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찾으러 온 중국여성...'전능신교 피해자 기자회견' 열려

 

 
[서울=동북아신문]"전능신교 신도인 저의 남편은 베이징서 좋은 직장을 버리고 가족 몰래 한국에 입국해서 '종교탄압'을 이유로 난민신청을 했습니다. 작년에는 평소 그렇게 애타게 보고 싶어 하던 아들을 보지 못한 체 시어머니께서 돌아가셨지만 남편은 끝내 와보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저는 네 살 배기 애를 데리고 보름가량 한국에서 머물며 남편을 찾아 동분서주했지만, 남편은 얼굴 한번 내밀지 않고 있습니다.…진정한 종교란 무엇인가요? 가족을 사랑하고 인류를 사랑하는 것이 참된 종교가 아닌가요? 전능신교는 왜 아빠와 아들을 못 만나게 하고, 또 사랑하는 부부가 생리별 하도록 꼬드기는가요? 길을 막고 있는가요?…여러분 제발, 애가 아빠를 만날 수 있고 아내가 남편을 만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지난 1일 오후 강서구 화곡동에 위치하고 있는 '기독교이단상담소(소장 박형택 목사)'에서 열린 '전능신교 피해자 기자회견'에서 전능신교 신도인 남편을 찾아 네 살배기 아들애와 함께 온 전영(田颖, 중국인, 여, 33세)씨기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전영의 남편 이비(이비, 李飞 灵名, 33세)는 중국 국가회의센터공학부AV팀 팀장으로 촬영과 음향 등을 전공하는 인재, 어느 해부터인가 전능신교에 빠지더니 가정을 버리고 한국에 건너와 꽁꽁 숨어버렸다는 것이다.  YTN의 보도에 따르면 ‘애신교회(하나님 사랑교회)’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전능신교는 강원도 횡성에 유스호스텔을 보유하고 있는데, 그곳에 수백여 명의 신도(대부분 중국동포, 또는 한족)들이 상주하며 포교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횡성 지역 주민의 말에 따르면 신도들이 많게는 600~700명으로, 200명 정도가 상주하며 활동하고 있다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이비종교대책위원회 오명옥 대표는 "전영 모자를 데리고 이비를 찾으러 전능신교의 본부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강원도 횡성으로 갔었는데, 그곳에서는 외부인의 교회진입을 엄격히 제한했다"고 말했다. 전영모자가 아무리 진입을 시도해도 허가를 받을 수 없었다는 것, 그래서 오 대표는 지난 8월 28일에 구로구 가리봉동에 위치한 전능신교 교회건물 앞에서 시위를 하며 전영 모자를 내부에 들여보내 사람 찾기를 시도(이비의 등록증 주소가 구로구 가리봉동으로 되어 있음)했었지만, 그마저 헛물만 켜고 말았다. 냉혹한 신도들이 누구도 이비의 거처를 알려주지 않았었다.  오명옥 대표는 "이비의 등록증은 체류 유효 기간이 10월 8일에 종료되기에 이미 서울출입국에 진성서를 제출해서 이비의 체류연장 불허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능신교 조직이 이비를 대신해 계속 '난민신청 기각'에 대한 소송을 진행할 경우 체류연장은 불가피하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또 이런 소송일은 길면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  피해자 가족 전영은 남편이 중국에 돌아갈 수 없는 이유에 대해 "귀국을 하게 되면 중국공안이 즉시 잡아서 감옥에 넣을 것이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기실 중국정부는 꼬임에 든 사교신도들에 대해서는 교육하고 회개시켜 정상인으로 사회에 환원시키는 관대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말하며, "남편은 현재 오히려 전능신교의 조종에 놀아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영의 남편 이비와 같이 요즘 중국에서 이단 종교로 낙인이 찍힌 전능신교 신자들의 난민신청이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3년간 종교탄압을 이유로 난민신청을 한 중국인은 736명에 이르며 상당수가 전능신교 회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전능신교를 이유로 한 난민 인정은 된 바 없다고 한다.  한국 종교계에서도 전능신교를 이단으로 취급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전능신교를 멀리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5월에 중국에서 전능신교 신도들이 입교를 거부하는 여성을 무차별적으로 폭생·사망하게 하는 사건을 빚어 신도 2명이 사형을 선고받은 사건이 터진 후부터 전능신교에 대한 각별한 주의를 요망하고 있다.  전능신교는 80년대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출신의 자오웨이산이란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신흥종교로, 동양여성의 몸으로 부활할 신이 중국에 내려와 인류를 심판할 것이므로 국도(國度) 시대를 준비하자는 교리를 담고 있다. 전능신교 창시자로 알려진 중국 허난성 출신의 자오웨이산은 ‘등(鄧)’씨 성을 가진 동양여성을 재림한 예수로 믿고 ‘전능하신 하나님’, ‘여자 그리스도’로 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지구 ‘종말론’에 바탕을 둔 전능신교는 "2012년 12월 21일 해가 서쪽에서 떴다가 사라진 뒤 사흘간 암흑이 오고 72일 동안 대규모의 자연재해가 온다"는 주장을 유포하며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조성한 것"으로 알려져 중국에서 "사교"로 지정돼 단속됐다. 2012년 12월에 중국 공안은 전국 각지에 종말론을 퍼트려온 전능신교 관련자 101명을 체포했다. 그러나 실질적 교주로 알려진 자오웨이산은 2001년 미국으로 도주해서 호화생활을 하고 있다.  오명옥 대표는 "전능신교는 신도들이 입교를 할 때는 가족관계 단절서에 싸일 할 것을 요구한다"며 "이들의 포교방식은 미인계, 기성교회 위장잠입, SNS을 통한 전능신교에 대한 찬양과 홍보 등 다양하다"며 "중국동포들이 절대 전능신교에 넘어가면 안 된다"고 당부를 했다. 또 "우리 사회가 안타까움에 처한 전영가족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남편을 찾으러 온 전영씨와 그의 아들
부록 : 전능신교 피해자 전영씨가 한국 언론에 보내는 구조 요청 글 존경하는 한국 매체 편집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전영(田颖,여,33세)이라고 합니다.저는 중국하북성 싱타이시 칭허현 사람이고 2005년에 대학을 졸업한후 지금까지 북경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습니다. 저의 남편 이비(영명)(李飞,灵名)가 전능신교라는 사이비 종교의 교설에 넘어가 2015년 4월 4일 북경에서 가출하고  전능신교활동에 참가하러 한국으로 떠났습니다. 그렇게 저의 남편이 실종된후 저는 백방으로 그의 행적을 알아보려 했으나 저 혼자만의 힘으론 찾을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이렇게 글을 올려 한국 매체 관계자분들의 도움을 받고자 합니다.한국 매체 관계자분들이 저의 남편을 찾는데 도움을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저의 어린 아이의 아버지를 찾아주시고 저의 가정이 다시금 화목하게 함께 생활할수 있도록 도와줄수만 있다면 어떤 대가라도 치를 각오가 되여있습니다. 제발 도와주실 바랍니다… 저의 남편은 이비(영명,남,한족)(李飞,灵名)라고 하고 1982년 6월 18일생이며 간쑤(甘肃)성장예(张掖)시 사람입니다. 그의 본 직업은 국가회의센터공학부AV팀 팀장입니다.
저의 남편 이비가 처음 전능신교라는 사이비 종교에 가입한다고 했을때 저는 정상적인 종교신앙활동인줄로 알고 말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와 결혼한후 저는 그의 행동이 어딘가 이상하고 자주 야근을 빌미로 며칠간 집에 돌아오지 않으며 다른 사람과의 통화내용이 모호하다는것을 발견했습니다. 그와 여러번 심하게 다툰뒤에야 그는 자신이 전능신을 믿는다는 사실을 인정하였습니다. 처음에 그는 저한테 끼쳐진 피해를 고려해 저한테 잘못을 승인하였고 직접 보증서까지 쓰면서 다시는 전능신과 관계된 어떠한 활동도 참여하지 않고 그 어떤 종교조직에도 돈을 쓰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한테도 교설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2012년 11월 우리에게서 사랑스러운 아들이 태여났고 그후 그는 저와 아들을 따뜻하게 대해주면서 가정을 소중히 여기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직장에서도 열심히 일하여 회사 동료나 윗사람들도 그를 높게 평가하였고 월급이나 보너스가 나올때면 자신에게 별로 남기지 않고 다 집에 바쳤습니다. 2013년 우리는 하북성의 고향에서 대출을 받은 돈으로 집을 장만하였고 비록 매달마다 대출을 갚아야 했지만 저는 이렇게 평범하고도 행복한 생활에 아주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2014년은 어린 아이를 돌보고 바쁜 직장생활을 하느라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갔고 남편도 별로 이상한 낌새가 없었습니다. 허나 이것이 악몽의 시작이 되리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2015년 청명절날, 이비(영명)는 갑자기 실종되였고 더이상 연락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저한테 청천벽력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는 두살반밖에 안된 아들과 안정된 직업을 버리고 아무런 징조도 없이 가출한것입니다. 저는 커다란 생활압력과 남편이 가출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에 절망한 상태입니다. 직장원인으로 인해 저는 야간근무를 해야 하는데 이럴때면 제 어린 아이는 저의 남편이 돌보곤 했었습니다. 저의 아들이 잠에서 깨여 울면서 아버지를 찾을때면 저도 같이 부둥켜안고 울뿐 어찌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남편이 이렇듯 갑자기 사라지는 바람에 저는 삶의 희망을 잃었고 심지어 자살까지 생각했었습니다. 매번 어린 아들이 창문가에 서서 아버지를 부르며 저 먼곳에 아버지가 있다고 할때면 저의 가슴은 찢어질것 같았습니다. 그후 저의 부모님의 설득과 친구들의 격려하에 저는 아들이 다시금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온 가정이 다시 화목하게 지내며 년로하신 시부모님께서 다시 아들을 만날 그 날을 위해 열심히 살아나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리하여 저의 남편을 찾는것이 이제는 저의 직업외의 제일 큰 목표가 되였습니다.
저는 경찰에 실종신고를 하였고 반달후 경찰은 저의 남편이 가출한지 3일째되는 날, 즉 2015년 4월 6일 개인출국여행이라는 명의로 대한항공KE880편 북경에서 제주도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고 전해왔습니다. 소식이라도 있어 다행이였으나 그가 해외에 있다는 사실은 다시금 저를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다시 살아가려고 마음먹은 저에게 이것은 또 하나의 큰 충격이였습니다. 그후 반달간 저는 방안에서 거의 단식하였고 그 사이 몸무게는 20근정도 내렸습니다. 여러가지 원인으로 인해 부모님은 북경에서 저를 돌볼수 없었고 어린 아들은 할머니,할아버지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남편이 사라진후 저에겐 아들이 유일한 생활의 희망이였으나 아들과 떨어져 사는 지금, 저는 생활의 중심을 잃었고 뭐라 표현할수 없이 고통스럽습니다.
2015년 5월, 저는 인터넷에서 저와 비슷한 처지의 근 천여명의 사람들이 있다는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꼭 남편을 되찾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희망을 놓지 않고 열심히 살아간다면 꼭 남편이 집으로 돌아올 날이 있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저는 여러방면으로 전능신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전능신은 중국 흑룡강성 사람인 조위산이 20세기 80년대쯤에 만든것으로 중국 하남성 사람인 양향빈을 신화(神化)하여 여그리스도가 존재하며 세계종말이 다가온다면서 루머를 퍼뜨려 겁을 주거나 사기를 쳐 신도들의 재물을 뺏아가고 가출을 하도록 하여 가정을 파탄내고 살인이나 자기 몸에 스스로 불을 지르고 여색으로 교설하는 등의 범죄까지 저지르는 집단입니다. 저의 남편이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게 하기 위해 저는 산서성, 산동성, 강소성 등 지방에 가 저와 같은 처지의 가족들을 만나보았습니다. 그들과의 교류이후 저는 남편을 찾는 길이 얼마나 험난할지라도 꼭 그를 전능신교라는 사이비 종교집단에서 떠나게 하리라 다짐했습니다. 저는 저와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과 서로 가족을 찾길 기원한다며 격려하면서 남편을 찾으리라 결심해 왔습니다.
2016년 1월, 준비가 거의 된 상태에서 저는 휴가를 신청하고 한국 제주서부경찰서에 신고했으나 두 나라의 법률제도가 달라 서부경찰서에서도 저를 도울수가 없었습니다.서부경찰서에서는 저의 남편이 이미 제주도를 떠나 한국 다른 지방으로 갔다고 알려주었습니다.여관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저는 또 한번 절망했습니다。
1월 26일, 저는 저의 어머니한테서 1월 25일 오후 두시경 제 시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였습니다. 시어머니께서는 아들이 사라진뒤 병마와 싸우시면서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으나 결국 아들 얼굴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이날, 저는 저의 남편과 전화통화를 할수 있었고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알리면서 함께 집으로 돌아가 장례식을 치르자고 했으나 남편 옆에 있던 사람이 전화를 뺏어 들곤 <<이 모든것은 신의 안배입니다. 신께서 이 사실로 이비를 고험하려는것입니다. 어머니께서 천국에 가셨으니 그건 좋은 일이고 돌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 고 하였습니다. 할수 없이 저는 이비에게 <<어머니 장례식에 갈수 없으면 중국의 풍속대로 돌아가신지 일곱째 되는날 종이를 태우는것은 되지 않나, 정 안되면 제주도에 와서 나와 얼굴 보는것쯤은 되지 않나>> 고 말했으나 남편은 자기도 돌아가고 싶으나 그럴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저의 첫번째 남편찾기 시도는 이렇게 끝나버리고 말았습니다. 저는 남편이 제 곁에 없다는 건 견딜수 있었으나 전능신 한국교회에서 남편을 어머니 장례식에 참가하지 못하게 하는건 참을수 없었습니다. 제 남편은 사이비 종교에 빠져 어머니한테 효도할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쳤습니다… 제주의 눈 오는 거리에서 저는 울고 말았습니다… 저의 사정을 딱하게 여긴 남편의 누나 장팅은 올해 5월 17일 저와 세살된 아들과 함께 제주도에 남편을 찾으러 왔습니다. 비록 난민관리부문의 도움하에 제주도에서 남편과 만나게 되였지만 전능신 조직사람들의 인신위협에 중국으로 돌아갈수 없었습니다.
중국에 돌아온후 매번 아들이 핸드폰으로 아버지 사진을 보며 기뻐할때면 가슴이 미여지는것 같았습니다. 저는 어떤 방법으로 그 부성애를 채워줘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이는 아무 죄가 없습니다. 어머니로써 아이가 몸과 마음이 건강히 자랄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수 있습니다. 한국 매체 여러분이 아이의 아버지를 찾아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두차례 출국하여 남편을 찾느라 저의 저금은 거덜났고 직장을 정상적으로 다니지 못한 탓에 직업도 잃었습니다. 남편이 집을 떠난 후 집으로 돈을 부친적이 한번도 없지만 저는 남편을 찾아내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여러분의 힘을 빌어 전능신교, 즉 서울시 구로구 구로동 390-157 원석빌딩과 강원도 횡성의 “청소년 유스호스텔(유토피아)”의 “애신교회(爱神教会)” 로 하여금 저의 남편 이비(영명)을 중국으로 돌려보낼수 있게 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쓴 내용은 모두 사실이며 거짓이 있을 경우 모든 법률책임을 제가 질것을 약속합니다.
                                                        
도움요청인: 전영
  2016년 8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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