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세만 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
[서울=동북아신문]총을 쏠 때 총신이 뒤로 움찔 밀린다. 두 물체가 서로에게 미치는 힘은 항상 크기가 같고 방향이 반대된다고 일찍 뉴턴은 그의 ‘반작용법칙’을 고안하고 실증했다. 로켓이 자체 추진력을 얻는 원리도 작용과 반작용법칙을 이용한 것이다.

자연과학에서 이런 ‘반작용법칙’을 널리 활용하고 있고 인간사회생활에도 작용과 반작용이 주는 역할도 매우 크다. 그 작용이 때론 적극적 요소로, 때론 소극적인 반면적 요소를 불러올 때도 많다. 사람들은 흔히 좋은 의도로 ‘작용’했는데 그것이 엉뚱하게 나쁜 일면으로 흘러가게 되면 그것이 역효과로 ‘반작용’을 일으켰다고 곧 잘 말한다. 또 반면으로 불리하게 될 ‘반작용’에 힘을 얻고 인생에서 좋은 동력으로 되었다고도 말한다.

알다시피 영국의 42대 총리 윈스턴 처칠(1874-1965)은 인생초년에 지독한 부진아였다. 고등학교 때까지 꼴찌를 도맡아 했다. 사관학교 시험에선 두 번이나 낙방했다. “학교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계단에서 기다리다가 내가 지나가면 ‘어머, 저기 꼴찌가 지나가네’라고 말하곤 했어요.” 그의 자서전에 나오는 회고담이다.

이런 구제불능이 세계의 영웅으로 우뚝 섰다. 처칠이 세계영웅으로 일어서게 된 데는 그가 모든 경멸, 인격모욕을 동력으로 삼은 것과 무관하지 않다. 사람들한테서 받은 기시, 차가운 눈총이 그에게 자비, 소침, 실망으로 더 큰 ‘반작용’으로 이어질 것 같았지만 그는 거기에서 기가 죽지 않았다. 치명적 일격을 가한 그런 풍자적인 말은 오히려 그를 앞을 향해 달리게 하는 크나큰 동력과 추진력이 되었다. 후에 처칠은 분발하여 체계적인 독서에 진입했다. 매일 5시간 이상 서양철학사, 역사, 문학서적을 탐독했다.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던 부진아는 이러한 꾸준한 노력을 통해 나중에 ‘제2차세계대전회고록’을 집필해 노벨문학상까지 타게됐던 것이다.

그래서 어떤 부작용, 반작용은 동력으로 될 수 있고, 어떤 작용은 반작용으로도 될 수 있는 게다.

오늘 트위터, 모바일, 페이스북, 그룹채팅에 난무하는 글, 댓글을 보면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것도 많지만 혐오감을 주는 것도 적지 않다. 그의 의사, 의도와는 달리 사람들에게 반작용적 역할을 주는 것이 적지 않다는 얘기가 된다. 현재 사회에서 반영되고 일어나는 좋은 소식, 나쁜 소식, 논쟁·화제꺼리 등으로 모바일메신저 같은 그룹채팅이 시끌벅적대고 있다. 왜곡된 인식, 비리를 두고 질타하고 특수한 인물, 사적을 놓고 선전하고 고양하는 것은 잘못된 일은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격에 맞지 않는 일가견과 선양(宣扬), 겸손이 바닥을 치며 남이 몰라 줄까봐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에 대한 홍보, 자랑은 실로 사람을 질식하게 만든다. 다시 말해 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도리어 그의 인격에 손상을 주며 다른 사람의 평온하고 잔잔한 마음까지 흩으러 버리는 ‘반작용’역할도 해제할 수 없는 일이다.

좀 더 사고의 영역을 넓혀보기로 하자. 인간은 원래 이기적 본능을 지닌 존재이다. 하지만 자기 주관, 견해주장, 학식을 뽐내며 명예를 위주로 생각하는 본능만으로는 공동체의 존속은 불가능하다. 자기에게 맞춰진 생각의 방향을 타자에게 옮길 필요가 있다. 그것이 남에 대한 배려이고 글을 보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이다. 우리가 쓰는 볼펜 뚜껑 끝부분에는 작은 구멍이 뚫어져 있다. 공기가 통하면 잉크가 빨리 말라 수명이 단축될 텐데 왜 굳이 구멍을 뚫었을까, 그것은 이 뚜껑을 삼킨 아이들이 기도가 막혀 숨지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프랑스 제조사인 BIC가 1991년 처음 시행한 이래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볼펜 뚜껑이 담긴 배려의 정신이 매년 수많은 어린 생명을 구하고 있다.

배려정신을 가지자면 항상 자신을 비우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여기서 비운다는 말은 바로 자신을 덜 나타내고 전체적인 생각, 다수 사람의 이익과 속생각을 존중한다는 말이다. 종도 안쪽이 비어 있기에 맑은 소리를 내고 바이올린의 울림통도 속이 비어 있기에 심금을 울리는 소리를 낼 수 있는 게다. 자신을 비우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타인의 존경과 사랑, 타인과의 즐거운 공유를 받을 수 있게 ‘액션’(행위, 활동)작용을 취하는 것이다. 훌륭한 ‘작용’이 있으면 꼭 훌륭한 ‘반작용’이 잇따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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