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노 중국동포 소설가
[서울=동북아신문]무너진 몸을 애써 가누며 한쪽 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허벅지 사이로부터 뭔가 새 나오는 느낌이다. 정액인가? 숨이 자꾸만 차오른다. 아까부터 누가 동아줄로 가슴팍을 바짝 졸라매는 것 같다. 아무리 큰 숨을 내쉬어도 속이 터질 듯 답답하다. 닫힌 공간에 사람들이 가득 차 있다. 서로가 밀착된 채 빽빽이 앉아 있다. 다리를 뻗을 수도 없고 운신조차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사람들의 열기로 좁은 공간이 시루 속 같이 찐다. 이제 조금만 더 참으면 한국부두에 도착이 될 것이다. 어서 빨리 도착이 됐으면…. “아줌마! 살고 싶거든 입 다물고 잠자코 있어. 이 배에 오른 젊은 년 치고 우리와 배 안 맞춘 사람 없어, 운명이라고 생각해!” 그 자의 목소리가 다시 귓가를 때린다. 맨 처음 돌진했던 그 사내가 옷 뭉치를 던져주며 내뱉었다.  남편 또래로 보이는 그 남자는 가정이 있는 사람일까? 그렇다면 그 마누라는 자기 남편이 해상에서 이 같은 일을 저지르는 걸 짐작이나 해볼까? 아마 상상도 못할 테지…. 숨이 자꾸만 차오른다. 한여름도 아닌데 왜 이렇게 더운 걸까? 끈적끈적 입은 옷이 거추장스럽다.  이제 머잖아 한국부두에 도착이 될 것이다. “내숭 떨 거 없어, 고기 배에 오른 년이 그래, 고기밥이 될 줄 몰랐단 말이야! 답답한 밑창에 갇혀 있기보다 우리와 함께 즐기는 게 훨씬 나을 텐데. 이보다 더 좋은 신선놀음이 어딨어! 하하하하….” “미친년 같으니라구, 콧댈 세울 때 세워야지. 지 년이 춘향이라고 이몽룡 만나러 가나. 돈 벌러 가는 주제에….” “아프다는 소리 작작 내질러! 바닷물에 처넣기 전에….” 그 자들의 지껄임과 음탕한 웃음소리들이 들리는 듯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다. 인간이 적응하지 못하는 환경이 있을까? 인간이 감당해내지 못하는 고통이 있을까? 그녀는 가까스로 눈을 떤다. 아지랑이가 낀 듯 두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 지금이 몇 시일까? 물어볼 기운도 없다. 떨어진 고개를 다시 힘주어 들어본다. 천정에 매달린 등불이 꺼질 듯 희미하게 보인다.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 자들의 말에 의하면 이제 얼마 후면 이 배가 한국부두에 도착이 된단다. 어서 빨리 도착이 됐으면…. 눈꺼풀이 다시 맥없이 내려앉는다. 자신을 완력으로 엎드려 놓고 엉덩이를 치켜세운 후 성난 짐승처럼 달려들던 그 자의 모습이 다시금 떠오른다. 말 타듯 자신의 잔등을 타고 씩씩거리던 그 사내의 성기가 흉기처럼 예리하게 그려진다. 어제 몇 시쯤일까? 일행 중 누군가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처음처럼 다시 배고프다고 소리 질렀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너도나도 외쳐댔고 그 소리들은 곧 함성이 되어 급기야 갑판 뚜껑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바깥에서 목소리들을 감지했는지 발자국소리가 탕탕거리며 들려오더니 이윽고 배 밑창 뚜껑이 활짝 열렸다. 숨통이 트이는 시원한 바람과 함께 몇 사람의 다리들이 눈에 보였다. 한사람이 아래를 굽어보며 험상궂은 얼굴로 “이 새끼들 무슨 일이야? 죽고 싶어서 떠들어!” 깡패처럼 소리쳤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요···.” “배고파 죽겠어요···.”  “제발 먹을 것 좀 줘요···.” “우린 며칠 동안 죽 한 끼 먹은 거 밖에 없단 말이에요···.”  “아무 거라도 좋으니 먹을 거 좀 줘요···.” 너도나도 간절한 목소리로 애원했다. “지금 먹을 거 아무것도 없어. 물밖에는… 이 상태로 무사하다면 내일 저녁 안으로 도착이 될 텐데 다들 그때까지 참는 게 어때? 자꾸 떠들면 우리도 곤란해!….” 사실 먹을 것들이 선상에 어느 정도 남아있지만 한 두 사람도 아닌 그 많은 사람들이 먹다보면 심한 멀미에, 먹은 만큼 또한 번거로운 배설문제가 뒤따르니 안전상의 이유로 의도적으로 음식들을 제공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이 이 사실을 알리 만무했다. “그럼 물이라도 좋으니···.”  “제발 마시게 좀 줘요···.” 기회를 놓칠세라 다들 지친가운데 힘을 모아 구걸하였다. 잠시 뜸을 들이더니 “좋아, 그럼 물이라도 줄 테니, 아줌마를 올려 보내 가져 가라구!” 그리곤 사다리가 내려졌다. 물, 물 때문에 밖에 나갔다가 불시에 붙잡혀 돌이킬 수 없는 봉변을 당한 것이다. 그자들은 물이 있다는 간이 부엌으로 그녀를 데려가 강제로 옷을 벗기고 그 다음 엎드려 엉덩이를 치켜들게 한 후 성난 짐승처럼 마구 그 짓을 저질렀다. 그동안 허기진 성욕들을 채워대느라 여럿이 차례대로 그 송곳 같은 성기들을 휘둘러 댔다. 그리곤 또다시 한차례였다. 일을 끝낸 그 자들은 그때서야 그녀에게 물주전자를 가져가게 했다. 다들 기진맥진 머리를 떨어뜨리고 움직임이 없지만 그 자들의 짓거리를 모를 리 없을 것이다. 그들 보기가 새삼 부끄럽다. 당초 물 가지러 여자를 올려 보내라고 말할 때, 어떤 원인모를 두려움이 온몸을 휩쌌다. 여자라면 나밖에 없질 않는가! 마음만 있다면 저들이 직접 물을 내려다 주면 그만인 것을…. “아주머니, 우리를 살려줘요. 제발 물이라도 좀 먹게 올라 가세요…” 애원하듯 다들 간절히 부탁하는 가운데 옆의 사람이 뚜껑이 닫힐까봐 연신 떠밀었다.  먹고 싶다는 동물적 본능이 사람들을 한없이 나약하게 만들었다. 그동안 모두 생사고락을 함께한 사이들이다.  그래! 이 기회에 물이라도 실컷 마시고 보자! 그러나 실컷 마실 물은 없었다. 굶주린 배를 채우기에는 물은 턱없이 부족했다. 겨우 밥공기 하나의 분량이여서 목을 축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운명의 배를 타기 전까지 서로가 꿈에도 본적이 없는 낯선 사람들이지만 동일한 목적지를 향하여 며칠몇날을 이렇게 함께 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 머잖아 한국부두에 도착이 될 것이다. 오줌이 마려워 온다. 거푸거푸 심하게 밀려온다. 그러나 힘을 주어 봐도 오줌은 별로 없다. 순간순간 통증만 느낄 뿐이다. 실제 오줌기만 있을 뿐이지 몇 방울에 지나지 않는다. 생각하면 몇 년 전에 있었던 증상과 똑같다. 그 때가 신혼 초였으니 한 6년 전쯤 된다. 그때 어머니는 오줌소태라고 말했다.  이 모든 것은 그러나 참아내야 한다. 이제 조금만 더 참으면 꿈의 나라 한국에 도착이 될 것이다. 다른 칸의 그 여자도 나처럼 당했을까? 아마 당했을 테지. 옷을 마구 벗기고 그리고 몇이서 달려들어 그 짓거리를 해댔을 것이다. 그 자들은 똑같이 그동안의 욕정을 풀어낸 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갑판에 나와 앉아 개운한 얼굴로 담배를 피워 물었을 것이고 그리고 끼니때에 맞춰 예사롭게 밥도 지어 먹었을 것이다. 목적지에 도착해서는 태연스레 떠나가면 그만일 것이다. 어쩌면 다시 새로운 밀항자들을 태우기 위해 계획하고 실행할지도 모른다. 그 자들의 안중에 밀항자들이란 돈이 얼마라는 경제적인 계산과 그리고 나 같은 여자는 한낱 욕정의 찌꺼기를 발산하는 도구로 인식 될 뿐이다.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 그녀를 태운 버스가 밤길을 달리고 있었다. 일행 수십 명도 그녀와 함께 타고 있었다. 깊은 밤이었다. 어둠속에서 누구도 말이 없었다. 다들 긴장한 채 앞만 응시할 뿐이다. 가끔 마주 달려오는 자동차들이 불빛을 발하며 지나칠 뿐 사방은 짙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밤의 속도는 한마디로 질주였다. 어쩌다 자동차들이 지나칠 때면 쓩~ 쓩~ 무섭도록 바람소리를 냈다.  모든 것을 감추어준다는 밤, 그러나 이 밤은 모두에게 두렵기만 하다. 장장 몇 시간을 달렸을까. 갑자기 버스가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도로사정이 안 좋은걸 보면 목적지에 거의 다 도착한 모양 같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버스가 덜커덩거리면서 얼마를 달리다가 뚝 멈추어 섰다. 운전수가 급히 어디론가 무선 전화기로 연락을 하자 조금 뒤 인기척이 들리더니 한 남자가 버스입구로 다가섰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행동거지가 간첩 같았다. 모든 것은 비밀리에 진행되었다. 버스 문이 열리자마자 사람들이 하나 둘 신속히 내렸고 버스는 이들을 부려놓기 바쁘게 임무를 다한 듯 재빨리 현장을 떠나가 버렸다. 그녀는 느낌으로 이곳이 아주 으슥한 곳임을 알았다. 차고 음습한 기운이 주위를 감돌았다. 무서움에 그녀는 또 다시 가슴이 벌렁거리기 시작했다. 간첩 같은 남자는 말하자면 이들의 안내 요원이었다. 일행들 틈에서 그녀는 숨을 죽이고 조심조심 안내자의 뒤를 따랐다. 불빛은 금기 사항이었다. 물론 말도 삼가야 했고 모든 것은 그때그때 안내자의 지시에 눈치껏 따르는 것뿐이었다. 당초부터 모든 일정은 비밀이었다. 해변으로 내려가는 길은 아주 울퉁불퉁 하였다. 여기저기 엎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도 하마터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주위는 어두웠다. 조직책이 안전을 요하여 우정 달 없는 월초로 날짜를 정한 것이리라. 이윽고 약속장소에 다다른 듯 앞선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녀도 따라 섰다. 어느 정도 어둠에 눈이 익자 바로 코앞에 커다란 바위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누구랄 것 없이 바위를 엄폐물로 삼아 다들 쭈그리고 앉아 몸을 숨겼다. 어둠속에서 그녀는 대낮에 먹이를 찾아 나선 토끼마냥 한시도 긴장을 풀지 못하고 주위의 반응을 예민하게 살폈다. 때는 바야흐로 한창 봄이지만 바다의 밤기운은 예상외로 차가웠다. 간간이 불어치는 눅눅한 바람이 바닷물의 소금기를 한결 느끼게 했다. 초조히 얼마를 기다렸을까. 드디어 퉁퉁거리며 배의 모터소리가 났다. 다들 촉각을 곤두세운 채 숨죽이고 그대로 가만있었다.  뒤이어 철버덕거리는 물소리를 내며 한 사람이 급히 바위 쪽으로 오는 것이 보였다. 사전 연락이 이루어졌는지 안내자가 재빨리 그를 맞았다. 뱃사람은 바닷가 물이 얕아 배가 가까이 올 수 없으니 다들 저만치 걸어가서 타야 한다고 했다. 지시가 내려지기 바쁘게 모두 배가 있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를 포함해서 몇 사람은 그 와중에도 신을 벗어 들었지만 대부분 신을 신은채로 바지가랭이만 걷어 올리고 싸늘한 물속을 걸어갔다. 너나할 것 없이 배까지 걸어가는데 걷어 올린 부위까지 바지가 푹 젖어 들었다.  배는 의외로 작았다. 노 젖는 배에다 발동기를 단 그야말로 통통배였다. 두 척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작은 배로 밀항하다니! 다들 주춤하고 섰으려니 조금가다 큰 배로 갈아타니 염려 말고 어서 빨리 올라타라고 재촉한다. 이 많은 사람들이 다 탈까 싶었는데 두 척에 나눠 타니 용케도 다 올라갔다. 모두가 움직이는 행동들이 중국 유명 곡예단의 자전거 묘기를 연상케 하였다. 자그마치 통통배에 20여명이 매달리듯 서로잡고 쥐며 바짝 올라 타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람들의 무게 때문인지 그녀가 탄 배가 보터소리만 요란할 뿐 움직거리질 않았다. 뱃사공이 급히 몇몇이 내려가서 밀어야한다고 했다. 그러나 차디찬 바닷물에 선뜻 내려가는 사람은 없었다. “다 망하고 싶어서 그래! 빨리 내려들 가서 떠밀어!” 안내자가 소리쳤다.  일부가 뛰어내려 합심해서 배를 힘껏 떠밀어내었다. 배는 곧 움직거리기 시작했다.  일행을 태운 배는 해변을 벗어나 서서히 앞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속력을 내며 달리자 배는 위험천만하게도 작은 파도에도 넘어질 듯 휘청거렸다. 사람들은 그때마다 심한 두려움과 공포감을 느끼면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본능으로 서로가 필사적으로 움켜잡았다. 그녀는 늦게 배에 오른 탓으로 뒤쪽에 타고 있었는데 다행히 더 뒤에 오른 사람들이 있어 직접 떨어질 염려는 없었으나 배가 한 번 심하게 휘청거릴 때 누군가 급한 나머지 그녀의 어깻죽지를 꽉 잡는 바람에 꼬집힌 듯 심하게 아렸다. 서로가 호흡은 물론 심장 박동소리까지 느낄 만큼 다들 바짝 붙어 서 있었다. 앉기엔 공간이 턱없이 비좁았다. 축축하고 찝찝한 바람이 그녀 얼굴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밤바람이 시리도록 차가웠다. 바닷바람이 불어칠 때마다 그녀는 으스스 몸을 떨었다. 젖은 바지에 스며있던 물기가 그녀 몸 전체를 축축하게 만들었다. 모두가 젖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약 20분쯤 달렸을까. 커다란 어선 한척이 그녀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선원인 듯 여러 사람들이 갑판에 나와 있었는데 그들은 배가 가까이 다가가자 어선에 올라오게끔 좁은 판자 하나를 내밀었다. 그러자 판자나무를 다리삼아 사람들은 하나 둘 건너가기 시작했다. 중심을 잡느라 기우뚱거리면서도 다들 잽싸게 어선위에 올라갔다. 어지러워 주춤하는 사람들은 옆에서 잡아주기도 하였다. 올라간 사람들은 선원들이 뚜껑이 열린 여러 생선창고에 차례대로 재빨리 밀어 넣었다. 물건 집어넣듯 한 공간이 다 차면 그 즉시로 뚜껑을 콱콱 닫아버렸다. 다들 그동안 죽 추워 떨었던지라 우선 찬바람을 맞지 않아서 추위는 덜했으나 통통배에서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두려움이 그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닫힌 공간, 바로 외부와의 단절이었다. 15촉쯤으로 보이는 전등이 그나마 위안이라고 할까. 소금기를 머금은 어창은 바다특유의 비릿한 생선냄새를 풍기였다. 비좁게 않은 바닥에서 저마다 휴대한 가방들을 뒤져 소지품을 살피거나 간단히 준비한 음식들을 먹었다. 손에 관절을 딱딱 끊는 소리도 심심찮게 들렸다. 두려움을 떨치려는 듯 한 남자가 마주 앉은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사는 고향이 어디요? 흑룡강? 나는 길림 장춘 사람이요.” 말문을 터기 시작하자 서로 고향들을 물었다. 길림사람, 흑룡강사람, 심양사람, 그야말로 동북삼성이 다 모였다. 그들은 말하기 편한 말은 중국어로 하였다.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긴장이 어느 정도 풀린 듯 누군가 농담을 했다. “거 좋겠소, 젊은 아주머니 앞에 앉아 가게 돼서….” “좋기는 한데 여자분이라 내 마음대로 움직거리기가 불편하네요. 재간 있으면 우리 바꿔 앉읍시다.” 그녀를 쳐다보며 다들 웃었다. 그녀는 통통배를 탈 때부터 속이 조금 메슥거렸는데 지금은 참기 곤란할 정도로 속이 울렁거렸다. 그들의 농담을 받아줄 기분이 못 되었다.  사람들은 서로 사기당한 일들과 빛이 얼마인가? 중국에서 무슨 일들을 했는가? 식구들은? 한국에 누가 나가 있는가? 그리고 돈벌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누군가 지금 형은 미국에, 동생은 일본에, 어머니는 한국에, 현재 늙은 아버지만 집에 계신다고 말하자 옆의 사람이 놀리듯 “국제 가족이구만”했다. “아니요, 이산가족이지요.” 듣는 것 모두가 어쩌면 자신과 비슷한 처지 같았다. 남편은 지금쯤 집에 도착 했을 것 같다. 그녀는 혼자 되돌아간 남편을 생각하였다.  당초부터 밀항에 대해 남편은 내키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집을 출발해 대련으로 가는 기차에서 남편은 이맛살을 찡그리며 내내 말이 없었다. 그녀라고 왜 두렵고 무섭지 않겠는가! 하지만 달리 택할 길이 없었다. 그녀가 사는 마을 전체가 ‘코리아 드림’으로 몇 년째 몸살을 앓고 있었다. 많은 집들에서 일찍부터 부모나 그 자식들이 하나 둘 친지 방문이다, 해외 연수다, 하며 한국엘 다녀왔다. 그런데 다녀온 사람치고 부자가 안 된 사람은 없었다. 그때부터 빈부의 차이로 삶의 균형이 깨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가 열심히 일하고 아무리 노력해도 그들의 삶을 쫒아 간다는 것은 거북이걸음에도 못 미쳤다. 한국에 나가기만 하면 단기간에 거액을 벌수 있다는데… 마치 한국에 나가지 못하면 그만한 돈을 잃어버린 것 같아 그녀는 이상한 상실감에 시달렸다. 삶의 의욕이 점점 시들어져 갔다. 한때 동네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던 남편의 월급이 별안간 눈에 안찼고 돈 아껴 쓰는 일이 피곤하고 짜증스러워졌다. 지난날 결혼해서 알뜰히 장만한 살림세간들이 하찮고 보잘것없이 초라해 보여 도무지 닦고 쓸며 살림할 맛이 나지 않았다. 그러던 차 뒤늦게 한동네 잘 아는 사람으로부터 한국행 수속제의를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어처구니없게도 사기당하고 말았다. 그 한 번에 거액 2만원이라는 돈이 바람처럼 날아가 버렸다. 돈만 날린 게 아니라 몇 달을 괴로움에 그녀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진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다시 새로운 희망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길은 역시 한국 길밖에 없었다. 그러나 운 나쁘게도 두 번째 다시 사기를 맞고 말았다. 이번에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꼴이었다. 시집쪽으로 믿을 수 있는 친척인데, 그 당시 그가 소개시킨 사람들이 적잖이 이미 한국 땅에 건너가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어서 철석같이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 믿음이 다시 3만원을 날리게 했던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친척은 단지 중간 소개자일 뿐이고 총 책임자는 한국사람인데 계획적으로 돈을 챙기고 잠적해 버린 것이었다. 그러니까 확실한 믿음을 주기 위해 사전에 총 책임자가 여러 마을을 돌며 한국행 모집을 대량 선전해놓고 우선 한 마을당 서너 명만 일을 성사시켰는데 그것이 곧 대어를 낚는 큰 미끼였던 것이다. 어리석게도 누구도 눈치 채지 못했던 것이다. 사기당한 사람이 무려 100여명은 더 된다고 했다. 그동안 그녀는 생활의 어려움은 말할 것도 없지만 날마다 빛 성화에 시달려 죽을 지경이었다. 남편의 월급은 더 이상 만져볼 수가 없게 되었고 돈이 될 만한 물건들은 중국인 채권자들이 와서 진작 싣고 가 버렸다. 눈물로 애써 지은 쌀농사도 가을 추수가 끝나기 바쁘게 채권자들이 몽땅 실어가 버렸다. 현실은 냉정하기만 했다. 친정으로부터 쌀을 얻어다 겨우 목숨유지를 하고 있었다.  돈을 꾼 일가친척들을 볼 안면도 없어지고 그때부터 하루하루 죄인 같은 삶을 살고 있었다. 화병으로 그녀는 늘 가슴이 두근거리고 밤의 절반을 쫒기는 꿈으로 보내었다. 그녀는 고민 끝에 남편과 밀항하기로 했다. 고생은 막심하겠지만 우선 한국에 도착해서 소개비를 주기로 한 조건이 마음에 들었고 무엇보다 이대로 지내다가는 빚에 눌려 식구 모두가 죽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때문이었다. 이번 길은 그녀에게 있어 그야말로 목숨을 건 최후의 도박인 셈이다. 그녀는 곧 구토를 느끼고 재빨리 식품을 싼 비닐을 가방에서 끄집어내 그 속에 토하기 시작했다. 누구랄 것 없이 난생처음 타보는 배여서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 둘 구역질을 시작하더니 여기저기서 왝왝거렸다. 눅눅한 공기 속에서 퀴퀴한 냄새가 진동을 쳤다. 누군가 구토 끝에 아! 아! 소리 내며 왜 이 고생인지 모르겠다고 말하자 다들 깊은 한숨으로 공감을 표했다. 바닷바람엔 커다란 배도 견디기 힘든지 이리저리 흔들렸다. 뱃전으로 부딪혀오는 파도를 그녀는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배가 한 번씩 기우뚱 할 때면 사람들도 따라 좌우로 혹은 앞뒤로 서로 부딪혔다. 그때마다 견디기 힘든 고통스런 표정을 지었다. 이젠 아무도 말이 없었다. 멍한 시선들로 맥을 놓고 웅크리고 있거나 담배들을 피워 물었다. 바닷물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것도 모르고 입고 있던 바지가 젖어있어 척척한가했다. 하지만 바닥에 물이 계속 스며들자 여기저기서 일어섰다.  그러나 누구도 고개를 바로 할 수가 없었다. 어창 높이가 이들의 키보다 많이 낮기 때문에 이들은 자라는 콩나물처럼 고개를 푹 수그리고 서 있어야 했다. 키가 비교적 큰 사람은 허리를 펼 수가 없어서 다시주저 앉았다. 지친 몸으로 누구도 오래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윗옷들을 벗거나 가방들을 말아서 엉덩이 밑을 깔고 다시 비좁게 앉았다. 첫날은 누구도 잠을 자지 않았으나 이튿날이 되자 토막잠을 자는 사람들이 생겼다. 다들 세운 무릎에 머리를 올려놓거나 아니면 고개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았다. 자다가 흔들리면 깨나고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그 와중에 누군가 잠꼬대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녀는 집을 출발해 그동안 한 번도 깊은 잠을 자본적이 없었고 계속 긴장의 연속이었기 때문에 이미 지칠대로 지친 몸이지만 잠은 쉬 오지 않았다. 눈을 감고 잠을 청하려 해도 머리만 띵해 오고 눈알만 아파왔다. 떠나기 전부터 부르튼 아랫입술이 더욱 부어올라 윗입술까지 번져버려 가만있어도 절로 후끈거렸다. 하품하다 부르튼 부분이 터졌는지 옆의 남자가 입가에 피가 흐른다고 알려 주었다. 그녀는 손으로 입가를 닦아내었다. 거울이 없는 상태에서 서로가 서로의 거울이 되었다. 철썩철썩 파도가 뱃전을 때렸다. 순간순간 원인모를 두려움과 슬픈 감정이 그녀를 목메게 하였다. 불확실성에 대한 공포가 그녀를 한없이 사로잡았다. 새로 사 신은 구두는 물에 불어서 모양이 커졌고 변형돼 있었다. 과자 등 먹을 것들이 건사를 잘못해서 물에 젖어 버렸다. 여기저기 쓰레기들이 바닥위에 떠 있었다. 누군가 소변을 보고 싶어서 갑판 뚜껑을 두드려 대다가 인기척이 없자 급한 김에 비닐주머니에 대고 내보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것마저 건사한다는 게 힘들고 귀찮아 사람들은 아예 되는대로 그곳만 가리고 그 자리에서 배설을 했다. 오줌줄기 소리가 또렷이 들렸다. 앞의 남자와 눈이 마주쳤을 때 그는 난감한 듯 말라붙은 입술로 애매하게 웃었다. 그녀는 바지를 내릴 수가 없어서 옷 입은 그 채로 볼일을 봤다. 자존심도 수치심도 모두모두 사라져 버렸다.  바닥은 오염물로 눈에 띄게 지저분했고 냄새는 시간이 지날수록 고약해졌다. 어인일로 스며들던 바닷물이 발등이상을 넘기지 않고 멈추었다. 이처럼 원시적이고 불결한 곳에 갇혀 밀항하리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녀는 원시의 인간들이 자연을 이겨내듯 버티는 수밖에 딴 도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행동반경이 좁은데다 주위가 모두 남자들이므로 그녀는 몸 움직임이 시종 자유스럽지 못했다. 고정된 상태에서 오래 쭈그리고 앉아있다 보니 어깨가 마비된 듯 저렸고 두 다리도 뻣뻣해졌다. 시시각각 고통스러웠다. 조급한 심정과 달리 시간은 침착함을 잃지 않고 천천히 조용히 흘러갔다. 차고 있던 손목시계가 언제 어디서 없어졌는지 그때그때 시간을 알 수 없는 그녀는 옆 사람에게 자주 물어보는 것도 점차 눈치스러워졌다. 다들 배 멀미를 하고 구토들을 했으나 오래도록 먹지 못한 배고픔에 참을 수가 없어서 소리 지르고 갑판 뚜껑을 연신 두드렸다.  그 사이 그녀는 불은 과자라도 먹으려고 살폈으나 비눗물처럼 이미 다 풀어지고 없었다. 먹고 싶다는 갈망이 배고픈 그녀의 육신에 목마름을 더해 줄뿐 노력만으로 도저히 생리적인 본능을 이겨낼 수 없었다. 생전에 먹고 싶은 생각이 이토록 절실한 적이 있었던가!  속수무책으로 계속 이렇게 갇혀 가다가는 굶어 죽을 것만 같았다. 평균수명까지 살다죽는다 하더라도 아직 많은 세월이 남아 있지만 생의 미련보다 빚 갚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어쨌던 살아 한국 땅에 도착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그녀는 간신히 배고픔을 이겨내고 있었다. 이제 그녀에게 배고픔이란 더 이상 감각이 아니라 일종의 지속적인 공복감이 되었다. 기진맥진 세운 두 무릎사이에 얼굴을 묻고 있노라면 저도 모르게 깜빡 잠이 들 때 있었는데 그 순간만이 평화이고 눈만 뜨면 배 밑이라는 차가운 현실이었다. 지속적인 두드림에 갑판뚜껑이 드디어 열리였다. 다들 배고파 죽겠다고 손짓을 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우리에 갇힌 짐승마냥 다들 소리 끝에 끙끙거렸다. 안내자가 마지못해 밥은 없고 죽 정도는 끓여 줄 수 있다고 대답했다. 당초의 안내자를 제외하곤 선원 모두가 중국인이었다. 뒤늦게 중국 선원들이 죽을 끓여 한 사람 한 사람 나누어 주었다. 끓인 죽은 그야말로 희멀건 미음같은 물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나마 몇 번 들이키니 죽 그릇이 금방 바닥이 났다. 사람들은 안면체면 없이 개처럼 혀를 내밀어 죽 그릇 둘레를 핥았다. 간에 기별도 가지 않았지만 조금이나마 마셨다고 다들 기운이 도는 듯 조금은 표정들이 나아졌다. 파도가 세차졌는지 배가 다시 심하게 기우뚱거렸다. 또 다시 밤이 온 것이다.  낮보다 밤이 항상 견디기 어려웠다. 구역질을 하고 토하는 사람들이 다시 이어졌다. 먹은 것 이상으로 구토를 해서 그녀는 나올 쓴물도 없었다. 헛구역질을 너무해서 목구멍이 따갑고 위속이 참을 수 없이 쓰라렸다.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던지 누군가 돈이고 뭐고 때려치우고 집으로 돌아가는 게 소원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다른 한사람이 뚜껑만 열리면 바로 바닷물에 빠져 죽고 싶다고 절망스런 말을 토했다. 긴 시간이 느릿느릿 흐르는 가운데 드디어 “어서 나와!”  하는 소리와 함께 어창뚜껑이 열리였다. 사닥다리가 내려지자 사람들은 순서대로 갑판 위를 엉기적거리며 기여 올라갔다. 그들에게 당초의 민첩함은 사라지고 없었다. 퀭한 눈빛에 씻지 못한 얼굴들로 다들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실성해 보였다. 저마다 쓰러질듯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비칠거렸다. 그녀 역시 쪽박만 들면 동냥을 나가도 어울릴 그런 초라한 모습으로 기여 나왔다. 아닌 말로 거기다 웃기만 하면 미친 여자나 다를 바 없었다. 얼마 만에 보는 햇빛인가!  그녀는 두 눈을 바로 뜨지 못했다. 푸른 바닷물이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아찔한 현기증이 일어 그 자리에 푹 쓰러지고 말았다. 세상이 빙빙 도는 것 같고 이대로 바다에 빨려들 것도 같았다. 바다가 무섭게 다가왔다. 갑판위에 고기 그물들이 어지럽게 늘려 있었다. 그 위에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편할 대로 누워 있었다. 여기가 안전한 공해라고 했다. 이곳에서 한국어선을 기다린다는 것이었다. 누군가 날짜를 짚더니 오늘이 5일째라고 말했다. 그들은 잠깐이나마 그렇게 누워 그동안 답답함을 일시에 몰아내 듯 콧구멍을 연신 벌름거리며 신선한 공기를 맘껏 취했다. 다들 그렇게 한숨을 돌리느라 정작 저 멀리 수평선에 아름답게 지는 붉은 노을을 바라보지도 느끼지도 못했다. 눅눅한 바람이 한없이 얼굴들을 핥고 지나갔다. 파도의 골 을 타고 배가 쉴 새 없이 흔들렸다. 어두워질 무렵 검푸른 물결이 배 주위에서 일렁이다가 무서운 파도에 밀려 어선을 사정없이 덮쳤다. 흔들거리는 배로부터 흰 포말을 내뿜으며 파도는 다시 밀려가고 그리고 다시 덮치는 꼴이었다. 큰 어선이라곤 하지만 망망한 바다에서는 작기로 가랑잎에 지나지 않았다. 어쩐 일로 그동안 오가는 배는 한척도 볼 수 없었다. 절망처럼 망망한 바다엔 오직 검푸른 파도만 넘실거리고 있었다. 초조히 몇 시간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긴장의 순간이 닥쳐왔다. 접선할 한국어선이 도착한 것이다. 망망한 바다에 한 점의 불빛이 희망처럼 반짝거렸다. 다들 한국 배라는 소리를 듣는 순간 한국에 도착이 된 것 마냥 기뻐하면서 그 와중에 가벼운 환호성을 질렀다. 이윽고 규칙적인 엔진소리를 쉴 새 없이 내뿜으며 두 어선 간에 서로 접근하려고 가깝게 다가갔다. 그러나 밀려오는 파도 때문에 번번이 서로 멀어졌다. 그때마다 육중한 배가 휘청 기울여졌다가 오뚜기처럼 바로섰다. 어쩐 영문인지 팽이처럼 몇 번 돌기도 했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 겨우 한국 배와 맞닿을 수 있었다. 그러나 배 사이의 깊고 푸른 물결을 의식하고 사람들은 겁에 질려 감히 넘어갈 엄두를 못 냈다. “개자식들 뭐하고 있어! 빨랑빨랑 움직여!…” “거지같은 새끼들 뭐하고 섰어! 시간 없다구!…” 한국어선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고함을 질렀다. 대놓고 반말에다 거침없이 쌍소리를 뱉어내는 그 자들은 목소리도 크고 말투도 강하고 단호한 몸짓이었다. 곧 이쪽 선원들이 재빨리 물건 넘기듯 양쪽 팔을 잡고 한사람씩 떠 넘겼다. 그 자들 역시 물건 건네받듯 잽싸게 받아내는 식으로 사람들이 하나 둘 건네졌다. 누구라도 만에 하나 손을 놓을 경우 바로 바닷물에 떨어져 죽는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다들 공포감에 몸을 떨었다. *   지난 모든 일들이 영화 속의 장면처럼 하나하나 또렷이 이어진다.  숨 이 자꾸만 가빠온다. 호흡이 점점 시원치가 않다. 더위 탓일까. 물밖에 나온 물고기마냥 큰 숨을 내쉬어도 헐떡거려진다. 가슴이 막힌 듯 답답하다. 아! 아! 소리라도 내지르면 속이 후련할 것 같다. 허벅지 사이로부터 뭔가가 확실히 흐른다. 생리 올 때는 아직 아닌데… 가까스로 손을 넣어본다. 끈적이는 액체가 손끝을 푹 적신다. 피 같다. 힘겹게 눈을 떤다. 희미한 불빛에 손가락이 빨갛게 보인다. 피다. 어찌할 것인가! 엎친 데 덮친다고 위생지도 없는데… 손수건을 찾아 간신히 그곳에 밀어 넣는다. 고개가 자꾸만 꺾어진다. 입에서 단내가 확확 끼치고 정신이 몽롱해진다. 한국길이 이다지도 먼가? 이 시각 영원처럼 멀게만 느껴짐은 왜일까? 저승길보다 더 먼 것만 같다. 머리위로부터 발자국 소리가 난다 싶었는데 다시 잠잠해진다. 오늘의 이 고생을 어머니께서 예감했던 것일까? 배는 아무나 타는 게 아니다! 어머니는 내내 말리셨다. 다시 못 볼 것처럼 침통한 얼굴로 대문밖에 서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자꾸만 떠오른다. 몸이 아파 병원에 가는 줄 알고 “엄마 올 때 맛있는 거 많이 사와야 돼….” 하는 아들애의 간절한 목소리도 들리는 듯하다. 빛 독촉하러 온 마을 사람들의 냉정한 눈초리들도 떠오르고 남편의 기죽은 모습도 떠오른다.  대련까지 함께 왔다가 결국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밀항을 포기한 남편, 매정스레 혼자 돌아간 것이 한없이 미웠는데 차라리 잘됐다 싶다. 나와 달리 도시에서 곱게 자란 그가 이런 고생을 감당하기는 벅찰 것이다. 모험은 나 혼자로 족하다. 만약의 경우, 최악의 경우를 이시각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애초부터 죽기 살기로 결심하고 나선 길이다. 빚 갚고 돈 버는 길은 오직 한국 길밖에 없다.  이제 조금만 더 참으면 한국 땅에 도착이 될 것이다. “빨리빨리 나왓!” 비몽사몽간에 누군가의 소리가 들린다. 동시에 어창 뚜껑이 확 열리는 느낌이다. 웅성웅성 주위가 시끄럽다. 사닥다리가 쿵하고 내려지고 옆의 남자가 엉기적엉기적 위로 올라가는 게 보인다. 눈앞의 광경이 현실이 아닌 꿈같이 느껴진다. “아줌마! 한국 다 왔어요, 어서 빨리 나가요!” 뒤의 남자가 재촉하고 있었다. 꿈이 아니었다. 분명 생시였다. 용을 써서 일어나려 했지만 어쩐 일로 몸이 움직거리질 않는다. 일어서야 한다. 반드시 일행을 따라 나서야 한다. 지금 나가지 않으면 영원히 못나가고 말 것 같다.  급한 누군가가 나를 짓밟고 기어오르는 것 같다. 심한 통증이 횅하니 가슴팍을 뚫고 지나간다. “왜 이렇게 굼떠? 똥뙤놈을 다 닮았구먼, 빨랑빨랑 기어 나와!” 내 앞의 남자한테 늦는다고 뺨 후려치는 소리가 철썩 들린다. “에이, 씹 팔년 일어서라구. 이 꼴로 걷기나 하겠어?….” 나를 덮친 바로 깡패 같은 그 자들이다. 한 놈이 엎드려 양 어깨를 움켜잡고 나를 어창으로부터 거칠게 끌어 올린다. 숨이 가빠 죽을 것 만 같다. 전신이 힘이 없다.  밖은 어두웠다. 그자들은 억센 손아귀로 양팔을 붙잡고 질질 끌다시피 나를 어디론가 데려간다. 두 발이 거의 땅에 닿지를 않았다. 그곳에 후줄근한 모습의 일행들이 화물차 위에 타고 있었다. 그동안 허기와 멀미로 반 주검이 된 그들이지만 용케도 잘 버티고 서 있었다. 그들이 하나같이 유령처럼 보인다. 그 자들은 짐 올리듯 나를 훌쩍 쳐들어 차위로 던져 올린다. 그녀는 쓰러지려다 일행들의 부축임에 간신이 기대선다. 일행들을 다 태우자 운전수가 신속히 딱딱한 천막을 그들 머리위로 씌웠다. 그리고 짐을 고정하듯 단단한 밧줄로 이쪽저쪽 지그재그로 바짝 동여맨다. 짐을 가장한 만큼 검문 시에 들통날것에 대비해 불쑥불쑥 솟아 오른 머리통들을 향해 몽둥이로 후려치듯 사정없이 내리 누른다. 아! 아! 여기저기 비명소리들이 들리자 “조용히들 못해! 다들 죽고 싶어!” 낮으나 아주 위압적인 목소리로 다시 일일이 내리 누른다. 화물차는 으슥한 해변을 재빨리 빠져나와 빠른 속도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사람들 틈에 압축된 듯 바짝 붙어 서 있었다. 숨이 넘어갈 듯 콱콱 막힌다. 어창보다 어쩐지 더 답답하다. 죽을 것만 같다. 공기를 틔우려고 사람들이 손을 휘저어 보지만 끄떡없다.  엄마! 아들아! 여보!… 한국에 도착했어!  한국 땅을 아직 밟지 못했지만 이제 곧 밟게 될 것이다. 한국 땅에 내려지면 중국에다 전화해 동생한테 맡겨둔 담보금을 암호를 통해 알선 조직책에게 지불하면 그만이다. 모든 것은 곧 끝나는 것이다. 이제 곧 차에서 내려질 것이다. 이제 자유의 몸이 되면 이곳 한국 땅에서 열심히 일하리라, 돈 많이 벌어 빚 갚고 저축해서 금의환향 집에 돌아가리라! 가물가물 잠이 온다. 배고픔도 고통도 더불어 사라져 간다. 전신이 무너져 내린다. 쓰러져서는 안 된다, 지금 잠들어 버리면 그 자들이 나를 또 어떡할지 모른다. 몽롱한 의식 속에서도 그녀는 위태로움을 느끼며 어떻게든 버티려고 안간힘을 쓴다.  한차례 발작 끝에 그녀는 깨여날 수 없는 깊은 수렁에 빠져 들었다. 화물차는 숨이 막혀 아우성치는 사람들을 싣고서 빠르게 어디론가 달려갔다.   (끝) [김노 소설가 프로필] 김노(金奴) 소설가는 1956년 중국 길림성에서 출생, 1978년에 결혼을 했으나 8년 만에 남편이 위암으로 세상을 떠서 홀몸이 됐다. 그후 1992년에 암으로 상처한 한국남자와 재혼하여 21년을 함께 살았으나, 더 이상 "노예가 되기 싫어서 이혼하고 자유인"이 되었다.  김노 소설가는 1990년도부터 수필 수기 중단편 등을 계속 발표하였는데, 수필 「낯선 고향길」로 제1회 동부문학상을 수상(1995)하고, 「나의 서울생활」로 한국일보 여성생활수기 부문 우수작(1995)을 냈으며, 「어머니의 작은 소망 하나」로 ‘행복의 샘’ 창간 6주년 기념 나의 어머니 수기 공모 당선작(1998)을 냈다. 그 후 단편「한심한 세상」으로 중국 조선족문예지 ‘장백산’에서 ‘모드모아문학상’(2000)을 받았으며, 동시에 「길림댁은 등나무처럼 살고 싶다」로 동아일보 신동아 논픽션 최우수상을 받았다.  현재까지 그는 중단편, 수필,․ 수기 등 40여 편을 창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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