申吉雨(본명 신경철)

[서울=동북아신문]우리는 매일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여러 사람들과 말을 하며 산다. 그럴 때마다 그들과 얼마만큼의 거리를 두게 된다. 그런데, 남을 상대할 때 실제로 거리를 얼마나 두어야 좋은가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지 않고 산다. 상대방과의 거리가 대화하는 데에 그리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주 가까이서 말을 주고받거나 멀찍이 떨어져서 이야기를 해보면 마음이 편하지가 않은 것을 느낀다. 복잡한 지하철이나 여럿이 탄 엘리베이터 속에서는 거북하고, 넓은 실내나 공원 같은 데에서 좀 떨어져서 말을 해보면 살갑지가 않다. 거리가 너무 가깝거나 멀기 때문이다. 또한, 상대자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서 유지하는 거리가 서로 같지 않은 것도 알 수 있다. 어른과 친구와 이야기할 때가 다르고, 친하고 싫은 사람을 상대할 경우에도 거리에 차이가 난다. 그와의 신분적 관계나 자신과의 친밀도에 따라서도 거리는 달라진 다. 이처럼 대화의 거리는 일정하지가 않은 것이다.

현대 언어학자들은 거리나 공간도 언어로 보고 있다. 그것이 자신의 의도나 감정․심리 등을 표현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남과 이야기할 때 거리를 적절하게 유지하는 것도 이제는 현대인이 갖추어야 할 하나의 교양이라 하겠다.

언어학자들은 대화의 거리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누고 있다. 예의거리(禮儀距離)와 평상거리(平常距離)와 친밀거리(親密距離)가 그것이다. 예의거리는 서로의 신분 관계에 따른 예의를 나타내는 거리로 셋 중에서 가장 멀다. 평상거리는 남남끼리 유지하는 거리로, 서로 안도감을 느끼며 대화하기에 가장 편안한 거리이다. 친밀거리는 친밀한 사이의 사람들이 친밀감을 나타내고 상대방의 정을 살펴보는 데에 알맞은 거리로 가장 가깝다. 이러한 거리의 유지는 결국 인간이 스스로 살아가는 데에 가장 알맞고 편안한 필요 공간의 확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대화의 거리는 심리적으로 달리 나타내기도 한다. 사랑을 받고 싶거나 무엇을 간청하는 입장에서는 친밀한 느낌이 들게 해야 들어줄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여기고 친밀거리를 유지하려고 다가선다. 반대로 화가 나 있거나 불쾌하고 싫은 경우에는 그러한 감정을 나타내려고 거리를 멀리 한다.
 
그런데, 이들 거리를 너무 가깝거나 멀게 유지하면 불쾌감이나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평상거리를 두어야 할 모르는 이가 친밀거리로 다가오면 불안과 위기감을 느낀다. 예의거리를 좁히면 거북하고, 심하면 무례하고 건방지다고 판단하게 된다. 친밀거리를 가져야 할 연인이 예의거리를 유지하면 불만의 표시이거나 애정이 식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으며, 남남의 남녀가 친밀거리를 유지하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그들이 보통 사이가 아닌 것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들 세 가지와 다른 또 하나의 거리가 있다. 아주 특별한 관계에 있는 사람끼리 유지하는 거리이다. 이 거리는 친밀거리보다도 더 가깝다. 그래서, 이런 거리에서는 상대방의 감정이나 심리 같은 것을 살필 수가 없다. 단지 그와 자신의 의도만이 느껴질 뿐이다. 한 마디로 눈이 먼 거리라 할 수 있다.
 
눈 먼 거리보다 더욱 가까워진 것이 키스의 거리이다. 서로 접촉된 거리이다. 이 때는 누구나 거의 눈을 감는다. 상대방을 더 이상 살피지 않겠다는 뜻이다. 연인끼리 유지하는 키스의 거리는 가장 밀착된 접촉의 거리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의 거리는 두 사람만의 것으로 끝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거리도 언어여서 제3자인 남과도 관계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잘못 거리를 두게 되면 남들에게서 눈총을 받기도 하고, 때로는 문제가 생기고 사건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눈총을 받는 거리는 친밀거리부터이다. 서로 좋아하는 사람끼리 갖는 친밀거리는 그래도 이해해 주지만, 그럴 사이가 아닐 때나 한 쪽을 자신도 좋아하고 있는 경우에는 친밀거리도 문제가 된다. 눈 먼 거리는 더욱 많은 사람들로부터 눈총을 받는다. 소문이 나돌게 되는 것도 이 거리에서 나온다. 이러한 거리는 때로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비난을 받는 거리는 눈 먼 거리보다 더 가까운 접촉의 거리이다. 우리나라는 연인끼리라도 공개된 자리에서는 키스를 하는 모습을 보면 좋게 보지를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키스는 둘만의 공간에서나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럴 사이가 아닌 경우에는 비난을 받게 된다. 더구나 그럴 수 없는, 그래서는 안 되는 사이인데도 접촉의 거리를 갖게 되면 문제가 생긴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건으로 번지기도 한다.

가끔 신문 사회면에 실린 사건들을 읽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너무 거리를 좁혔구나. 특히 치정 관계의 것은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사장과 비서, 선생과 학생, 영화감독과 배우, 음악방송 담당자와 가수, 화가와 모델 등, 그들은 가까이서 자주 상대하다 보니 서로 친해질 수가 있다. 그러기에 그들은 거리 좁히기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되고, 너무 가까이 지냈기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는 안 되는 사이에서 거리를 좁히는 것은 모두가 문제가 된다.

“친할수록 예의를 지켜라”는 말이 있다. 가깝다고 함부로 거리를 좁히는 것은 친하다고 말을 마구 하는 것보다도 더 문제가 될 수 있다. 진실한 친구 사이일수록 예의 바른 말을 하듯이 가까운 관계일수록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데에 마음을 써야 한다.
 
대화의 거리는 매우 중요하다. 관계나 처지를 무시하고 함부로 거리를 가질 수가 없다. 너무 멀리 해도 안 되고, 너무 가까이 해도 안 된다.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이나 행동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 유지하는 거리도 적절하게 유지할 줄 알아야 한다.
 
대화의 거리, 그것도 언어이다. 말도 그렇듯이 대화의 거리도 적절하게 유지하여야 한다. 거리를 너무 멀리 두어 서운하게 해서도 안 되겠지만, 너무 가까이 해서 삶을 망치는 일은 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멀어지면 가까이 다가가고, 너무 가까우면 적당히 거리를 두는 슬기가 필요하다. ☺
 

 

신길우 약력

문학박사, 수필가, 국제적 문학지 계간 <문학의강> 발행인
한국영상낭송회 회장, 한국문인협회 자문위원
skc66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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