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 본지는 중국에서 한국으로 시집을 와서 결혼이주민으로 생활하고 있는 마앤의 '한국에서 설을 쇤다' 글을 싣는다. 마앤은 중국어로 시를 쓰는 꽤 유명한 시인이다. 한국의 설 풍속도를 중국어로 써서 한국어로 번역을 한 것이다. 이에 번역문과 원문을 싣는다. 편집자  

▲ 마앤 중국출신 결혼이민자, 시인
한국은 중국과의 밀접한 왕래가 서한시대에 최초로 시작됐다. 많이 문화들이 이미 양국의 역사 발전 과정에 스며들었다. 유구한 역사 문화 근원은 양국 사람들의 풍속과 습관, 그리고 문화배경 쪽에 많은 비슷한 패턴을 만들었다.

설, 정월, 단오절, 추석 등 전통 명절은 한국과 중국이 똑같이 모두 중요한 민간전통 명절이다. 단만 명절의 의미 그리고 명절 음식이 차이가 많이 있다. 곧 설이다. 이번은 한국에 온 후에 첫 설이다. 시부모님이 다 돌아가셨기 때문에 우리가 용인시에 계신 남편의 큰 형님 집에 가서 설을 쇠게 되었다. 평소와 거의 비슷하게 폭죽을 터트리는 소리도, 즐거운 노랫소리와 웃음소리도, 대문에 대련을 붙이는 풍속도 없이 조용한 분위기 속에 섣달 그믐날을 지냈다. 설 기간 동안 길에는 사람이 거의 없고 평소보다 더욱더 쓸쓸하다. 명절의 즐거운 분위기를 하나도 느끼지 못한다. 큰 아주버님 집은 일반 주택 단지가 밀집되어 있는 곳의 17층에 있다. 근처가 다 17,18층의 주택단지이다. 높은 주택 단지 안에 걸어가면 사람의 그림자도 많이 낮아 보인다. 여름에는 단지 안에 나무가 우뚝 솟아 있고, 그늘도 이루고, 꽃과 잔디가 단지에 가득 있다. 여기저기 자연의 느낌이 꽉 차있다. 각 건물 아래에 세워 진 자가용들이 단지 사이의 길을 가득하게 채우고 있어,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장소가 없다. 비록 매 동마다 지하주차장이 있긴 하지만, 주차장이 그래도 부족하다. 즉 평균적으로 세 식구인 가정이 차 한대를 갖고 있다는 말이다. 한국의 자동차 소유량은 중국의 자전거 소유량처럼 보편적인 것이다. 큰 아주버님은 요리사이고 키가 중간 정도가 된다. 짙은 눈썹에다 무성한 검은 머리카락에 네모난 얼굴과 우뚝 솟은 코는 우뚝 솟아있다. 외모상 남편과 친형제 같지 않지만 둘이 확실히 친형제이다. 큰 형님은 키가 크지 않고 용모가 청순하고 아름다우며 한국요리를 맛있게 만들 수 있는 전통적인 현모양처이다. 그 집에는 딸이 두 명이 있다. 다 명문대학을 졸업했다. 첫 째는 올해 32세이고 서울대 졸업하고 지금 한 병원에 근무한다. 작년에 결혼했다. 둘 째는 30세이고 유명한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지금 한 다국적은행에서 근무한다. 국제 은행업무를 담당하고 있어서 종종 싱가플, 홍콩등을 왔다 갔다 하지만 남자 친구를 사귄다는 말은 큰 형님께 들어본 적이 없다. 둘째는 성격이 자신감이 넘치는 전형적인 "한국 공주"스타일로 보인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몸매에, 하얀 피부, 예쁜 얼굴형, 높고 넓은 이마가 차도녀의 개성과 지적인 스타일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 보통 고등학교 졸업생들은 70% 대학에 입학 할 수 있다. 어떤 가정은 형제자매 몇 명이 다 대학생인 경우도 있다. 하지만 명문대에 입학하려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남들보다 훨씬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 큰 집에 가는 길에 남편이 나에게 자기 형한테는 "나주버님", 형수한테는 "형님"이라고 부르라고 가르쳐준다. 자기가 그냥 형님과 형수라고 부른다. 한국어로 시댁식구에 대한 호칭이 복잡한다. 남편이 시부모님을 부를 때는"아빠, 엄마"라고 부르고, 저는 시부모님께 아버님, 어머님이라고 꼭 존대 말을 써야 한다. 남편의 형제자매에 대한 호칭도 남편과 다르게 부른다. 만나는 시간이 짧기 때문에 나는 호칭을 제대로 외우지 못한다. 음력 정월 초하루 아침에는 집집마다 떡국이라는 한국 전통음식을 먹어야 한다. 중국 사람이 설날 때 만두를 먹는 것과 같은 문화이다. 만약 집에 돌아가신 어르신이 계시다면 아침 식사 하기 전에 제사를 해야 한다. 새해 시작할 때 하늘에 계신 가족에게 제사를 올리면 가족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순조롭게 지낼 수 있게 보우해 준다. 제사상에 제사음식을 놓을 때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민속습관에 따라 해야 한다. 순서는 홍동백서, 어동육서, 조윤이사이다. 제사음식의 색깔과 종류에 따라 놓아야 한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빨간색은 제사상에 동쪽에 놓고 하얀색은 서쪽에 놓는다. 생선이 동쪽, 고기는 서쪽에 놓는다. 마지막 한 줄에 대추, 밥, 배, 감등을 순서대로 놓는다. 이것은 거의 모든 한국사람이 다 알고 있는 것이다. 한국 초등학교의 교과서에는 중요한 명절 제사에 대해 아주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한국사람이 전통 민속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사용 음식에 고추가루, 대파, 생강, 마늘 등을 넣을 수 없다. 오로지 간장이나 소금만 넣는다. 제사용 생선으로 갈치는 사용할 수 없고 굴비를 찌면 된다. 제사용 과일로 복송아는 쓸 수 없다. 제사상 앞줄에 선조의 지방을 모시고 제사상 뒤에는 병풍이 있다. 병풍의 높이는 성인보다 높아야 아고, 고훈, 가훈 같은 내용을 서예 한자로 가득 쓰여 있다. 제사 전용 나무 주(술 주)기, 용기, 향로등은 제사 용품 전문점에서 구매한 것이다. 제사 올리기 전에 집안 남자들은 정장을 입어야 한다. 성인이 된 남자들은 순서대로 조상님께 술을 올린다. 절할 때 머리와 손발이 땅에 닿도록 아주 경건하고 정중하게 절을 한다. 큰 형님이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제사상 앞에서 향에 불을 붙이고, 향로에 꽂고 절을 한다. 먼저 조상님께 술을 올린다. 남편이 아주버님 뒤에 술을 따르고 형님이 양손으로 술을 받고 머리 위에 올려 제사상위에 원을 그리며 돌리고, 술잔을 다른 쪽에 서있는 셋째 동생에게 준다. 세째 동생이 술잔을 받고 큰 용기에 따른다. 아주버님은 연달이 조상님께 술 세잔을 올린다. 이어서 남편과 셋째 동생이 각각 조상님께 술을 올린다. 동작은 아주버님과 같다. 내가 보기에 공연하는 것과 같다. 술을 올리고,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이고, 일어서고, 두 손 조차도 두는 위치에도 엄격한 규정이 있다. 나중에 이것이 불교식 제사 예의이고, 전문적인 제사용 예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설날이 되면, 아들 가족들이 보통 부모님 댁에 가서 모여야 한다. 부모님이 들어가신 경우 큰 집에 가서 설을 쇠야 한다. 선물과 돈을 가지고 아주버님과 형님를 뵈러 가서 같이 제사를 지낸다.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면 아주버님이 부모님과 같이 한 가족의 가장이다. 현재는 어떤 한국 사람들은 관례를 깨고 ,시댁이 어렵고 시댁과 잘 지내지 못하기 때문에 시댁에 가지 않고 조용히 자기 집에서 설을 쇤다. 심지어 한국 여자들이 남편감을 찾을 때 장남을 선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제사 같은 큰 가족 행사는 첫째 집에서 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인으로써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는 가족의 책임과 의무가 있다. 장남이 돌아가시면 순서대로 돌째 집으로 바뀐다.  제사가 끝나고 나서 아이들은 한줄로 서서 아이들은 등장한다. 예쁜 한복을 입고 어른의 안내에 따라 조상님께 큰절을 하고 나서 윗어른들께 절하면서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해야 한다. 윗어른들께도 전형적인 제사 예절로 절을 해야 한다. 절하고 나서 윗어른들께 "새뱃돈"을 받을 수 있다. "새뱃돈"을 줄 때 윗어른들은 보통 답례 같은 일을 고려하지 않고 아주 편하게 한다. 금액은 중요하지 않고 진심으로 주면 된다. 보통 아이의 나이에 따라 새뱃돈의 금액도 달라진다. 어린 아이는 몇천 원(중국돈 약 5~30원), 좀 큰 아이는 몇만 원을 받을 수 있다(약 중국돈 50~250원). 가족 간 서로 솔직하고 성실하게 대한다. 설날 당일은 두말 할 것 없이 일년중에 가장 북적북적한 날이다. 가족들이 모이는 것뿐만 아니라 각종 명절 음식이 아주 풍성한다. 거실 장식장에 크고 작은 그릇, 접시, 수젓 등놓여 있던 것이 생각났다. 왜냐하면 시어머님이 살아계셨을 때에는 가족들이 다 와서 새해를 보냈기 때문에 아주 시끌벅적하게 큰 가족 모여 설을 쇠었다. 아쉽게도 그 장면을 나는 볼 수 없게 되었다. 이번에 큰집에서 형님과 나,동서 셋이 부엌에서 가족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한다. 남자들이 작은 상 앞에서 술을 마시면서 잡담을 나눈다. 아이들이 모이면 아주 기뻐하며 비밀 이야기를 나눈다. 가장 큰 수확은 한국 전통 음식의 요리법을 많이 배운 것이다. 예를 들어 생선전, 고기전, 야채전 그리고 꼬치 등등, 이것들은 모두 명절 음식에 빠질 수 없는 것이다. 만든 방법은 어렵지 않아서 한 번만 보고 바로 할 수 있다. 형님의 지도하에 만들면서 외운다. 가장 맛있는 것은 갈비찜이라고 할 수 있다. 평소 큰집에 갈 때마다 형님이 이 음식을 만들어 준다. 고급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갈비찜을 만들 때 시간이 많이 필요해서 형님은 늘 미리 만들어 놓고 밥을 먹을 때 좀 데우면 바로 식탁위에 올릴 수 있다. 아주버님과 형님은 식당을 오랫동안 했기 때문에 큰집의 음식은 역시나 그렇게 맛있다. 한상에 가득 찬 전통한국 음식들을 보고 있기만 해도 사람으로 하여금 식욕이 왕성해지게 한다. 설령 명절에 잔치 음식을 먹더라도 찌거나 삶거나 생채를 무쳐내는 것을 위주로 한다. 식탁에 당연히 없으면 안 되는 음식 "김치"가 받드시 있어야 한다. 설날기간 전국 모든 회사가 3일 동안 연휴가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도 영업을 안 한다. 한국 사람이 식당에서 밥을 먹고 설쇠는 습관이 없다. 노인을 존경하고 가족과 함께 제사하는 전통사상은 현대 발달한 한국 사람의 마음속에 계속 대대로 전해 내려간다.   原文: 在韩国过春节 韩国最早在西汉便与中国有着密切往来,许多文化已渗透到了两国历史发展进程中。深厚的历史文化渊源,使两国人民在风俗习惯和文化背景方面有许多相同点。在传统节日上,韩国同中国一样,春节、元宵节、端午节、中秋节等,都是重要传统民间节日,只是节日寓意及吃的食物有很大区别。 春节就要到了,这是来韩国后度过的第一个春节。因为公公婆婆都已过世,我们只好去龙仁市老公哥哥家过节。几乎像平常一样,在一片安静声中度过了除夕夜,没有便炮齐鸣,没有欢声笑语,也没有在大门上贴对联的习俗。春节期间的马路上,行人寥寥无几,比平时显得更冷清,感觉不到一丝节日带来的欢乐气氛。 哥哥家住在一个普通的密集住宅区十七层楼上,附近都是十七八层高的住宅楼群。行走在高耸的住宅小区,把身影也显得低矮了许多。夏日里,楼群间树木耸立,绿树成荫,花、草铺满小区绿地,到处充满了大自然色彩。停靠在各个楼群间的私家车,将拥挤的区间小路填得满满的,没有了孩子们玩耍的空隙,尽管每栋楼都有地下停车场,停车占地还是不够用。据资料统计,包括大中小型车在内,韩国家庭平均每户拥有一辆车。也就是说,平均每个三口之家拥有一台汽车,韩国的汽车拥有量跟自行车一样普遍。 哥哥是个料理师,中等个头,从相貌上看和老公长得不像亲兄弟,重重的眉毛,乌黑茂密的头发,周正的脸庞,鼻直口方,但他们确是一母所生。嫂子是位韩国式贤妻良母,个子不高,面容清秀紧凑,能做许多好吃的韩国料理。 哥哥家有两个女儿,都毕业于名牌大学。老大今年三十二岁,是首尔大学毕业生,现在一家医院工作,去年刚结了婚;老二三十岁,是著名梨花女子大学毕业生,现在一家跨国银行工作,负责国际银行业务,经常往来于新加坡、香港等地,但并没听她妈说起她处男朋友的事。老二看上去生性高傲,像个标准“韩国公主”,健美的身材,白净的皮肤,漂亮的脸蛋儿,宽而高的额头,透着冷美的个性和发达智慧的头脑。 韩国普通学校高中毕业生,70%都能进入大学校门,有的一家兄妹几人都是大学生。但是,要想考入名牌大学却不是件容易的事,需要付出超人的努力。 在去哥哥家路上,一边走,老公一边教我称呼他哥哥为xxx ,称呼嫂子为xxx ;而他自己则称呼哥哥为xxx,嫂子为xxx。韩国语中对婆家人的称呼很杂乱,老公称呼父母时,直呼xxx和xxx;而我称呼公公婆婆一定要用尊称,称为xxx和xxx。对老公姐姐、妹妹、弟弟的称呼与他也不同,可能因为接触时间短,我的脑子总记不住。 大年初一这天早上,家家户户要吃xxx,是韩国传统饮食,就像中国人习惯在春节吃饺子一样。如果家里有老人去世,早饭前一定要做祭祀,在新的一年开始之际,祭拜亲人在天之灵,保佑家族健康幸福,顺利平安! 在往供桌上摆放供品的时候,一定要按照多年流传下来的民俗习惯进行,顺序是这样的:红东白西、鱼东肉西,枣栗梨柿;要按照祭品不同颜色和不同种类,依次摆放。简单地说就是,红颜色的摆放在供桌东侧,白颜色的摆在西侧;鱼类在东侧,肉类在西侧;最后一排依次摆放红枣、栗子、梨和柿子等,几乎每一个韩国人都明白。 多文化中心讲授的教科书里就有专门介绍韩国人做祭祀的文章,讲解的非常详细。祭祀用菜里,不能放入辣椒和大蒜,只加入酱油或食盐;祭祀用的鱼不能用刀鱼,而用大黄花鱼,用锅蒸熟即可。祭祀用的水果不可以用桃...... 供桌前排,供奉着祖先牌位,供桌后面是屏风,比成年人还要高,屏风上用书法写满了汉字,是一些古训、家训之类的内容。祭祀专用的木制酒具、器皿及香炉等,是从祭祀用品专卖店购买的。一个国家要想保留其民族传统,必须要有配套的物质基础才能将传统文化发展延续下去。 在准备做祭祀前,家里的男人们需穿戴整齐,西服革履;成年男人要按顺序挨个为祖先敬酒。磕头时,头和四肢一起着地,非常虔诚,毕恭毕敬的样子。大哥整整衣襟,走到供桌前,上完香,然后下跪,首先为祖先敬酒。老公站在他身后给他斟酒,哥哥双手接过酒杯,举过头顶,在供品上方作个圆圈状,之后把酒杯交给站在另一旁的三弟。三弟接过酒杯,把酒倒在一个大容器里,哥哥需连续给祖先敬献三杯酒。接着,老公和三弟分别为祖先敬酒,动作跟哥哥一样,在我看来好像演节目一样,敬酒、下跪、磕头、站起,连双手放置的位置都有严格规定。后来才知道,这是佛教式祭祖礼,是一套专门做祭祀用的礼节。 当春节到来时,儿子一家,一般都要去父母家团聚。父母不在世的情况,要去兄长家过节,需要带上好多礼品和钱去看望哥哥和嫂嫂,同时一起做祭祀。哥哥便是长兄为父,在家族里是一家之长。现如今,有的韩国人打破常规,不去婆婆家过年,因为和婆家人不和睦,难相处,而在自己家静静地过节。更甚至有的韩国女孩在选择老公时,就不愿意嫁给家里的老大,因为像祭祀这样的家族大事,都要在老大家举办,身为主人,是一件躲也躲不过去的家庭责任和义务;除非老大不在了,依次改在老二家举办。 祭祀仪式结束后,孩子们站成一排闪亮登场。孩子们要穿上漂亮的韩服,在大人引导下,他们先给祖先叩头、行大礼,再给长辈们拜年叩头,并要说: “春节愉快”(xxxxx)。给长辈磕头时,孩子们也要用标准规范的祭祀礼节,礼毕后会收到长辈们给的“压岁钱”;在给孩子“压岁钱”时,长辈们并不考虑太多诸如还礼的情况,很随意。只要出自真心,礼钱不在多少。一般根据孩子年龄不同,礼钱给的也不同;年龄小的孩子一般收到几千韩币(约5——30元人民币),稍大些的孩子收到几万韩币(约50——250元人民币),家族彼此之间坦诚相待。春节这天,无疑是全年中最热闹的一天,不光家族成员团聚在一起,各种节日饮食五花八门,异常丰盛。想起家中客厅一角的厨柜里,摆放着大小各式碗、盘子、筷子和勺子等餐具,因为婆婆在世时,全家族成员都要来家里过节,是个热热闹闹的大家族,可惜,我看不到那种场面了。 这次在大哥家过春节,由我和大嫂、弟妹妯娌三人,在厨房里为家人们准备着饭菜。男人们围坐在矮腿桌子前喝着酒、聊着天。孩子们聚到一起自然欢天喜地,高兴的不得了,说着悄悄话。最大的收获是,学会了许多韩国传统料理制作方法,像煎鱼片、煎肉饼、煎白菜叶和煎多色串儿等等,都是节日餐桌上不可缺少的食物,制作方法并不难,只要看过一遍就能学会。在嫂子指导下,我一边实际操作,一边默默记在心里。 最好吃的要数炖牛排,平日去大哥家串门时,嫂子都要做这道菜给我们吃,属于高档菜系。因为炖排骨很费时间,每次嫂子都提前准备好,到吃饭时,只要加热一下即可端上桌子。哥哥和嫂子曾经开过多年饭店,难怪他们家饭菜这么好吃! 看着摆满桌子的一道道正宗韩式料理,立刻让人食欲大开。即便在节日里吃的大餐,也以清蒸、炖、煮和凉拌为主;餐桌上当然少不了韩国“国菜”——泡菜。 春节期间,全国大小会社放假三天,百货商店和大型超市都不营业。韩国人没有在饭店聚餐过春节的习俗,孝敬老人,祭祀亲人的传统思想,在现代化发达的韩国人心中源远流长,代代传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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