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申 吉 雨 (본명 신경철) 문학박사, 수필가, 국제적 문학지 계간 <문학의강> 발행인 한국영상낭송회 회장, 한국문인협회 자문위원 skc663@hanmail.net

[서울=동북아신문]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동방에 있는 예의의 나라(東方禮儀之國)’라고 불려 왔다.

그만큼 우리들의 삶이 예의를 존중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얻은 말이다.

실제로 우리들의 삶을 하나하나 되돌아 살펴보면 참으로 우리들에게는 수많은 예절이 그대로 배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상대방을 높이는 말과 자신을 낮추는 말, 공대의 말과 겸손의 말 등이 체언은 체언대로 용언은 용언대로 각기 달리 쓰이고 있다.

이렇게 경어법이 발달한 것은 우리들의 삶이 그만큼 예절을 존중하면서 살아왔고, 그것이 그대로 언어 속에 배어들었다는 사실을 증명하여 주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옛글을 읽을 때에도 발견된다. 임금이나 훌륭한 분, 또는 자신의 부모와 같은 이들의 이름자를 글 속에 적을 경우에는 독음이 같거나 뜻이 비슷한 다른 글자로 바꾸어 썼다.

삼국유사(三國遺事)의 맨 앞 왕검조선(王儉朝鮮) 조에 중국의 요(堯) 임금을 적을 것을 고려(高麗) 정종(定宗)의 이름자가 요(堯)이어서 음이 비슷한 고(高)자로 바꾸어 적고, 고려 혜종(惠宗)의 이름자가 무(武)여서 주(周)의 무왕(武王)을 그 의미가 유사한 호왕(虎王)으로 적은 것이 그런 것이다.

그분들의 이름자를 그대로 쓰는 것은 비록 선왕(先王)들이지만 그 왕조의 백성 된 사람으로서 그럴 수가 없다고 하는 예절에서 나온 것이다.

지금은 이러한 관습이 해당자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기가 곤란하게 되어서 본명을 그대로 쓰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예절의식은 어른들의 이름자를 말하게 될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곧 남에게 자기 부모의 성명을 말할 때 이름을 그대로 대지 않고 ‘무슨 자, 무슨 자입니다’라고 한다.

자기 부모의 성명을 곧이곧대로 대는 것은 어른에 대한 대접이 아니라는 전통적인 예절의식에서 행해지고 있는 방법인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언어예절로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누구를 가리킬 때에도 그 사람의 이름 대신 호(號)를 부르거나 이름자 다음에 그가 지낸 벼슬이나 직책을 붙여 부르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그런 것을 붙이기가 곤란한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쓰는 ‘선생, 형, 여사, 언니’ 등을 붙이기도 하고, 때로는 이름 없이 그냥 이 호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옛날에는 성씨에다 ‘공(公)’을 붙여 ‘김공, 이공’으로도 불렀다. 이것도 다 상대방을 대접하는 언어예절인 것이다.

근래에 해외 관광이 개방되어 많은 사람들이 외국에 다녀오게 되면서 외국인들에게 가장 먼저 널리 알려진 말이 ‘빨리빨리’라고 한다.

한국인들이 식당에서든 관광지에서든 가리지 않고 어디서나 ‘빨리빨리’를 외치며 서둘기만 한 데서 나타난 현상이다.

‘감사합니다’나 ‘고맙습니다’라는 좋은 말이 있는데도 대부분의 한국 관광객들이 썼기에 그들도 한국인을 만나면 사용하는 말이 되었다.

‘안녕하십니까’도 널리 알려졌다. 만약에 우리가 존댓말을 사용하지 않고 평어나 반말체로 그냥 ‘안녕’이나 ‘잘 있어’를 흔히 썼다면 그들도 그렇게 쓸 것이다.

이것은 우리나라 사람끼리도 마찬가지이다. ‘진지 잡수십시오’ 할 것을 ‘식사 하세요’라 쓰고, 아무 생각 없이 ‘수고하셨습니다, 수고 하십시오’를 윗사람에게 쓴다면 남들도 그것이 맞는 줄로 알고 그렇게 따라 사용할 것이다.

겸양한답시고 ‘우리나라’ 대신 ‘저희 나라’로 쓰고, 존대한다고 ‘말씀이 있으시다’를 의인화하여 ‘말씀이 계시다’로 자꾸 사용하는 것도 언어예절에 맞지 않는다.

지나친 공대는 도리어 예에 어긋난다. 또 ‘좋은 아침’ 같은 외국어 직역식 인사말도 문제이다.

비나 눈이 오거나 구름이 잔뜩 낀 날에는 쓸 수가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의 언어의식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사말은 시기나 상황에 따라 적절히 상대방의 안부를 묻는 것이 정형이랄 수 있다.

‘진지 잡수셨습니까’나 ‘안녕히 주무셨습니까’가 그런 예이다. ‘어디 가십니까’도 인사말로 쓴다.

이런 것들은 인사말일 뿐이기 때문에 대답을 구하는 것은 아니며 구체적으로 대답할 필요도 없다.

말이란 이처럼 사용하는 사람들의 언어의식과 삶을 반영하고 있다. 우리말에 경어법이 가장 발달하고 호칭과 지칭의 어휘가 풍부한 것은 우리들이 그만큼 예절을 존중하며 살았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따라서 경어법이나 호칭어․지칭어 같은 것을 복잡하고 어려워서 힘들어하기보다는 이를 알맞게 골라 적절하게 사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예의 국가이다. 스스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그러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들의 언행(言行)이 예절을 존중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얻어진 것이다.

“말소리가 공손한 사람은 그가 예의가 바라서이고, 거친 것은 그가 함부로 살기 때문”이라는 어른들의 말씀을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행동뿐만이 아니라 일상 쓰는 말도 그의 품성(稟性)과 삶을 드러냄을 생각하고 말 한 마디라도 함부로 써서는 안 될 것이다.

주자(朱子)는 그의 저서 동몽수지(童蒙須知)의 맨 앞에 언어보추(言語步趨)를 넣고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하고 있다.

“무릇 사람의 자제가 된 자는 반드시 항상 낮은 소리로 흥분을 가라앉히고 말을 상세하고 느리게 할 것이며, 큰 소리로 떠들어대거나 허튼 소리로 시시덕거려서는 안 된다.”

초학 교재인 명심보감(明心寶鑑)에도 언어편을 한 편으로 독립시켜 다루고 있다.

이율곡(李栗谷)의 성학집요(聖學輯要)에도 제3장에 언어의 수렴을 따로 한 절을 내세워 상세하게 논하고 있다.

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의 토정집(土亭集)에 나오는 다음 말도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비록 신통한 약이라도 병이 뜨거운 환자가 먹으면 죽고, 비록 대수롭지 않은 것이라도 병이 뜨거운 환자가 먹어서 살아나기도 한다.

말을 하는 이치 또한 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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