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련 김입섭 칼럼니스트

[서울=동북아신문]사이버 공간에서 리플(评语)은 사물의 시비곡직에 대한 평가를 내리고 찬반양론을 진행하는 건설적 기능의 하나이다.

그는 사이트에 오른 글에 대하여 자기 인식과 의중을 표출하는 동시에 불특정 다수 네티즌들에게도 확산되면서 상호교류와 공생발전의 거센 추진력이 되고 있다.

그러나 구조적으로 조성된 은밀한 구석에 숨어서 뭔가 눈에 거슬리면 시름없이 가시 돋친 험담이나 배설물 같은 추담(丑谈)을 퍼붓거나 정의마저 스스럼없이 조롱하는 위인들이 비일비재하다.

이런 부류 독설가들이 일어탁수(一鱼浊水) 민폐를 끼치는 소행에 대하여 고민을 하게 된다.

이즈음 네티즌(网民)들은 사이트에서 정보의 생산자와 소비자로서의 평등한 권익을 만끽하고 있다.

각자가 보고난 어떤 글에 대하여 서로 부동한 견해를 가질 것은 물론이고 리플을 달아 자기 관점을 제시하는 것도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나아가 다투는 식의 논쟁을 하거나 판이한 가치관을 궤적으로 하는 열띤 토론을 벌여도 이상할 것 없다.

이런 댓글들은 각자의 지식을 공유하며 인식을 제고하고 여론을 정화하는 선플(好评)로 봐야 한다.

이 중의 많은 의견들은 정부 부서에 수렴되어 착오를 시정하고 정책 방침을 제정하는 근거로 되기도 한다.

인터넷에서 약동하는 이런 견해들은 긍정적 에너지로 전화되어 사회의 새 공감대를 형성시키는 튼튼한 초석이 되고 있다.

그러나 논리적인 찬양、비판이나 선의적인 반박 글 대신에 의견을 달리한 상대방에 대하여 무차별적 공격을 가하고 독기 서린 험담을 퍼부으며 사경에 처넣으려는 유언비어나 비방 중상 언사들이 겹쳐 나타나 민망스러울 때가 많다.

거기서 격한 기분으로 격돌하거나 무심중에 꼬집는 행실은 아이들 싸움 장난으로 귀엽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도덕과 사회 관행을 무시하고 상대방과 양립할 수 없는 원수의 입장에서 싸움을 걸고드는 친구들의 언설이 말썽거리다.

이러한 독선적이고 단세포적인 사고로 내던지는 세기말적 언어도단들은 인터넷 세상에서 바로잡아야 할 일그러진 단면이다.

인터넷 공간은 우리가 살아갈 또 하나의 공간임에 틀림없다. 세상에 유아독존이 있을 수 없으므로 타인도 나처럼 자아를 소중히 간직한다는 이해심은 인간이 지녀야 할 기본 도덕심임을 명기해야 할 바이다.

오늘 세상을 살아가려면 상생을 위한 공존 방식을 헤아리는 지혜가 절대 필요하다.

단순한 흑백 논리와 이분법 사고로 투쟁을 벌이는 비교육적 자세는 네가 죽고 내가 죽고 공멸을 불러오는 독침일 수밖에 없다.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자제하는 윤리와 처세술이 나에게 정립되었는가. 누군가 반성해야 될 것이다.

특히 자기주장을 승리의 깃발처럼 쳐드는 논설가나 언론인들은 역지사지(易地思之) 명지(明智)로써 순화된 소신을 밝히는 것이 책임임을 숙지해야 한다.

사이트에서 별명이 가능한 원인이 생각을 여과 없이 내던지도록 부추기는 현실도 부인할 수 없다. 그들의 심중에서는 대중 앞에 노출되지 않았기에 불이익이나 처벌이 면제된다는 방만한 심리가 활약하며 악플(恶评)을 달아놓는 경우가 절대 대부분이다.

이러한 부류들의 내심에는 원색적 욕설과 비방을 해도 무사할 것이라는 발양망상(发扬妄想)이 저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나라는 이런 악플의 대응으로 실명제、신고제、감독제 등 법제적 타율적 조치를 의무화로 시행하고 있으나 결코 만능약이 될 수 없고 결국 자율적 의식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요즘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악플(恶评)을 다는 모양새가 그냥 가관이다. 민족사회의 재건을 떠메고 차세대를 이끌고 갈 대인다운 모습과 정반대 방향이다.

타인의 의사를 존중하고 논리로 상대방을 정복하는 정중한 모습으로 나타나도 손해날 것 없다.

찬양도 비판도 옥신각신하는 설전도 다 좋은데 폭언과 육악담(肉恶谈)이나 악담 따위의 무단투기(无断投弃)만은 금물이다.

손가락을 쳐들고 셈 따지기 해봐야 몇이 안 되는 겨레들인데 물거니 뜯거니 동족상쟁은 진소위(真所谓) 꼴불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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