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한국에 있는 우리 민족 작가들을 다시 발굴해내는것은《도라지》잡지사의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되는 일"

개혁개방이후 가속화되는 시장경제의 충격속에서도 지지 않고 꿋꿋이 피는 “꽃”이 있다. 민족의 얼을 담아 흔들리지 않는 정신으로 오로지 순수문학만 고집해온 《도라지》잡지, 다년간 산재지역 작가들뿐만아니라 우리 민족 작가들의 좋은 친구로, 훌륭한 활무대로 그 립지를 굳혀가고있다.

《도라지》의 전신은 《군중문예》이다. 1977년 창간 당시에는 주로 가사와 재담, 민간이야기 등을 주요내용으로 했으며 프린트를 해서 각 마을 문예일군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문화생활이 결핍했던 길림지역 20만 조선족의 문화생활을 풍부히 하고 특히는 길림지역 조선족들의 문화생활과 문예활동을 지도하는데 주되는 역할을 맡아왔다. 1979년 7월 《도라지》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1984년 1월에 계간으로부터 격월간으로 고치고 그해 8월 중공길림성위 선전부로부터 국내 공개발행을 비준 받았다. 1988년부터는 국내외의 공개발행을 병행하면서 산재지역의 조선민족 생활속 희로애락을 반영하는 잡지로 거듭났으며 젖먹이로부터 름름한 소년의 모습으로 성장했다.

▲ 지난 3월 도라지잡지사와 동북아신문은 서울구로구 구로도서관에서 2016중한문학예술교류심포지엄을 가졌다. 왼쪽부터 길림시문화관 전경업 관장, 동북아신문 이동렬 대표, 리상학 도라지잡지사 주필 순이다

독자들의 마른 목을 시원히 적셔주는 역할외에도 《도라지》는 우리 민족 작가들의 활무대가 되여주었다. 지금까지 《도라지》는 수많은 작가들을 배출했으며 그것은 지금도 이어지고있다. 로작가와 중견작가들의 우수한 작품들을 섭렵하는 가운데 젊은 작가들에 대한 관심도를 높였으며 이 취지에 걸맞는 여러가지 행사를 조직하여 젊은 작가층의 력량을 모으는데 게을리하지 않았다.

《도라지》문학상과 명시랑송회, 청년작가창작회의 등 계렬행사활동을 조직하는 한편, 《조선족청년작가작품총서》 출판회를 이어가면서 지금까지 조선족청년작가작품총서 12권을 출판하였는데 그중 구호준작가의 《사랑의 류통기간》은 제1회 단군문학상 신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도라지는 길림시의 조선족기업인들을 널리 선전하고 그들의 성장과정과 성과를 그려내는 실화작품집 《룡담산의 봇나무》를 출간했으며 “만석문학상”, “록원문학상”, “장락주 문학상” 등을 설치하여 작가들의 창작의욕을 적극 불러일으켰다. 또 《도라지》해외문학상을 설치하여 해외 문인들과의 련계를 강화하기도 했다.

지난 3월 《도라지》잡지사에서는 재한동포문인협회 리동렬회장과 손잡고 현재 한국에 거주하고있는 중국조선족출신 문인들과 소중한 만남의 자리를 가졌다. 

리상학주필은 “사실 지난 80년대까지만 해도 길림지역에는 거의 100명을 웃도는 작가들이 있었거든요. 지금은 스무명도 되나마나합니다. 대개 절필을 하지 않았으면 한국으로 갔지요”라며 아쉬움을 전했다. 

 
또한 한국에 있는 우리 민족 작가들을 다시 발굴해내는것은 《도라지》잡지사의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되는 일이라며 지난 한국행의 계기를 밝혔다. 그들과의 좌담에서 《도라지》의 편집일군들은 한국에서 생활하고있는 우리 조선족들의 생활상을 다시한번 실감할수 있었으며 그것을 생생한 글로 반영하는 작품들도 수집할수 있었다.

《도라지》잡지의 이와 같은 노력이 헛되지 않게 잡지는 길림성 1급 간행물, 전국조선족 우수간행물로 평의되였으며 《연변문학》, 《장백산》, 《송화강》과 함께 중국 조선족 4대 문학지로 그 역할을 다하고있다.
《도라지》잡지는 현재 길림시조선족군중예술관산하에 있으며 길림지역의 특색을 살리고 지방의 문학인들을 양성하며 당지 조선족들의 문화활력소가 되여주고있다.

(04-15 연변일보/ 박진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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