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최남단 땅끝마을에서 시작·희망·소망 느껴”

▲ 필자인 박연희 재한동포문인협회 부회장이 유라시아대륙의 출발점인 땅끝점에서 포즈를 취했다.
[서울=동북아신문] 음력으로 2016년 새해 첫날인 설날 고속버스에 몸을 싣고 친구와 함께 해남 땅끝마을로 여행을 떠났다. 서울고속터미널에서 해남까지, 해남에서 다시 땅 끝까지 거의 6시간을 달려 드디어 땅끝마을에 도착했다.

예약했던 모텔에 행장을 풀고 돌아가는 버스표를 예매하려고 버스정류소를 찾았다. 땅끝에서 넙도, 보길도 등으로 떠나는 여객선매표소가 있었는데 그 맞은편에 있는 마트에 땅끝시외버스터미널이라고 쓰인 플래카드가 걸려있었다. 한국에 이런 허술한 매표소가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여행의 첫 코스는 노란색 모노레일카를 타고 도착한 땅끝전망대였다. 남해바다를 가슴에 품고 일출과 일몰을 모두 볼 수 있는 땅끝전망대는 날이 맑을 때에는 제주도의 한라산이 보일 정도라고 하지만 우리가 도착한 것은 늦은 오후시간이라 일몰만 볼 수 있었다.  땅끝마을은 한반도의 최남단으로 북위 34도17분21초의 해남군 송지면 갈두산 사자봉에 위치하고 있다. 해남 땅끝에서 서울까지 천리, 서울에서 함경북도 온성까지를 2천리를 잡아 우리나라를 3천리 금수강산이라고 한다. 오래전 대륙으로부터 뻗어 내려온 우리 민족이 이곳에서 발을 멈추고 한겨레를 이루니, 역사 이래 이곳은 동아시아 3국문화의 이동로이자 해양문화의 요충지라고 할 수 있다. 땅끝마을의 유래를 곱씹으면서 단순 여행이 아닌 배움의 연속임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어느덧 땅끝마을에도 어둠이 깃들기 시작했다. 해물칼국수 한 그릇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다음 코스를 가려고 지도를 펼쳤는데 아무래도 감이 좋지 않았다. 식당주인한테 물었더니 어이없는 표정으로 “아니 이 시간에 차가 없이 어디로 가겠어요?” 하는 것이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다시 버스 매표소에 찾아가 물어보았지만 저녁에 버스를 타고 구경할 곳은 한 곳도 없었다. 제일 가깝다는 달마산도 내일 아침 택시를 이용해야 갈 수 있었고 기타 여행지는 적어도 버스로 한 시간이상이 걸리는 곳이었다. 두릅산 도립공원, 고산윤선도유적지, 우항리 공룡화석지, 달마산 미황사, 우수영 관광지, 고천암 철새도래지, 매월등대 일몰 등 여행코스가 해남을 위주로 하는 해남관광 8경이고 그중의 하나가 땅끝마을이었다. 지도만 보고 땅끝마을에서 다른 코스도 쉽게 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내가 너무 무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꿩 대신 닭이라고 땅끝마을의 상징인 땅끝전망대 야경을 멀리서 바라보며 아쉬움을 달랬다. 일주일간 머리 터지게 연구한 것이 고작 이런 결과냐고 친구가 나무람 할까 두려워 일찌감치 뜨끈뜨끈한 온돌방에 이불을 폈다.  다음날 아침 땅끝탑이라도 가볼 요량으로 배낭을 메고 길을 나섰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우리가 호텔을 나선 7시20분 경이 바로 땅끝마을 관광의 백미로 꼽히는 ‘맴섬 일출’이 시작되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배낭을 아무데나 내친 채로 맴섬 일출을 사진에 담으려고 사람 속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몇 번 카메라를 눌렀지만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남정네들의 뒤통수만 찍혀 나왔다.  그곳에서 요행 사진 몇 장을 건지고 되돌아서는데 저쪽 부둣가에서 배 한척이 떠오르는 아침해를 행해 다가오고 있었다. 셔터 속으로 또 다른 배 한척이 다른 한 방향에서 아침해 쪽으로 오고 있었다. 배 두 척이 교묘하게 해속에서 맞물림을 했고 서서히 해를 등지고 멀어져가는 순간을 죽을 힘을 다해 셔터를 눌렀다. 순간 가슴이 멎는 듯싶었다. 이 순간만큼은 내가 이미 유명한 사진작가가 되어있는 기분이었다.  아침에 사진을 찍으면서 선착장 바로 10여m 앞 바위가 바로 맴섬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됐다. 맴섬은 작은 두 섬이 나란히 위치해 있었고 또 기암괴석과 소나무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 두 섬 사이에 해가 떠오르는 장면은 땅 끝 관광의 명소가 되고 있었다. 이런 관경이 매년 2월과 10월, 일 년에 단 두 차례 연출된다고 하는데 우리가 마침 2월에 여기를 찾아왔으니 이것은 이번 여행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첫 행운이었다.  땅끝마을이 한반도로 불리게 된 것은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면 땅끝마을이 마치 한반도의 지도처럼 보여서라고 한다. 땅끝마을은 한반도 육지의 끄트머리임과 동시에 백두대간의 기가 모이는 곳이라서 더욱 사람들의 발길을 끌었다. 선착장 바로 옆에 삼납길이라는 도보여행코스가 있는데 땅끝에서 서울을 잇고 있었고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를 잇고 있다. 그래서 삼납길은 1천리에 달하는 우리나라 최대의 트레킹코스라도 불린다.  친구와 단둘이서 인적 드문 트레킹코스를 걷노라니 탁 트인 바다 풍경과 나뭇잎은 없지만 자유로우면서도 섹시한 매력의 나무들이 정겹게 안겨왔다. 나의 눈을 현란하게 만드는 장본인이 또 있었으니 그것은 나무사이에서 나타났다가 다시 바다위에 떠오르는 아침 해였다. 서서히 떠오르는 아침 해는 바다위에 빛을 뿌리며 더욱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우리가 오늘 땅 끝의 떠오르는 해를 보지 못했다면 그게 무슨 땅끝마을 여행이겠어?” 친구가 말했다.  얼마를 갔을까? ‘땅이여! 기의 문을 여소서’라는 글자가 새겨진 비석이 있었다. 그 비석위에서 두 손을 합장하고 새해의 소원을 빌었고 땅끝 기가 뭉쳐있는 이곳의 조약돌 하나를 주어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바다에 투하했다. 여느 때보다도 더 간절하게 올해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천개의 계단을 숨 가쁘게 오르다보니 어느새 한반도 육지의 남쪽 끝 바로 땅끝탑에 이르렀다. 이곳은 한반도의 끝과 대륙이 시작하는 곳이다. 백두대간의 기가 하나로 모여 대륙으로 뻗어나간다는 희망의 터 남해를 향해 걷다보면 끝이지만 대륙을 향해 걸을 때는 시작인 곳이 바로 이곳이다. 높이 솟아있는 땅끝탑과 망망한 다도해를 뒤로 하고 돌아오는 길가에 동백나무 사이사이에 금방 피기 시작한 붉은 꽃망울이 수줍게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땅끝시외버스터미널에 이르니 황금색 돌고래가 있는 분수대와 땅끝희망공원이 있었다. 거기에는 땅끝을 찾는 사람들이 희망을 기원하고 간직하라는 의미로 만들어진 조형물이 있었는데 그 조형물의 손바닥사이로 소원을 빌고 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조형물 왼쪽에 하트가 있는 것에 ‘희망의 종’이 있었는데 희망의 소리가 이 곳 해남 땅 끝에서 시작을 표현하고 있었다.  땅끝마을이라는 이름만 보면 흔히 끝을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반대로 땅끝마을에서는 시작, 희망 그리고 소망 등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땅끝마을은 찾아가는 모든 이에게 끝이라고 멈추기보다는 반대로 다시 시작하는 시작점으로서 마음껏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곳이기도 했다. 한반도 육지의 끝자락에서 희망을 되찾은 것이 바로 땅끝마을 여행의 묘미라 하겠다. 
▲ 땅끝탑 앞에서 고송숙 작가(왼쪽)와 함께 한 박연희 재한동포문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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