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연희 재한동포문인협회 부회장/동포모니터링단 단장

[서울=동북아신문]모처럼 생긴 여름철 휴가에 친구와 함께 바다열차여행을 떠났다.

무궁화를 타고 청량리에서 원주로 행했다. 우리는 물만두와 옥수수, 포도와 토마토 등을 쉴 새 없이 먹어주면서 대화를 이어갔다. 한 시간 넘게 달려서 원주에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묵호항으로 향했다.

묵호항은 1941년 8월 11일 개항되어 무연탄 중심의 무역항의 역할과 함께 어항으로 발전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묵호등대는 1963년 6월 8일 건립 되어 항해하는 선박들의 안전운항에 기여하고 있다.

등대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며 걸어가는 산책로에는 출렁다리가 있는데, 드라마 ‘찬란한 유산’의 촬영지이다. 점심을 먹고 우리가 출렁다리에 이르렀을 때는 햇빛이 쨍쨍 내리 쬐여 등과 얼굴에 땀이 줄줄 내리기 시작했고 숨도 헉헉 차올랐다.

친구가 택시를 불러 십분도 되지 않는 거리인 등대에 쉽게 올라갔다. 묵호등대는 백원형 철근콘크리트구조이고 높이는 12m의 내부 2층 형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묵호등대 소공원에는 1968년 정소영 감독이 만든 영화 ‘미워도 다시 한 번’의 주요촬영지임을 기념하기 위해 2003년 5월 ‘영화의 고향’ 기념비가 세워졌다.

묵호 어시장 맞은편으로 난 ‘등대오름길’은 묵호등대로 올라가는 논골담 길로 마을 골목마다 주민들이 직접 지은 시와 아기자기한 그림이 벽화로 그려져 있었다.

뱃사람과 시멘트, 무연탄 공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만들어진 마을인 묵호 사람들의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놓여져 있는 길이다.

시원한 동해바다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등대에서 사진을 남기고 다시 버스를 타고 동해시 최남단에 위치한 추암 관광지에 이르렀다. 여름이면 사람들로 늘 붐비는 동해안, 바닷물에 더위를 식히려는 이들은 물론 더 뜨거운 열기로 ‘이열치열’을 몸소 실현하려는 청춘들이 몰려드는 동해안의 여름은 뜨겁기만 하다. 그중에서도 백두대간과 나란히 흐르는 강원도 구간의 동해안은 산과 바다 모두를 품은 덕분에 사시사철 찾는 이들이 더 많았다.

이곳은 파란 동해바다를 한 눈에 볼 수도 있지만 미묘한 해안절벽과 함께 그리움이 배인 촛대바위 그리고 크고 작은 바위섬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으며 동해의 거세고 맑은 물이 바위를 때리는 여운과 잘게 부서진 백사장이 아름다운 곳이다.

애국가 첫 소절의 배경화면으로 등장하기에 유명해진 촛대바위는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아있어 주위 기암괴석과 함께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하고 있으며 특히 아침 해돋이가 장관을 이루는 해안선경이라고 한다.

조선시대 도체찰사로 있던 한명회가 이곳의 자연절경에 감탄하여 능파대(미인의 걸음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 아름다운 동해안 해안선을 달리는 바다열차.

드디어 오늘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추암 역에서 바다열차에 올랐다. 2007년 7월에 개통되었다는 바다열차는 58Km 아름다운 동해 해안선을 끼고 달리는데 다양한 부대시설과 이벤트가 있는 관광특별열차이다.

‘바다열차’라는 이름에 걸맞게 생김새도 일반 열차와는 달랐다. 열차 객실 내부를 바다 속 모양으로 꾸며놔서 열차를 타자마자 터널 없는 바다 속으로 별빛을 몰고 들어가는 그런 기분이었다.

시원하게 통유리로 채워진 창문을 향해 자리한 좌석과 프로포즈실, 신청곡과 사연을 바로 방송으로 들을 수 있었다. 영화관 스크린 같은 창문으로 펼쳐지는 풍광은 그 어떤 그림보다 아름답다. 계절에 맞는 자연의 표정을 기차 안에서 바라보는 재미가 더해지기 때문이다.

동해바다의 매력적인 모습은 바다열차의 메인이자 보너스다. 바다에 들어설 수는 없지만 조금 떨어져서 부드러운 해안선이며 바다와 하늘이 닿는 수평선을 한눈에 담아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다. 닮은 듯 또 닮지 않은 듯 이어지는 80여 분간 영화보다 더 낭만적인 동해안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바다열차를 탄 흥분도 잠시 정동진에서 하차하는 줄로 알고 내렸더니 웬걸 우리를 포함한 네 사람만 내리고 다른 일행은 보이지 않았다. 놀란 나머지 기사한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이나 설명을 해줬는데 왜 벌써 내렸냐며 핀잔을 했다. 정동진 역에서 내린다는 것만 기억하고 시간을 보지 않은 탓이었다.

바다열차를 실컷 타려고 여행을 시작했는데 다른 사람들보다 20여분을 먼저 내렸다는 실망감에 우리의 기분은 다운됐다. 이보다 더 기분이 상하는 것은 바로 정동진역 앞에 동해바다가 있는데 들어갈 수 없도록 봉쇄돼 있는 상황이었다.

이 상황에서 차마 친구한테 바다열차가 바다 속으로 들어가 구경하는 줄 알았다고 얘기할 수는 없었다.

다시 버스를 타고 오대산으로 가 전나무 숲길에서 삼림욕 산책을 시작했다. 오늘 여행에서 제일 좋았던 곳은 바로 월정사 전나무 숲길이다. 월정사 전나무 숲은 한국의 3대 전나무숲길 중 하나로서 일주문부터 금강교까지 약 1km에 달하는 길가에 자리하고 있었다. 전나무 숲은 평균 80년 이상 된 전나무 1,800여 그루가 자리한 덕분에 ‘천년의 숲길’이란 또 다른 이름도 갖고 있다.

내처 걷지 않고 잠깐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귀 기울이면 늘씬하게 뻗은 전나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들려오는 것도 같다. 남들처럼 맨발로 흙길을 걸어보았다.

하늘에 닿을 듯 쭉쭉 뻗은 나무와 단단하게 다져진 부드러운 흙길을 걷노라면 현실에 남겨두고 온 고민거리들은 사라진다. 울창한 숲에서 뿜어내는 초록 기운이 알알이 온몸으로 스며든다. 초록 물결에 안겨 들어 깊은 호흡만으로 ‘힐링’이 절로 된다. 언제까지라도 걷고 싶은 길이다.

전나무에서 뿜어내는 피톤치드의 기운이 전해져서인지 따가운 햇살도 따뜻하게 느껴졌다. 바로 옆으로 내려가 계곡에 잠깐 발을 담가보았다. 쾌적함과 시원함이 말로 형용할 수 없이 느껴졌다. 일주문을 시작으로 오대산의 자연물을 이용한 자연설치미술 작품들이 우리들의 발목을 잡았다.

커다란 나팔모양의 조형물인 ‘젊은이들을 위한 팡파레’, ‘천년의 목소리’, 물음표 같은 ‘비나이다’, 마치 초막 같은 ‘양떼구름’, 지구모양의 둥근 ‘텅빈 시간’, ‘흔적발견’, ‘하얀 정신’, ‘천수천안’, ‘바람의 노래’ 등은 보는 재미가 쏠쏠했고 그걸 배경으로 사진을 찍느라 모두들 여념이 없었다.

전나무숲을 지나 월정사에 이르렀다. 월정사의 상징인 수려한 ‘팔각구층석탑’은 연꽃무늬로 치장한 이층 기단과 균등하고 우아한 조형미를 갖춘 탑신, 그리고 완벽한 금동장식으로 장엄한 상륜부 등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월정사에서 들려오는 목탁소리를 뒤로 하고 금강교를 건너 다시 버스에 올랐고 강릉에서 무궁화열차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기차여행은 그런 것 같다. 늘 보이던 풍경도 달라 보이게 하고 가볍게 흔들리는 기차의 그 느낌도 묘하게 편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그래서 기차여행은 우리에게 늘 향수를 남기는지도 모르겠다. 이 화사한 여름날 푸른 파도 넘실거리는 낭만의 바다열차에 그대를 실어 보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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