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룡 재한동포사회문제연구소 소장
【서울=동북아신문】재산이 얼마만큼 있으면 행복할까? 얼핏 보면 바보 같은 질문이다. 질문 자체가 유치하다고 비난 받을 수 있다. 사람들은 흔히 재산이란 당연히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 아니냐고 순간적인 머리회전도 거치지 않고 대답할 것이다. 이럴 경우 재산과 행복을 비례등식화, 즉 재산이 많으면 많을수록 행복지수가 플러스 되고 재산이 적으면 적을수록 행복지수가 마이너스 된다는 관념에서 비롯된 결론이다.

그런데 실생활에서는 재산과 행복이 비례등식화 되지 못하고 반비례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예를 들어 세계적으로 로또 당첨으로 벼락부자가 된 사람들 중에 행복하게 살아가는 자가 별로 없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필자가 아는 사례 중 하나를 예로 들어보자. 지금으로부터 26년 전의 일이다. 연변 시골에 있는 한 농부는 째지게 가난했다. 너무 가난해 아내도 떠나가고 자식한테도 버림 받았다. 죽지 못해 하루하루 중이 종치듯 허송세월을 보내며 힘겹게 살아가던 와중에 어릴 적 헤어졌던 한국에 있는 부자형님과 연락이 닿았다(형이 연길에서 잘나가는 사람에게 부탁해서 동생을 어렵게 찾았음). 형은 얼굴이 부티 나고 빤질빤질한데 동생은 나이와 걸맞지 않게 주름이 밭고랑이 되고 얼굴엔 기름기가 사라져 사막처럼 말라가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은 형을 동생으로 동생을 형으로 착각할 만큼 상반되게 보일 뿐만 아니라 너무 가련하고 너무 불쌍해보였다. 그래서 형님이 그때 돈으로 인민폐 30만 위안을 주었다. 총명한 사람은 돌을 금으로 만들지만 바보는 금을 돌로 만든다는 속담이 있다. 당시 30만 위안이면 의식주 때뻣이를 하고도 충분히 여유가 있는 거금이었다. 그러나 이 거금이 그의 손에 들어가서 돈질 못하고 불과 4개월 지나 또 거지가 되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로또 당첨자들의 비운의 삶, 위의 농부 사례와 비슷한 사건들 등등 재산이 갑자기 생긴 사람 치고 후과가 깨끗한 자가 별로 존재하지 못하는 현상을 어떻게 해석할까? 필자는 요즘 이에 대한 확실한 해석의 답을 찾았다.

나는 서점에 가면 한 가지 습관이 있다. 내가 미리 구매하려는 책을 골라놓고는 종업원한테 “요즘 어떤 책이 잘 나가는가?” 묻는다. 사실상 종업원에게 나한테 추천하라는 부탁의 뜻이다. 그렇게 해서 구매한 책 한 권이 있다. 김형석 지은 <백년을 살아보니>이다.

김형석 선생은 70년 전에 남하하신 실향민이다. 중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32세에 연세대 교수로 취직하여 퇴직할 때까지 줄곧 한 대학에 머물렀다. 서울대 김태길 교수와 숭실대 안병욱 교수, 세 분은 재직 시 한국 철학계에서 서로 라이벌 관계였으나 우정이 두터운 친구로 지내 사회적으로 존경 받았다. 선생은 수필에 일가견이 있어 한국사회에서 철학자보다 수필가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한편 선생은 대중 강연을 많이 진행해왔는데 97세인 고령인 현재도 강연을 이어가고 있다. 참 인생을 멋지게 살아가고 있다. 선생은 올해 97세인데 <백년을 살아보니>는 금년 봄에 쓴 책이다. 책의 내용은 선생의 인생담인데, 세상을 보는 가치관과 그의 삶의 궤적을 구수하게 그려낸 한 편의 묵직하고 깊이 있는 드라마이다. 참으로 배울 것이 많다.

여기서 선생의 가치관 하나만을 소개하려 한다.

선생은 ‘재산이 얼마만큼 있으면 행복할까?’ 이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하고 있다. “개개인이 자신이 정신적으로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재산이 있으면 행복하다.” 아주 간단해 보이는 말씀 같지만 참으로 명언이다. 나는 선생의 이 말씀이 진리라고 생각한다.

로또 당첨자들이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갑자기 생긴 거금을 정신적으로 감당하지 못해 모두 비운의 삶을 보내게 된 것이다. 위 연변 한 농부의 사례도 마찬가지로 갑자기 평생 손에 쥐어보지 못한 거금이 갑자기 생겨 정신적으로 감당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떻게 의미 있게 유용하게 사용할 줄 몰라 돈을 돈 같이 쓰지 않고 온 동네 사람 다 불러 술 놀이하고 젊은이들한테 휘둘려 매일 나이트 다니고 술집 다니고 계집질까지 하다 보니 형이 준 돈을 유흥에 탕진해버렸던 것이다.

우리는 흔히 사회적으로 갑자기 쉽게 번 돈을 쉽게 쓰는 현상들을 많이 목격한다. 왜 그럴까? 너무 쉽게 번 돈은 정신적으로 감당이 잘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깡패나 양아치들이 협박의 수단에 의해 벌어들이거나 사기 쳐 벌어들이는 돈은 정신적으로 감당이 잘 안 돼 쉽게 써버린다. 특히 마약과 같은 모험이 큰 장사로 벌어들이는 돈은 씀씀이가 무척 헤퍼지기 마련이다. 이는 정신적으로 감당의 문제이다.

유흥업소에 종사하는 아가씨들, 특히 몸을 파는 창녀들은 자신이 하는 행위에 대해 정신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워 버는 돈의 다수를 고급 옷과 핸드백, 성형수술, 몸치장에 필요한 고급 악세사리를 구매하는데 써버림으로써 보통여자들이 소유하지 못하는 물건들을 자기들이 소유한다는 정신적인 위안으로 삼고 있다. 돈은 많이 버는데 남는 것은 별로 없다. 이것이 유흥업소에 종사하는 아가씨들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한국 대기업들이 창업주가 어렵고 힘들게 이뤄놓은 재산을 2세에 와서 후계자 승계문제로 흔히 ‘왕자의 난’이 일어나는 현상도 역시 정신적으로 감당의 문제 때문에 발생한다고 보아야 마땅할 것이다. 우리민족의 유교문화는 아버지 것이면 나의 것이란 인식이 뿌리 깊고 장남이 무조건 1번이고 나머지 순차적으로 재산 분배받는 식이다. 만약 후계자로 된 장남이 능력이 된다면 모를까 능력이 부족할 경우에 형제간의 난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일본의 경우 장남이 무조건 1번 후계자란 문화가 없다. 따라서 아들이 무조건 우선이란 문화도 없다. 아들 셋이면 똑 같이 쌈짓돈을 주어 시험 운영을 해보게 하고 그 중에 가장 능력 있는 아들한테 기업을 물려준다. 아들 여럿이지만 모두 능력이 안 된다고 판단되면 사위가 후계자로 이어받는다. 한국의 경우 아들들의 능력이 안 되는 상황일지라도 만약 아들들을 제쳐놓고 사위가 승계 받는다면 하늘땅이 뒤번져질 만큼 큰 난이 일어날 것이다. 결론적으로 정신적으로 감당이 될 능력 있는 후계자가 이어받아야 말썽이 적을 것인데 유교문화는 무조건 장남 그 다음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서열문화가 가문의 불화를 일으켜 형제 간 친척 간 관계가 파탄의 지경으로 몰아가고 있다.

요즘 한국 종편 방송들에서 진행하고 있는 <기막힌 사실>, <실제상황>, <싸인> 등 프로그램들을 보면 보험금 때문에 부모와 자식 간, 현제자매 간, 친척 간, 친구 간 사람을 죽음에로 몰아가는 사례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살인을 저지르면서까지 얻어낸 거액의 보험금을 손에 넣었으나 그 후과는 모두 행복이 아니라 비극이다. 왜 그럴까? 모두 정신적으로 강담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고금중외(한국에서는 동서고금으로 표현함)로 본래 나의 것이 아닌데 갑자기 생긴 큰 재산이 말썽이 없는 사례가 거의 없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여기서 독일에서 널리 알려진 이야기 하나 해보자.

세 사람의 강도가 함께 길을 가고 있었다. 이상하게 느껴지는 무엇이 있어 찾아가 보았더니 숲속에 황금 덩어리가 있었다. 세 강도 모두가 놀랐다. 이 금덩어리를 팔면 우리 셋이 부자는 못 되지만 한평생 먹고사는 데는 부족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세 사람은 발걸음을 고향으로 돌렸다.

산 밑에는 넓은 강물이 흐르고 강가에는 작은 나룻배 하나가 있었다. 금을 보자기에 숨겨 싸가지고 세 사람은 배를 저어 강을 건너고 있었다. 그때 앉아 있던 한 강도가 옆에 있는 강도에게 눈짓을 했다. 그 뜻은 노를 젓고 있는 저놈을 죽이면 금이 우리 두 사람 몫이 되고 우리는 부자 행세를 하면서 살 수 있지 않겠느냐는 암시였다.

한 강도가 슬그머니 일어나 노를 젓고 있는 강도를 강물로 밀어 넣고 몽둥이로 때려 죽였다.

두 강도는 껄껄 웃으면서 이제는 팔자를 고쳤다고 좋아했다. 그리고 고향으로 가는 길가에서 서로 협의했다. 금괴를 갖고 거리로 들어갔다가는 무슨 변이 생길지 모르니까 한 강도는 나무 그늘 으슥한 곳에서 금괴를 지키기로 하고 다른 한 강도는 거리로 들어가 점심 도시락을 사오기로 했다.

도시락을 준비하던 강도가 생각했다. “내가 저놈을 마저 죽이고 금괴를 가지면 큰 부자가 될 텐데 어떻게 죽일까?” 술병에 독약을 넣어 갖고 왔다. 금괴를 지키고 있던 강도도 같은 생각을 했다. 거리로 간 강도가 칼을 놓고 갔는데 그 칼을 갑자기 휘둘러 목을 따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거리에 갔던 강도가 도시락을 꺼내놓고 술병까지 준비해 꺼내는 것을 본 강도가 칼을 들고 대들었다. 둘은 강도답게 싸움을 벌였으나 무기가 없는 강도가 크게 부상을 입고 쓰려졌다. 금괴를 다 줄 테니 내 목숨은 해치지 말아달라고 애원했다. 그러나 금괴를 본 강도는 그를 죽여 버렸다. 칼을 숲속에 내던지고 숨이 가쁘게 제자리로 돌아온 강도는 다른 강도가 준비해놓은 술병을 기울여 여러 모금 마셨다. 그러고는 정신을 잃고 쓰러져 신음하다가 목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세 강도의 욕심스러운 꿈은 사라지고 금괴는 또 어떤 사람에게로 갈지 모르게 그 자리에 남겨지고 말았다.

재산문제 뿐만 아니라 명예문제도 마찬가지이고 관직문제도 마찬가지이다. 명예욕에 눈이 어두워 지나치게 욕심 부려 자신이 감당 못할 명예를 얻게 된다면 그 사람이 몰락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어떤 라인을 잘 타 본인의 능력으로 감당 못할 감투를 얻게 되면 그 사람의 몰락은 역시 시간문제일 뿐이다. 여자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사람은 애인을 사귀도 가정도 화목하고 사업에 지장이 없는데 비해 어떤 사람은 애인을 두면 가정이 파탄 나고 사업도 망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특히 중국부패관료들이 애인 수십 명에서 100여 명을 둔 사건을 보면 결국 자신의 정신으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지나치게 벌여놓았던 탓에 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자를 사귀어도 정신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사귀어야 할 것이다. 여자문제는 숫자문제가 아니라 정신적인 문제로서 감당이 되는 상황에서 사귀는 것이 좋을 것이다.

본문의 궁극적인 질문, 재산이 얼마 있으면 행복할까? 이에 대해 김형석 선생은 “개개인이 정신적으로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재산이 있으면 행복하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렇다면 그 기준을 어떻게 잡아야 할까? 필자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재산이 많지도 적지도 않는 의식주가 해결되고 가정여행이나 다닐 수 있는 조금 여유가 있는 만큼의 재산이 가장 큰 행복이 아니겠는가! 여기에 하나의 전제가 있다. 반드시 부정행위가 없이 자신의 신근한 노력에 의해 벌어들이는 재산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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