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도 와인의 명품화

▲ 문학박사, 수필가, 국어학자, 국제문학지 계간<문학의강> 발행인한국영상낭송회 회장, 한국문인협회 자문위원skc663@hanmail.net
[서울=동북아신문]프랑스 보르도(Bordeaux) 하면 와인 생산지로 유명하다. 와인 '보르도‘와 ’매독‘이 바로 이곳에서 생산되는 명품들이다. 이 이름의 와인들은 프랑스 와인의 대명사가 되어 세계적으로 많이 판매되고 있다.

보르도 와인이 이렇게 유명하게 된 데에는 먼저 지리적 환경과 기후를 들 수 있다. 두 강줄기가 합류하는 지역이어서 물이 좋고, 대서양의 따뜻한 바람과 빛나는 태양을 받아 좋은 포도가 생산될 뿐만 아니라, 와인을 수출할 수 있는 거점 보르도 항이 있어서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지역민들의 남다른 생각과 의식이었다. 

보르도 와인의 역사는 12세기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이 지역은 윌리엄 10세 공작이 다스렸는데, 그에게는 딸 엘레아노르가 있었다. 15살 때 정략결혼으로 프랑스의 국왕 루이 7세에게 시집을 갔으나 사랑이 없는 삶으로 이혼을 하고 돌아왔다. 그 뒤 훗날 잉글랜드의 왕이 되는 10살 연하의 헨리 2세와 재혼을 하였다.

그런데 당시에는 신부의 재산을 모두 결혼지참금으로 가져가는 관습이 있었다. 그래서 엘레아노르의 보르도 지역은 잉글랜드 왕실의 소유가 되었다. 때마침 그때 영국은 지하수가 오염되어서 음료수로 보르도와 스페인, 이탈리아 등지에서 와인을 수입해서 먹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보르도가 잉글랜드의 소유가 되자 보르도의 풍부한 수자원과 보르도 와인은 곧바로 영국으로 수송되었다. 보르도 와인은 영국의 것이 되었기에 더 이상 관세를 부과하지 않았다. 운송 거리도 다른 나라보다 가까워서 영국의 런던 항에 하역되는 와인의 대부분은 보르도 산이 차지하게 되었다.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와인은 자연히 경쟁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그런데 보르도 사람들은 자기네 공작의 외동딸이 출가를 함으로써 어떤 대가도 없이 자기들의 땅이 일시에 영국에 소속되어 버렸다. 그리고, 자신들이 애써 가꿔서 만들어낸 와인이 값싸게 영국으로 수출되어 가게 된 것이다. 땅도 와인도 빼앗긴 셈이다.

 하지만, 보르도 사람들은 자기 고장 출신이 영국의 왕비가 된 것을 크게 자랑스럽게 생각하였다. 예속되어 착취당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왕비의 고장으로서의 자긍심과 자부심으로 점점 더 최고의 와인을 만들어내는 데에 힘썼다. 그리고 유리한 수출 여건을 활용하여 좋은 와인을 보다 값싸게 런던으로 보내어 시장을 점유하게 만들어 나갔다.

그들은 보르도 와인을 <여왕의 와인> 또는 <와인의 여왕>으로 부르며 내세웠다. 품질과 이름이 맞아떨어지면서, 보르도 와인은 마침내 영국은 물론 유럽 세상에 군림하게 되었고, 그 전통이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게 된 것이다. 현명한 의식의 전환과 열정적인 노력으로 자기 고장의 와인을 세계적인 명품으로 만들어낸 것이었다.

  명품은 좋은 자연환경과 여건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명품으로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의 남다른 의식과 피나는 노력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보르도 사람들은 예속되어 빼앗기고 착취당한다는 수치와 분노의 자비(自卑) 감정을 깨치고 의식을 바꾸어서, 여건 활용과 열정적 노력으로 자존(自尊)을 이루어낸 것이다.

 협의보다 투쟁을, 자신보다 국가의 책임을 주장하고, 장래보다 현재의 만족에, 미래 가치보다 당장의 이익 복지에 더 급급해하는 현실을 보면서, 와인을 명품화시킨 보르도 사람들의 삶이 자꾸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프랑스 보르도에 가면 “인정(人情)에 반하고 와인 향기에 취한다.”는 말이 있다.

인정은 살아가며 서로 협력하고 베푸는 데에서 자라고, 향기는 삶이 맛나게 무르익어야 생긴다. 보르도 와인 한잔이 주는 의미는 그래서 매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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