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춘식 수필가
[서울=동북아신문]오전내내 옥상에서 일을 하다 점심시간이 되자 사람 좋은 사장님은 나에게 점심에 무엇을 먹고싶은가 물었다. 내가 난 아무거나 되니 사장님 드시고 싶은 걸로 먹자고 하니 사장님은 "가을이 되니 추어탕 생각이 나는군요. 오늘 점심엔 추어탕 먹으러 갑시다"라고 하시며 나를 데리고 추어탕집으로 갔다. 

추어탕집은 고객들로 북적북적 초만원을 이루어 밖에서 20여분을 기다려서야 빈자리가 생겼다. 한국인들이 추어탕을 좋아하는 줄은 알지만 추어탕집에 손님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가을이 돼서 그래요, 가을철엔 추어탕이 최고보신탕이지요”사장님이 웃으며 설명했다. 하긴 그렇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해진 가을, 여름내 쇠한 기력을 회복하기 위해 적당한 음식을 꼽으라면 바로 추어탕이 제격이 아닐까 한다. 구수한 추어탕 한 그릇이면 온 몸이 더워지며 든든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제철물고기음식으로 봄에는 삼치요, 여름에는 장어, 가을에는 미꾸라지, 겨울에는 전어로 꼽는다는 것을 어느 책에선가 본 기억이 난다 이윽고 추어탕이 올라왔는데 미꾸라지를 삶아 으깨어 풋배추, 부추, 파, 마늘, 고추를 끓인 추어탕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한술 떠서 먹어보니 과연 별미였다. 한국에 와선 처음 먹어보니 꼬박 이태만에 먹어보는 추어탕이다. 사장님은 이 좋은 추어탕에 술 한잔은 해야 하지 않는가 하면서 소주병마개를 따서 술도 한잔 부어주었다. 평소에 술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데다 노가다일을 하면서부터 점심술은 아예 입에도 대지 않는 나는 사양하고 대신 밥을 반공기 더 달라해서 추어탕에 말아먹었다."중국에서도 추어탕을 먹나요?" 추어탕을 맛있게 먹는 나를 보고 사장님이 웃으며 물었다."먹지요. 자주 먹어요." 그랬다. 전에 미꾸라지국을 먹어도 아주 많이 먹었다. 어려서도 먹고 커서도 먹고 봄에도 먹고 여름에도 먹고 가을에도 먹었을 뿐만 아니라 겨울에도 먹었다. 일년 사시사철 가리지 않고 미꾸라지국을 참으로 많이 먹었다. 그러니 자연 추어탕에 관한 추억도 너무 많이 남아있다. 어릴 적 나는 늘 또래 애들 몇몇과 풀이 많은 도랑, 개울이나 냇가를 찾아서 그물을 가지고 물고기를 잡았는데 잡다보면 버들치도 잡히고 붕어도 잡히고 메기도 잡히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가장 많이 잡히는 것은 물이 있는 곳이면 아무데서나 잡을 수 있는 가장 흔한 게 미꾸라지였다. 그렇게 잡은 미꾸라지를 가지고 우리 집으로 돌아오면 어머니는 더운 여름날 불앞에서 땀 흘리며 우리에게 추어탕을 끓어주셨는데 식량난으로 항상 굶주림에 허덕이던 우리들에게 있어서 어머니 사랑이 듬뿍 담긴 추어탕 한 그릇이면 배고픔이 스스로 물러가고 피곤이 스스로 녹는 듯 했다. 어려서부터 특별히 고기잡이를 좋아했던 나는 해마다 봄에는 올리발, 가을에는 내리발을 도랑에 놓고 물고기를 잡았는데 이렇게 잡아온 물고기중 어머니는 언제나 미꾸라지를 따로 골라내서 그것으로 추어탕을 끓였는데 가난으로 인해 일년가야 돼지고기나 소고기나 닭고기 맛을 몇 번 볼수 없었던 우리 식구들에게 있어서 이것은 최고의 음식이자 최고의 보신탕이었다. 전에 농촌에서 민영교원으로 있을 때는 책임포전이 있어 논농사도 지어야 했는데 내가 맡은 논은 바로 풀이 무성한 물도랑을 끼고 있었고 미꾸라지가 꽤나 많았다. 논농사라야 주로 아내가 하는 것이고 나는 휴일날에나 논일을 하는데 내가 논일을 하러 나가는 날 우리 부부는 아예 반두(물고기 떠는 그물)에다 점심밥, 쟁개비 그리고 고추장 등 양념까지 챙겨서 간다. 오전 일을 하다 쉴참이 되면 우리는 물도랑을 오르내리며 반두질을 하는데 얼마 안가서 미꾸라지와 붕어 등을 반양푼 넘어 잡을 수 있다. 그러면 아내는 농막에서 고기국을 끓이고 나 혼자 일을 하다 점심때가 되어 농막에 들어서는데 고기국 냄새가 온 농막에 차넘친다. 미꾸라지가 꽤나 많이 잡힌 날은 근처에서 논일하던 이웃들도 불러다 같이 식사를 하는데 그때면 농막구석땅속에 묻어두었던 술병을 꺼내 추어탕을 술안주로 이웃들과 함께 술잔을 서로 권하며 이야기꽃을 피우는것도 하나의 낙이었다. 미꾸라지의 모양새와 미끌미끌한 감촉 때문에 혐오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은데 아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추어탕을 늘 끓이면서도 미꾸라지는 입에도 대지 않고 거기에 섞인 붕어, 버들치 따위만 골라 먹는다. 딱히 별로 먹을 것이 없던 그 시절 여름철 더위와 일에 지친 나에게 있어서 미꾸라지국은 확실히 요긴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교사로 있으면서도 휴일마다 온종일 논에서 농사일을 한다는 게 여간 뻐근한 게 아니었지만 이렇게 여름부터 가을 추수 때까지 살이 통통하게 오른 미꾸라지를 잡아 만든 추어탕을 먹으면 기운이 솟아 힘든 농사일도 무리없이 끝마칠 수 있었다. 아내는 평소에도 나의 친구들이 집으로 놀러오면 나와 나의 친구들의 술안주로 종종 추어탕을 끓여왔다. 그 가 끓인 미구라지국은 고추장으로 얼큰한 맛을 낸 국물이 특징이다. 농촌에 있을 때는 물론 현성에 이사와서도 우리는 단층집에서 살았는데 부엌에는 항상 무쇠솥을 걸었다 그러니 추어탕도 무쇠솥에 팔팔 끓여 국자로 떠서 나눠 먹는데 얼핏 매운탕처럼 보일 정도로 국물이 매콤해 술안주로 손색이 없다. 추어탕은 술마신다음날 술기운 해독에 좋은바 어떤 친구들은 간밤에 마신 술을 이기지 못해 아예 우리 집에서 잘 때가 있는데 이튿날 아침이면 해장국으로 또 추어탕을 찾아서는 뜨거운 국물을 후후 불어가며 한 둬사발 제끼고서야 흐뭇해서 돌아들간다. 가을철 벼가 무르익는 가을 논에서 마지막으로 물 빼기를 할 즈음에 잡히는 미꾸라지를 최고로 친다. 해마다 논물을 뺄 때면 나는 연 며칠 밤을 패가며 논물 폐수로에 발을 놓고 미꾸라지를 잡는데 2~3일 밤이면 미꾸라지를 서너자루는 받아낸다. 이렇게 잡은 미꾸라지를 말려 더러는 팔고 더러는 볶아먹기도 하며 더러는 짓쫗거나 가루를 내여 국을 끓일 때 넣어 먹는데 그 맛 또한 별미요, 추어탕맛이 그대로 난다. 겨울에는 늪이나 도랑에 나가서 얼음을 깨고 미꾸라지를 잡는데 이때 잡히는 미꾸라지는 전부가 굵직긁직한 놈들이고 맛 또한 별미다. 현성에 들어온 후 비록 미꾸라지잡이는 더 해보지 못했지만 아내는 곧잘 미꾸라지를 사다가 집에서 끓여주었고 동료나 친구들도 미꾸라지국을 끓일 때면 곧잘 불러주어 대접을 받을 때가 흔했으니 어쨌든 일년 사시사철 미꾸라지국을 먹을 수 있었다. 이렇게 나는 어려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추어탕을 숫하게 먹어왔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한 그릇 한 그릇의 추어탕마다에는 어머니나 아내나 그리고 친구나 동료들의 사랑과 정성이 담기지 않은 것이 없다. 이런 정경을 떠올리니 나도 모르게 행복한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아마 그래서 아직까지도 고향을 동경하고 있는지 모른다.  아~아. 사장님의 물음 한마디에 이렇게 많은 추억이 쏟아지는 걸 보니 나도 이젠 나이가 많이 들었는가보다.  그나 저나 오늘 추어탕을 사주신 사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추어탕을 먹었으니 한 며칠은 일에도 좀 더 열성을 보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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