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탐구]조선족에 꽂힌 한국인 남편 류은규와 일본인 아내 도다 이쿠코

▲ 류은규 사진작가

[서울=동북아신문]지난 8월 28일 동북아평화연대와 문화유산연대 ‘살맛나는 골목세상’이 공동으로 주관하는 ‘골목이 평화다’ 5차 답사 ‘인천 개항기 역사, 차이나타운 골목답사’에 참가했다.

이날 답사는 인천역 --> 차이나타운 근대박물관 --> 공화춘(짜장면박물관) --> 점심식사--> 인천개항박물관 광복71주년 기념 특별기획전 ‘만주 아리랑-조선족 디아스포라의 삶과 기억’ 관람 및 류은규 작가와의 대화 --> 인천 개항기 유적 탐방 --> 류은규 작가와의 질의응답 --> 인천 골목 탐방 --> 저녁식사 순으로 진행됐다.

이날 프로그램의 백미인 인천 개항 박물관에서 전시중인 만주 아리랑-조선족 디아스포라의 삶과 기억’ 사진전을 관람하며 사진작가 류은규씨와 그의 일본인 아내 도다 이쿠코 인천관동갤러리 관장을 만났다.

두 사람은 1991년 류씨가 ‘마당’이란 잡지사의 사진기자로, 도다씨가 아사히신문이 발행하는 주간지 아에라(AERA) 의뢰로 ‘한국의 무당’을 함께 취재하면서 처음 만나 1993년 결혼을 하고, 중국 흑룡강성 하얼빈으로 태어난 지 6개월 된 아이를 데리고 갔다. 도다씨는 이미 89년부터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던 터.

두 사람은 이때 조선족의 역사와 만주 독립운동사를 본격적으로 접했다. 류 작가는 독립운동가 후손의 사진을 찍고 도다씨는 취재를 했다. 류 작가는 동시에 조선족 초기 세대 사진을 수집했다. 조선족의 역사가 묻히는 게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중간에 귀국해 1998년 ‘잊혀진 흔적’이란 제목의 사진전을 열고 자료집도 냈다. 평생 과제의 시작이었다.

당시만 해도 한중수교는 됐지만 동북지방은 개방이 안돼서 동북지방을 여행하기 위해서는 ‘특정지역여행허가서’가 있어야 했고, 안기부에서 교육을 받아야 했다.

류 작가는 하얼빈에 도착해 중국사람을 처음 본 순간 무서웠다고 말한다. 공안들은 초록색옷을 입고 있었단다.

“첫날은 두려웠는데 그 다음날 아침에 보니 그곳에도 사랑이 있고, 행복과 즐거움이 있다는 걸 느꼈어요.”

류 작가는 하얼빈사회과학원 소장에게서 김일성의 항일운동에 대해 듣고 김일성이 항일운동을 한 적이 없다고 알고 있던 자신의 역사인식이 잘못된 것임을 깨달았다. 또한 안중근 의사에 대한 평가가 각 나라마다 다른 것을 알고 자신이 배운 것에 대해 혼란이 왔다.

그런 와중에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증이 일어났다. 그는 독립운동가의 후손을 찾아 나서며 역사공부를 다시 하게 됐다.

“사진을 제대로 찍으려면 역사 공부를 해야 해요. 한 사람 한사람 만날 때마다 진짜 그 사람이 독립운동가의 후손인지 검증해야 했기 때문에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는 93년부터 지금까지 소수민족인 조선족을 찍으러 다녔다.

▲ 골목답사 참가자들이 류은규 작가와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내가 몰랐던 항일운동가, 이름 없이 죽어간 항일운동가를 찾아다니며 그 동안 찍은 필름이 5만장 가까이 됩니다.”

그에게 왜 그렇게 조선족 사진을 고집하는지 물어봤다.

“연변 아이들은 우리말을 배웁니다. 흑룡강성의 아이들은 우리말을 배우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반말합니다. 할머니들과 반말로 대화를 하기 때문이지요. 이런 아이들을 보면서 내가 이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무언가 고민을 했습니다. ‘이 아이들은 자기 할아버지가 어떻게 중국에 왔는지 모른다. 이 아이들을 위해 옛날 사진을 모으면서 그들의 할아버지들이 어떻게 중국에 들어왔는지 이야기를 만들어보자.’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어느 나라든 이주한 사람들은 현지의 역사를 배울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역사는 우리가 자발적으로 만들어서 그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그는 연변대학교 민요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다가 2000년에는 연변대 사진과에 들어가 사진에 대해 좀 더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졸업한 이후에는 하얼빈, 연변대 사진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는 조선족의 이동경로를 따라다니면서 사진을 찍었다.

“송화강, 흑룡강성, 요동벌, 압록강, 두만강, 여러 지역을 돌면서 사진을 찍었지요. 연변대 사진과 교수라는 명함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요. 그렇게 조선족 사진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 도다 이쿠코 인천관동갤러리 관장

류은규 작가의 아내 도다 이쿠코 관장은 어떤 면에서 류은규 작가보다 더 파란만장한 삶을 살고 있다.

그는 대학생이었던 1979년 9월 대학간 교류 프로그램으로 처음 한국땅을 밟았다.

“외국여행은 처음이었는데 그 나라가 한국이었어요. 중대, 이대 계명대를 다니며 학생교류를 하고 민박을 했는데 학생들이 ‘일제시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 거예요. 그 때 일제란 말을 처음 들었어요.”

평소 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았지만 근대사를 너무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도다씨는 ‘한국에서 역사를 제대로 공부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83년 한국어 연수를 받기 위해 한국에 왔고 85년 고려대학교 사학과에 들어가 근대사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는 “같이 한국에 왔던 30명 중 한국에 유학 온 사람은 한 명뿐”이라며 “역사를 원래 좋아했고 민감하게 받아들여 집착하게 된 것”이라 덧붙였다.

그렇게 근대사 공부를 하던 도다씨는 88올림픽으로 한국이 번잡해지자 한국을 떠나고 싶어졌고, 어릴 때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던 중국으로 가기로 결심하고, 89년 중국 흑룡강성 하얼빈으로 입국하게 된다.

“처음에는 중국어 연수를 했는데 그 때 조선족을 많이 만났어요. 중국 조선족을 보면서 구 만주의 기억을 떠올리게 되고 우리가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조선족이 우리 일본과 전혀 관계없는 민족이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와 연결돼 있다는 것이죠. 일본 사람도 그 역사를 알아야 한다고 봅니다.”

하얼빈에서 그는 조선족 일중에서 수학교사를 했던 리주훈(李周勳) 선생을 만나게 된다. 리 선생은 서울에서 중학교를 다니고 일본 와세다대학에 유학중이던 1944년 학도병 징집령 때문에 하얼빈으로 돌아가 해방 이후 조선족 중학교에서 수학선생을 하고 있던 인물.

“리주훈 선생은 일본 제국주의로 인해 조선족의 이주가 발생했다고 하셨어요.”

이 시기 도다씨는 그가 만난 조선족들 중에 “일제 때가 좋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은 것을 알고 ‘왜 그럴까’ 의문을 갖게 된다.

중국어 연수를 하며 동북농업대학교(농학원)에서 일본어 강의를 하던 도다씨는 천안문 사건으로 대학이 휴교하자 조선인의 항일운동에 대한 중국어문헌을 읽고 싶어 연변대학으로 가 당대 최고의 역사학자인 박창욱 교수를 만난다.

“박 교수님이 외국인 제 1호 딸이라고 불러주실 정도로 저를 사랑해 주셨고, 한 달 동안 조선족 독립운동에 관해 강의를 해 주셨어요.”

박창욱 교수를 만나고 나서 ‘왜 조선족이 일제 때가 좋았다’고 말할까에 대한 의문도 풀렸다.

일제가 민족 이간정책을 펴기 위해 한족이나 만주족보다 조선민족을 우대하는 정책을 폈기 때문에 만주지역의 조선인은 ‘일제때가 좋았다’고 느낄 수 있다는 것.

도다씨는 박창욱 교수의 강의를 통해 한국 독립운동사의 이면을 보면서 한국에서 배운 역사가 전부가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다.

“만주지역에는 한국의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영웅들, 민족주의자와 공산주의자의 대립 등이 많이 있었어요. 공산주의자에게 살해당한 김좌진 장군이 대표적인 경우지요.”

도다씨는 “앞으로 자신의 삶은 조선족을 떠날 수 없다”고 말한다.

“일본과 관련이 있는 조선족을 만나면 그의 얘기를 듣지 않고 떠날 수가 없어요. 반면에 일본에는 근대사에 대한 인식이 없어요. 일본의 고등학생 대학생이 역사를 똑바로 볼 수 있도록 한중일 역사교류를 하고 싶어요. 역사를 모르니까 한국이 싫다 중국이 싫다 그러는 것 아닌가요.”

도다 관장은 이미 한국과 관련된 여러 권의 책을 펴낸 유명 저술가.

도다씨가 펴낸 책은 88년도에 유학생으로 서울에 살면서 겪었던 일을 재미있게 쓴 책 ‘평상복 옷차림의 서울 안내’를 시작으로 여러 직업을 가진 젊은이들의 일상생활을 인터뷰한 책 ‘한국의 젊은이’, 한국어에 대한 책 ‘고민스럽고 사랑스러운 한국’, 한일간의 국제결혼에 대한 이야기 ‘한 이불 속의 두 나라’, 한국여자에 대한 이야기 ‘일본여자가 쓴 한국여자 비판’, 한국 속담에 대한 책 ‘손 큰 며느리’ 등이다.

도다 관장은 현재 2011년 일본 이와나미 출판사에서 나온 자신의 책 ‘중국 조선족을 살다’를 한국어로 번역하고 있다.

2006년 한국으로 귀국한 류은규, 도다 이쿠코 부부는 군포시 산본신도시에서 중·고등학교를 마친 아들이 일본 대학에 진학한 뒤 2013년 국제공항이 가깝고 역사가 깊은 인천의 옛 일본조계지에 있는 낡은 일본식 가옥을 구입했다. 1년여의 복원공사 후에 문을 연 것이 바로 ‘인천관동갤러리’.

“일본의 조계지가 있었던 이곳 인천 관동, 신포동에는 일제의 자취가 많이 남아 있어요. 저는 이곳을 찾은 일본사람들에게 왜 여기 일본 주택이 있는지 일본 사람입장에서 이야기 할 수 있어요. 그들에게 이곳의 역사가 자기와 관계없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연결된 역사 속에 자신이 살고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것이 바로 저의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도다 관장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강한 신념이 배어나왔다.

▲ ‘골목이 평화다’ 5차 답사 ‘인천 개항기 역사, 차이나타운 골목답사’ 참가자들.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