스런 표정의 독사진도 있었다. 침대에서 뒹구는 모습, 놀이터에서 그네 타는 모습, 잔디위에서 달리는 모습... 특히 돌잔치 때 찍었다는 사진이 인상적이었다. 사진 속에 큰상이 차려져있었는데 그 위에 알록달록 이름 모를 갖가지 음식들과 옷가지, 장난감들이 빼곡히 놓여있었다. 차린 돌상 중심위치에 빨간 리본으로 머리 앞부분을 바짝 묶어세운 쉐리가 환한 색깔의 옷을 입고 사람처럼 자연스레 서있는 모습이 언뜻 보면 전혀 개 같지가 않았다. 그리고 투명한 유리 같은데 아무리 봐도 뭔지 알 수 없는 커다란 것을 입에 물고 올려다보는 쉐리 사진이 있었는데 그녀가 이건 뭐냐고 묻자 주인여자는 단박 함박웃음을 지으며 평소와 달리 친절히 설명해 주기까지 했다. 어느 사료회사와 모 백화점에서 고객사은차원에서 공통 주최한 애견들의 재롱 잔치모임에 전 팀이 초대되어 갔다가 뜻밖으로 쉐리가 3등상을 차지하게 돼서 그때 받은 상장이라는 것이다.  쉐리가 그날 부린 재롱 중 첫 번째는 주인여자가 손 권총을 만들어 쉐리를 겨누고 탕하고 소리 질러 한방 쏠 때 쉐리가 알아듣고 바로 쓰러지는 시늉을 한 것, 두 번째는 주인여자 것과 다른 사람의 전화벨소리를 똑 부러지게 구분한 일, 그다음은 주인여자가 손으로 원을 그리니 바로 그 자리에서 뱅뱅 돌다가 멈추라는 주인여자의 말에 바로 멈춘 것, 무엇보다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주인여자가 시키는 대로 심사위원님들을 향해 사람처럼 두 발로 곧추 서서 상을 제게 주세요! 하는 자세로 앞발을 마주 비벼대는 모습에 모든 사람들이 즐거운 환호성을 질렀다고 한다. 그것에 높은 점수를 받은 것 같다고 했다. 그날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쉐리가 3등으로 뽑혔으니 얼마나 자랑스러웠겠냐며, 그날의 영광을 평생 잊을 수 없다고 어린애처럼 환하게 웃었다. 그때만큼은 어린 아기를 둔 여느 엄마들처럼 순진해 보였다.  쉐리가 늘 인간적으로 착각되는지 주인여자는 늘 개 숫자의 단위를 짐승의 마리가 아닌 사람의 수효를 나타내는 명으로 말한다. 동물과 인간 사이에 전혀 경계가 없어 분별하는데 혼란을 주었다. 그리고 서울에 딱 한집 애견 전문으로 하는 레스토랑 ‘견공들의 천국’이 있는데 장사가 엄청 잘된다는 것과 본인도 거기 단골손님이라고 자랑했다. 또한 애견 전용슈퍼마켓과 애견 백화점도 있다고. 거기 가보면 개 침대, 목욕가운, 향수, 샴푸, 빛, 치약, 칫솔,... 성욕 감퇴제까지 없는 게 없다고 하였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서울에 애견 전용 유치원이 처음으로 생겼을 때 일반 애견인들은 접근조차 어려운 비싼 요금은 물론, 입학 경쟁률이 10대1임에도 불구하고 운 좋게 당첨되어 쉐리를 그 유치원에 보냈다는 사실이다. 교육 훈련 차원에서 기본이 3개월인데 그때 만난 애견 엄마들이 지금의 애견 친목팀원들이라고 한다. 그때 주말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10시에 데려다주고 오후 3시에 데려오는데 데려다 줄때마다 쉐리가 안 떨어지려고 발버둥을 치며 짖는 통에 눈물이 다 나오더라고 했다. 믿지 않겠지만 그때 유치원 문을 나서는 애견 엄마 얼굴들에서 하나같이 잠깐의 헤어짐에도 슬픈 마음에 눈물이 그렁했으며 그래서 누군가의 제의로 서로가 위로가 되기 위해 애견들이 교육받는 동안 함께 근처 식당으로가 맛있는 점심을 사먹고 2차로 찻집에서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고 한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시간이 흐르고 금방 오후 세시가 되어 다들 즐거운 마음으로 애견들을 데리러 가면 애견마다 언제 난리를 쳤나 싶게 반가워서 혀를 날름거리며 매달리고 한바탕 난리를 피운다고 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이 아주 행복했었다고 한다. 가끔 해외나 여행 다닐 땐 회원 모두가 애견들을 애견호텔에 맡기고 떠난다고 한다. 거기엔 또래친구들은 물론 볼거리와 놀이기구들도 많아 외롭지 않게 서로 어울려 잘 논다고 했다. 주인여자는 내친김에 애견 잡지란 책자도 꺼내 와서 그녀에게 보였다. ‘애견인’ ‘애견세계’등 표지뿐만 아니라 잡지 속속들이 화려한 개 사진 천지였다. 한마디로 개 잡지였다. 주로 애견용품 판매소개가 대부분이지만 웃기는 내용들도 많았다.  - 기다림니다 - 개의 복강 속에 잠복된 고환(불알)을 원래대로 음낭(불알통) 안으로 원상 복귀시키는 시술과정에서 수술은 잘되었으나 음낭의 수술부위 염증 및 화농으로서 3일 만에 고환 2개중 1개는 복강 속으로 재복귀하고 나머지 1개는 음경(자지)의 중간부분으로 이동 정착한 선례나 학계에 보고된 사실을 알고 계신 수의과 대학 교수님이나 수의사 분은 속히 연락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애타게 찾습니다 - 사춘기의 뽀니가 순간적인 반항으로 가출했음. 애견 묘기 상을 두 번 수상한바 있음. TV에도 출연한바 있어 전국 애견가들의 눈에 쉽게 발각됨. 진정한 애견가의 심정으로 주인의 품으로! 있는 곳을 알려주시거나 데리고 계신분이 연락 주시면 200만원 후사하겠음.  잃어버린 개 사진과 주인의 연락처가 적혀있었다. 이외에도 ‘신부 신랑감 구합니다.’  라는 개 구혼광고도 상세히 소개돼 있고, 애견농장이나 애견센터에서 국내 최고의 혈통을 자랑한다고 혈통을 보장하는 자견 분양광고, 족보가 있는 개로써 품종이 믿을 만큼 월등하니 씨를 받아가라는 광고, 교배료 30만원입니다. 임신이 안 될 경우 200% 환불해드립니다. 그밖에 개와 있었던 재미나는 에피소드<애견수필> 코너가 있었는데 거기에 어느 중년 부부가 자신들이 키우는 강아지의 별난 질투 때문에 사랑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웃지 못 할 내용이 있었다. 그러니까 키우던 개가 그동안 말 잘 듣고 괜찮았었는데 어느 날 부터 그들 부부가 침상에서 사랑을 나누려고 할라치면 그때마다 귀신같이 알고 공격적으로 짖어대며 이불이고 뭐고 닥치는 대로 마구 물어뜯고 달려든다고 했다. 그러곤 제풀에 못 이겨 여기저기 다니며 소변을 잔뜩 내지른다고 했다. 문제는 밤이고 새벽이고 사랑을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그 난리를 치니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웃에 피해를 줄까 전전긍긍하다보니 스트레스는 물론이고 부부로써 사랑다운 사랑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고 했다. 고민 끝에 생각해낸 방법이 일단 남편이 안방에서 대기하고 있고 아내가 거실로 나와 뒤따라 나온 애견을 두고 다시 거실 베란다로 나가 화분에 물도 주면서 볼일을 보는 척 하면 닫힌 베란다 유리창 앞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며 알았다는 듯이 애견이 얌전히 앉아 기다린다고 한다. 그때서야 아내가 눈치껏 도적놈이 담벼락 넘듯 슬그머니 남편이 사전에 열어놓은 안방 창문을 타고 들어 가 사랑을 나눈다고 했다. 아내가 안방문을 열고 나오는대도 애견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더라고 했다.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누군 사랑을 나눌 집이 없어 열악한 빈 건물에 들어가서 해결하고 있는데 그것도 혹시 발각될지 몰라 전전긍긍하면서···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   주인여자는 몇 번이고 베란다 창가로 가 아파트 주차장을 내려다보고 섰다. 오전 11시가 가까워오고 있었다. ‘너 개 맞아?’ 할 정도로 한껏 멋을 낸 쉐리는 자신의 생일을 알기라도 하듯 으스대며 집안공기를 마구 휘젓고 다닌다. 앞발가락에 빨간 매니큐어가 칠해 있다. 주인여자가 오래도록 얼리고 달래서 겨우 바른 것이다.  부엌 앞에 서 있는 그녀는 어제 온종일 준비해놓은 재료들을 꺼내놓고 주인이 시키는대로 음식을 만들었고 이른 아침부터 주인여자는 나서서 거든답시고 일일이 맛을 보고 간을 맞추었다. 갈비찜, 잡채, 더덕구이, 도라지와 산나물무침, 야채셀러리···거의 마무리가 되어간다. 이제 약속시간에 맞춰 중국집, 치킨 집, 피자집들에 각각 전화해서 양장피, 피자, 양념치킨 등을 배달시키면 끝이다. 인간이면 생일 파티를 식당이나 뷔페로 가서 하면 될텐데 주인말따나 한국에선 아직 개를 상대로 손님을 받는 식당이 없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이렇게 집에서 준비하는것이다. 주인여자가 다시 부엌을 둘러보고 이제 상을 차려도 되겠다고 분부한다. 그녀는 네모난 밥상 두 개를 붙여놓고 시키는 대로 그 위에 흰색의 종이를 깐다. 냅킨과 수저, 술잔, 작은 접시 등을 보기 좋게 배열해 놓는다. 문득 주인여자가 “아줌마! 얼른 가서 머리나 좀 다듬고 나와요. 손님들이 곧 올 텐데···.” 쯧쯧쯧 혀를 차며 이맛살을 찌푸린다.  돈이 아까워 몇 년을 생머리로 지내다가 일주일 전쯤 싸게 해준다는 동네 미용실의 현수막을 보고 그만 들어가 파마를 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오래 지속되라고 작은 다마로 파마해서 짧은 머리가 빠글빠글 솟아 숫사자처럼 머리통이 커졌다. 자고 일어나 보면 흉할 정도로 머리가 한 광주리나 되었다. 보기가 난처한지 주인여자가 헤어로션을 갖다 주며 어서 바르란다. 그녀는 화장실로 들어가 윤기 없는 파마머리에 물을 묻혀 로션과 함께 골고루 발라주고 빗질해서 부푼 숱을 가라앉힌다. 거울에 비친 생 얼굴이 자신이 보기에도 50이 넘게 늙어 보인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들어간 김에 생각나서 그녀는 참았던 소변을 시원히 본다. 손님이 막 도착한 모양이다. 쉐리가 짖어댄다. 그녀는 서둘러 화장실로부터 나온다. 생일선물로 케익과 샴페인을 사오기로 한 주인여자와 가장 가깝게 지내는 미쉘 엄마가 들어선다. 안긴 미쉘도 언제나처럼 멋을 내였다. 노란색의 예쁜 옷을 입고서 머리에도 빨간 리본을 달았다. 쉐리와 같은 종으로 똑같은 흰색이다. 쉐리와 미쉘이 서로의 냄새를 맡느라고 흠흠 거리다가 이내 달리기 시합이라도 하듯 우루루 뛰어갔다가 다시 우루루 뛰어들 온다. 집안이 시끄럽기 시작한다. 그녀는 음식들을 한가지 씩 쟁반에 담는다. 조금 지나자 친목 회원들이 하나 둘 들이닥치기 시작한다. 오는 사람마다 다 개를 안고서 들어온다. 말티즈종이 대부분이지만 선한 눈길의 쉬즈 종도 있고, 흘러내리는 듯한 실크 같은 털을 가진 요크셔테리어도 있다. 어느새 한사람도 빠지지 않고 다 모였다. 명절인 듯 하나같이 화사하게 꾸민 개들이 마룻바닥에 내려놓기 바쁘게 친구들을 만났다고 날뛴다. 집안이 어느새 개판이다. 이윽고 동네 중국집, 치킨 집, 피자집들에서 약속시간에 맞춰 차례대로 음식들이 배달해 온다. 그때마다 약속한 듯 개들이 현관입구에 모여 합창을 해댄다. 캉, 캉, 캉, 캉... 가뜩이나 시끄러운 집안이 불시에 난리가 쳐들어온 것 같다. 개들의 천국이다. 끼리끼리 어울린다고 오늘 온 친구들도 주인여자처럼 모두 독신이다. 그들은 만나자마자 그동안 전화로 못다 한 이런저런 이야기들로 바쁘다가 상이 다 차려지자 각자 자기의 애견들을 불러 우선 무릎에 앉힌다. 애들처럼 잘 놀다가도 개들은 주인들이 뭘 먹는다싶으면 괜히 성깔이 고약해지면서 개답게 서로가 으르렁 거리고 짖고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물어뜯기도 한다. 조용히 식사를 마치려면 개부터 먼저 먹여야 한다. 개 생일이니만큼 다들 개 용품들을 생일선물로 내놓았다. 예쁘게 포장된 선물들을 주인여자가 하나하나 뜯어서 본다. 먹는 식료품도 있고 구강 스프레이 세트, 깃 달린 겨울용 옷, 개 구두도 있다. 쉐리에게도 레이스 달린 신발이 있지만 번마다 외출 시 신지 않으려 해서 주인여자가 애를 먹는다. “선물 받은 거니까 지금 신겨볼까?” 주인여자가 쉐리 뒷발 하나를 잡자 눈치 챈 쉐리가 당장 발버둥을 치며 주인여자 손을 살짝살짝 문다.  회원들이 달려들어 “우리 쉐리가 얼마나 이뿐데, 오늘 생일이니까 한번 신어보자... 그래그래, 착하네.” 얼리고 달래는 틈에 주인여자가 얼른 구두를 신겨 버린다. 겨우 개 뒷다리 두 개에다만 신겨 놓고 “일단 가서 우아하게 걸어봐~” 주인여자가 쉐리를 마룻바닥에 내려놓고 살짝 떠민다. 쉐리는 떨거덕 떨거덕 소리를 내며 걷다가 몇 발자국 안가서 그만 주저앉는다. 미끄럽기도 하지만 다들 쳐다보고 있으니 쑥스럽다는 눈치다. 다들 또 까르르 웃어댄다. 주인여자 앞에 생일 케익이 놓여 있고 어느새 두 개의 촛대가 불을 달고서 일렁거리고 있다. 총무 직책을 맡고 있다는 회원이 일어서서 기념촬영을 한답시고 연신 카메라를 들이대며 찰칵찰칵 셔터를 누른다. 그때마다 섬광처럼 빛이 반짝반짝 거린다. 이어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쉐리 생일 축하합니다.” 회원 각자 개 앞발을 마주잡고서 사람 손뼉 치듯이 마주 치면서 역시 사람생일 축하하듯 노래까지 부른다. 주인여자가 케익 위에 꽂힌 촛불을 훅 불어서 끈다. 그리고 쉐리의 앞발 하나를 잡고서 “우리 함께 자르자~” 하면서 투명 플라스틱 칼로 케익을 반으로 잘라 다시 먹기 좋게 여러 토막을 낸다. 옆의 미쉘 엄마가 샴페인을 흔들어 펑! 하고 터뜨린다. 그 소리에 그녀는 부엌에서 화들짝 놀란다. 벅적벅적 집 전체가 시끄럽기 짝이 없다. 회원들은 먹고 마시는 와중에 이것저것 집어서 개한테 맛보인다. 개들이 즐겨 먹는 육포, 쏘시지도 놓여 있다. 훈련을 시켰는지 개 모두가 음식상을 전혀 건드리지 않는다. 다만 개들은 각자 주인으로부터 냠냠 받아먹으면서 한시도 가만히 있질 못하고 계속 움직거린다. 몸을 이리저리 비틀고 혀를 내밀었다가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가 앞발을 마구 허우적대기도 한다. 손님들의 시중을 드느라 그녀는 부엌과 거실사이를 부지런히 오간다. 사람처럼 키우더니 먹는 식성도 사람인가! 무슨 개들이 고기도 아닌 과일까지 주는 대로 아삭아삭 잘도 깨물어 먹는다. 사람이 마시는 커피 잔에 댄디 라는 개가 혀를 날름날름 내밀고 핥아 먹고 있다. “그만 먹어! 얜 하루에 커피를 나보담도 더 마신다구. 그래놓곤 밤늦도록 안자고 나랑 놀자고 보챈다니까.” 댄디 엄마다. “그제는 얘(댄디) 엄마(댄디어미)무덤에 언니(친정언니)랑 꽃다발 사들고 갔었어. 뭘 아는지 댄디가 무덤 앞에서 끙끙대는 거야. 지도 엄마냄새를 맡은 모양이야. 언니가 아란(댄디어미)이 죽고 얼마나 슬퍼했니. 너무 울어서 나도 한바탕 눈물을 쏟았지 뭐야. 정이 뭔지 정말 무섭다니까.”  2 년 전 댄디를 낳다가 어미가 죽었는데 기른 주인이 바로 댄디 엄마인 그녀 언니다. 지금껏 개의 죽음을 잊지 못해 쩍하면 개 무덤을 찾아가 그리움을 달랜다는 것이다. 중국에 살면서 화장 문화가 당연시되는 그녀의 사고방식으로는 아무리 대한민국일지라도 좁디좁은 땅덩어리에 사람도 아닌 개 무덤까지 만들어 준다는 것 자체가 이해 못할뿐더러 아주 못마땅하고 한심스럽다.  일찍부터 중국에서는 나라 지도자급 정치인들이 앞장서 본인의 유언대로 죽은 후 화장을 실천해 전 국민에 본보기를 보여줌으로서 전국적으로 뿌리 깊은 매장 문화를 밀어내고 대신 현명한 화장 문화를 정착시킬 수 있었다. 그렇지 않다간 아무리 넓은 대륙을 가졌어도 매일 수도 없이 태어나고 죽어 가는 인생살이 되풀이 속에서 이용 할 수 있는 대지가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어렸을 때 그녀는 우연히 신문에 실린 만화그림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해골로 그려진 수많은 죽은 자들이 살아있는 인간들을 사정없이 벼랑 끝으로 밀어내는 무서운 내용이었다. 정부가 국토사랑 캠페인 차원에서 벌이는 공익광고인데 아직도 잊지 않고 기억이 뚜렷한 것은 그때 매장 문화가 미래에 끼칠 영향에 대해 시사 한바가 컸기 때문이 아닐까.  아닌 말로 인생 살기도 벅찬데 견 생에 매달려 한 인생을 보내다니! 그보다도 두고두고 불쾌한 것은 한국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멋모르고 슈퍼마켓에서 개 그림이 그려진 통조림을 개고기인줄 착각하고 사와서 혼자 맛있게 먹은 일이다. 이 집에 와서 쉐리가 자기와 똑같은 개 그림의 통조림을 먹는 사실을 안 그 순간 그녀는 당장 멀미가 나고 속이 울렁거리는 등 심한 구토 증세를 일으켰다. 개들이 먹는 통조림이었던 것이다. 그때 개고기맛보다 닭고기냄새가 더 진한 것 같았는데 통조림 재료가 닭고기였다는 걸 그녀가 알 리 만무했다. 그때부터 이상하게 개고기가 싫어지고 혐오스런 마음이 생겼다. 사정을 알 리 없는 남편이 그녀를 위한답시고 어느 날 보신탕을 사먹자고 했을 때 그녀는 비싸다는 이유로 단호히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간간히 그 구역질나는 기억이 떠올려질 때면 그녀는 언제나 말 못할 비밀처럼 혼자 우울한 기분이 되었다. 모임 시작부터 개소리더니 들리는 소리가 계속 개 소리뿐이다. 다니엘 엄마라는 사람은 다니엘을 내년 봄에 열리는 (동물협회에서 주최함) 미견선발대회에 출전시켜보겠다고 요즘 헬스클럽(애완동물전용)회원으로 등록해서 며칠째 부지런히 다니고 있다고 자랑스레 말한다. 높이 40Cm, 길이 60Cm짜리 러닝머신에서 반시간 간격으로 하루 한 시간씩을 꼬박 뛰게 한단다. 훈련도 시키고 몸매도 가꾸어 주다보면 성인병에도 잘 안 걸리는 이중효과를 얻을 수 있다며 머리부터 꼬리까지 예뻐 죽겠다는 표정으로 쓰다듬고 매만져준다. 꼬리 끝부분이 파란색으로 염색되어 있다. 샤니 엄마라는 사람도 뒤지지 않겠다고 나선다. “그럼 우린 닮은 팀에나 출전해야겠어. 옷도 세트로 맞춰 입고. 이봐, 지금도 닮지 않았니?” 샤니 엄마는 목을 낮춰 자신의 얼굴을 개 낯짝에다 바짝 갖다 댄다. “그러고 보니 진짜 많이 닮았네. 특히 똥그란 두 눈알이 닮았어~...” “정말 닮았어. 그날 심사위원님께서 진짜 모녀인줄 착각할까 겁난다아~.” 여기저기서 장난스레 말을 던지자 다들 또 까르르 웃어 댄다.  샤니엄마가 생각난 듯 “얘 오늘 과식한 거 같어. 트림 같은 걸 자꾸 하는걸 보니. 소화효소제라도 좀 먹여야겠어. 사다놓은 거 있지?” 그녀가 나서서 이내 약을 찾아다 준다. 음식처럼 달고 맛있게 만들어져 쉐리도 소화 효모제 라고 하면 거부 없이 잘 받아먹는다.  배불리 먹은 개들이 하나 둘 용을 쓰며 주인 품으로부터 빠져 나간다.  이때다 싶었는지 미쉘 엄마가 일어서더니 소파 쪽으로 다가가 자신의 가방에서 두툼한 봉투를 꺼냈다. 그 속에 들어있는 것은 알 수 없는 사진들이었다. 미쉘 엄마는 그것들을 보기 좋게 한 장 한 장 소파위에 나란히 진열한 다음,  “자, 와서 보라구! 다들 깜짝 놀랄 거야! 지금부터 귀엽고 사랑스런 우리 미쉘의 그림, 미술작품 전시회를 열거야!” 다들 내막도 모른 채 빨리 보겠다고 경쟁하듯 소파 쪽으로 모여들며 사진들을 집어 든다.  ‘그림 전시회? 개가 주인 잘 만나 학원에라도 다니며 그림이라도 배웠나?’ 그녀도 덩달아 궁금해서 소파 쪽으로 다가간다. 이집에 일하는 동안 그녀는 주인여자로부터 상상도 못할 많은 애견관련 정보를 알고 있어 이제 웬만한 것에는 놀라지도 않는다.  회원하나가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이게 뭐야!” “미쉘도 없고, 자연풍경도 아니잖아!··· 도대체 뭐야?” 당사자를 제외한 회원들 모두가 이건 뭔가? 하는 얼굴들로 서로 쳐다보며 웃기만 한다. “다들 보는 눈이 그렇게도 없어? 이건 그 동안 내 심혈을 기울여서 우리 미쉘이 오줌으로 그린 그림을 하나하나 놓칠세라 그때그때 정성들여 찍어놓은 거라구!”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사진 한 장 한 장을 가리키며 신이 난 듯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그림은 동그라미, 그러니까 태양이라고 보면 돼. 이건 모자야, 이건 웅크린 다람쥐, 이건 늪지대의 갈대밭이라고 할까, 이 그림은 민소매 티, 이건 냄비, 이건 삼각팬티, 이건 가방, 이건 양말, 이건 흐르는 시냇물, 이건 폭포··· 하이라이트는 뭐니 뭐니 해도 우리나라 지도야. 똑바로 봐봐, 애국정신이 없으면 어떻게 이런 훌륭한 그림이 나오겠어? 이 라인을 보라구, 단언컨대 진정 화가들도 한방에 이 정도는 힘들 거야! 너무나 섬세하게 그려져서 보는 나도 놀랐다니까···.”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오줌으로 얼룩진 무늬 형태를 그림이라고 찍은 놓은 것이다.  “자세히 듣고 보니 그럴 듯하네, 그림이라고 치면 정말 잘 그렸어···.” “누가 아니래, 그림이라고 따로 정한 게 아니잖아, 이만 하면 훌륭하지...” “와, 대단하네. 보면 볼수록 그럴듯한데···.” “미니 전시회라 해도 손색없어, 자격 있네···.” 여기저기 감탄조로 한마디씩을 한다. “이건 기발한 아이디어야, 언제 이럴 생각을 다했어?” 주인여자가 은근히 부러운지 묻자 “지난달 외출 때 갖고 간 미쉘 기저귀가 모자라서 그 대신 아쉬운 대로 신문지를 이용했었는데 볼일을 끝내고 그것을 치우려는 순간 내 손이 갑자기 탁 멈춰졌어, 신문지위에 오줌을 눈 자국이 흡사 잘 그려진 한 장의 모자 그림 같았어. 그 때 최초로 예술을 발견한 거지. 그날 모자 그림이 너무 신기해서 냄새고 뭐고 한참을 들여다봤어. 그때부터 집에서 기저귀패드위에 신문지를 깔아놓고 좋은 그림이 나올 때마다 한 장 한 장 기념으로 사진을 찍어놨지. 가져온 것 말고도 집에 아직 많아, 하늘의 별만큼이나 다양한 무늬들이 많아서 이루 다 찍어놓을 수가 없어···.” “우리도 이제부터 오줌에 신경 좀 써야겠어, 혹시 똥은 안 될까?···.” “오줌도 되는데 똥이라고 안 되겠어? 생각하기 나름이지.” “세상천지에 오줌 무늬를 어느 누가 그림으로 보겠냐 말이야? 오줌을 예술로 승화시킨 미쉘 엄만 정말 대단해! 오늘이라도 동물협회에 뉴스거리로 제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다들 사진을 들고 농담하며 웃고 떠드는 가운데 “그러잖아도 곧 국내 특허라도 받아놓을 생각이야···.” “아니, 그럼 귀염둥이 쉐리를 오늘부터 화가를 만들려고 하는데 안 되는 거야?” “난 내일부터 오줌무늬를 수집하려 하는데···.” “나도···.”  너도나도 화가를 만들겠다며 또 한바탕 웃음바다로 출렁인다. 그네들과 달리 그녀는 호기심에 잠깐 들여다보기는 했으나 처음엔 어떻게 그게 그림이고 미술이 되는 지 아리송했다. 그러나 꿈보다 해몽이라고 모자라고 보면 모자형태로 보이고 아니게 보면 그저 오줌 얼룩에 불과했지만 실제로 보는 눈에 따라 갖가지 형태들이 미쉘엄마가 이것저것 같다고 찍어놓은 것들과 비슷한 것도 많았다. 그랬다. 다만 그녀는 같은 인간으로 태어나 하루 밥 세끼 먹고 그렇게도 할 일이 없어서 한낱 개가 싸지른 오줌을 미술이라고 떠들까? 그게 부러웠다. 저 인간들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상중에서도 상팔자가 아닐까? 세상천지 이 여자들보다 더 팔자 좋은 사람은 없을 듯싶었다. 전생에 무슨 덕을 쌓아 저리도 호사를 누리는가 싶다.  잠시 넋을 놓고 구경하는 그녀에게 총무가 생각난 듯 말을 건넨다. “아줌마도 배고플 텐데, 이제 식사하셔야지요?” “아, 네 그러지요. 상 치우고 나서 먹을게요.” 주인여자가 옆에서 그러라고 말한다. 그녀는 빈 그릇부터 모아 싱크대에 갖다 놓는다. 정신이 산만스러워 머리가 멍해오고 당장 밥 먹고픈 생각도 안 난다. 무엇보다 어서 그네들이 떠나갔으면 싶은데 그새 몇몇이 둘러앉아 화투 패를 돌리고 있다. 담배연기까지 피워 올린다. 주인여자는 옆에서 구경만 하다가 생각난 듯 쉐리를 찾는다. 거의 습관적이다. 쉐리가 모습을 나타내지 않자 주인여자가 그녀보고 어서 찾아보라고 한다. 그녀는 여기저기 살피다가 조금 열린 안방으로 머리를 디밀어 본다. 그런데 맙소사! 상상 밖의 일이 벌어졌다. 쉐리가 다이애나란 개와 꽁무니를 맞댄 채 붙어 서 있다. 그것도 침대 옆의 구석진 곳에서다. 아까부터 어쩐지 헉헉거리며 다이애나 꽁무니를 뒤쫓는다 싶었는데 다들 떠드느라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한 것이다.  화토판은 즉각 파토가 났고 다들 좋은 구경거리 생겼다며 연달아 일어나 안방 문에 기대서서 흘레짓을 보고는 웃느라고 또 난리다. 정작 당사자(개)들은 부끄럼을 아는지 모르는지 눈을 껌벅거리며 가만히 서 있다. 눈치를 보니 좀 계면쩍어 하는 것도 같다. “어떡하면 좋아···.” 주인여자가 제스처로 두 눈을 부릅뜨고 능청스레 웃으며 다이애나 엄마를 쳐다본다. “모르긴 해도 쉐리가 강간했을 거야. 얜 때가 지났어. 멘스가 끝난 지 어젠데···.” 다이애나 엄마가 걱정스런 말투로 말한다. “강간은 아닐 거야. 조용했잖아. 쟤네들이 서로 좋아서 사랑한 걸 거야! 안 그래?” 미쉘 엄마가 웃으며 옆에서 거든다. “결혼시킬 생각은 추호도 없었는데, 자식 낳기는 아직 어린 나이잖니?” 진정 어린 자식 걱정하는 엄마의 모습 같다. “그건 걱정 마, 그러잖아도 쉐리를 장가보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잘됐지 뭐, 다 때다 된 거야. 다이애나도 신부 감으로 선택 받은 거고. 말대로 정말 임신이 되면 좋겠어. 산달에 내 집에 와서 새끼 놓게 하구. 내가 알아서 정성껏 산모구완 할 테니, 이참에 할미노릇 좀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우리 잘되면 사돈 되겠다···.” 주인여자는 말하면서 다이애나 엄마의 손을 잡아당기며 장난스레 또 웃는다. “할미노릇이 그렇게 부러워? 난 싫어, 엄마면 최고지···.” 사람들의 호칭관계가 이처럼 개한테 까지 성립이 되어 마구잡이로 불려진다. 회원 하나가 “쉐리엄마! 쉐리 이름을 당장 찰스로 고쳐야겠네, 다이애나와 결혼했으니 말이야. 안 그래?···.” 미쉘엄마가 덩달아 맞장구친다. “신통방통! 적시적때! 딱 어울려. 격조 높은 그 이름, 생각 잘~ 했어. 쉐리가 찰스가 되고 싶어 오늘 다이애나와 짝이 된 거 아니겠어? 미룰 거 뭐있어? 지금부터 찰스라고 부르면 되지···.” 다들 또 한바탕 웃어댄다. 여자 셋만 모이면 그릇들도 말을 한다더니 웅성웅성 계속 시끄럽기 짝이 없다. 부엌으로 간 그녀는 하마터면 오줌 물에 미끄러져 넘어질 뻔했다. 어느 개가 그랬는지 바로 싱크대 앞에다 오줌을 질펀하게 싸놓은 것이다. 그녀는 차마 기분 나쁜 내색은 못 내고 우선 두루마리 화장지를 풀어 오줌을 꼭꼭 눌러 흡수시키는 한편 바닥걸레로 깨끗하게 문지른다. 바닥을 닦다보니 한군데가 아니다. 여러 군데 오줌물이 있었고 다용도실 입구에 지금 막 대변을 보려는지 개 한 마리가 쭈그리고 용을 쓰고 있다. 그녀는 조용히 다가가 손짓으로 개를 화장실로 가게끔 몰았다. 그런데 자기영역을 침범했다고 느꼈는지 옆걸음 치던 개가 느닷없이 맹수로 돌변해 그녀 손을 콱콱 깨무는 것이 아닌가! 사정없었다. 순식간의 일이였다. 아야파라! 그녀는 큰소리가 절로 나왔다. 섬뜩한 느낌이다 싶었는데 물린 손가락에서 피가 연신 솟구치듯 나온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흐르는 피를 뿌리쳤다. 뿌려진 바닥이 금방 피로 얼룩졌다. 작은 상처에 비해 피가 무섭도록 흘렀다. 목안 가득 치밀어 오르는 불행감으로 그녀는 눈물이 저절로 나왔다. “어이구 쯧쯧, 기분 잡쳐, 우둔스럽게 쟤를 왜 건드려요? 쟨 좀 사납잖아···.” 친구들을 돌아보며 주인여자가 앉은 자리에서 일어선다. 부엌으로 다가간 주인여자가 주방 싱크대 서랍을 뒤져 일회용 밴드를 찾아내 그녀 손에 난 상처부위를 아프도록 동여매 붙인다. 한군데도 아닌 네 군데나 되어서 짜증 섞인 몸짓이다. 깊숙이 물려서인지 그녀는 아릴 정도로 아픔을 느낀다. “아프죠? 미안해요···.” 그녀를 문 개 주인이 잠깐 그녀 손가락을 지켜보다가 “쥬비 너가 그랬어? 너 좀 맞아야겠다. 왜 무니?” 짐짓 성난체하며 나무란다. 그러나 누가 봐도 전혀 미워하는 말투가 아니다. 서울 말씨라 그런지 음성도 나긋나긋하고 행동 역시 마찬가지다. 구석에 숨듯 서 있는 쥬비를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대가리를 몇 번 톡톡 건드리는 시늉만 해 보일뿐이다. 그랬음에도 수컷인 쥬비는 생긴 것과 달리 잇몸을 드러내 보이며 사납게 으르렁 거렸다. “설거지나 하겠어요?” 쭈그리고 앉아 바닥에 묻은 피를 문질러 닦고 있는 그녀에게 주인여자가 못마땅한 투로 말한다. 고운정도 없지만 미운 정마저 다 떨어져 나간다. “할게요, 할 수 있어요.” 그녀는 시선을 외면한 채 간신히 이렇게 대답하며 그릇을 씻기 시작한다. 하필이면 물린 게 오른손 엄지와 검지 손가락이다. 그릇들을 천천히 씻는데도 손가락을 움직거리다보니 욱신욱신 아프고 내내 불편하다. 축축한 느낌에 그녀는 고무장갑을 벗어본다. 붉은 피가 밴드에 흠뻑 배여 있다. 게다가 계속 나올 조짐이다. ‘저녁 손님들도 치러야 하고 밤늦도록 부엌에 서야 할 텐데···.’ 서러움이 밀려와 눈물이 또 울컥 솟아 나온다. 그녀는 급히 작은 방으로 들어간다. 울음이 터지려는 것을 그녀는 간신히 억누르고 있지만 어쩐 일로 눈물이 비 오듯 자꾸만 흐른다. 그녀는 흐르는 눈물을 연신 훔쳐낸다. 눈치 챈 듯 밖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뒤이어 주인여자가 들어선다. 화가 난 모습이다. “아줌마! 왜 그러세요? 손가락 물린 게 내 탓은 아니잖아요? 일 못할 것 같으면 진작 못 한다 말씀하셔야지, 무턱대고 손님들이 와 계신데서 울면 난 뭐가 돼요? 이게 뭐예요? 가정집도 엄연히 하나의 직장이에요!··· 아무튼 됐어요. 어차피 일하긴 틀렸으니 이제라도 파출부를 불러야죠 뭐. 그리 알고 누굴 찾아가든가 상관 안할 테니 나가 바람이나 쐬세요. 내일 아침에 들어와도 괜찮으니까.” 내뱉듯 말하곤 이내 돌아서 나간다. 그녀는 당장 꼴 보기 싫다는 소린지 아니면 일말의 양심 때문에 생각해서 하는 소린지, 주인여자의 태도가 애매해서 그 마음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잠시라도 이 개 같은 세상을 벗어나고 싶다. 하루 밤이 아니라 한 시간이라도 좋다. 자유와 해방감이 얼마나 좋은지는 남의 집 눈치살이를 해본 사람이면 모르지 않을 것이다. 직업소개소에다 전화를 걸은 모양인지 파출부를 빨리 보내달라는 주인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녀는 후줄근한 츄리닝 바지를 벗는다. 솔직히 이 꼴로 누굴 찾아갈 기분이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옷을 갈아입는다. 남편한테 가려면 장장 두 시간은 걸린다. 먼 거리는 상관없다 치지만 물린 손을 보면 남편이 몹시 속상해할 것이다. 무엇보다 독방도 아닌 여러 사람 있는데서 옷 입은 채로 남편 옆에 숨듯 처박혀 잠을 자야 하는 것이 불편하고 남세스럽다. 남편한테 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어디로 갈 것인가? 속이 쓰리기 시작한다. 아침에 빵 한 조각밖엔 먹은 기억이 없다. 생각할수록 배가 고파온다. “아줌마 아주 착해 보여··· 여기 사람 같아 봐, 아프다고 난리를 떨었을 텐데···.” “중국 갔다 온 사람들 얘기 들어보면 거긴 아직도 우리네 육칠십년대 수준의 삶이라던데···.” “요즘 음식점에 가보면 일하는 중국 사람들 한둘은 다 있대. 어지간히 들어 왔나봐···.” “여기서 한 달 벌면 거기선 일 년을 산다니까···.” “들었지? 넌 개로 태어나도 행복한 거야···.” 그녀 귀를 겨냥한 것처럼 이러한 소리들이 그녀 귀를 마구 비집고 들어온다. 그녀는 쫓기듯 현관문을 나선다. 개소리 사람소리들이 그녀 뒤를 바짝 쫓아 나오다가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자 곧 아득히 멀어져간다.   (끝) [김노 소설가 프로필] 김노(金奴) 소설가는 1956년 중국 길림성에서 출생, 1978년에 결혼을 했으나 8년 만에 남편이 위암으로 세상을 떠서 홀몸이 됐다. 그후 1992년에 암으로 상처한 한국남자와 재혼하여 21년을 함께 살았으나, 더 이상 "노예가 되기 싫어서 이혼하고 자유인"이 되었다.  김노 소설가는 1990년도부터 수필 수기 중단편 등을 계속 발표하였는데, 수필 「낯선 고향길」로 제1회 동부문학상을 수상(1995)하고, 「나의 서울생활」로 한국일보 여성생활수기 부문 우수작(1995)을 냈으며, 「어머니의 작은 소망 하나」로 ‘행복의 샘’ 창간 6주년 기념 나의 어머니 수기 공모 당선작(1998)을 냈다. 그 후 단편「한심한 세상」으로 중국 조선족문예지 ‘장백산’에서 ‘모드모아문학상’(2000)을 받았으며, 동시에 「길림댁은 등나무처럼 살고 싶다」로 동아일보 신동아 논픽션 최우수상을 받았다.  현재까지 그는 중단편, 수필,․ 수기 등 40여 편을 창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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