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동주' 관람후 감독과의 좌담회 시간에 패널로 참가해 의견을 발표하는 박연희 동포모니터링 단장(오른쪽 끝). 사진 왼쪽부터 이준익 감독, 배우 박정민, 조남철 방송통신대 전 총장.

[서울=동북아신문]3.1운동을 계승한 연변의 만세운동이 일어난 날인 지난 3월 13일이었다. 중국동포들이 가장 좋아하는 저항시인, 용정시 명동촌이 낳은 윤동주 시인을 영화 ‘동주’에서 만났다. 그날 영화관람 후 중국동포와 한국인 백여 명과 함께 동포모니터링단 단장의 신분으로 ‘동주’의 이준익 감독과 송몽규 역을 맡았던 배우 박정민,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조남철 전 총장과 함께 좌담회에 토론자로 참여했다.

영화 ‘동주’는 현재의 동주와 고등학생, 연희전문대생, 유학생 등 과거의 동주를 교차하며 보여주고 있었다. 모든 것이 허락되지 않았던 일제강점기 한집에서 태어나고 함께 자란 동갑내기 동주와 몽규, 내성적이고 수줍음 많은 동주와 달리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개의치 않고 행동하는 몽규, 동주는 이런 몽규의 모습이 부럽고 때론 넘기 힘든 산처럼 느낀다.

창씨개명을 강요하는 혼란스러운 나라를 떠나 두 사람은 일본 유학길에 오르고 일본으로 건너간 후 몽규는 독립운동에 더욱 매진하고, 시대의 새로운 길을 꿈꾸는 동주는 시로써 자신의 신념을 굳건히 지키려 한다. 어둠의 시대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던 두 청춘의 가슴 먹먹한 이야기다. 일제강점기라는 특수한 환경을 겪고 있는 그 시대의 청춘들은 어떤 생각을 가졌고, 어떤 삶을 지향했고, 어떤 꿈을 꾸었는지 그들의 아픔과 갈등은 무엇인지, 흑백 스크린 밖에서 숨죽여 지켜보았다.

동주는 영화의 주인공이지만 마치 몽규의 그림자처럼 그의 인생의 궤도를 함께 한다. 동주의 인생은 몽규와는 사뭇 다르다. ‘자화상’, ‘쉽게 쓰여진 시’ 등에서 보여지 듯 그는 몽규에 비해 한걸음 물러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워한다. 그의 고독감과 절망감을 그가 평생토록 썼던 시집에 담아 ‘하늘과 바람과 별과 時’로, 그의 순국 8년 뒤 해방 후에야 발간될 수 있었다.

동주의 삶과 죽음을 함께 한 평생의 벗 몽규는 역사 속에 기록되지 않은 독립운동가로 이 시대의 깨어있는 등불이자 실천하는 행동가였다는 것을 영화를 통해서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주인공인 동주보다 몽규에게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연기 또한 강하늘보다 박정민이 그 역할을 더 잘 소화해내고 있었다.

이에 대해 이준익 감독은 좌담회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많은 분들이 윤동주의 시를 좋아하지만 그 분의 삶에 대한 관심은 적어요. 윤동주에 관한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윤동주 한 사람만으로는 힘들었어요. 한 사람의 정체성 안에는 그와 함께 했던 누군가가 있잖습니까. 그게 몽규였어요. 많은 관객 분들이 동주로 들어와서 몽규로 나가시길 바랍니다.”

영화 속에는 이준익 감독의 깊은 뜻이 있었다. ‘쉽게 쓰여진 시’를 쓰고 취조 받으며 부끄러워 서명을 못하겠다는 동주와 ‘뜻한 대로 하지 못해 한스럽고 억울하다’고 서명하는 몽규의 정체성을 만들어내려고 그 앞을 깔았다.

“우리는 일제의 피해에 대해서만 억울해한다. 하지만 나는 일본 군국주의의 모순과 부도덕성을 동주, 몽규의 입으로 그려내고 싶었다. 윤동주가 그 부조리함을 증명하기 위한 가장 좋은 입구라고 생각했다.”

이준익 감독은 이렇게 덧붙였다.

초반부터 끝까지 영화는 동주와 몽규의 상반된 선택과 집중을 차분하게 부각시키는데 보는 관객들에게 시사를 던지는 것 같았다. ‘나는 과연 어느 편에 가까운 사람이었을까’하는 생각을 줄곧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문인이라면 오로지 문학에만 집중하는 것이 진정한 문인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다. 하지만 사회와 역사를 외면하고 문학작품을 쓴다면 그것이 진정한 문학작품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문학에만 매진하고 늘 소극적인 동주가 답답하기도 하고 심지어 평소에 동주에게 품었던 존경의 마음마저 사라졌다. 대신 애국심이 강하고 나라를 위해서는 물불을 헤아리지 않는 적극적인 몽규에 흠뻑 빠져들었다.

가까이서 본 몽규의 배역 박정민은 젊은 혈기가 넘쳐나고 잘 생긴 그의 얼굴은 무대 위에서 더욱 빛나고 있었다. 박정민 배우는 배역에 충실하기 위해서 혼자 중국행 비행기 티켓을 구매해서 윤동주, 송몽규의 생가와 묘소에 찾아간 헌신적인 배우였고, 영화에서 우리에게 친숙한 사투리를 많이 구사했기에 더욱 친근감이 느껴졌다. 이준익 감독은 몽규를 불나방에 비유했다. 나는 그 불나방을 가까이에서 보면서 오래 동안 느끼지 못했던 가슴 설렘을 되찾을 수 있었다.

우리는 불에 다가가면 죽는 것을 알면서도 불속으로 뛰어드는 것을 보고 마치 불나방 같다고 표현을 한다. 하지만 불나방이 불을 행해서 날아드는 습성이 있는 것은 불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빛을 향해 일정한 각도를 유지하면서 나는 특성 때문이다. 그렇게 계속 각도를 유지하다보면, 나선을 그리면서 결국에는 불빛 주위를 빙빙 돌면서 불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독립운동가 몽규가 바로 이런 불나방이었다. 자기의 목숨이 위태로운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일제에 저항하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불나방이 되어야만 했던 것은 그 시대의 선택이었고 역사의 비극이었다.

동주에게 묻혀 있다가 영화를 통해 새롭게 떠오른 몽규라는 인물이 어쩌면 영화의 주인공보다 더 빛나는 조연이 아닐까 싶었다. 애초에는 이준익 감독과의 만남이 영화감상보다 더 설레었는데 영화상영후에는 박정민 배우에게 눈길이 자주 가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영화는 눈물을 강요하지도 않았고 웃음을 강요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불나방 박정민을 살그머니 우리들에게 선사했다.

 왼쪽부터 박연희 단장, 배우 박정민, 좌담회 사회를 본 박동찬, 이준익 감독, 조남철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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