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이라도 나비되어 고향으로 돌아오기를”

▲ 영화 ‘귀향’에서 주인공 정민이 위안부로 끌려 가는 장면
▲ 박연희 동포모니터링단장
[서울=동북아신문]3.1절 날 영화 한편을 보았다. 위안부는 중국조선족들에게는 그다지 익숙한 단어가 아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영화 ‘귀향’이다. 영화의 예고편에 이런 문구가 나온다.

“20만 명의 소녀가 끌려갔고 238명만이 돌아왔다. 그리고 현재 46명만이 살아있다.”

영화를 보고 난 후에야 이 문구가 더 가슴에 와 닿았다.

영화는 1940년 16살의 나이에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가 고초를 당하고 불타 죽을 뻔했던 강 일출 할머니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귀향(鬼鄕)의 ‘귀’는 귀신 ‘鬼’자를 썼는데 일본군에 의해 끌려가서 타향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위안부 피해자 소녀들을 비록 영으로나마 고향으로 모셔 오고자 하는 의도에서 기획되었다.

영화는 스토리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일직선으로 쭉 써내려가는 게 아니라 아픔에 너무 몰입시키지 않으려는 듯 현재와 과거를 한 무녀를 통해서 계속 번갈아 가며 보여준다. 그래서 눈물을 흘리다 멈출 수 있었고 담이 작은 자신도 2시간 내내 총과 칼, 채찍질, 학대 그리고 찢어지는 소녀들의 비명소리 속에서도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아직 초경도 안한 천진난만한 소녀들이 피에 절고 욕망에 절은 전쟁터로 끌려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끔찍한 일을 당한다. 잔인한 일본군들의 만행에 당하는 소녀들 중에는 한 중국인 여자애도 있었다. 달거리에도 위안부로 몸을 내맡겨야 했고 모진 고초를 겪다가 제 ‘기능’을 못하면 죽임을 당하는 아이들. 위안부로 끌려간 부대에서 군병으로 끌려간 친오빠를 만나 정신 줄을 놓아버린 아이. 운이 좋아 돌아왔어도 살아 돌아온 것이 죄책감으로 남고, 위안부 딱지가 낙인으로 남아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단 한순간도 편할 수 없었던 위안부 생존자들.

일제의 입장에서 증거 인멸 차원으로 청소, 소각했던 인명이 어마어마했고, 기적같이 살아오신 그 분들의 가슴 속엔 지울 수 없는 마음의 짐이 있게 됐다는 것을 우리는 미처 몰랐다.

가슴 뜨거운 영화이다.

누구도 쉽게 영화제작에 투자하려 하지 않았고, 영화에 출연하려 하지 않는 와중에 일본에 사는 재일교포들이 출연을 결심했다. 그들은 출연료는 물론 비행기, 숙박비까지 직접 지불해가며 귀향에 참여했다고 한다. 주인공 정민도 재일교포이고 극중의 일본군 역할을 맡은 배우도 재일교포이다. 위안부 할머니들 얘기를 듣고 안 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악역임에도 자청해서 자비로 한국에 와서 출연했다는 미담이 전해져 가슴이 뜨거워 졌다.

장편영화임에도 촬영시작 3일 만에 예산이 바닥났고 그 소식을 듣고 세계각지 7만5,270명의 크라우드펀딩으로 10억에 가까운 기금이 모여서 다시 영화제작을 할 수 있게 되었고, 2달 만에 결국 촬영을 마치고 상영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영화는 처음 촬영을 시작할 때 조정래 감독이 협박을 받고 죽을 위기를 두 번이나 겪을 만큼 어렵게 만들어졌다. 그만큼 올바른 역사를 알리기 위한 노력이 컸다는 뜻이었다.

아픈 영화이다.

나라가 약하다는 이유만으로 이 잔인한 현장에 바로 내가 알 만한 내 누이, 내 철없는 여동생, 부끄러움에 가슴 설레며 남몰래 바라보던 동네의 한 소녀가 저항도 못하고 던져졌으니까. ‘귀향’이라는 제목 자체가 그러하다. ‘귀향’은 그곳에 있던 소녀들을 가장 위로하는 말이었고 고향은 그녀들이 안식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왜 그녀들은 고향을 그리워할까?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고향을 그리워하는 그녀들의 대사 하나하나에 가슴시리도록 공감할 수 있을까?

가슴 시린 영화이다.

영화에는 ‘언니야 우리 집에 가자’는 말이 줄곧 반복된다. 그녀들이 그리워하는 고향에는 부유한 집도 풍족하게 누리는 삶도 없다. 영화의 말미에서 ‘돌아온 주인공’이 가난한 초가집에서 엄마 아빠와 함께 하는 어머니가 정성스럽게 차려준 식사를 통해서 그 의미가 드러났다. 고향에는 평범한 일상이 있을 뿐이다. 엄마에게 회초리도 맞고, 동네 친구들과 공기놀이도 하고, 아빠가 태워준 지게와 아빠의 노래가 있다. 작지만 누구로부터 사랑받아 누리는 이 일상들이 그녀들은, 우리는 그리운 것이다. 고향에는 이런 일상들이 소녀의 삶과 우리가 평생 살아가는 정서의 기반을 이룬다.

굿으로 이어진 영화이다.

위안부들을 위로할 수 있는 방법으로 ‘죽은 이들을 이 땅의 고향에 불러올 수 있는 형식’인 무속신앙의 굿을 이용했다. 우리의 정서를 반영하기 위해 사용한 굿, 그리고 굿에서 들려오는 소리들, 국악기의 한풀이 곡조가 영화 중간 중간에 자주 나오는데 정말 그분들의 맺힌 한이 얼마나 깊은 지 느껴졌다.

나비효과로 마무리된 영화이다.

무녀를 통해 주인공 정민이를 고향으로 불러온다. 수많은 위안부들이 나비가 되어 자신의 고향으로, 부모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 마지막 장면이었다. 어쩌면 나비효과를 통해 위안부들의 혼을 달래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영화 마지막 엔딩에 나오는 위안부 할머님의 작품들과 함께 이미 고인이 되어버린 많은 분들의 이름을 보면서 더 가슴이 먹먹해지고 숙연해졌다.

작지만 큰 울림을 주는 영화이다.

어둡고 무겁고 우리가 외면하려고 스스로 노력했던 그러나 누군가는 죽은 이후에도 잊을 수 없는 사실 그대로를 담고 있었다. 얼마 전 10억엔이라는 돈을 받기로 하고 정부는 일본과 위안부 관련 합의문에 서명을 했다. 그 합의문에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는 문구를 삽입함으로써 이제 더는 일본에게 이 문제에 대해서 그 어떤 요구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위안부 할머니들은 합의금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위법한 행위에 대한 손해배상과 진심어린 사과를 요구하는 것인데 정부만 모르고 있었을까? 우리의 무능함으로 지켜주지 못한 어린 소녀들, 우리가 보듬어줘야 할 존재인데도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일본에 대한 분노,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안타까움, 가슴 아픈 역사를 되돌아보는 시간이었고 치욕스러운 과거가 아닌 올바른 역사를 인식하고 위안부들의 상처를 함께 하는 시간이었다.

소녀는 삶 전체를 송두리째 빼앗기고

꽃 같은 십대에 짓밟혀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차디찬 그 곳에 있다.

우리 모두 소리 내어 불러보자.

영혼이라도 나비되어 고향으로 돌아오라고!

 

▲ 영화 ‘귀향’의 홍보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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